[시험대 선 NY] 이낙연에게 없는 3가지는 무엇?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20.09.07 10:00
  • 호수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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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권 위해 넘어야 할 세 고개 '비전·시간·세력'
여당 대표 됐으나 ‘독이 든 성배’란 지적도

“아무리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때문이라고 해도 정당 생활 20년 동안 이렇게 재미없는 전당대회는 처음 봤다. 지난번에는 컷오프된 후보라도 나왔는데….”(민주당 당직자 A씨)

“체급이 안 맞는 사람끼리 붙으니 흥행에 실패할 수밖에…. 차라리 ‘이낙연 대 김부겸’ 양자구도였으면 몰라도, 애초에 당선 가능성이 높지 않았던 박주민이 끼어들면서 흥행에 실패했다. 이런 결과는 이 대표에게도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민주당 B의원)

이변은 없었다. 더불어민주당의 새 수장은 많은 사람이 예상한 대로 ‘어대낙’(‘어쨌든 대표는 이낙연’의 줄임말)이었다. 집권 후반기 여당 대표 자리는 차기 권력을 만드는 ‘킹메이커’여서 경쟁이 치열하기 마련인데, 이번만큼은 달랐다. 의원들을 비롯해 당원들의 관심은 최고위원·시도당위원장 등 2부 그룹 선거에 더 집중됐다.

ⓒ일러스트 신춘성
ⓒ일러스트 신춘성

“첫째도 코로나 극복, 둘째도 코로나 극복”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당 대표에 오르길 바랐던 이낙연 캠프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남은 것은 책임감뿐이기 때문이다. 8월29일 대표 수락연설에 나선 이낙연 대표가 코로나19로 국민들이 어려움을 겪는 것을 언급하는 과정에서 “이 고통은 얼마간 커질 것이다. 실업자는 늘고 여러분의 삶은 더 고달파질 것”이라며 순간 목이 멘 듯 울먹인 것도 그가 처한 현실과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대표와 호형호제하며 지내는 정대철 전 민주당 대표의 말이다.

“대표에 당선된 걸 축하하려고 전화했더니 ‘형님, 코로나가 또다시 확산돼 진짜 큰일이에요’라며 걱정부터 늘어놓더라. 울컥한 것 같지는 않았지만 심적 부담감이 엄청나게 크다는 게 느껴졌다. 코로나19로 국민들 삶이 힘들어질 게 뻔한데, 당 대표에 뽑혔다고 좋아할 리가 없지 않은가.”

정치인 이낙연에게 ‘여당 대표’는 한 번도 가지 않은 길이다. 2000년 정치권에 들어온 이후 이 대표는 줄곧 참모 역할만 해 왔다. 참모로서의 이 대표는 발군의 능력을 보여줬다. 무엇보다 일 하나를 해도 똑 부러지게 한다. 완벽주의자라는 말도 그래서 나온다. 지난 8월 시사저널과 가진 인터뷰에서 이 대표는 “평소 허술한 사람인데 일에 관해선 완벽을 지향해야 한다고 믿는다”고 말한 바 있다.

21대 국회에 들어오면서 이 대표에게는 ‘엄중히’라는 또 하나의 별칭이 붙었다. ‘엄중한 낙연씨’ 또는 ‘상황을 엄중히’라는 수식어는 여기서 파생됐다. 이를 두고 정치권 일각에선 “책임은 지지 않고 이미지만 얻으려 한다”고 비판한다. 이 대표도 이러한 비판을 알고 있는 듯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당 대표는 여권의 한 축이다. 당에선 1인자다. 앞으로 새로운 이낙연의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대표 측 관계자는 “총리를 지낸 유력 정치인이 한마디를 해 봐라. 어떤 파장을 낳겠는가. 그러니 당연히 ‘엄중히’라는 수식어를 달며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군주제에서 2인자는 ‘재상’이다. 군주가 국가의 모든 일들을 감독하고 결정하기 힘들기에 재상은 곁에서 조언하면서 국정의 한 책임을 담당했다. 현대정치 체제에서도 최고의 재상인 총리의 역할은 별반 차이가 없다. 모든 책임은 대통령 몫이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적 성공에 따른 성과 역시 대통령이 다 가져간다. 우리 헌법은 내각을 이끄는 최정점을 총리로 규정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대통령에게 모든 권한이 집중돼 있다. 총리 출신 대통령이 아직까지 한 번도 나오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규하 전 대통령(1979~80년 재임)이 있었지만, 당시 정국은 비상상황이었고 대통령 직선제가 아닌 이른바 ‘체육관 선거’였다.

