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영화, 안보교육 자료로 전락
  • 한종호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1992.04.23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일제시대 한 좌파 소설가는 “얻은 것은 이데올로기요 잃은 것은 예술이다”라고 한탄했다지만, 오늘날 북녘의 영화들은 서울한복판 광화문 네거리에서 이데올로기도 예술도 없이 망향의 시름을 달래는 한풀이 대상으로 시들고 있다.

 통일원이 90년 3월 ‘북한체제의 경직성과 주민생활상을 사실대로 알리고 우리 체제의 우월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키 위해’ 광화문우체국 6층 북한자료센터에 마련한 북한영화상영관은 그동안 매월 마지막 금요일 북한영화를 상영해왔다. 이곳에는 북한의 기록영화 1백85편 예술영화 1백40편, 그리고 아동영화 24편이 소장되어 있다. 두 해가 지난 지금까지 30회에 걸쳐 21편이 상영됐는데 관람자수가 2천6백명을 넘어섰고 금년 하반기부터는 부산·광주의 북한관에서도 상영될 계획이어서 얼핏 보기엔 활기찬 모습이다.

 재미있는 것은 50대 이상의 장·노년층이 관람객의 반 이상(53%)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센터운영을 맡고 있는 洪起樹 서기관은 “북에 고향을 둔 노인들이 혹시 영화에 자기 고향이 나오지 않을까 해서 자주 찾는다. 향우회를 만들어 아예 여기에서 모임을 갖기도 한다.”고 말했다. 벌써 단골도 많이 생겼고 일가족이 한꺼번에 찾는 일도 많다고 하니 이만하면 실향민의 명소로 자리잡음직도 하다.

 그러나 남북간의 문화교류가 서로의 동질성을 확인·확대하는데 기여해야 한다는 대원칙에 비추어보면 몇가지 개운찮은 구석이 눈에 띈다. 북한영화가 집단적 지도 이념을 전파하는 집단적 창작의 소산이며, 이른바 ‘신파극적 창작방법’으로 제작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서구식 개인주의와 소비문화에 익숙한 남한 관객들은 거기에서 어떤 ‘예술적 감동’을 느끼기 보다는 북한에 대한 실망과 비애만을 안고 나가는 것 같다. 최근에는 관람객 수도 줄어들고 있다.

 센터에서 금년 1월까지의 관람객 2천4백6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영화수준에 대해서는 ‘그저 그렇다’거나 ‘기대 이하’라는 반응(75%)이 대부분이었고, 북한의 실상을 실증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는 응답(85%)이 많았다. 그 ‘이해’라는 것도 대개 “고향을 떠나올 때보다 나아진 것이 없다” “북한동포가 불쌍하다” “반공교육용으로 적극 활용하자”는 것들이다.

 당국에서는 설문조사 결과에 따라 ‘국민에게 대북 자신감을 확신시킬 수 있다’는 취지에서 지방상영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북한의 내노라는 재주꾼들이 공들여 만들었을 영화가 남한에서는 훌륭한 안보교육자료로 취급되는 이 역설적 상황은 남북관계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