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입학은 식은 죽 먹기”
  • 주진우 기자 (ace@sisapress.com)
  • 승인 2006.03.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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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들, 유명 대학까지 ‘모시기 경쟁’ 벌여 입시 걱정 없어

 
한 선배의 집에 초대받았다. 그에게는 연예인이 되고 싶어하는 중학생 딸이 있었다. 밥상머리에서 선배가 딸에게 “공부 열심히 해서 대학에 들어간 후 연예인이 되는 것도 늦지 않다”라고 타일렀다. 그러자 딸은 “몰라도 한참 모르는 소리”라며 아버지를 핀잔했다. 그녀의 주장은 이랬다. “연예인이 되면 대학은 자동으로 들어간다. 텔레비전으로 진출하는 것이 대학을 잘 가는 방법이다”라고 말했다.
이 중학생 딸의 말은 별로 틀린 것이 아니다. 연예인에게 대학의 문턱은 한없이 낮다. 아니 거의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학은 연예인을 캐스팅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대학은 연예인의 입학은 물론 학점 관리까지 책임지고 있다. 캠퍼스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학과 연예인의 관계는 마치 대학을 연예 기획사로 착각하게 만든다.  

연예인 대학 가기 = 방송국 가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이다. 연극영화학과나 영상학부가 있는 대학에는 ‘연기 재능 우수자 전형’이 있다. 지원 자격은 ‘국내외 연극·영화·드라마 관련 분야에서 개인상을 수상한 자’ 혹은 ‘드라마나 영화에 일정 횟수 이상 출연한 자’다. 여기에 연기자로 인정할 만한 경력을 소유한 자가 포함되어 있다. 명지대·동국대·중앙대·한양대·동덕여대 등의 선발 기준은 거의 비슷하다.
가수일 경우에는 앨범을 발표한 적이 있으면 된다. 대학에 실용음악과를 비롯해 여러 대중음악 관련 학과가 만들어져 가수에게 문호를 넓혔다. 경희대는 포스트모던음악학과를 만들었는데, 가수들이 가장 많이 지원하는 대학이 되었다. 비·박효신·박탐희·한은정·린 등 수많은 가수가 경희대에 적을 두었다. 올해만 해도 SG워너비의 김진호, 버즈의 민경훈, 슈가의 박수진, 동방신기의 최강창민 등이 입학했다.

거의 모든 대학이 ‘연예인’이라는 이름표만 달면 지원이 가능하다. 톱스타급 연예인일 경우, 연예 관련 학과 이외의 과를 선택하는 것도 가능하다. 연예인에게 유리하도록 입시 규정을 바꾼 학교도 적지 않다. 몇 해 전 고려대가 SES 멤버 유진을 입학시키면서 이 같은 비난을 들었다.
연예인은 재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는 예ㆍ체능계에서 인정하는 재능과는 달리 객관적으로 검증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연예인들의 인기나 텔레비전 출연은 재능과는 별 상관이 없을 수 있다. 소속 연예 기획사의 마케팅 능력이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 결국 연예인에 한해서는 사실상 기여 입학제가 시행되고 있는 셈이다.

대학은 왜 연예인에게 집착하나 = 대학에도 연예인에게도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장사다. 때문에 운동선수를 스카우트하듯이 대학 간 과열 양상을 띠기도 한다. 지난해 대학가에 영입 쟁탈전을 불러일으켰던 보아는 아예 대학 진학을 포기해 화제가 된 바 있다.
최근 서울종합예술학교는 연기예술학부 1학년에 재학 중인 이준기의 주가가 오르자, 이준기에게 2006학년도 전액 장학금을 지급했다. 이는 곧바로 화제가 되었다. 대학은 연예인이 학교 알리기에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대중적으로 이목을 집중시키는 스타가 다니는 학교도 역시 사람들에게 주목받기 마련이다. 서울의 ㄷ 대학의 입학관리처장은 “알릴 게 마땅치 않은 대학에서 스타 연예인은 좋은 도구다. 홍보 비용이 따로 드는 것도 아니다. 솔직히 스타 연예인을 따라 움직이는 철없는 학생들의 심리를 이용하는 것이기도 하다”라고 말했다.

이름이 덜 알려진 지방 대학의 경우 연예인 영입에 더욱 적극적이다. 서울 소재 대학과의 경쟁에서 밀리자 지방 대학은 공부할 시기를 놓친 만학도를 상대로 영입 경쟁을 벌인다. 최수지(대구예술대) 강성연(한남대) 이동욱(중부대) 채민서(대덕대) 이재인(건양대) 등이 최근 몇 년 사이 지방대에 입학한 연예인이다.
연예인에게도 대학 입학은 자신의 지적 이미지를 높이고 인맥을 쌓는 데 도움이 된다. 남자 연예인의 경우 대학 입학은 군 입대를 늦추는 효과적인 수단이기도 하다.
대학은 야단법석이지만 학생들이 열광하는 것만은 아니다. 표재민 국민대신문사 편집장은 “수험생들은 대학을 지원할 때 그 대학에 유명 연예인이 있는지를 따지지 않는다. 연예인이 많이 다닌다고 그 대학을 높게 평가하지도 않는다”라고 말했다.

