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부모 찬스’, 만들어진 특권-만들 수 있는 특권
  • 김종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2.05.03 10:00
  • 호수 16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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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만의 품앗이, 입학사정관제·학종 독점해 학벌 독식
실력 평가할 잣대 없는 한국 사회…“학벌주의는 지적 인종주의”

그들만의 세상에는 ‘부모 찬스’가 있었다. 좌우와 진영을 가리지 않았다. 국정농단을 저지른 최순실씨는 자신의 딸 정유라씨를 불법적 특혜로 이화여대에 입학시켰다. “돈도 실력이야. 너희 부모를 원망해라”라는 정씨의 글은 국민들로 하여금 촛불을 더 밝게 더 높이 들게 만들었다.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겠다던 문재인 정부는 이른바 ‘조국 사태’로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고 흔들렸다. 국민적 공분은 그때마다 나라를 뒤흔들었다. 

‘공정과 상식’을 내걸고 정권교체에 성공한 윤석열 정부는 과연 어떨까. 새 정부 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의혹은 끝도 없이 불거지고 있는데, 논란의 핵심에는 역시 ‘부모 찬스’가 자리하고 있다.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는 딸과 아들이 정 후보자가 경북대병원 진료처장(부원장)과 병원장으로 재직 중이던 시기에 잇달아 경북대 의대에 편입한 사실이 드러났다. 김인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는 ‘장학금 대물림’ 논란을 일으켰다. 김 후보자가 한국 풀브라이트 동문회장으로 있을 때 그의 딸이 1억원가량의 장학금을 받은 사실 외에 아들도 장학생으로 선발된 사실이 추가로 확인됐다. 김 후보자 부부와 자식 등 4인 가족 모두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수령했다.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시사저널 임준선

朴·文 정부 수렁에 빠트렸던 ‘부모 찬스’, 尹 정부에서도 그대로 

돈과 특권이 존재하는 장소에는 어김없이 ‘부모 찬스’가 발견됐다. 이번 대선을 관통했던 대장동 의혹에도 부모 찬스는 존재했다.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의 아들은 대장동 개발시행사 화천대유자산관리에서 퇴직금 명목으로 50억원을 받았다. 박영수 전 특별검사의 딸은 대장동 아파트 한 채를 헐값에 분양받았다는 특혜 의혹에 휩싸였다. 곽 전 의원은 이 일로 의원직을 내려놔야 했다. 

두 지점을 짚어야 한다. 대중이 어떤 문제에 유독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은 일종의 사회적 징후다. 왜 부모 찬스는 국민의 역린을 건드리는 걸까. 수많은 불법과 반칙 중에 우리는 유독 부모 찬스에 민감하다. 왜 그럴까. 대한민국이라는 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약속, ‘공정’이라는 두 글자를 뒤흔들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금수저와 흙수저로 상징되는 부의 대물림과 불평등 고착화 문제는 이제 한국 사회가 현재의 모습으로 과연 지속 가능한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지게 한다. 공정의 역습이다.

또 하나의 중요한 질문은 ‘왜 부모 찬스가 진영과 시공간을 가리지 않고 반복되는가’다. 그리고 ‘왜 부모 찬스는 유독 학벌 획득에 사용되는가’다. 성급한 진단보다 욕망을 이해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시작이다. 우리는, 우리 사회는 왜 이토록 학벌을 욕망하는가. 왜 반칙과 불법을 감수하면서까지 학벌이란 자원을 소유하려 할까. 학벌은 실력을 보장하고, 성공을 보장하는 황금열쇠인가. 그렇다면 20세 남짓의 실력이 아닌, 이후 성장하고 변모한 실력을 평가할 기준과 잣대를 한국 사회는 왜 만들지 않았을까. 반복되는 부모 찬스는 한국 사회가 어떤 욕망과 구조 아래 떠받쳐지고 움직이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시사저널이 그 구조의 밑동을 살펴봤다. 

