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벌주의가 우리 안의 내로남불 만들어”
  • 김종일·구민주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2.05.03 10:00
  • 호수 16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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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대치동 1타 강사’로 20년간 ‘학벌’이란 욕망 관찰한 조장훈 작가
“‘논문 저자 부정 등재’ 같은 ‘부모 찬스’ 엄벌하고 학계 자정 능력 키워야”

서울 대치동은 대한민국이라는 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욕망의 최전선에 있다. 학벌과 부동산이란 한정된 자원을 갖기 위해 세대와 공간을 뛰어넘어 들끓고 있는 공간이다. 여기서 20년 넘게 학원강사와 학원장, ‘대치동 1타 강사’로 활동해 왔던 조장훈 작가는 그 욕망을 ‘학벌주의와 부동산 신화가 만나는 곳’이란 부제가 달린 《대치동》이란 책으로 기록해 냈다. 

그는 쉬운 해법을 말하지 않았다. 사람들의 욕망을 뭉뚱그려 바라보고, 죄악시하면서도 동경하는 현실을 그대로 두고서는 악순환이 계속될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정시 확대’로 요약되는 입시제도 단순화에도 반대 목소리를 냈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다시 객관식 시험으로 돌아가는 것은 교육적 퇴행일 뿐만 아니라 오히려 유형이 단순하고 변별력 없는 수능이란 시험을 사교육 시장이 간파할 것이란 우려에서다. 그래서 원래의 목적을 달성하기는커녕 오히려 계급적 불평등만 더 확대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시사저널 임준선

“‘부모 찬스’ 구조 놔둔 채 대중 정서만 자극하는 언론, 구성원간 불신 키워”

‘부모 찬스’라고 불리는 입시 부정이 정권마다 반복된다.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그러나 현재의 입시 문제는 과거 개인의 도덕적 해이와는 다르게 사회구조적·계급적 차이를 통해 발생하면서 더 큰 논란이 되고 있다. 이 부분을 정치권과 언론도 자극했다. ‘아빠 찬스’ ‘엄마 찬스’라는 말은 고위공직자의 도덕성 검증 과정에서 비판 논리를 부각시키려 사용된 단어다. 병역과 입시는 누구나 절대적으로 공정·평등해야 하니 그런 대중적 정서를 자극한 것이다. 언론이 이 단어를 반복 사용하면서 우리 입시 과정을 꼼꼼하게 이해하기보다는 전체 사태를 과장되게 오해하게 만든 측면이 있다.”

하나씩 짚어보자. 현재의 문제가 과거와 다른 점은.

“두 가지는 확실하다. 2008년 이후 정치적 목적으로 입시제도가 급격히 바뀌었다. 그 과정에서 교육의 기회가 불공정해졌다. 입시제도가 오히려 계급적 불평등을 재생산하는 데 기여하게 된 셈이다. 두 번째는 일부 엘리트 계층이 이 과정에서 단순한 도덕적 해이를 넘어서는 일을 저질렀다는 점이다. 바로 논문 저자 부정 등재가 발생했다. 우리 사회가 당연히 예민하게 반응해야 하는 부분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부정부패에 대한 책임소재와 입시제도와 학벌주의 문제는 분명히 가려 따져야 한다. 자칫 교육과정을 퇴행시키는 여론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언론보도가 좀 더 정밀하고 정교해져야 한다.”

최근 대학교수 논문에 미성년자를 공동저자로 넣은 사례가 12년간 1000건이 넘는다는 교육부 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현재 입시 부정 논란이 뭉뚱그려져 있는데 정확하게 ‘논문 저자 부정 등재 사건’이라 해야 한다. 일련의 사태는 이 나라의 대학과 지식인들이 얼마나 허술하게 학문 체계를 관리해 왔는가를 보여준다. 대통령 당선인 배우자 논문도 뭐가 어려운지 대단히 어렵게 검증하고 있다. 학문적 기본이 안 된 짜깁기 논문에 학위를 주는 교수들에 대한 처벌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국내 석·박사 논문을 전수조사하면 자격 미달의 짜깁기 논문이 숱하게 나올 것이다. 그런 관행이 일련의 문제들을 발생시켰다고 본다.”

사실 오래 지적돼온 문제다.