학교로 간 스타들 = 그들은 강의실에 모습을 거의 보이지 않는다. 연예인들은 살인적인 시간표를 소화하고 있다. 대부분의 대학생 연예인의 스케줄에 수업 시간은 아예 빠져 있다. 학교 홍보 책자와 출석부에 이름이 올라 있을 뿐 강의 시간에는 얼굴을 볼 수 없다.
학습에 열의를 보여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하는 연예인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개그맨 정재환씨는 대학 4년 동안 수업 시간에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고 한다. 졸업

 
식에서는 인문대학 수석을 차지해, 총장상을 타기도 했다. 하지만 정씨처럼 연예 생활을 상당 부분 포기하고 학업에 매달리는 연예인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스물아홉 살에 성균관대 영상학과 00학번 새내기가 되었던 배용준. 배씨는 학업에 의욕을 보여 2년간 거의 빼놓지 않고 수업에 출석했다. 하지만 2002년 <겨울연가>를 시작으로 연기 활동을 재개한 뒤 결국 지난해 자퇴했다. 같은 대학에 지원했던 차승원 등도 배용준과 같은 길을 걸었다. 2001년 늦깎이 대학생으로 한양대 연극영화과에 입학했던 최지우는 한 학년을 마친 채 휴학을 거듭하다, 결국 자퇴했다. 장동건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과에 합격했으나 학업을 포기했다.

대학들의 연예인 모시기 경쟁이 치열해지자, 최근 대학들은 출석은 물론 시험까지 보지 않아도 졸업할 수 있다는 각종 연예인 편의 정책까지 선보이고 있다. 연예인의 대학 생활과 대학 학사 관리의 비뚤어진 현 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학교가 스타들에게 현저히 유리하게 출석과 성적을 관리한다면 누군가는 피해를 보아야 한다. 공정하게 평가해야 할 교육이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이다.

 
‘국민 여동생’ 문근영은 = 수업에 빠지지 않는다. 문근영은 ‘기초 일본어’ ‘기초 중국어’ ‘글쓰기의 기초와 실제’ 등 최소 과목을 수강해 강의에 집중하고 있다고 한다. 학사관리가 깐깐한 학교 사정을 감안하면 문근영의 학교 생활은 선배인 배용준·차승원과 같이 평탄치 않을 수도 있다.
문근영은 어디를 가나 구름같이 팬을 몰고 다닌다. 캠퍼스에 안티팬도 없다. 수업에 들어가는 교수도 설렌다고 한다. 하지만 찬사 일색인 것은 아니다. 문근영과 교양 수업을 같이 수강하는 한 인문학부 학생은 “문근영이랑 같이 수업을 받는 것이 행복하다. 하지만 구경하는 사람들 때문에 수업 분위기가 좋은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엄청난 경쟁력을 뚫고 영화배우 문근영을 입학시킨 성균관대는 함박웃음을 숨기지 않는다. 문근영이 지난해 자기추천제도(뛰어난 재능을 가졌다고 스스로 추천하는 방식)로 수능과 상관없이 입학이 결정되자 논란이 뜨거웠다. 더구나 인문학부에 진학하자 거센 논쟁이 일면서 전 언론이 문근영의 성균관대 입학 소식을 전했다. 최근에는 <조선일보> 등 유력 언론들이 잇달아 문근영의 학교 생활에 대한 기사를 내놓고 있다. 성균관대 한 고위 관계자는 “능력 있는 학생이 들어왔다. 입학 절차가 공정했고 학생이 학교에서 공부 잘 하고 있으면 된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학교는 소기의 성과를 달성한 것 같다.

할리우드의 유명 스타인 엘리자베스 슈·나탈리 포트먼·미라 소르비노는 하버드 대학을 나왔고, 조디 포스터·제니퍼 코넬리는 예일대학을 다녔다. 이들은 명문 대학에 다닌 것을 자랑스러워한다. 그러나 대학이 이들을 내세운 적은 없다. 홍보물에 나오는 경우도 없다고 한다. 하지만 유독 한국 대학들은 연예인이 자기네 대학에 다닌다는 것을 자랑거리로 홍보하고 있다. 그런데 이 ‘자랑거리’는 대학의 명성이나 평판과는 별 관련이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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