이런 전제로 볼 때 이 대표가 대권주자로서 선두그룹에 위치할 수 있었던 것은 총리로서의 역할에 충실했던 결과물이다.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한 민주당 재선 의원의 말이다. “언론에서는 ‘이낙연 대세론’ 때문에 현역 의원들이 가만히 있다고 말하는데, 완전히 잘못 본 것이다. 솔직히 대선주자로서의 시험은 이제 시작됐다. 이 대표가 여론의 혹독한 검증을 받은 적이 있는가.”

총리라는 자리는 이 대표 자신이 만든 게 아니다. 그러나 대통령이라는 1인자 자린 완전히 다르다. 스스로가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문재인 정부와 어떤 관계를 이어나갈지가 중요하다. 1987년 개헌 이후 한국 정치는 정권 재창출을 한 번씩만 허락해 왔다. 보수와 진보 정치권의 집권 주기는 최대 10년에 불과했다. 또 다른 공통점은 정권 재창출에 성공한 정부마다 전임 정권과 차별화를 시도했다는 점이다. 노태우 정부를 향해 김영삼 정부가 그랬고, 김대중 정부를 향해 노무현 정부가 그랬다.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갈등 구도는 선거 전부터 불을 뿜었다. 차기 대권주자의 압력으로 임기 말 여당을 뛰쳐나온 현직 대통령이 중립내각을 세우는 장면을 우리는 여러 번 봤다.

이낙연 체제에선 어떨까. 현재까지의 모습을 보면 이 대표가 문재인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울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 이 대표를 오랫동안 보좌해 온 한 보좌진의 말이다. “이 대표는 전임자를 밟고 올라서는 정치인이 아니다. 전남지사 선거 때도 전임 박준영 지사가 많은 실정(失政)을 해 여수를 중심으로 한 동부전남권에서 (박 지사에 대한) 비판이 거셌다. 이 대표의 고향인 영광은 서부전남이어서 박준영 지사(영암)와 겹쳤다. 선거캠프 내부에서 박 지사 비판에 동참하자고 했지만, 이 대표는 선거 기간 동안 단 한 번도 비난한 적이 없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 첫 번째 無 - 비전

“엄중한 낙연씨” 확실한 정체성 부족

그러나 그때는 도지사 선거고, 지금 남은 것은 대선이다.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이 대표의 가장 큰 약점 중 하나가 정치적 유산이 없다는 점이다. 그게 ‘이낙연 3무(無)’의 첫 번째 요소다.

