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고래 사냥 포기하랴
  • 박성준 기자 (snype00@sisapress.com)
  • 승인 2005.07.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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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IWC 총회에서 ‘상업 포경 재개’ 가능성 확인…‘표 매수’ 등으로 구설

 
고래에 관한 세계 최대의 국제 회의인 국제포경위원회(IWC) 총회가 지난 6월24일, 열띤 논쟁 끝에 울산에서 폐막되었다. 하지만 고래의 운명을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 하는 싸움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비정부기구 자격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이 회의를 참관한 녹색연합은 최근 ‘IWC 회의 모니터링 보고서’를 내면서, 고래들의 운명을 ‘바람 앞의 등불’에 빗댔다. 왜일까.

전세계 59개국에서 정부 대표와 비정부기구 관계자 5백여명이 참석한 울산 총회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상업 포경’ 찬성파와 반대파 간에 힘겨루기가 치열했다. 결과는 상업 포경 반대파가 이겼다. 하지만 반대파는 압도적 우세로 이긴 것이 아니라, 엎치락뒤치락 싸운 끝에 겨우 찬성파를 누를 수 있었다. 당장 ‘상업 포경 전면적 허용’으로 가는 일은 없겠지만, 다음번 총회에서는 상업 포경과 직결되는 각종 표 대결에서 반대파가 이기리라는 보장이 없다.
 
고래를 둘러싸고는 지금까지 크게 세 가지 상반된 입장이 존재해왔다. 첫째는 초지일관 상업 포경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일본의 입장이다. 세계에서 가장 목소리 큰 상업 포경 찬성 국가인 일본의 논리는 간단하다. 일본의 주장에 따르면, 고래는 자원이다. 한때 남획으로 씨가 말라 ‘자원 보존’ 차원에서 상업 포경을 금지했지만(1986년), 지난 20년 동안 고래 보존을 위한 국제적 노력이 결실을 거두었다. 따라서 단계적으로 상업 포경을 재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의 강력한 동맹국으로는 노르웨이 아이슬란드가 있다.

고래를 자원으로 보기는 마찬가지이지만, 상업 포경, 즉 고래를 잡는 행위와 상극인 나라들이 있다. 바로 고래를 최대의 관광 자원이자 수입원으로 삼고 있는 일부 고래 관광국들이다. 대표적인 고래 관광(웨일 워칭)국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등이 이 집단에 속한다. 오스트레일리아의 경우 대륙 동부의 허비 만 등 세 곳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래 관광 명소가 있다. 뉴질랜드 역시 카이코우라를 관광 안내 책자에 세계적인 고래 관광 명소로 올려 놓았다.
 
이들에게 상업 포경 허용은 곧 자국 관광 산업이 심각한 타격을 입음을 의미한다. 더욱이 이 두 나라는, 야생동물 보호나 환경 보존 문제에서는 세계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의식이 투철한 나라들이다. 결국 이 나라들은 상업 포경 찬성 국가들과 사사건건 대립할 수밖에 없다.

 
이도 저도 아닌 입장도 있다. 바로 고래에 대한 관리를 ‘동물 복지’ 차원에서 접근하는 영국 등이다. 동물복지파의 요점은, 말 그대로 동물에게도 향유해야 할 복지가 있으며, 고래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들의 논리는 ‘자원 보존’이 아니라 ‘야생동물 보호’의 논리로 이어지며, 그런 점에서 고래를 관광 자원으로 이용하려는 나라들과 한 배를 타게 된다. 상업 포경 반대론인 것이다.

상업 포경이 금지되어 있는 현재 상태에서 고래잡이가 합법적으로 허용되는 ‘예외적인 경우’가 대략 셋이 있다. 우선 ‘과학 연구용 포획’이 있다. 둘째는, 다른 물고기를 잡기 위해 펼쳐놓은 그물에 우연치 않게 고래가 걸리는 경우다. 이른바 ‘혼획’이다. 셋째, 그린란드 원주민 등 태고적부터 고래잡이로 생계를 이어온 세계 곳곳의(주로 북반부 북극 지역) 토착민들을 위한, 제한적인 고래잡이다.

일본 “내년 표대결에서는 승리” 장담

전면적인 상업 포경 허용이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일본은 이번 울산 총회에서 우회 전술을 들고 나왔다. ‘과학 조사용’ 포획 고래 수를 현재 수준에서 두 배로 늘리고, 이렇게 잡을 수 있는 고래 종류도 확대하자는 것이다. 이것이 이번 상업 포경 찬성파와 반대파간 ‘울산 회전’에서 최대의 승부처가 되었다.

현행 규정에 따르면, 일본은 ‘과학 조사’용으로 남극해에서 매년 밍크고래만 최대 4백40마리까지 잡을 수 있다. 일본은 이를 두배인 8백80마리까지 늘려 잡자고 제안했다. 아울러 일본은, 고래류로는 흰장수고래에 이어 지구상에서 두 번째로 덩지가 큰 참고래(몸길이 25m 안팎몸무게 최대 80t)와, 참고래류 가운데 중간 크기인 혹등고래(몸길이 11~15m 몸무게 20~30t)를 과학 조사용으로 잡을 수 있는 고려 종류에 추가하자고 제안했다.

