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침설을 오히려 비판”
  • 박상림 (고려대 박사후보·정치학) (sisa@sisapress.com)
  • 승인 1992.04.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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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의 기원》 저자 브루스 커밍스 교수 ‘학문 업적’ 토론회

 

 

  브루스 커밍스 교수는 《한국전쟁의 기원》 1·2권에서 이 전쟁이 지금까지의 통설처럼 단순히 소련과 북한의 남침으로만 설명되어서는 안되며, 여기에는 남한과 미국도 상당한 책임이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는 특히 미국의 외교정책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강도 높은 비판을 가하고 있다. 또 한국전쟁은 일제시대이래의 한국사회 갈등과 모순에 그 역사적 연원이 있으며, 이것이 미·소간의 냉전 특히 미국의 38선 설정에 의한 분단으로 갈등이 증폭되면서 전쟁으로까지 이어졌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그는 비교역사사회학·세계체제론 등 방대한 역사·사회과학 이론을 동원해 정밀하게 자신의 논지를 규명해나갔다.

  그는 이 저서로 인해 한때 한국 언론이나 일부 학계로부터 북침설논자라고 비판받고, 반한인사라는 이유로 학문적으로는 물론 정치적으로 남한정부나 보수적인 인사들로부터 ㅅㅇ당한 비판과 압력을 받아왔다. 그와 존 할리데이가 함께 만든 영국 BBC의 다큐멘터리 <한국 : 알려지지 않은 전쟁>은 MBC가 수입, 방영하려고 했으나 내용이 한국에 대해 비판적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 한국에서 잘못 알려지거나, 또는 학문적으로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방영되지 못했다.

  실제로 그는 자신의 저서 어디에서도 북침설을 주장한 바가 없으며, 《한국전쟁의 기원》 제2권의 18장-이 장은 이 책의 가장 중심적인 장이이기도 하다-은 약 3분의 1을 북침설을 비판하는 데 할애하고 있다. 최근 커밍스 교수는 한국전쟁에 대한 연구는 일단 마치고, 한국의 통일문제나 동아시아 정치경제 및 국제적인 문제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특히 그는 현재 제3세계 민족을 무시하는 미국의 패권적 외교정책을 앞장서서 강도 높게 비판하는 미국 내 몇 안되는 비판적 지식인 그룹의 한 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고려대 평화연구소가 주최하는 ‘한반도 평화에 대한 국제학술회의’(3월30일)에 참석하기 위해 내한한 커밍스 교수는 짧은 체류기간 동안 한국전쟁토론회(3월29일)와 서울대 강연(3월31일)을 가졌다. 평화연구소 토론회와 서울대 강연은 일반과 언론에 알려졌으나 정작 그의 학문적 업적을 놓고 치열한 토론을 벌인 유일한 학술회의였던 ‘한국전쟁토론회’는 일반에게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이 학술토론회는 커밍스 교수의 주저인 《한국전재의 기원》 1·2권에 대한 학문적 검토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참여자는 사회에 최장집 교수(고려대), 발표에 박명림(고려대 정치학과 박사후보) 정해구(〃) 이종석(성균관대 정치학과 박사후보)씨, 토론에 강정구(동국대 사회학과) 손호철(전남대 정치학과) 교수 이삼성씨(민족통일연구원 책임연구원) 등이었다. 국내에서는 이미 상당한 수준의 연구성과를 발표, 주목을 받고 있는 이들은 비교적 진보적인 학자로 평가되고 잇다. 이밖에 약 30여명의 소장 교수, 사회과학자들과 대학원생들이 일반 청중으로 참석새 열띤 토론을 경청하였다. <편집자>

 

“미국인을 대상으로 쓴 책이었다”

  이날 토론회의 첫 번째 주제는 관점의 문제로서 《한국전쟁의 기원》이 균형을 상실하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즉 남한과 미국에 대한 비판은 강한 반면 북한과 소련에 대한 비판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문제가 지적됐다. 학문적 객관성을 보장받으려면 북한과 소련도 비판받아야 할 점은 당연히 비판받아야 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커밍스 교수는 자신의 저작에 그런 점이 있다면 그것은 그동안 한국전쟁 연구가 너무 일방적으로 소련과 북한을 공격하고 남한과 미국을 옹호하는 데 초점이 놓여 있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남한도 문제가 많았으며, 특히 미국의 외교정책을 강력히 비판하는 데 초점을 맞췄기 때문일 것이라고 응답했다.

  이 부분에서 《한국전쟁의 기원》이 사실상 그 문체나 용어, 그리고 내용상 많은 부분이 한국인보다는 미국인을 대상으로 쓰여진 것이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커밍스 교수는 “그점은 솔직히 인정한다”고 대답, 수긍하는 편이었다. 그는 자신의 작업이 미국의 외교정책이 얼마나 잘못외었고, 그것 때문에 한국인들이 얼마나 큰 고통을 당했는지를 밝히는 데 초점이 놓여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중·소 자료 없어 오류 범해”

  다음으로는 연구대상, 그리고 이론적 불일치의 문제가 지적됐다. 《한국전쟁의 기원》이 총체사로서의 역사연구를 목표로 하는 야심만만한 대작임은 분명하다. 그러려면 중국이나 소련 부분도 연구를 해야 되는데 《한국전쟁의 기원》에는 미국 일본 대만 남한 부분에 너무 치중함으로써 반쪽 연구가 되지않았느냐는 것이었다. 특히 소련과 중국 부분을 연구하지 않고 어떻게 한국전쟁을 총체적으로 연구할 수 있겠느냐는 지적이었다. 또 《한국전쟁의 기원》 1권이 비교역사사회학적 접근을 한 데 반해 2권은 세계체제론으로 접근하여 두권 사이에 이론적 불일치가 보인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에 대해 커밍스 교수는 소련과 중국 부분은 자신의 책이 미국비판에 초점이 놓여 있었다는 앞에서의 대답으로 대신했으며, 이론적 불일치 문제에 대해서는 전체적으로 세계체제론적 시각에서 한국전쟁을 세계적 수준의 문제, 동북아시아 수준의 문제, 한국 내 문제의 세 차원에서 동시에 보려고 했다고 반박했다.