“그렇다. 논문에 미성년자 이름 한 번 올려주는 게 별일 아니었던 것이다. 심지어 SCI급 논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곳에 공인된 지식이라고 올리려면 최소한의 학문적 양심이 있어야 하는데, 교수 상당수가 그게 부족했다. 엄벌하고 통렬히 반성해야 할 일이다. 학부모의 논문 등재 부탁은 물론 잘못이다. 자식의 미래를 두고 앞뒤 못 가리는 일을 한 것이다. 하지만 학자라면 달라야 한다. 그런 요구를 당연히 거부하고 싸워야 한다. 그런데 오히려 자기 자식을, 지인의 자녀들을 논문에 올렸다. 학자로서 양심이 결여된 행동이다. 이를 처벌하지 않는 건 우리 학계가 자정 능력이 없다는 걸 스스로 방증하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지적이다.

“다들 입시제도만 문제라고 이야기한다. 학계의 양심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게 안타깝다. 학계가 성찰성이 부족하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사회 전체에 반지성주의가 강화될 거다. 교수도 입시제도 운영자들인데, 이들이 운영하는 입시제도와 학위제도 모두 신뢰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 사태는 첫째 학문적 진실성, 지식인과 엘리트 계층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강하게 무너뜨리고 있다. 둘째 한국 사회의 불평등과 불공정의 심각성을 심각하게 느끼게 했다. 입시제도를 비롯한 사회 시스템에 대한 신뢰 훼손도 심각한 문제지만, 계급적 격차를 적대적으로 인식함으로써 구성원 간 불신이 심해지고 공동체성이 파괴되는 모습이다. 안타깝다.”

입시제도는 ‘계급 간 힘겨루기의 산물’이라고 했다. 입학사정관제 때부터 계층 간 불평등이 가속화된 이유는 무엇일까.

“입학사정관제와 현행 학생부종합전형이라는 제도 자체는 좋은 제도다. 정성적 평가를 통해 학생을 뽑는 시스템이다. 객관식 시험으로 뽑는 것보다 다양성을 갖출 수 있다. 제도 도입 초기엔 자기 관심 분야에 집중했던 학생들이 수능 성적과 무관하게 명문대에 가는 게 화제가 됐다. 대학도 점점 전공에 관심을 가진 학생이 늘어나자 선호하게 됐다. 그런데 제도 도입이 급했다. 너무 성급했다. 입학사정관제는 2007년 입시를 치른 학생들 때 처음 도입됐는데, 불과 2년 시범시행하고 정식 전형이 됐다. 사람들은 뭐가 뭔지도 모른 채 변화한 입시제도를 맞이하게 됐다. 학부모와 학생들은 정보가 불충분했다. 대학들도 예산이 부족하니 비정규직으로 입학사정관을 뽑아버렸다. 경제적으로 풍족하고 교육 수준이 높은 사람들은 관련 정보를 빠르게 얻을 수 있었고 그 덕을 봤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달라.

“한 가지를 확실하게 하고 싶다. 입학사정관제를 경험한 학생은 그리 많지 않다. 또 이 제도로 명문대에 간 학생들이 절대 쉽게 입학한 게 아니다. 돈 많은 집 자녀들만 간 것도 아니다. 돈 없는 집 자녀들도 할 수 있는 걸 다 했다. 문제는 과장되거나 부풀려진 스펙이 허다했다는 점이다. 가령 이런 일들이 일상이었다. 자기소개서나 면접을 준비할 때 물어보면 봉사활동을 500시간 했는데 기억나는 게 없다고 했다. ‘친구 부모 찬스’를 쓴 사례가 수두룩했다. 준비가 안 된 입시를 시행하니까 이를 관리할 시스템이 없었다.”

 

“정시 확대는 ①교육적 퇴행 ②대형학원만 좋을 일 ③불평등 오히려 확대”

문제의 본질은 어디에 있을까.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교육정책을 이런 식으로 도입한 사람들이 져야 한다. 입시제도에 빈틈이 있으면, 당연히 상층 계급이 이익을 보게 된다. 그런데 정작 모든 화살은 사교육과 입시제도로 쏠린다. 본보기 처벌하듯, 해경이 잘못했다고 해경을 없애는 식의 해결 방식만 반복해 왔다. 이런 식으로 접근하면 같은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입시제도를 바꾼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새 입시제도가 들어오면 교육열 높은 이 사회는 그 맹점과 빈틈을 찾으려고 할 거다. 그리고 돈 많고 정보 많은 사람들이 대학 가는 길을 독점할 거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모든 입시제도는 그런 운명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런 상황에서 입시제도를 계속 이렇게 급하게 만들고 바꾸면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자는 건지 모르겠다. 안타깝다.”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면.