고래 보호 국가들은 두 가지 근거로 일본안의 부당성을 지적했다. 첫째, 일본이 지난 18년 동안 ‘과학 조사’ 명목으로 남극해에서 잡아온 밍크 고래 수는 6천8백마리라는 엄청난 물량인 데 비해, 일본이 지금까지 국제 사회에 내놓은 결과물은 부실하기 짝이 없다는 것이다.

또 하나, 일본이 새로 ‘과학 조사용’으로 포획 가능한 고래 명단에 추가하자는 참고래와 혹등고래의 ‘법적 위치’가 문제가 되었다. 일본이 제기한 2종은 모두 세계자연보존연맹(WCU)가 지정하는 ‘멸종 위기 종’으로 분류되어 있다. 혹등고래는 상업 포경이 번창하던 시절 10만 마리 이상이 포획되면서 멸종 위기에 몰린 내력을 갖고 있다. 참고래는 한때 대형 고래류 가운데 가장 개체 수가 많은 고래종의 하나였으나 역시 남획으로 씨가 말랐다. 반대론의 요지는 간단히 말해 ‘일본이 과학 조사라는 명목을 구실로, 사실상 상업 포경을 기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반대파는 일본안에 대한 반대 의사를 결의안 형태로 제출했고, 이 결의안은 울산 총회 세쨋날 표결에 부쳐졌다. 결과는 ‘찬성 30’ ‘반대 27’ ‘기권 1’으로, 결의안이 가까스로 통과되었다. 울산 총회에 참석한 일본 대표들이 이번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결의안 표결 결과에 자신감을 얻었다’며, 내년에 또 있을 표 대결에서 승리를 장담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일본의 상업 포경 재개를 위한 공세는 울산 총회 첫날부터 폐막 때까지 전방위적으로 펼쳐졌다. 회의 첫날 일본은 ‘고래 보호 구역’을 의제에서 삭제하자고 주장하는가 하면, 각종 의안에 대한 결정을 공개 투표(거수 등) 대신 ‘비밀 투표’에 부치자고 제안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상업 포경 반대파, 일본의 공세 이겨낼까

울산 총회 셋째 날에는, 비록 아깝게 지기는 했지만 ‘과학 조사용’ 포경 확대의 가능성을 확인해 기세를 올렸다. 또 넷째 날 일본은 아바시리야유카와와다 타이지 등 전통적으로 고래를 잡아왔던 일본의 일부 어촌에 대해 ‘연간 1백50마리까지 밍크고래를 잡을 수 있도록 허용해 달라’고 요청했다가, 반발을 샀다. 총회 마지막 날, 상업 포경 요건을 한층 강화하는 개정관리제도(RMS)에 논란이 붙자, 일본은 예년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사실상의 상업 포경을 허용하는 내용을 담은 ‘수정안’을 제안해 맞섰다. 결국, 이 개정관리제도를 제정할지는 내년 총회로 미루어지게 됐다.

녹색연합 등 환경단체들이 장래 상황을 부정적으로 보는 근거는, 일본이 상업 포경의 꿈을 포기하기는커녕 오히려 국제포경위원회 회원국들의 표를 돈으로 사는 등 ‘물량 공세’를 더 강화할 것이라는 데 있다. 사실 일본은 이번 울산 회의는 물론 국제포경위원회 총회가 열릴 때마다 일부 가난한 회원국들을 상대로 한 ‘표 매수 행위’로 구설에 올랐다. 이같은 상황에서, 상업 포경 반대파가 과연 일본의 전방위 파상 공세를 어떻게 견뎌낼지 환경단체나 동물보호단체는 근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돈 벌고 고래 지키니 기쁨 두배, 보람 세배

1986년 상업 포경이 금지된 이후 지난 20년 가까이, ‘고래 구경’은 각광받는 생태 관광 산업으로 성장했다. 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는 물론, 미국캐나다아르헨티나 영국과, 심지어 상업 포경 재개를 강력히 찬성하는 일본에까지, 고래가 출몰하는 곳에는 어디든 고래 관광 상품이 있다.

이 중 잘 알려진 고래 관광의 국제 명소로는 오스트레일리아 동부 연안의 허비 만, 뉴질랜드의 카이코우라, 미국의 남캘리포니아 연안, 옛날 북미 포경 산업의 전진 기지였던 캐나다 뉴펀들랜드 연안과 서부 연안의 밴쿠버, 그리고 아일랜드 등 약 30개 소가 꼽힌다.

고래 구경은 그러나 아무렇게나 하지 못한다. 특히 배를 타고 가서 고래 구경에 나설 경우, 절대로 가까이서 고래의 진행 방향을 가로막아서는 안된다. 뒤에서 천천히 따라가면서 구경하도록 되어 있다.

세계 각국은 저마다 안전 규정을 정해 ‘접근 거리’ 등을 제한하고 있다. 사고를 막고 고래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예컨대 오스트레일리아의 경우, 고래의 진행 방향에서 고래를 구경할 때에는 3백m 이내로 접근하지 못하며, 옆에서 구경할 때에도 100m 이내로 가까이 가지 못한다. 고래에게 함부로 먹잇감을 던져주는 것은, 육상 동물원에서와 마찬가지로 금지되어 있으며, 고래(또는 돌고래) 편에서 먼저 사람에게 접근해도 만지는 것은 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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