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성범죄, 언택트 시대 ‘공공의 적 1호’
  • 조해수·유지만 기자 (chs900@sisajournal.com)
  • 승인 2021.03.01 10:00
  • 호수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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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성범죄 특집 ①] 4대 강력 범죄 중 성폭력 비중 91%… 나홀로 급증
“형사정책이 디지털 성범죄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디지털 성범죄가 언택트 시대의 ‘공공의 적 1호’가 됐다. 지난해 터진 ‘n번방’ 사건은 성범죄가 이미 사이버 세상에 깊이 뿌리 내렸음을 보여줬다. 화들짝 놀란 수사당국과 국회, 사법부는 부리나케 조치에 나섰다. 경찰은 ‘디지털 성범죄 특별수사본부’를 꾸려 집중단속에 나섰고, 국회는 이른바 ‘n번방 방지법’을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권고 형량을 높인 새로운 양형 기준을 내놨다.

해가 바뀐 지금, 우리 사회는 디지털 성범죄와의 전쟁에서 이기고 있을까. 조주빈 등 n번방 운영자들은 최대 45년의 중형을 선고 받았지만, 수천개의 성착취물을 거래·소지한 n번방 고객들에 대한 처벌은 벌금, 집행유예 등 솜방망이에 그쳤다. 제2, 제3의 n번방들은 또 다른 SNS를 둥지 삼아 지금도 성행 중이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 교수는 “사법정책이 디지털 성범죄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디지털 성범죄 관련) 통계치가 말해주는 것은, 모든 상황이 ‘엉망진창’이라는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시사저널 임준선
ⓒ시사저널 임준선

성범죄, 10년간 51% 폭증

대검찰청에 따르면, 4대 강력범죄(살인, 강도, 방화, 성폭력) 중 성범죄가 차지하는 비중은 90%를 넘어섰다. 비중보다 추세가 더 큰 문제다. 10년간(2010~2019년) 살인·강도·방화 등 다른 강력범죄가 하향 곡선을 그릴 때 성범죄만 ‘나홀로’ 급증했다. 2010년 2만584건(73.2%)이었던 성범죄는 2019년 3만2029건(91.3%)으로 뛰었다. 10년 동안 51.6% 폭증한 것이다(1번 그래프 참조). 

자료=대검찰청
출처=대검찰청 통계
출처 = 대검찰청
출처= 대검찰청 통계

성범죄의 급증은 ‘카메라등이용촬영죄’ 등 디지털 성범죄의 증가에 기인한 것이다. 대검은 ‘2020 범죄분석’에서 “카메라등이용촬영의 구성비는 지난 10년간 급격한 증가를 보였다. 2010년에는 전체 성범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6% 수준이었으나, 지속적으로 증가해 2015년 24.9%로 확대된 이후 2019년에는 18.4%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2번 그래프 참조). 올해에도 디지털 성범죄는 기승을 부릴 것으로 예상된다. 경찰대학 치안정책연구소는 ‘치안전망 2021’을 통해 “코로나19 이후 외부 활동과 대인접촉 감소의 영향으로 전통적인 방식의 성범죄는 감소하겠지만, 통신매체를 이용한 디지털 성범죄는 증가 추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상정보등록 제도를 통해서도 디지털 성범죄를 살펴볼 수 있다. 신상정보등록 제도는 등록대상 성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의 신상정보를 국가에서 등록·관리해 재범을 막고자 하는 것이다. 신상정보등록 제도는 2000년 청소년 대상 성매수범의 신상정보 공개를 시작으로 2011년 성인 대상 성범죄자로 확대됐고, 2013년 카메라등이용촬영죄를 포함했다.

시사저널은 신상정보등록 제도의 2008~2018년 통계치를 분석한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의 '2020 성범죄 백서'를 기초로 2019~2020년 최신 데이터를 추가했다. 이에 따르면, 디지털 성범죄는 ‘양’뿐만 아니라 ‘질’적인 부분에서도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가장 먼저, 2013년 412건 등록됐던 카메라등이용촬영죄는 2020년 2172건으로 5배 넘게 폭증했다(3번 그래프 참조). 

