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 경찰’이 온다
  • 조해수 기자 (chs900@sisajournal.com)
  • 승인 2022.04.22 10:00
  • 호수 16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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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누가 통제하나…경찰 개혁 없는 ‘검수완박’의 미래
정보경찰 폐지, 국수본 중립성, 자치경찰 실질화, 국민에 의한 경찰권력 감시 논의 사라져

“경찰 개혁은 검찰 개혁과 한 세트다.”

2020년 1월13일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형사소송법·검찰청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직후, 문재인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에 경찰 개혁 관련 입법을 독려하면서 한 말이다. 문 대통령은 2020년 1월17일 이인영 당시 원내대표 등 민주당 원내지도부 초청 만찬에서 “자치경찰·자치분권 틀에서도 그런 부분(경찰 개혁 입법)이 필요하고 행정경찰과 수사경찰의 분리, 국가수사본부(국수본) 설치 등과 관련한 법안이 나와있는데 논의를 통해 검찰과 경찰 개혁의 균형을 맞췄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이후 2020년 12월9일, 자치경찰-국수본 도입을 위한 경찰법 및 경찰공무원법 개정안과 경찰의 정보활동 근거를 담은 경찰관직무집행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에 따라 2021년 1월1일부터 경찰이 검찰의 지휘를 받지 않고 수사를 시작하고(수사개시권), 끝낼 수 있는 권한(수사종결권)을 가지게 됐다. 또한 단일 조직이던 경찰은 국가경찰과 자치경찰, 국수본 등으로 나뉘었다.

그러나 당시 시민사회는 경찰 개혁과 관련해 낙제점을 줬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문재인 정부의 경찰 개혁은 실패로 기록될 것”이라고 경고했고, 참여연대 역시 “정부와 민주당의 경찰 개혁은 결국 용두사미로 끝났다”고 비판했다.

다시 1년이 흐른 지금, 민주당은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으로 검찰 개혁을 마무리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직접 경찰 개혁을 강조한 이유는 ‘경찰 개혁까지 이뤄져야 검찰 개혁이 완성된다’는 뜻일 것이다.

ⓒ시사저널 최준필·연합뉴스
ⓒ시사저널 최준필·연합뉴스

민주당의 입법폭주...방치된 경찰개혁

그렇다면 경찰 개혁은 현재 어디까지 와있을까? 2021년 1월1일 검경 수사권 조정-국수본·자치경찰 탄생 이후 경찰 개혁과 관련한 법안은 단 한 건도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정보경찰 폐지 △국수본의 수사 중립성 확보 △경찰권력의 민주적 통제 등과 관련한 법안이 나왔지만 법제사법위원회의 문턱조차 넘지 못했다. 이와 관련해 최근 대법원(법원행정처)은 “경찰에 이관되는 수사권에 대한 견제와 통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경찰 개혁 법안은 1년이 넘도록 잠자고 있지만, 민주당은 ‘위장 탈당-사보임’이라는 꼼수를 동원하면서까지 검수완박 법안을 문재인 정부 임기 안에 처리하겠다는 입장이다.

민주당은 4월7일 검수완박 법안을 안건조정위원회에 회부할 것에 대비해 민주당 출신 무소속 양향자 의원을 법사위로 사보임했다. 여야 동수 3명씩 모두 6명으로 구성되는 안건조정위는 최장 90일까지 법안을 심사할 수 있어, 검수완박 법안이 안건조정위에 넘어가면 문재인 정부 임기 내 처리는 불가능해진다. 그러나 조정위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할 경우 안건을 곧바로 처리할 수 있다. 민주당은 비교섭단체 몫으로 양 의원을 임명해 안건조정위 비율을 4(검수완박 법안 찬성) 대 2(반대)로 만들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했다. 양 의원이 검수완박 법안을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그러자 민주당은 법사위 소속 민형배 의원을 탈당시키는 전대미문의 ‘꼼수’를 부렸다. 2012년 국회선진화법이 통과된 이후 안건조정위 통과를 목적으로 탈당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민주당은 민형배 의원의 탈당 직후 법사위 안건조정위 요구서를 제출했다.

