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동창은 감독 0순위?
  • 홍성욱 (자유기고가) ()
  • 승인 2005.11.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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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스포츠 구단, 학연·지연 따라 사령탑 임명…부산상고 출신들 대도약

 
김용철(48) 전 롯데 감독대행이 경찰청 야구단의 초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김감독은 일찌감치 감독 내정설이 돌았다. 경찰청 관계자는 “선수 시절 롯데 간판 타자로서 지명도가 높고, 감독 시절 경기 전적과 야구계 전반적인 평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렸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감독이 노무현 대통령과 부산상고 선후배 사이라는 점이 중요한 요인이었다고 상당수 야구인들이 분석하고 있다.
프로 야구 롯데 구단은 지난달 양상문 감독과의 재계약을 포기하고, 후임에 강병철 전 감독을 선임했다. 양상문 전 감독은 3년 연속 꼴찌였던 팀을 올 시즌 5위로 끌어올렸다. 그리고 신인 선수들을 키워내 롯데 부흥의 기틀을 잡은 터라 롯데 팬들은 물론 야구계에서도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후임 강병철 감독의 자리를 만들어주기 위한 포석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강감독 역시 부산상고 출신. 노무현 대통령의 1년 선배다. 노 대통령은 취임 초 기자들에게 “고교 시절 야구를 많이 봤다. 고2 때 3학년 선배들이 야구를 아주 잘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당시 최우수선수 강병철을 거명한 바 있다.
지난해 11월 프로 야구 삼성구단은 김응룡 감독을 사장으로 전격 승진시켰다. 프로 야구 감독 출신 최초의 사장이다. 물론 김응룡 감독은 구단 사장을 할 만큼 공을 세운 것이 사실. 국가대표 감독을 거쳐, 해태를 아홉 번이나 우승시켰고, 우승에 목말랐던 삼성의 갈증을 2002시즌 시원스레 풀어주었다. 그러나 감독 자리에서 은퇴해도 될 상황에서 사장으로까지 승진시킨 데서 그를 배려했다는 흔적이 보인다. 김응룡 사장 역시 부산상고 출신이다.

하늘이 내린다는 프로 구단 ‘감독’ 자리는 이처럼 속을 들여다보면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하고 있다. 혈연 · 지연 · 학연이 판치는 세상 논리가 그대로 살아있는 것. 대통령과 동창이면 모든 구단 인사에 유리할 수 있다. 한마디로 ‘성골’인 셈. ‘진골’은 그룹 오너와 동창인 경우다. 그룹에서 운영하는 구단만큼은 터주 대감이 될 수 있다.
프로 농구 전주 KCC 구단이 대표적인 예. 창업주 정상영 명예회장과 정몽진 회장, 정몽익 부사장은 모두 용산고 동문이다. 따라서 농구 명문인 모교 출신을 감독에 앉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처사이다.

KCC는 용산고 출신인 신선우 감독 체제가 이변이 없는 한 장기간 지속될 것 같았다. 그러나 아홉 시즌 동안 정규 리그와 챔프전을 각각 세 차례나 우승으로 이끈 신감독이 갑작스레 LG로 떠나면서 공백이 생겼다.
그러나 잠시였다. 새 감독으로 역시 용산고 출신인 허 재가 지명된 것. 정상영 명예회장의 의지가 투영된 결과였다. 정명예회장은 용산중 시절부터 스타플레이어였던 허재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이미 오래 전부터 머리 속에는 ‘허재 감독’이라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평소 모교 농구부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정명예회장은 모교 출신 재목을 지도자로 뽑아 나름의 수확을 거둔 셈이다. 햇병아리 허 재 감독이 어떤 성적으로 대선배인 정회장 부자에게 보은할까.

프로 야구 SK 구단은 신일고와 고려대 출신인 최태원 구단주와 고교 및 대학 동문이 구단 내 실세로 포진한 경우다. 바로 민경삼 운영팀장이 그 주인공이다. 프로야구단에서 운영팀은 예산과 연봉 협상 등 구단의 전반적 업무를 총괄하는 심장부다. 선수 출신 프론트인 민팀장이 단장을 거쳐 사장까지 진급할 가능성은 손쉽게 점쳐지고 있다. 민팀장은 구단의 핵심 업무를 장악하며 단장 수업을 제대로 하고 있는 셈이다.
대통령 동창은 성골, 오너 동창은 진골

또한 박종훈 수석코치에게도 시선이 모아진다. 박수석코치 역시 신일고·고대 출신. 박코치는 스타플레이어 출신으로 LG와 현대에서 명코치로 자리를 굳혔고, 2003년 SK로 자리를 옮겼다. 이를 두고 야구계에서는 SK 구단이 박 코치로 포스트 조범현 감독을 대비한 것이라는 얘기가 돌았다. 올시즌 박코치를 LG에서 감독으로 스카우트할 예정이라는 소문이 나돌았지만 불발된 점도 구단주와의 특수한 관계로 인해 절대 내보낼 수 없다는 설과 궤를 같이한다.

 
이처럼 학연은 구단주와 감독을 잇는 단단한 끈이다. 그러나 지연은 더욱 굵은 동아줄이다. 프로 축구 FC서울 조광래 전 감독과 구자경 LG 명예 회장의 연은 깊다. 진주 출신인 조광래 전 감독은 연세대 시절부터 국가대표로 뛰며 컴퓨터 미드필더로 명성을 날렸고,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도 출전했다. 선수 조광래가 쉽게 감독이 된 것은 조감독이 LG그룹 구자경 명예회장 일가와 고향이 같은 점이 크게 작용했다. 
1999년 안양LG 감독에 취임한 조광래는 2000시즌 K리그와 슈퍼컵에서 동시에 우승하며 능력을 인정받았고, 2001년에도 준우승이라는 좋은 성적으로 감독직 굳히기에 들어갔다. 그러나 감독의 발목을 잡은 것은 역시 성적이었다. 2002년 이후 내리막길을 걷다가 지난해 12월14일 감독 직을 사임했다. 그러나 구단측이 1년 재계약을 권유할 정도로 조광래 감독에 대한 신임은 두터웠다. LG와 조광래 감독이 어떤 형태로든 연이 이어질 가능성은 남아있다.

감독은 원래 기독교에서 나온 말로 권위의 상징을 뜻한다고 한다. ‘감독은 독재자’라는 말도 있다. 그러나 최근 국내 프로 스포츠를 재벌 기업이 운영하면서 감독의 카리스마는 사라져 야전사령관으로 자리 잡았다. 선수 선발이나 구단의 씀씀이는 구단주를 위시한 프론트의 몫이 되었고, 감독은 주어진 선수를 데리고 성적을 내는 중간 책임자가 된 것이다.
기업마다 차이는 있지만 감독의 위치는 이사급 이상이다. 최고급 승용차를 타고, 수억원대 연봉을 받는다. 그러나 감독들은 늘 좌불안석이다. 언제 목이 날아갈지 모르기 때문이다.
승부의 세계에 사는 감독에게 지연이나 학연의 끈은 특별하다. 감독감으로 점 찍혀 해외 코치 연수를 거치고도 감독이 되지 못한 숱한 코치들을 제치고 쉽게 감독이 될 수도 있다. 파리 목숨처럼 냉정한 스포츠의 세계에서 쉽게 생명 연장의 기회를 얻을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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