출처=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
출처=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

젊은층이 디지털 성범죄의 표적이 됐다. 카메라등이용촬영죄의 피해자들 중 20대가 과반(57.6%)을 차지했다. 더 세분해서 보자면 19~24세가 36.2%, 25~29세 21.4%였고 30대가 17.5%로 뒤를 이었다(4번 그래프 참조).

문제는 카메라등이용촬영죄의 재등록 비율이 높다는 것이다. 2020년까지 카메라등이용촬영 범죄자의 재등록 건수는 778건인데, 이 중 같은 범죄(카메라등이용촬영죄)를 또 다시 저지른 사람이 570명(73.2%)이었다(5번 그래프 참조). 이와 관련해 이수정 교수는 “전과 9범 이상의 동종 범죄자들이 급증하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10여년간 2배 넘게 증가했다. 9범 이상이 2008년도에 1200여명이었는데, 2019년도에 2600여명으로 늘었다. 이는 성범죄에 대한 형사정책의 실패를 의미한다”고 비판했다.

출처=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
출처=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

재범률 높고 변태 성범죄로 발전할 수도

또한 카메라등이용촬영 범죄자 중에서는 비접촉 범죄를 넘어 접촉 범죄인 강간(3.5%), 강제추행(9.2%) 등으로 재등록된 경우가 10%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5번 그래프 참조).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은 ‘2020 성범죄 백서’를 통해 “비접촉 성범죄는 성행위 방식이나 성행위 본질에서 정상범위를 벗어나는 경우에 속하는 성적 일탈 유형으로, DSM-5(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매뉴얼) 변태성욕 장애에 포함된다”면서 “성적 일탈 범위가 매우 광범위하고 상황에 따라서 심각한 성도착 행위를 포함하고 있어 잠재적 위험성이 크다. 접촉 성범죄자들이 성범죄 ‘경력’을 시작하는 계기가 주로 비접촉 성범죄”라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해 이수정 교수는 “‘음란물 유저’가 나중에는 ‘연쇄 강간살인마’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연쇄 살인범의 최근 사례를 보면, SNS를 통해 피해 여성들을 불러들였다”면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경고했다.

출처=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
출처=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

그러나 처벌은 가벼웠다. 카메라등이용촬영죄 선고 현황을 보면, 징역형을 받은 경우는 10명 중 1명(10%)에 불과했다. 절반 이상(52.4%)이 벌금형에 그쳤고, 집행유예도 33.8%를 차지했다(6번 그래프 참조). 특히 집행유예의 비중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소병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최근 5년간(2015~2020년 6월) 디지털 성범죄 1심 재판 결과를 분석한 결과, 집행유예 비율은 2015년 27.7%에서 지난해 6월 기준 48.9%까지 치솟았다.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는 “법원은 강간과 같은 물리적 성폭력만 강력범죄라고 여긴다”면서 “이는 남성 중심주의적 사고방식”이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여성은 성폭행 범죄보다 불법 촬영에 더 큰 불안감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9년 서울경찰청이 서울 거주 여성 389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범죄별 불안도’ 설문조사에 따르면, 불법 촬영이라고 응답한 사람이 32%를 차지했고 성폭력·추행은 29.1%였다.

이에 대해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은 “불법 촬영에 대해 불안감이 큰 것은 피해자가 일상생활 중 부지불식 간(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촬영을 당하기 때문”이라면서 “촬영된 영상이 인터넷을 통해 확산되면 피해정도가 막심하며, 한번 배포된 영상을 영구히 삭제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사진이나 영상의 불법촬영·유포, 이를 빌미로 한 협박, 사이버 공간에서의 성적 괴롭힘 등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 나무여성인권상담소 지지동반팀(02-2275-2201, digital_sc@hanmail.net), 여성긴급전화 1366,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02-735-8994, www.women1366.kr/stopds),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02-817-7959, hotline@cyber-lion.com)에서 지원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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