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5년간 근로자 9명 사망에도 사과문만 되풀이
  • 박치현 영남본부 기자 (sisa518@sisajournal.com)
  • 승인 2021.06.14 07:30
  • 호수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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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아연에서 또 ‘의문의 사망 사고’ 발생
경찰·검찰·노동부·감사원, 전방위 수사 나서

중대재해 사업장인 고려아연에서 이번에는 ‘의문의 질식 사고’가 발생했다. 5월30일 오전 9시, 울산광역시 울주군에 위치한 고려아연 온산제련소 작업현장에서 근로자 2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이들은 금속 물질이 녹으면 이를 받아서 일시 저장하는 메탈케이스 안쪽에 쓰러져 있었다. 노동부는 ‘질소에 의한 산소 결핍’이 사망 원인인 것으로 추정했다. 경찰과 국립과학수사연수원, 고용노동부는 6월3일 합동감식을 진행했다. 감식반은 근로자들이 환기가 잘 안되는 공간에서 청소작업을 하다 질식했거나, 금속용해 제품 확인 중 유독가스를 마셔 사망했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앞서 기자는 6월2일 사고현장을 찾았다. 숨진 근로자들이 발견된 메탈케이스 안쪽은 허리를 구부려도 들어가기 힘들 정도의 좁은 공간이었다. 고려아연 노조는 “이곳은 작업공간이 아니다. 지금까지 직원들이 들어간 적이 없고, 들어갈 필요도 없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노동부는 6월7일부터 16일까지 고려아연에 대한 고강도 특별 근로감독에 들어갔다. 안전이 확보되기 전까지는 작업중지를 해제하지 않을 방침이다.ⓒ시사저널 박치현
노동부는 6월7일부터 16일까지 고려아연에 대한 고강도 특별 근로감독에 들어갔다. 안전이 확보되기 전까지는 작업중지를 해제하지 않을 방침이다.ⓒ시사저널 박치현

공장 작업현장서 또 의문의 질식사 발생

유족들은 회사의 ‘특수 작업지시’가 있었다고 의심하고 있다. 하지만 회사 측은 “감식 결과를 지켜보자”고 말했다. 노조는 ‘미스터리 의문사’를 규명하려면 이들이 왜 거기에 들어갔는지를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메탈케이스는 흄잉 설비에서 나오는 금속 제품을 담는 용기다. 흄잉은 원광석을 녹여 1차 금속 물질을 추출한 후 나오는 찌꺼기를 모아 1300도 열을 가해 비철금속을 다시 뽑아내는 설비다. 이때 액체 상태의 쇳물을 모래 알갱이만 한 고체로 만들기 위해 질소를 사용한다. 질소는 파이프라인으로 공급되기 때문에 외부 유출은 되지 않아야 한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이곳에 들어가 질식사 했을까? 시사저널 취재 결과 근로자들이 숨진 곳은 언론에 보도된 밀폐된 컨테이너가 아니라 공기 순환이 가능한 공간이었다. 질소는 대기의 78%를 차지하는 비활성 기체로서 독성은 없다. 하지만 밀폐된 공간에서 질소의 양이 평상시보다 높아지면 폐 속의 산소가 질소로 교체돼 의식을 잃거나 심할 경우 수분 내 사망에 이르게 된다.

2014년 1월 신고리 3호기 건설현장 보조건물 지하 작업장 질소 밸브에서 질소가스가 누출돼 안전순찰 중이던 협력업체 직원 등 3명이 질식해 숨졌다. 이들은 바깥 공기가 통할 수 없는 곳에서 변을 당했다. 경찰과 소방본부는 당시 현장의 산소 농도가 호흡이 곤란한 14%를 기록했고, 부검 결과 산소 결핍으로 숨졌다고 밝혔다. 공기 중 전체 부피의 약 21%는 산소다. 2013년 12월 포스코 포항제철소에서 근로자 2명이 숨진 사고 역시 밀폐된 맨홀을 점검하다가 질소에 노출돼 사망한 것으로 드러났다. 

