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 지옥’ 질타에 또 고개 숙인 포스코
  • 송창섭 기자 (realsong@sisajournal.com)
  • 승인 2021.03.03 14:00
  • 호수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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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첫 중대재해 청문회에 총수 소환
연임 유력한 최정우 회장 “영(令)이 안 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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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이종현·박은숙

“현재 포스코 노동자들은 ‘포스코는 문을 열면 지옥이다’고 말한다. 너무 안타깝지 않나.”(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

“….” (최정우 포스코 회장)

2021년 2월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산업재해 청문회는 사실상 최정우 포스코 회장에 대한 성토장이었다. 이날 청문회는 관련법(중대재해기업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주무부처 장관과 기업 CEO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첫 청문회였기에 의미가 남달랐다. 하지만 포스코엔 그룹 총수가 첫 국회 청문회에 선 치욕스러운 날로 평가받는다. 국회가 이날 최 회장을 청문회 증인으로 부른 이유는 해마다 늘어나고 있는 산재 문제를 중점적으로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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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14일 경북 포항에 있는 포스코 본사 앞에서 민주노총 금속노조 포스코지회가 집단 산업재해 보상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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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2월9일 ‘포스코 포항제철소 청년 비정규직노동자 추모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고인을 추모하며 묵념하고 있다.ⓒ연합뉴스

급증하는 산재로 슬로건 ‘위드 포스코’ 머쓱

최근 포스코 내부에서 발생하는 산재 사고를 심상치 않게 본다. 일각에선 2018년 포스코 역사상 첫 ‘비(非)엔지니어’ 출신인 최정우 회장이 3월12일 주총을 앞두고 산재(산업재해) 이슈가 터지면서 연임 전선에 먹구름이 낄지 모른다고 우려하고 있다. 최근 잇따라 터지는 포스코 내 산재는 최 회장 취임 후 만든 슬로건 ‘위드(With) 포스코’에 먹칠을 하고 있다. 국민과 함께 발전하는 ‘기업시민’을 최우선 경영 과제로 정했던 최 회장의 취임 일성을 무색하게 만들 정도다.

국회 환노위 소속 김웅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2016년 이후 포스코에서 연평균 4명의 사고성 사망자가 발생했다. 최 회장이 취임한 2018년에는 5건, 2019년에는 3건, 지난해에는 총 6건의 사망 사고가 있었다. 특히 최근 2개월간 발생한 사망 사고는 포스코의 안전불감증이 심각한 수준임을 보여준다. 지난해 12월9일 협력업체 직원 김아무개씨는 오후 1시58분쯤 포항제철소 내 3소결 공장에서 공기를 흡입하는 설비 블러워 덕트를 수리하다 아래로 떨어져 사망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하청업체 직원 김씨는 5m 아래로 떨어졌다. 그러나 시사저널 취재 결과 해당 사고는 전형적인 인재였다. 집진기를 정비하던 김씨는 덕트 보강 면적을 측정하던 중 내부로 추락했고, 뜨거운 열기에 허둥대다 2차 추락에 따른 심장 파열로 사망했다. 관련 사고를 조사한 노웅래 민주당 의원은 “만약 1차 추락 때 관련 설비를 멈췄다면 충분히 살릴 수 있었다”며 안타까워했다.

고용노동부가 파악한 포스코 산업재해 수는 지난해 9월말 현재 18건이었다. 2018년 17건, 2019년 38건으로 2016년과 2017년 각각 15건과 13건씩 터진 것과 비교해 큰 폭의 증가다. 지난해 11월24일 발생한 광양제철소 폭발 사고로 3명이 사망하면서 고용노동부는 광양제철소에 대한 특별감독을 실시했다. 그 결과 총 638건의 시정명령과 과태료 2억2300만원이 부과됐다. 사법조치 건수도 597건이다. 앞서 지난해 말 발생한 김씨 사망 이후 고용노동부는 정기감독을 실시해 시정명령 111건에 3억7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했다.