“논문 저자 부정 등재를 보자. 이 사건은 우리 사회 근간을 흔드는 매우 심각한 문제가 맞다. 그런데 문제가 생기니 논문 활동 자체가 잘못됐다고 한다. 교육부도 논문을 학생부에 올리는 걸 금지시켰다. 교육부는 학생부 기재요령을 지침으로 내리고 학술지 논문 기재, 소논문 기재 등을 학생부에 기재하는 걸 잇따라 금지시켰다. 그러자 일부 고등학교는 논문대회를 탐구문 대회로 이름을 바꿨다. 문제는 논문 활동 자체가 아니지 않나. 아이들이 직접 연구하고 싶은 주제를 정하고, 계획을 세우고, 이를 정리하고 수행하는 과정은 자기주도적 학습과정 그 자체다. 그런데 논문 활동 전부를 부정부패로 몰아버리니 학교에선 이를 못 하게 됐다. 어느 사회나 교육에 계급적 불평등이 존재한다. 여기에 불법과 부정행위도 끼어든다. 그런데 불평등만을 과장해 인식하게 만들면 갈등을 키우는 데서 문제 해결이 끝날 수 있다.”

정시가 가장 공정하다는 담론도 확산되고 있다.

“입시의 불공정 문제가 제기되니 차라리 옛날처럼 정시 100%를 외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는 ‘지금 불이 나서 뜨거운데 옛날 불은 덜 뜨거웠던 것 같다’는 인식과 다르지 않다. 확실한 것은 다양하고 놀라운 가능성이 열리는 21세기에 정시 확대는 교육적 퇴행이라는 점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정시 확대를 주장하시는 분들이 원하는 결과도 안 나올 것이라는 점이다. 사교육 도움 없이 명문대에 가는 학생은 어느 시대나 있다. 하지만 점점 예외적 사례가 되고 있다. 수능 점수는 수도권에서 멀어질수록 떨어지고, 재수생일수록 높다. 서울 안에서도 교육특구와 아닌 곳의 차이가 크다. 수능은 문제 유형이 단순하고 정해진 공부량이 있는 시험이다. 사교육에 간파당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수능 100%로 돌아가면 오히려 계급적 불평등과 박탈감은 더 커질 것이다. 사교육의 영향과 수능 점수 사이에는 ‘양의 상관관계’가 아주 분명하다. 정시 확대는 기업형 대형 학원들이 제일 반길 일이다.”

 

“입시제도는 더 복잡하고 다양해져야…문제 해결 접근 방식 바꿔야”

우리의 입시가 너무 복잡하다는 지적도 있다.

“입시가 단순화되길 바라는 마음은 이해가 된다. 입시제도가 너무 복잡하니까 먹고살기 바쁜 이들은 정보 접근성이 떨어진다. 그러니 너무 불공정하고 우리만 손해를 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이게 문제라면 해법이 바뀌어야 한다. 입시제도를 복잡하게 만들어놓고 ‘왜 관련 정보를 일부만 알고 있느냐’ ‘왜 공개 시스템을 더 안 만드냐’ 등의 방향으로 접근해야 한다. 복잡한 입시제도 중 어느 게 우리 아이에게 더 적합한지, 그래서 무엇이 필요한지 등을 더 많은 상담 인력과 시스템이 붙어 파악하고,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대치동 학원에 가면 이런 입시 컨설팅을 받는다. 이걸 학교에서 가능하게 해야 한다. 입시를 단순화하는 방향으로 가면 안 된다. 입시는 복잡해지더라도 다양해져야 한다. 이런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사회적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사교육과 공교육에 대한 이분법적 편견에서 벗어나 더 나은 교육 시스템을 만들려는 역량을 사회 전반이 모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말은.

“학벌주의라는 고질병을 바꾸려면 입시제도가 아닌 불평등한 노동 여건부터 바꿔야 한다. 학벌이 실력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경험들이 쌓여야 한다. 또 우리의 욕망을 솔직히 들여다보고 성찰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우생학적 편견과 연고주의라는 폐해가 이끌고 있는 학벌주의는 우리 안의 내로남불을 만들어내고 있다. 사교육과 학벌주의는 잘못됐지만 내 자식은 학벌 혜택을 받았으면 좋겠고, 그래서 사교육을 시키는 것 아닌가. 입시제도 탓만 하는 것은 당장 마음 편하자는 이야기에 불과하다. 사교육을 우리 욕망의 일부로 바라보고, 그 장점들을 최대한 살려 공교육이 좋아질 방법을 찾았으면 한다. 완벽한 입시제도는 없다. 우리는 우리의 욕망을 먼저 마주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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