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한 화해’인가 '적과의 동침‘인가
  • 소성민 기자 ()
  • 승인 2000.04.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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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뱅크 경영권 분쟁, ‘공동 대표제’로 일단락

 ‘성숙한 화해’인가 ‘적과의 동침’인가. 골드뱅크 경영권을 놓고 1주일동안 피 말리는 공방전을 벌인 김진호 사장(32)과 유신종 전 수석부사장(38 ․ 이지오스사장). 두 사람은 마지막 결판을 내기로 예정된 순간에 극적으로 타협을 일구어내고 화해의 웃음을 지었다.

 지난 3월24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초동에 자리 잡은 골드뱅크 사옥 14층 강당. 제3차(주)골드뱅크커뮤니케이션 정기 주주총회가 열린 자리였다. 장내는 처음부터 긴장감이 완연했다. 당대를 풍미한 청년 사업가 김진호 사장이 과연 무너져 내릴지, 아니면 ‘반군’을 제압하며 건재함을 과시할지 단판승부가 펼져질 것으로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주주 의결권 수를 집계한다며 40분 넘게 개회가 지연되자 좌석에서 야유가 터져나왔다. 간신히 진행을 시작한 총회는 예정보다 서둘러 ‘대표이사 선임’ 문제를 상정했다. 표 대결이 임박했던 것이다. 이 때 ‘골드뱅크 소액주주 연대모임’ 의장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조성배씨가 나서서 두 맞수가 다시 한 번 타협할 시간을 가질 수는 없겠느냐고 호소했다.

 총회 진행을 맡은 김지호 사장이 그의 건의를 받아들여 유신종 사장에게 마지막 대담을 제안했다. 두 사람은 밀실에 들어간 지 한 시간만에 나왔고, 김진호 사장은 ‘양자가 공동 대표를 맡으며 이사회는 양측 동수로 구성한다’ 는 합의 내용을 발표했다.

 1주일 동안 언론의 관심을 끌며 극한 대결로 치닫던 골드뱅크 경영권 분쟁 사태는 이렇게 일단락 되었다. 거의 모든 언론사가 취재팀을 파견할 정도로 관심이 컸으나, 결말이 ‘싱겁게’ 끝나자 별다른 논평조차 흘러나오지 않았다.

 막상 합의를 이끌어내기는 했으나 골드뱅크의 앞날이 문제다. 두 대표가 지향하는 사업 모델이 워낙 다른 데다가, 양측 사람이 이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4명씩으로 같아 회사 운영이 순조로울 수 있을지 의심스러운 것이다.

 두 대표가 이번 공방전에서 상대방을 향해 튀긴 ‘흙탕물’ 도 적지 않다. 두 사람 모두 씻기 힘든 앙금을 상대방 가슴에 남겼을 터이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공방을 벌이는 과정에서 골드뱅크의 문제점이 새롭게 드러나거나 다시 한번 강조되어 기업 이미지가 큰 타격을 입게 된 점이다.

 김진호와 유신종 두 대표는 무엇보다 지향하는 ‘사업모델’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김지호 사장은 정기 주총 이틀 전에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까지도 “골드뱅크의 비즈니스 모델은 전세계에 유례가 없다. 우리는 네트워크를 통해 고객이 원하는 것들을 모두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사업을 지향 한다”하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항간에서 ‘문어발식 확장’이라고 비난하지만 금고업 ․ 여행업 등에 진출한 것도 모두 일관된 사업 방향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온라인을 통해 여행을 신청하고 그 경비는 온라인 금고에 지불하면 된다’는 식이다. 

 하지만 유신종 사장은 김사장의 사업 모델이 아무런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다고 반박했다. 그는 김사장이 주주들로부터 투자를 끌어내려고 인터넷을 통해 쇼핑몰 ․ 경매장 ․ 대리점 ․ 보험사 ․ 은행 ․ 증권사 등을 운영하겠다고 청사진을 밝혔지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있느냐고 되물었다. 또 다음커뮤니케이션이나 새롬기술 같은 경쟁 인터넷 기업들과 달리 골드뱅크가 내놓을 만한 기술이 하나라도 있느냐고 ‘빈약한 내실’을 꼬집었다.

 유사장이 제시하는 사업 모델은 골드뱅크를 크게 두 기업으로 분리하자는 것이다. 우선 기존 사이트를 엔터테인먼트 전문 포털 사이트로 재편한 기업. 다른 하나는 네트워크 사업과 대외 사업을 전담하는 지주 회사이다. 어쨌든 인터넷 특성에 가장 적합한 사업들에만 힘을 모으겠다는 내용이다.

두 대표, 사업 모델 서로 달라 난항 예고
 농구단 운영에 대한 시각도 두 대표가 서로 다르다. 김사장측은 농구단을 운영해서 더 이상 광고비를 지출하지 않고도 브랜드 인지도를 높였고, 60억원에 사들인 농구단이 현재 2백억원을 호가하니 ‘자본 이득’ 도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유사장측은 한 달에 10억여 원씩 적자가 발생하는 농구단을 운영하는 것이 벤처 기업에 걸맞는 사업이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두 사람 가운데 어느 누구도 사업 모델에 대해서는 정답을 낼 수 없는 현실이다. 현재 국내외를 막론하고 인터넷 기업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어떻게 하면 수익 모델을 창출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골드뱅크가 어떤 사업 모델을 추구하든 가장 역점을 두어야할 것은 ‘책임지는 경영, 투명한 경영’ 이어야 한다.

 먼저 골드뱅크는 지금까지 회원을 모으는 데 골몰해 확보한 회원을 관리하는 데에는 인색했다. 인터넷을 통해 ‘골사모’(골드뱅크를 탈퇴하려는 사람들의 모임)까지 결성된 사실이 그같은 점을 말해 준다. ‘광고를 클릭하면 돈을 준다’ 또는 ‘회원을 많이 추천하면 주식을 준다’는 식으로 회원을 늘리는 데 필요한 아이디어만 궁리했던 탓이다.

 또 뼈를 깎는 심정으로 신기술을 개발하거나 풍부한 컨텐츠를 제공하려는 노력도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단순히 아이디어에 의존한 사업으로 회원을 많이 확보한 다음, 이를 바탕으로 자본을 끌어들이려는 데에만 급급했던 것이다.

 기업 인사나 경영에서도 석연치 않은 점이 많았다. 3월24일 주총에서 김동직 전 골드뱅크 이사는 “나는 사임한 적이 없는데 왜 사임한 것으로 되어 있느냐”라고 김진호 사장에게 공개 질의했다. 주총이 열리기 전날, 유신종 사장의 측근은 “지난해 농구단이나 동부창투를 인수한 경우도 매번 유사장(당시 골드뱅크 수석부사장)이 외국 출장을 떠나 자리를 비웠을 때였다”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골드뱅크는 회계 결산에서 16억원 흑자를 기록했으나, 이는 영업 이익을 통한 것이 아니었다. 적자 폭이 커지자 출자했던 벤처 기업 8개의 지분을 정리해 100억원 가량 특별 이익을 거두어 작성한 기록이었다. 이런 수익은 자금 시장이 침체해지면 도리어 손실 요인이 될 수도 있다.

 본격적인 인터넷 기업으로 떠오르며 지난해 상반기 코스닥 열풍을 주도한 골드뱅크. ‘어정쩡한 타협’을 딛고 새로운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을지 그 앞길이 주목된다.
 蘇成玟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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