이를 두고 민주당 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조응천·이상민·박용진·이소영 의원 등이 민형배 의원의 위장 탈당-사보임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양향자 의원 역시 “다수당이라고 해서 자당 국회의원을 탈당시켜 안건조정위원으로 하겠다는 발상에는 경악을 금치 못하겠다”고 밝혔다. 양 의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검수완박을 안 하면 문재인 정부 사람들이 죽을 거라며 법안에 찬성하라고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더블어민주당 출신 양향자 무소석 의원(왼쪽 사진)과 민형배 무소속 의원ⓒ
더불어민주당 출신 양향자 무소속 의원(왼쪽 사진)과 민형배 무소속 의원ⓒ시사저널 박은숙·뉴시스

'검수완박' 입법의 마지막 변수 박병석 국회의장

그러나 민주당의 ‘입법독주’는 이제 자체적으로 멈출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국민의힘이 법안 통과를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로 대응할 방침이지만 민주당은 회기 쪼개기, 이른바 ‘살라미 전술’로 필리버스터를 무력화할 수 있다. 국회법상, 필리버스터 도중 회기가 끝나면 토론이 종결된 것으로 간주해 해당 안건을 다음 회기에 바로 표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변수는 박병석 국회의장이다. 국회 본회의 법안 상정 권한을 쥐고 있는 박병석 의장은 4월23일~5월2일까지 잡혀있었던 미국·캐나다 순방 일정을 전격 취소했다. 최대한 양당을 중재해 보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실제로 박병석 의장은 지난해 8월 언론중재법 처리 과정에서도 상정을 미루고 국회 특위를 통한 논의를 이어가도록 중재했다.

정의당도 중재에 나섰다. 배진교 원내대표는 “검찰 개혁이 정쟁으로 가둬졌다”면서 경찰 개혁까지 함께 논의하자고 주장했다.

검수완박 법안이 통과되면 경찰은 3개월 후 사실상 수사를 독점하게 된다. 검수완박 법안에 따르면, 수사가 미진하더라도 검찰은 경찰에 “보완수사를 해달라”고 요청만 할 수 있다. 경찰이 불송치 결정을 할 경우 검찰의 불기소 처분과 달리 ‘재정신청’ 대상조차 되지 않아 법원조차도 이를 바로잡을 수 없다.

여기에 2024년 1월이면 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권마저 경찰로 이관된다. ‘공룡 경찰’에 대한 우려가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국회는 사실상 경찰 개혁에 손을 놓고 있었다. 검경 수사권 조정이 이뤄진 2021년 1월 이후 경찰 개혁과 관련해 올라온 법안은 손에 꼽을 정도다.

김창룡 경찰청장이 2021년 1월4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열린 국가수사본부 현판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김창룡 경찰청장이 2021년 1월4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열린 국가수사본부 현판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정보경찰 폐지 "국민 사찰 없어져야"

시민사회가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이 ‘정보경찰’이다. 검경 수사권 조정의 선제조건 중 정보경찰 폐지가 최우선적으로 거론되기도 했다.

그러나 국정원의 국내 정보활동이 중지되고, 검찰의 수사정보과 역시 대폭 축소된 상황에서 정보경찰의 위상은 더욱 높아졌다. 경찰청 공공안녕정보국은 정보 분야에서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는 정보관을 선발해 최고의 정보경찰로 예우하는 ‘대정보관 제도’를 2015년부터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김웅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해 7월 대표발의한 ‘국가경찰과 자치경찰의 조직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은 정보경찰을 폐지하고 정보수집을 위한 별도 기관인 ‘국가안전정보처’를 설립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김웅 의원은 “2018년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 2014년 5월 세월호 유가족 미행, 2008년 5월 미 소고기 수입 반대 시위 참석 교사 명단 요구 등 정보경찰은 역대 정권마다 국민 사찰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면서 “2018년 7월 경찰청 정보2과의 ‘업무보고’ 문건에 따르면 정보경찰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약 14개월간 ‘인사검증’ 명목으로 4312건의 사찰을 했다”고 주장했다.

 

국수본 중립성 "경찰청장 수사지휘 제한해야"

국수본을 신설한 것은 경찰 수사의 독립성 확보를 위해서다. 그러나 경찰청장이 국가수사본부장에게 수사지휘를 할 수 있다. 경찰법 제14조 6항에 따르면 경찰청장은 국민의 생명·신체·재산 또는 공공의 안전 등에 ‘중대한 위험’을 초래하는 사건 수사의 경우 국가수사본부장을 통해 구체적 지휘·감독이 가능하다. ‘중대한 위험’이라는 문구는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식 해석이 가능하다.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해 3월 대표발의한 ‘국가경찰과 자치경찰의 조직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통해 △국가수사본부장 임명 시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치게 하고 △개별 사건의 수사에 대한 경찰청장의 지휘·감독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요건을 대통령령이 아닌 법률에 제한적으로 규정하며 △개별 사건 수사에서 국가수사본부의 공무원은 업무보고·자료제출 요구·의견 제시 등 어떠한 권력 및 외부의 지시나 간섭도 받지 않도록 했다.