연달아 문제가 터지자 포스코 내부의 기류도 심상치 않다. 지난해 11월 광양제철소 사고 후 포스코는 최정우 회장 명의로 대국민 사과문을 낸 데 이어, 올 2월3일에는 안전조치로 생산이 미달되는 것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고 대신 오히려 포상하겠다며 ‘안전 최우선’ 경영을 발표했다. 하지만 관련 조치가 발표된 지 닷새 만인 2월8일 또다시 포항제철소 연료부두에서 컨베이어벨트 롤러 교체 작업을 하던 협력업체 직원이 기기에 끼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노조(금속노조 포스코지회)가 파악한 안전사고는 이보다 더 많다. 고용노동부 통계에서 총 38건의 산재가 발생한 2019년만 해도 노조는 발생한 산재 건수를 60건으로 본다. 지난해에도 22건의 사고가 터졌다. 노웅래 의원실 관계자는 “2월9일 사고와 구의역 스크린도어, 김용균씨 사망 사고는 하청업체 청년, 압착 사고, 사고 전 관련 기기를 멈추지 않아 생긴 전형적인 인재였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밝혔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정치권이 이 문제를 심각하게 보는 것도 포스코에서 발생하는 안전사고가 사회적으로 용인할 수 있는 선을 넘어섰다고 판단해서다. 2월22일 국회 환노위 청문회에 최 회장을 증인으로 부르는 데 여야가 이견을 보이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포스코는 최 회장이 증인석에 서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움직였지만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다. 환노위 관계자는 “야당 간사인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을 만나고자 임 의원 지역구인 경북 상주, 문경까지 내려갔지만 설득에 실패했다”면서 “여당 의원들조차 ‘이번 청문회에 나오지 않으면 국정감사 때 부르겠다’고 으름장을 놓아 증인 출석이 성사된 걸로 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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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비 노후·하청 예산 삭감 ‘외주 위험화’ 계속

포스코 내부에선 이번 산재 사고 증가의 원인을 정비 예산 축소에서 찾는다. 제때 노후 설비를 교체하지 않은 것이 근본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광양제철소 제1 배수종말처리장 내 재생로와 활성탄탑은 지난 1988년 완공된 것으로 이 중 재생로는 1999년 교체한 반면, 활성탄탑은 사용기한이 15년임에도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제2, 제3 배수종말처리장 역시 사정은 비슷하다. 문제가 터지자 최 회장은 “설비에 1조원 이상 투자했음에도 이런 일이 발생해 안타깝다”고 밝히면서 문제 해결에 회사가 적극 나섰다고 해명했다. 환노위는 지난번 청문회에서 이런 문제를 집중적으로 따지면서 포스코를 상대로 그동안의 정비 예산 사용내역을 요청했지만 포스코가 구체적으로 관련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김용균 사태를 만든 ‘위험작업장의 외주화’도 심각한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청문회에서 윤미향 의원이 유독 하청업체의 산재 사고가 많은 이유를 묻자, 증인으로 출석한 최정우 회장은 구체적으로 답하지 못했다. 이에 대해 함께 청문회에 참석한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안전조직의 비체계화, 위험성 평가 대처 미흡, 작업의 위험성에 대한 근로자 인식 미흡과 함께 하청업체에 대한 관리 미흡을 지적했다. 이수진 의원실(비례)이 고용노동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간 포항제철소는 하청업체에서 발생한 중대재해 사고가 4건, 광양제철소는 6건이었다. 이는 포스코 본사 직원(포항 2건, 광양 2건)보다 월등히 많다. 한대정 금속노조 포스코지회 비상대책위원은 “쥐어짜기 식으로 하청업체 예산을 줄이다 보니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면서 “경영진은 산재 사고를 줄이라고 강하게 주문하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근로자가 참여해 함께 대책 수립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포스코 본사에 근무하는 한 임원은 “권오준 전 회장 시절부터 연구·기획 인력이 너무 늘어나면서 현장 안전 사고 체계가 약화된 측면이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또 다른 전직 포스코 임원은 “최 회장 말처럼 설비 부실로 매년 1조~2조원씩 들어가는데 정준양 전 회장 시절부터 자원외교네 뭐네 하면서 차곡차곡 쌓아놓은 사내유보금이 크게 줄어들었다. 설비 보강 및 안전설비 대책 마련에 쓸 돈이 많이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청문회에서 김웅 의원의 지적은 최 회장이나 포스코 경영진엔 뼈아픈 대목이다. “회장님, 2012년도 OECD에서 이런 이야기를 해요. 안전을 위한 기업 경영 보고서에서 사고가 발생하는 이유는 ‘부적절한 리더십’과 ‘잘못된 조직문화’가 원인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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