김인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연합뉴스

처음부터 3루에서 태어난 그들, 공정한 출발선은 없다

“어떤 사람은 3루에서 태어났으면서도 자기가 3루타를 친 줄 안다.” 절묘한 비유다. 미국의 미식축구 감독 배리 스위처가 남겼다는 이 말은 능력주의와 불평등, 그리고 공정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을 보여준다. 관련한 담론은 넘쳐나지만, 이 비유만큼 현실을 꿰뚫는 한마디는 찾기 어렵다. 

한국에서 이 한마디는 여러 모습으로 나타났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바로 ‘부모 찬스’가 그 중심에 자리한다는 점이다. ‘시험은 공정하다’라는 대명제는 부모 찬스 앞에 무색해진 지 오래다. ‘영어 유치원→사립 초등학교→국제중학교→영재고·특목고·자사고→SKY(서울·고려·연세대)대(혹은 미국 대학)→전문직·대기업’으로 이어지는 그들만의 사다리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대학입시라는 기회를 더 이상 공정하게 느끼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할아버지의 재력과 엄마의 정보력’이 입시의 성공 조건이 된 지 오래라는 게 상식으로 자리 잡았다. 

그들만의 사다리에서 혹시 이탈해도 상관없다. ‘부모 찬스’는 그들의 자녀를 3루까지 결정적 순간에 특급 배송시킨다. 다른 이들은 접근할 수 없는 정보와 인맥을 활용해 다양한 스펙을 탄생시킨다. 사교육 1번지 대치동에서 논술강사와 학원장을 지낸 조장훈 작가는 저서 《대치동-학벌주의와 부동산 신화가 만나는 곳》에서 20년 넘게 들여다본 장막 안 그들만의 무대를 낱낱이 고발한다. “부유하거나 부모의 학력 수준이 높은 집 아이들은 수업이 끝나면 변호사 사무실로, 검찰청으로, 병원으로, 사회단체로 실려가 인턴으로 일하거나 봉사활동을 했다. 대학으로, 연구소로 배달되어 이해하지 못할 실험에 참여하거나, 사소하기 이를 데 없는 일을 하고 논문에 이름을 올렸다.” 이런 흐름은 2008년 이명박 정부에서 본격 실시된 입학사정관제 때부터 본격화됐다. 부유한 엘리트 계층은 입학사정관제를 독식했다. 

이 고발은 허언이 아니다. 교육부는 최근 대학교수 논문에 미성년자를 공동저자로 끼워넣은 사례가 2007~18년까지 12년간 1033건에 달한다는 최종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교수가 자기 자녀를 공저자로 올린 논문·연구물이 223건, 자기 자녀가 아닌 미성년자는 810건이었다. 이 중 기여한 게 거의 없는데 미성년자를 저자로 이름을 올려준 ‘부정’ 사례는 27개 대학 96건으로 집계됐다. 서울대가 가장 심해 미성년자 공저 논문 자체도 64건으로 가장 많고, 부정 사례도 22건으로 역시 가장 많았다. 미성년자 부정 논문에 관여한 교수 69명 중 실질적인 징계를 받은 건 10명에 불과하다. 그런데 과연 이뿐일까. 국민은 자기 자녀가 아닌 미성년자를 공저자로 올린 810건 중 상당수를 ‘논문 품앗이’로 볼까, 뛰어난 미성년자들의 성과로 볼까. 

그들은 그들만의 사다리가 없으면 아예 만들어냈다. 조 작가는 이렇게 증언한다. “이 계층은 자녀들의 외부 수상 실적을 늘리기 위해 계속해서 새로운 대회와 단체를 만들었다. 각 학교마다, 지역마다 모의국회와 모의법정이 수없이 생겨났다. 2007년 전국을 통틀어 3개뿐이던 모의유엔대회는 2013년에는 서울에만 60개가 생겼다.” 모의국회와 모의법정이 열린다는 정보와 이를 준비할 수 있는 사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는 우리 아이들에게 공정하게 주어졌을까. 조 작가의 설명이다. “입학사정관제를 준비하는 금수저와 논술·정시를 준비하는 흙수저는 교실 안에서 한눈에 구분되었다.”