대통령의 힘이 빠지는 레임덕(임기 말 권력누수 현상)이 생겨나는 정권 후반기에 차기 대선주자에게 차별화는 불가피한 선택이다. 그런데 지금은 코로나19 방역 때문인지 몰라도 문 대통령은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문빠’ ‘대깨문’(대가리가 깨져도 문재인 지지) 등 극성 지지층의 힘이 최고 수준이다. 어설프게 차별화에 나설 경우 마주칠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이런 가운데 현재 민주당 내 최대 세력을 이루고 있는 ‘친문계’는 여전히 이 대표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해찬 전 대표가 8월28일 열린 퇴임 기자간담회에서 차기 대권 구도와 관련해 “현재 여러 명이 거론되는데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후보가 새로 나오기도 하고 지금 잘나가는 분이 어려움을 겪기도 할 것”이라고 말한 것은 이런 의미로 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비대면 형식으로 열린 당시 기자간담회에서 이 전 대표는 “정치는 살아 있는 생물 같다고 말하는데, 실제로 그렇다. 상황에 따라 새로운 변수가 생긴다”며 이같이 말했다. 20대 국회에서 민생당 소속으로 활동한 C 전 의원은 “정권 재창출이라고 해도 여권 내 주류세력은 교체될 수밖에 없다”면서 “친문의 적자로 불리는 김경수 경남지사가 만약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기사회생하면 친문계의 이낙연 지지는 줄어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에 대한 이낙연계 전략은 ‘인위적인 선택’이 아닌 ‘어쩔 수 없는 선택’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별달리 친문을 의식하지 않는다는 뉘앙스도 풍기고 있다. 이 대표는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전대 기간 중 후보들이 친문계 표심 잡기에 나섰다는 지적을 받자 “각 후보자들의 득표율을 보면 권리당원 득표율과 일반국민 여론조사 득표율이 비슷하게 나왔다. 언론에서 종종 어떤 세력을 지칭하는데 그분들이 특별한 분들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자신만의 정치적 색깔 및 유산은 대선으로 가는 과정에 반드시 필요하다. 이 대표의 장점인 포용력과 균형감은 중도진영에서 먹힌다. 공교롭게도 대선에서 한판 격돌을 벌여야 하는 김종인 비대위 체제의 국민의힘(미래통합당 후신)도 중도층 표심을 얻기 위해 좌클릭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클린턴 정부에서 부통령을 지낸 앨 고어도 임기 후반까지 인기를 끌었던 현직 대통령(빌 클린턴)과 일정 부분 차별화를 시도했다”면서 “지금처럼 문재인 정부를 계승하는 것에만 그치면, 비문 성향의 표심까지 끌어모을 수 없다”고 말했다. 현재 이 대표는 이재명 경기지사와 당내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 1~2위를 다투며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최근 리얼미터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두 사람은 오차범위 내 접전을 나타냈다.

8월31일 국회에서 이낙연 대표가 김영주 전국대의원대회 의장으로부터 당기를 전달받고 있다.왼쪽부터 양향자·노웅래·김종민 최고위원, 이 대표, 김 의장, 김태년 원내대표, 염태영·신동근 최고위원  ⓒ시사저널 이종현
8월31일 국회에서 이낙연 대표가 김영주 전국대의원대회 의장으로부터 당기를 전달받고 있다.왼쪽부터 양향자·노웅래·김종민 최고위원, 이 대표, 김 의장, 김태년 원내대표, 염태영·신동근 최고위원 ⓒ시사저널 이종현

▒ 두 번째 無 - 시간

남은 4개월이 골든타임 “시간이 없다”

선거 기간 동안 이 대표는 ‘7개월짜리 대표’라며 많은 공격을 받았다. 대선이 열리기 1년 전 모든 당직에서 물러나야 하는 현행 민주당 당헌당규상 남은 임기는 고작 7개월에 불과하다.

더군다나 대표에서 물러난 직후인 4월에는 서울·부산시장 재·보궐 선거가 예고돼 있다. 보수 성향이 강한 부산시장은 물론이고, 지금 분위기라면 서울시장도 장담할 수 없다. 만약 제1, 제2 도시인 서울·부산시장 자리가 야당으로 넘어가면 민주당은 당연히 선거 책임론에 휩싸일 수밖에 없으며, 후보 공천 등을 책임졌던 이 대표도 여기서 자유로울 수 없다. 내년 초부터 재보선 출마자가 대거 쏟아지면서 정국이 선거체제로 바뀌는 상황을 가정한다면 3월을 퇴진의 마지노선으로 삼고 있는 이 대표 입장에서는 시간이 많지 않다.

