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불편한 데자뷔
  • 김재태 편집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0.12.07 09:00
  • 호수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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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식당에 들어가 식사를 하던 도중에 옆 테이블 사람들의 대화가 귀에 들어왔다. 화제는 최근 뜨거운 이슈인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간 갈등이었다. 두 사람에 대한 여러 얘기 끝에 이런 말이 나왔다. “결국 서로 관심을 더 끌기 위해 하는 싸움 아니겠어.” 나라를 뒤흔드는 역대급 대립을 ‘관심 끌기’ 게임 정도로 간단히 정리해 버리다니, 그 요약의 기술이 놀라웠다. 언론이 아무리 떠들어도, 정치권이 아무리 목청을 높여도 일반인들에게는 그저 게임처럼 여겨질 수 있구나 하는 생각도 새롭게 들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왼쪽)과 윤석열 검찰총장 ⓒ 연합뉴스
추미애 법무부 장관(왼쪽)과 윤석열 검찰총장 ⓒ 연합뉴스

그런 두 사람의 싸움이 갈수록 거칠어지더니 이제는 갈 데까지 가 있다. 양측 모두 퇴로를 닫고 파국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이다. 추미애 장관은 이미 윤석열 총장의 직무 집행을 정지한 후 징계 절차에 들어갔고 윤 총장은 소송전으로 대응했다. 여권은 일제히 추 장관 엄호에 나섰고, 검사들은 총장에 대한 징계가 부당하고 위법적이라며 반발했다. 법원의 ‘검찰총장 직무 배제 효력 정지’ 결정에 따라 윤 총장이 업무에 복귀했지만,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누구도 예단하기 어렵다.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은 최근 시국에도 그대로 적용될 만하다. 두 사람의 파멸적 대립을 지켜보며 지난 2013년 9월의 일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지난 정권에서 채동욱 검찰총장이 중도사퇴한 사건을 말한다. 반갑지 않은 데자뷔(기시감)의 강제 시현이다. 당시 채 총장은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를 놓고 정권 핵심부와 갈등하다, 한 보수 신문이 ‘혼외 아들’ 의혹 보도로 군불을 때고 법무부가 그와 관련된 감찰 지시를 내리자 스스로 검찰을 떠났다. 당시 시사저널 기사에는 그때의 상황이 이렇게 기록돼 있다. ‘(2013년) 9월27일 저녁 5시20분경, 법무부가 긴급 기자회견을 가졌다. “채동욱 검찰총장의 혼외 아들 의혹이 사실이라고 인정할 만한 자료를 확보했다”며 “채 총장의 사표 수리를 청와대에 건의했다”고 밝혔다. …채 총장은 태생적으로 박근혜 정부의 ‘미운 오리 새끼’였다. 그는 4월17일 박근혜 대통령에게 임명장을 받은 지 한 달도 안 된 5월부터 청와대·법무부와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했다.’(제1250호)

그때와 지금은 큰 흐름에서 보면 비슷한 점이 많다. 그때도 지금처럼 검사들이 총장을 옹호하며 황교안 당시 법무부 장관을 성토했고, 당시 야당인 민주당 또한 정권을 향해 날 선 비판을 쏟아냈다. 다만, 그때의 채 총장이 외부 압박에 대한 항의 표시로 자진사퇴를 선택한 반면, 지금의 윤 총장은 자리를 계속 지키며 맞서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형태야 어찌 됐든 정부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들이 서로 마찰을 이어가며 대립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이 숨 막히는 코로나19 시대에 국민들의 스트레스와 불쾌감만 더 늘려줄 뿐이다.

법무장관-검찰총장 대립 국면에서 늘 배경음악처럼 따라붙는 것이 ‘검찰 개혁’이다. 현 정권으로서는 핵심 공약이니만큼 반드시 성사시키고 싶은 마음이 간절할 것이다. 하지만 무엇이든 무리하게 밀어붙이면 부작용이 따르기 마련이다. 개혁이 결국은 시스템을 바꾸는 작업임에도 그것을 무시한 채 ‘사람’에 집착하다 보면 본질이 형식에 의해 훼손될 수 있다. 개혁은 다수가 원하는 방향을 찾아 잘못된 것들을 슬기롭게 바로잡아가는 일이다. 가지고 있는 힘만 앞세워 얻은 성과라면 결코 지속 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다. 목표가 아무리 올바르고 좋아도 과정에 억지가 끼어들 경우 개혁은 엇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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