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은 삼성의 길을 간다”
  • 장영희 전문기자 (mtview@sisapress.com)
  • 승인 2004.1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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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태 삼성전자 정보통신 총괄사장
삼성전자 정보통신 부문을 총괄하는 이기태 사장은 ‘세련’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소탈함을 넘어 투박한 느낌마저 주었다. 하지만 그는 이상한 괴력이 있었다. 묘하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흡인력과 상대를 압도하는 매력이었다. 이사장은 세계 정보통신 강자들이 가장 만나고 싶어하는 경영자로 꼽힌다. 최근 그가 IT업계의 노벨상이라는 세계전기전자공학회(IEEE) 산업리더상 수상자로 결정된 것도 그가 세계 정보통신 업계의 리더임을 증명한다. 이동전화 기술 진화의 산 증인인 이사장을 12월10일 만났다.

아니 왜 그렇게 휴대전화를 못살게 구는가? 짓밟고 높은 곳에서 떨어뜨리고 심지어 불까지 지르는 폭력을 가하지 않았나?

불지른 것은 잘해보자고 그랬다. 조직에 대한 구심점이랄까 동기 부여가 필요했다. 제품 결함을 없애고 잘 만들기 위해 극한 상황에서 실험을 해봤다. 2t 트럭이 지나갔는데도 멀쩡했다며 페루 IOC 위원으로부터 감사 편지를 받았는데, 다 이런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애니콜이 급류에 휩쓸리거나 고층 엘리베이터에서 떨어지고 불에 탔는데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는 소식을 세계 도처에서 듣고 있다. 제품의 신뢰성이 세계 최고라고 자부한다.

데이터퀘스트에 따르면, 올 3/4분기에 모토로라보다 더 많이 팔았다.

우리는 세어 본 적이 없다. 세는 데 열중하면 몰입 현상이 생겨 정작 중요한 것에 소홀해진다. 올해 8천6백만대쯤 팔 것으로 보지만, 물량 목표를 제시한 것은 없다. 제값 안 받고 팔면 훨씬 더 많이 팔 수 있다. 그래서 (물량 목표가) 의미 없다고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11월 휴대전화 수출이 반도체를 눌렀다는 것은 범상치 않아 보인다. 한국 휴대전화가 국제적 평가를 받은 것 아닌가?

반도체는 제조업의 핵심 부품이지만, 브랜드 가치를 내는 것은 아니다. 휴대전화는 브랜드 가치가 있고 눈부시게 진화하고 있다. 내가 들고 있는 제품이 어느 회사 것이냐에 따라 소비자에게 남다른 의미를 준다. 올해 우리 나라 수출이 사상 최고인 2천억 달러가 될 텐데, 이 가운데 휴대전화 수출이 10%인 2백억 달러를 넘어설 것이다. 이 가운데 우리가 75%(1백50억 달러)를 차지한다. 내수(비중 8%)를 빼면 전세계에서 8천만명이 삼성 애니콜을 샀다. 지금까지 판 것을 합하면 10명 가운데 1명이 애니콜을 쓰는 것이다. (애니콜은) 좋은 자리에 포지셔닝하고 있다.

경쟁력의 원천을 뭐라고 보는가?

우리는 제품에 대한 기술 로드맵이 확고하게 되어 있다. 기술의 진화 방향을 예측하며 적절한 기술 투자를 하고 있다. ‘적절한’을 강조하는 것은 우리 수준에 맞고 미래가 보이는 기술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요즘 사방에서 ‘탐색’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기술의 원리를 다 알고 만드는 것도 있지만, 탐색 결과로도 상당히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다. 좋은 예가 비행기 제조 원리를 모르고도 라이트 형제가 비행기를 띄운 것이다. 빛은 보이지 않지만, 감광 작용을 통해 뼈를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착안한 뢴트겐도 마찬가지다. 원리를 몰라서 이름도 X-레이라고 붙이지 않았나. 뢴트겐이 얼마 후에 이론을 정립했듯이 우리도 그런 것을 자꾸 만들어갈 거다. 이렇게 하다보면 W-CDMA, 휴대인터넷, 4세대 기술에 대한 세계 표준을 우리가 가질 수 있다.

4세대 표준 확보에 얼마나 승산이 있는가?

현재 3세대에서 휴대인터넷 같은 3.5세대로, 그리고 4세대로 가는데, 우리가 먼저 선점해서 표준을 만들려고 한다. 흔히 독자 기술을 강조하는데 혼자 갖는다고 해서 좋은 것만은 아니다. 표준을 많이 갖되 여러 회사와 공조해야 한다. 세계에서 ‘좋은’ 회사, 기술을 많이 갖고 있고 규모가 큰 회사들의 초점이 삼성전자에 맞춰져 있다. 우리가 미래에 대한 준비를 많이 한다고 알려져 있어 우리와 손잡고 싶어한다.