 

“논문 품앗이하고 모의법정 대회 만들어”

정권이 바뀌고 제도가 바뀐 이후엔 어땠을까. 현행 입시 체제의 주인공인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은 누구를 위해 존재할까. 입학사정관제의 후신이자 학생부 내용에 대한 종합적이고 정성적인 평가를 통해 학생을 선발하는 이 제도는 우리 입시를 더 건강하고 공정하게 만들었을까. 시도는 좋았다. 입학사정관제처럼 외부 활동 기록이나 개인적으로 마련한 스펙은 학종에선 평가 대상이 될 수 없다. 오직 학생부와 자기소개서, 제한된 최소한의 증빙 서류만이 평가 근거가 된다. 학생부를 중시해 공교육의 가치를 제고하고, 외부 활동에 대한 평가를 최소화해 계층이나 계급에 따른 불평등을 완화하려는 노력이었다. 

보완을 위한 많은 노력에도 학종은 그 전신인 입학사정관제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다. 오히려 입학사정관제의 불평등을 학교 안으로 가져왔다. 학종의 모집 정원은 전국 대학 모집 정원의 30%를 넘은 적은 없지만, SKY 수시전형의 90% 이상은 학종으로 진학한다. 자연스레 학교는 학종을 위해 운영됐고, 학교는 학종을 위한 품앗이를 연결해 주는 플랫폼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학교가 브로커가 된 셈이다. 

조 작가는 “학부모회에서 부모들의 직업을 조사하고 대학교수와 전문직 종사자를 추려 이들의 품앗이를 통해 학생들의 스펙 쌓기가 원활히 이뤄질 수 있도록 주선했다”고 했다. 그는 “개인의 인맥이 아무리 두터워도 학부모회만큼 다양한 직종의 전문가가 모여있는 집단을 찾기 쉽지 않기에 학생의 관심사에 맞는 활동을 학교에서 주선해 주는 것은 학부모에게도 반가운 일이었다. 교사들은 가난한 집의 공부 잘하는 아이들을 봉사활동과 인턴 활동에 넣어줄 수 있었다. 교사들은 그나마 여기서 도덕적 명분을 얻었을 것이다. 그렇게 품앗이는 모두의 필요를 충족시켰다”고 설명했다. 

‘부모 찬스’는 그들만의 세상 일이었지만, 학벌을 향한 갈망은 한국 사회 전체의 일이다. 한국 사회에서 학벌은 그 자체로 황금 사다리다. 한국의 대다수 직장은 지원자의 실력을 제대로 평가할 능력과 제도를 갖추고 있지 않다. 사실 한국 사회에서 학벌이 취업과 승진, 부와 명예의 취득 기회를 높이는 이유는 그것이 능력을 보증해 주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능력주의의 정반대편에서 인지적 편견에 기초한 집단주의적 차별이다. 강고한 연고주의와 거대한 편견, 차별 카르텔의 삼위일체다. 진보 논객 홍세화 장발장은행장은 이를 “지적 인종주의”라고 일갈했다. 지금 한국 사회의 학벌주의 헤게모니가 1960년대 미국의 버스에서 백인은 앞자리, 유색인은 뒷자리로 구분했던 행태와 얼마나 다르냐는 지적이다. 

그럼에도 한국 사회는 학벌주의를 내면화했다. 그리고 이 학벌을 따내기 위한 무한경쟁을 전 세대가 연속해서 반복하고 있다. 왜 그럴까. 혹시 이게 우리에게 남은 유일한 합리적 선택지이기 때문은 아닐까. 낙타가 바늘구멍 뚫기보다 어렵지만, 이 길이 한국 사회에 남은 가장 공정한 경쟁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은 아닐까. 그래서일까. 우리는 더 이상 위장 전입을 큰 사회적 문제로 여기지 않는다. 인사청문회에서도 더 이상 낙마 사유가 되지 않는다. 모두가 하는 일이고, 모두가 할 일이기 때문일까. 오히려 ‘맹모삼천지교’라는 아름다운 말로 포장된다. 위장 전입은 부모 찬스일까 아닐까, 우리의 다음 세대는 물을 것이다.  

참고: 《대치동-학벌주의와 부동산 신화가 만나는 곳》(사계절, 조장훈 지음), 《능력주의와 불평등-능력에 따른 차별은 공정하다는 믿음에 대하여》(교육공동체벗, 박권일 외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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