안전보건공단 산업재해 통계자료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20년까지 질식 사고 사망자는 95명이다. 오폐수처리·정화조(20%), 저장용기(17.9%), 건설현장(11.6%), 배관 내부(8.4%), 맨홀(6.3%), 선박(6.3%) 등 모두 밀폐된 장소였다. 하지만 이번 고려아연 ‘질소 질식사’는 개방된 공간에서 일어난 최초 사고다. 안전 전문가들은 일어날 수 없는 곳에서 이해할 수 없는 사고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김석택 울산대 교수는 “질소가 외부에 유출되면 곧바로 공기에 희석돼 위험성은 높지 않다. 다만 바깥에서도 고농도의 질소가 한꺼번에 유출되면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는 있다”고 지적했다. 신승부 전(前)산업안전공단 울산지도원장도 “질소 공급라인에 문제가 생겨 개방 공간의 대기 중 산소 농도가 순간적으로 16% 이하로 떨어지면 질식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노동부 1차 조사에서 배기시설 자체는 작동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안전 전문가들은 고농도 질소의 순간 유출 사고가 아니고는 설명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고려아연 관계자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은 없다. 섣불리 사고 원인을 언급할 입장은 아니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는 6월7일부터 16일까지 고강도 특별 근로감독에 들어갔다. 안전이 확보되기 전까지 작업중지를 해제하지 않을 방침이다.

울산경찰청과 국과수 등이 6월3일 울산시 울주군 고려아연 온산제련소 사고 현장에서 합동 감식하고 있다.ⓒ연합뉴스
울산경찰청과 국과수 등이 6월3일 울산시 울주군 고려아연 온산제련소 사고 현장에서 합동 감식하고 있다.ⓒ연합뉴스

폐수 수질 조작, 폐기물매립장 특혜 의혹 겹쳐
  
고려아연은 6월1일 공개 사과문을 발표했다.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에게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올리며, 국민 여러분께 큰 염려를 끼쳐드려 진심으로 머리 숙여 사과를 드린다"고 밝혔다. 이번 사과문은 5년 전인 2016년 6월28일 황산 누출 사고 때 발표된 내용과 똑같다. 당시 설비 보수공사를 하던 협력업체 근로자 2명이 사망하고, 4명이 화상을 입었다. 그때 사고로 고려아연 회사 관계자 등 151명이 형사 입건됐고, 안전·환경·보건 분야에 5년간(2021년까지) 3000억원을 단계적으로 투자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안전관리 부서 직원을 40명으로 확충했다.

하지만 중대재해는 계속됐다. 2019년 1월에는 50대 협력업체 근로자가 높이 40m 굴뚝에서 추락해 숨졌다. 지난해에도 끼임 사고로 노동자 1명이 목숨을 잃었고, 올해 3월 부딪힘 사고로 1명이 사망했다. 고려아연에서는 최근 5년간 9명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고려아연 온산제련소는 올해 2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중대재해 발생 사업장’에 포함됐다. 또 2019년과 2020년 연속으로 '원·하청 통합사고 사망 만인율'이 높은 사업장 명단에도 올랐다. 만인율이란 사망자 수의 1만 배를 사업장 전체 노동자 수로 나눈 값이다. 만인율이 높을수록 사망 확률이 높다는 의미다. 고려아연은 소를 잃고도 외양간을 고치지 않은 셈이다. 노동부는 “회사가 사고 방지 개선 의지를 가지고 있는지 의심된다”며 “사망 사고의 고리를 끊기 위한 강도 높은 감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업계는 고려아연이 자신들의 기업문화에 문제가 있다고 인정하고, ‘고해성사’를 통해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검찰도 고려아연을 겨누고 있다. 검찰은 고려아연이 폐수의 특정 중금속 허용량이 기준치를 초과하자 측정업체와 울산보건환경연구원 연구사 등에게 뇌물을 주고 검사 결과를 조작한 혐의를 잡고, 압수수색과 함께 계좌 추적도 벌이고 있다. 고려아연의 ‘폐기물 매립장 특혜 허가 의혹’에 대해 감사원 감사와 경찰 수사도 진행 중이다. 울산시는 고려아연 공장 부지에서 2km나 떨어진 곳에 자가매립장 허가를 내줬다. 감사원은 위법 소지가 있을 수 있다고 보고 강도 높은 특별감사를 벌이고 있다. 경찰도 여러 경로의 제보와 주민들의 고소·고발 내용을 토대로 수사에 착수한 상태다. 

아연괴와 연괴 등 제조·판매를 주업종으로 하는 고려아연은 1978년 창사 이래 43년 동안 한 번도 적자를 낸 적이 없는 영풍그룹의 핵심 회사이자 캐시카우(Cash Cow·수익창출원)다. 지난해 매출은 7조5800억원, 영업이익은 8970억원에 이른다. 부자 회사 고려아연이 중대재해와 독성 폐수 수질 조작, 폐기물매립장 특혜 허가 등 ‘3대 악재’가 동시에 겹쳐 기업 이미지가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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