4세대 투자가 미래 공학도에게 꿈과 비전을 주는 일이라고 말했는데.

IT 강국이라는 게 뭔가. 인터넷만 많이 한다고 되는 거냐. 일자리 창출하라고 하는데 뭐 갖고 할 것인가. 기술 진보를 일궈낼 수 있어야 한다. 앞으로 먹고살려면 그런 게(4세대 기술 투자) 있어야 한다.

삼성이 4세대 기술 선점에 부심하지만, 지금까지 한국 업체들이 원천 기술과 핵심 부품을 외국에서 들여오지 않았나.

기술이 없다고 그러는데, 전반적으로 싸잡아서 말하는 것이다. KDDI(일본 제2의 이동전화 서비스 회사)가 삼성전자의 통신 시스템을 쓰고 있는데 문제 없이 잘 돌아가고 있다. 도쿄 아래 지역은 히타치가 맡지만 도쿄 이북 지역은 우리가 한다. 일본은 소재·부품·시스템 산업이 잘 발달한 IT 강국인데 이런 나라가 왜 우리 것을 쓰겠는가. 어떤 때는 한국이란 이미지 때문에 더 못 파는 경우가 있다. 또 (CDMA 원천 기술을 가진) 퀄컴에 로열티(기술 사용료) 준다고 비판하는데, 로열티를 안 주는 기업이 전세계 어디에 있는가. 로열티 안 줄려면 안 만들면 된다. 앞으로 로열티를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4세대 기술 선점에) 기를 쓰는 것이다.

최근 몇 년간 삼성전자 등 한국 기업들이 선전한 것은 틀림없지만, 세계 1등 업체인 노키아는 여전히 난공불락의 요새 같다.

노키아를 높이 평가한다. 모토로라나 지멘스도 그렇다. 그런데 그들의 상황과 삼성이 처한 상황은 다르다. 풀어야 할 숙제도 다르다. 우리가 이들을 넘어서겠다고 목표 지향적으로 달려들면 지금 갖고 있는 전략을 다 바꾸어야 하는데, 한꺼번에 이런 변혁적 시도를 하는 것은 위험하다. 또 달라질 것도 별로 없는데 무리수를 둘 필요가 없다. 정해진 로드맵과 전략대로 ‘삼성의 길’을 차근차근 갈 것이다. 삼성이 어떤 길을 가는지 지켜봐달라.

최근 내놓은 5백만 화소 카메라폰은 시장을 너무 앞서간다는 평가가 나온다.

못하는 사람들이 자꾸 끌어내리려고 한다. 현재 시스템의 속도가 느려서 5백만 화소폰이 나와도 전송하지 못한다는 주장을 하는 모양인데, 다른 방법으로 보내는 것을 고안하면 되는 것 아닌가. 일본 부품 갖다 썼다는 주장도 나오던데, 우리와 같이 만든 거다. 우리 아이디어로 디자인하고 만들어서 잘 팔리면 우리 것이다. 일본 사람들은 5백만 화소폰을 만들지 못했다. 3백만 화소폰 경우도 일본은 부품이 있어도 결합을 못하고 있다. 이런 틀린 사실을 언론이 좋다고 쓰는데, 엔지니어들이 얼마나 열받고 상처받겠는가. 그렇다고 어떤 기술이라고 알려줄 수도 없고 답답하다.

휴대전화는 어디까지 진화할 것 같나?

나노 기술과 접목해서 3.5세대를 지나 2008년쯤 4세대까지 연결되면 (휴대전화로) 못하는 것이 없을 것이다. 컴퓨터 역할 가운데 90% 이상이 휴대전화로 넘어올 것이고, 모든 것이 휴대전화 하나로 통합되어 세상을 송두리째 바꾸어놓을 것이다. 그때쯤 ‘내 손 안(휴대전화)에 온 세상을 만들겠다’는 나의 꿈도 실현되지 않을까. 이미 휴대전화는 미디어의 중심에 서 있고 일상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다.

삼성전자가 SK주식회사의 백기사로 나섰다는 관측이 나오던데 사실인가?

2천5백억원 투자해 (소버린의 경영권 위협에 직면한) SK 주식을 산 것으로 안다. 우호 지분이라는 해석이 있는 모양인데, 우리 통신회사(SK텔레콤)를 우리가 지켜주는 것도 하나의 국민적 도리 아닌가.

‘깜빡이 없는 불도저’라는 별명을 좋아하나?

깜박이(방향 지시등)는 있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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