  《한국전재의 기원》에는 구조를 통해 역사를 보는 세계체제론과, 관련 인물들의 음모를 중심으로 역사를 보는 음모이론 사이에 분명한 불일치와 이론적 단절이 보인다는 지적에 대해 커밍스 교수는 답변하기가 곤란했는지, 아니면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었는지 답변을 하지 않았다. 그는 또 “북한의 주체성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실제로 있었던 소련의 역할이나 북한에 대한 소련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했다”고 지적하자 ‘비교’의 관점에서 연구, “당시 동유럽에 대한 소련의 영향력에 비추어볼 때 북한에 대한 소련의 영향력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았다”면서 자신은 ‘민족제일·민족주체’를 강조하는 북한식 사회주의의 특성을 밝혀보려 한 것이라고 응답했다.

  자료 면에서 “미국 자료와 미국에 있는 노획문서 중심으로만 연구가 이뤄졌으며 그것이 또 소련과 중국 부분을 해석하는 데 오류를 가져온 요인 중의 하나”라고 지적하자,커밍스 교수는 “중국과 소련의 자료는 최근에야 공개되고 있기 때문에 이용할 수 없었다”고 대답했다. 노획문서의 경우 그는 “이 시대의 남북한과 한국전쟁에 대한 어마어마한 자료가 워싱턴에 있기 때문에 이 자료를 직접 보지 않고 이 시대의 남북한사를 연구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분명하게 대답했다. 이밖에도 한국전쟁의 여러 부분에서의 해석상의 문제와 커밍스 교수가 채용하고 있는 이론 사이의 불일치가 지적됐으나 이부분에 대해서 그는 부분적으로 동의하지만 많은 경우 자신의 연구결과를 견지하는 응답이었다.

  그의 저작에 나타나 있는 사실적 오류에 관한 지적 가운데 “1948년의 상황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남북협상에 대한 고찰이 없는 것이 아쉽다”는 부분에 대해 커밍스 교수는 “엘리트 정치보다는 대중들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그런 것은 자세히 다루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또 중국과 북한간의 관계를 설명하는 데 있어 몇가지 사실적 오류를 지적하자 그는 “중국 공식자료의 신뢰성에는 문제가 있으며, 특히 연구를 할 당시 조·중 관계를 밝혀줄 수 있는 1차자료는 중국에서 나온 것이 거의 없었다”고 대답했다.

 

“한국 내에서의 연구 진전에 놀랐다”

  커밍스 교수는 또한 20여개에 달하는 사실적 오류를 하나하나 페이지까지 들어가며 지적하자 “그러한 부분은 사실 한국 내에 있는 여러분들이 나보다 더 잘 알 것”이라면서 즉각 자신의 오류를 솔직히 인정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러나 그는 관점, 이론과 분석, 해석에서는 끝까지 물러서지 않는 학자적 완곡함을 잃지 않았다.

  커밍스 교수는 총 4시간에 달하는 토론회를 마치고 “나의 연구가 한국에서 이렇게까지 큰 영향을 끼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면서도 “한국 내에서의 연구가 이렇게 많이 진전된 데 놀랐다”는 반응을 보였다.

  커밍스의 한국전쟁 연구가 대단히 뛰어난 것이고 또 엄청난 영향을 끼친 것은 사실이지만, 그의 연구는 기본적으로 ‘문제를 밖으로부터 본 것’임에는 틀림없다. 이 점에서 본다면 80년대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폭발적으로 일기 시작한 한국 현대사 연구에 힘입어 ‘문제를 안으로부터 본 시각’에 대해 그를 극복하는 것이 국내 연구자들의 과제라 하겠다. 이 때문에 지금이야말로 국내 젊은 연구자들의 분발이 더없이 요청되는 시점이기도 하다.

박상림 (고려대 박사후보·정치학)

 

브루스 커밍스(Bruce Cumings) 교수(49·사진)는 워싱턴대 교수를 거쳐 현재 시카고대 역사학과 교수로 있다. 그의 3권의 저서(한권은 존 할리데이와 공저 《한국 : 알려지지 않은 전쟁》)와 20여편에 달하는 논문은 대부분 한국관계를 다룬 내용들로 발표 때마다 학계·언론계의 주목을 받았다.

  60년대 후반 평화봉사단의 일원으로 한국에 온 것이 계기가 되어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된 그는 <해방의 정치 : 한국, 1945~1947>으로 75년 컬럼비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그는 한국전쟁에 대해 20여년에 걸친 노력과 시간을 투입, 1·2권 합쳐 1천5백63쪽에 달하는 방대한 양의 《한국전쟁의 기원》(1권 ‘해방과 분단국가의 수립, 1945~1947’ 6백6쪽·2권 ‘포효하는 폭포, 1947~1950’ 9백57쪽)을 각각 81년과 90년에 출간하였다. 이 저서로 그는 권위있는 학술상을 3개(제1권은 존 페어뱅크상 및 해리 트루먼상. 제2권은 퀸시 라이트상)나 수상함으로써 학문적 업적에 대한 인정은 물론, 이 분야에서 거의 무비의 위치에 올라선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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