3월17일 충남 아산 경찰대학에서 열린 2022년 신임경찰 경위·경감 임용식에서 임용자들이 경례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3월17일 충남 아산 경찰대학에서 열린 2022년 신임경찰 경위·경감 임용식에서 임용자들이 경례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경찰위원회 "국민에 의한 경찰 감시"

이호영 민주주의법학연구회 총무위원장은 “경찰은 정치적인 중립성과 독립성 면에서 대단히 취약하다. 지배적 정치권력을 가진 자들에게 잘 보이면 승진하는 지금의 구조를 그대로 둔다면 경찰청장이 누구의 말을 들을지는 너무도 명확하다”면서 “진정한 정치적 중립성은 경찰이 대통령이 아닌 국민을 두려워하고 경찰의 권한 행사가 민주주의적 방식으로 제어되도록 할 때 비로소 달성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경찰권력의 민주적 통제는 ‘경찰위원회’와 직결된다. 시민사회가 참여한 경찰위원회가 지배적 정치권력과 경찰 수뇌부를 견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권은희 국민의당 의원이 지난해 1월 대표발의한 ‘국가경찰과 자치경찰의 조직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에 따르면 △국가경찰위원회와 시·도경찰위원회의 위원 선임 기준을 개선하고 △국가수사본부장 후보추천위원회를 설치해 국가수사본부장을 임명할 때는 추천위원회에서 추천한 후보가 임명되도록 했다.

권은희 의원은 법률안을 통해 “현행법은 국가경찰사무에 관한 주요 사항을 심의·의결하기 위해 7명으로 구성된 국가경찰위원회를 두고 있으나 전원을 행정안전부 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하고 있다”면서 “이는 국가경찰위원회가 대통령을 정점으로 하는 행정부의 입장만 대변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밖에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3월 대표발의한 법률안에서 경찰위원회를 국무총리 소속 중앙행정기관으로 격상해 경찰청을 관리·감독하도록 했다.

 

독직폭행 "제 식구 감싸기 막아야"

박완수 국민의힘 의원이 경찰청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1년 8월까지 독직폭행으로 징계를 받은 경찰관은 15명에 불과했다. 이마저도 모두 감봉(8명)과 견책(7명) 처분을 받아 중징계를 받은 경찰관은 한 명도 없었다.

특히, 검수완박 법안이 통과되면 경찰 비리를 검찰이 수사할 수 없게 된다. 검찰은 경찰관이 독직폭행이나 가혹행위 등 직무와 관련해 범죄를 저지른 경우에는 수사할 수 있지만, 음주운전이나 폭행·성폭력 등 일반범죄에 대해서는 수사할 수 없다. 경찰이 수사를 담당한다. 검찰이 그랬던 것처럼 경찰에서도 ‘제 식구 감싸기’식 수사가 발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형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4월 대표발의한 경찰공무원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따르면, 경찰공무원이 불법체포, 불법감금, 폭행, 가혹행위 등으로 인해 징계 사유가 발생하는 경우 징계시효를 두지 않도록 했다.

이형석 의원은 “국가공무원법 제83조의 2 제1항은 징계의결 등의 요구는 징계 등의 사유가 발생한 날부터 3년(금품 관련 비위에 관하여는 5년)이 지나면 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과거 다수 사건의 경찰 수사 과정에서 불법체포·구금·구타·가혹행위와 같은 범죄행위가 발생했다. 이런 범죄는 징계시효가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밖에 권영세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해 4월 경찰공무원법 일부개정법률안을 통해 △총경 이상 경찰공무원은 대통령비서실에 파견되거나 대통령비서실의 직위를 겸임할 수 없고 △퇴직 후 1년이 지나지 않으면 대통령비서실의 직위에 임용될 수 없도록 했다.

권영세 의원은 “검찰·경찰 간 수사권 조정을 통해 경찰의 수사권이 크게 강화된 상황에서 경찰공무원의 청와대 파견은 경찰 수사의 정치 중립성 및 독립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저하시킬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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