총리에게 최고의 덕목은 관리지만, 대통령에게는 용단과 결단이다. 호남에 지역구를 둔 한 초선 의원은 “정당정치는 성과를 보여줘야 한다. 코로나19야 방역 당국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보니 정치적 결과물은 대통령에게 돌아가겠지만, 민생경제는 다르다. 특히 최근 심각한 민심이반을 불러온 부동산 정책에 대해선 행정부보다 앞서 선제적으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당선 직후 인터뷰에서 △코로나 위기 극복 △민생 지원 △포스트 코로나 준비 △통합의 정치 △혁신 가속화 등을 자신에게 주어진 5대 명령으로 꼽았다.

9월부터 시작되는 정기국회부터 연말까지 4개월이 이 대표에겐 대선의 승부수를 만들 수 있는 골든타임이다.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면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지지율이 동반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

 

▒ 세 번째 無 - 세력

확실한 당내 지지세력 아직 부족

이 대표는 굉장히 부지런하다. 그렇다 보니 ‘워커홀릭’이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국회로 복귀한 뒤부터는 거의 모든 일정이 분초 단위로 쪼개져 있다. 지난 8월 시사저널과의 인터뷰 때도 기자에게 “준비되면 말씀하시라”며 인터뷰 직전까지 책상에 앉아 올라온 보고서를 꼼꼼히 읽었다.

자신만 그런 게 아니라, 함께 일하는 보좌진에게도 엄격함을 요구한다. 과거 이 대표 밑에서 일한 한 보좌진은 “조금도 숨 쉴 틈을 주지 않고 혹독하게 일을 시킨다. 문서에 단어 하나만 틀리게 적어도 불호령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과거 언론사 시절 함께 근무했던 후배 기자들의 평가도 많이 다르지 않다.

대선판은 사람과의 싸움이다. 간발의 차로 당선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집권 내내 넓지 않은 인재풀 때문에 힘들어했다. 6년 만에 국회로 복귀한 이 대표 역시 사정은 그리 녹록지 않다. 현재 당내에서 ‘NY(이낙연 대표)계’로 꼽히는 의원은 설훈·이개호·오영훈·최인호·박광온 의원 등이다.

이 외에도 이 대표는 다수 초선 의원 후원회장을 맡고 있다. 이낙연계라기보다는 순수 후원회장 성격이 짙다. 정리하면 앞서 거론한 5~6명을 제외한 나머지 의원들은 관망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전혜숙·고용진·김병욱·어기구·이춘석 등 옛 손학규계 전·현직 의원들도 이 의원을 지지한다고 하지만, 계파 전체의 통일된 목소리는 아니다.

이런 가운데 이 대표 주변에서는 “일할 사람이 마땅히 없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나온다. 대선주자로 발돋움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현 이낙연계는 친노·친문처럼 결속력이 강하지 못하다. 앞서 설명한 대로 세세한 일 하나까지도 꼼꼼하게 챙기는 이 대표 성격도 외연 확대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현재 실무는 총리 시절 함께한 보좌진들이 맡고 있지만, 이마저도 손발을 맞춘 지가 오래되지 않았다.

그간 정치권에서 이 대표는 ‘신사’로 불렸다. 그만큼 언행이 단정하고 깔끔하다. 함께 의정활동을 했던 고(故) 정두언 의원은 “한번 페달을 밟으면 힘껏 앞으로 치고 나간다”는 의미로 이 대표의 리더십을 가리켜 ‘자전거 리더십’이라고 말했다. 자전거 페달은 계속 치고 나가야 한다. 그래야 일정 시간이 지나면 가속이 쉽게 붙는다. 하지만 멈추면 바로 쓰러지는 게 바로 자전거다.

기자간담회에서 이 대표는 현안에 기민하게 대처하면서 유능하고 겸손한 민주정당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그가 말한 기민함은 국민이 아파하는 것을 빨리 파악하고 대처하는 것이다. 지금 이 대표에게는 많은 여유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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