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이어주는 ‘정보 보따리’
  • 여운정 기획특집부 차장 ()
  • 승인 1992.04.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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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저 주는 지역 생활정보 신문 부쩍 늘어 … 알뜰 주민에 큰 인기


 ‘어항 3자짜리 3년사용 구18만 매7만’ ‘소니 워크맨 1년사용 구31만 매17만’ ‘아기유모차 2만원선에서 삽니다’ ‘트럼펫 10만원이하 삽니다’ ‘프라이드DM 87년형 에어컨유 매1백50만’ ‘아기돌봐드립니다 경력 5년’ …

 중고생활용품ㆍ중고차ㆍ부동산 거래에서 구인ㆍ구직에 이르기까지 여러 거지 정보로 가득찬 지역 생활정보 신문이 최근들어 급속히 확산되면서 주민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생활정보 신문은 기존의 지역 신문처럼 지역 주민들을 주독자층으로 무료 배부되고 있다. 그러나 해당지역 내의 관공서 기업체소식을 비롯, 교통 주택 문화 정보를 다루고 있는 지역 신문과 달리 생활정보 신문들은 대부분의 지면이 개인이 일상생활에 필요로 하는 안내광고(Classified Ad)로 채워져 있는 게 특징이다.

 

중고품 활용 새 풍토 불러일으켜

 지역 생활정보 신문들은 최근 한두달 사이에 부쩍 늘어나 전국적으로 1백여종에 일고 있다. 보통 4쪽~32쪽으로 제작되는데 각 신문의 제호는 ‘벼룩시장’ ‘알뜰살림’ ‘교차로’ ‘자린고비’ ‘이모저모’ ‘주간마당’ ‘알림방’ 등 검약한 생활을 반영하는 것들이다.

 오래 전부터 중고품 매매가 생활화된 선진국에 비해 아직 중고품 사용에 대한 인식이 정착되지 못한 우리의 소비풍토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생활정보 신문의 선두주자는 대전에서 발행되는 ‘교차로’

 지난 89년 7월 창간된 이 신문은 현재 전국에 11개 지사망을 갖춘 국내 최대 규모의 생활정보 신문이다. 최근엔 서울에도 5개 지사를 개설했는데 대전 본사에서는 매주 두차례씩 32쪽을 발행할 만큼 기반을 닦았다. 발행부수는 10여만부, 대전인구가 1백10만이라면 5가구당 1가구가 구독하고 있는 셈이다.

 ‘교차로’가 이처럼 성장한 배경에는 공학박사 출신 대표이사인 박권현씨(38)의 남다른 열의가 숨어 있다. 80년초 프랑스 유학시절 지역 신문이 제공해주는 편의에 감명받은 박사장은 귀국 후 국내에서도 바로 그같은 생활정보 신문이 유망한 사업이 될 것이란 판단으로 준비작업에 들어갔다. 창간에는 대덕연구단지의 해외유학파 연구원 7명을 끌어들이기도 했다. 처음에 가장 힘들었던 것은 주민들에게 생활정보 신문이 어떤 것인가를 인식시키는 일이었다. 박씨는 지면을 메울 광고가 없자 직접 봉고차를 몰고 서울 청계천의 중고상품을 돌며 구입한 물품을 신문광고를 통해 판매하는 방법 등으로 신용을 쌓아갔다. 이에 그치지 않고 그는 대전 시내에 상설 중고알뜰매장센터를 개설했고, 89년 11월엔 국내 최초로 시민알뜰시장을 열어 시민의 자발적 참여를 얻어냈다.

 이 신문의 편집 기자인 김경양씨는 “전세방 하나 구하려면 온 동네를 헤매고 다녀야 하는 서민들에게 정보를 제공해줌으로써 그들의 손발이 된다는 데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서 가장 발행부수가 많은 신문은 ‘벼룩시장’이다. 부천 시민을 대상으로 90년 7월에 창간된 ‘벼룩시장’은 작년말부터 서울에 진출해 5개 지사를 설립했다.

 이 신문의 발행인인 주원석씨(34) 역시 미국 인디애나대에서 경영학석사를 마친 유학파. 귀국 후 사업거리를 찾던 중 ‘교차로’를 보고 용기를 얻어 창간했다고 한다. 자신의 관심 분야인 경영정보학과 이같은 안내광고가 무관치 않다고 말하는 그는 창간 20개월이 지난 지금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주씨는 특히 이 신문이 사채업자 카드대출 유흥업소 구인 등의 광고는 철저히 배제해 기존의 일간지보다 광고게재 윤리 기준을 훨씬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이들 생활정보 신문의 발행부수는 통상 3만~10만부, 대부분 한건당 2천~3천원 정도하는 광고료로 제작비를 충당한다.

 

일간 신문보다 훨씬 엄격한 광고 윤리

 주민들이 신문을 이용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중고품을 처분해야겠다든가 어떤 물품을 사고싶다. 일자리가 필요하다는 등의 사항이 있으면 전화로 알리고 소정의 이용료를 내면 이를 신문에 싣는다. 아직까지는 주민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10만원 이하의 물건을 팔거나 사려는 경우, 1백만원 이하의 중고차나 5백만원 이하의 전세ㆍ월세,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사업장의 구인광고는 돈을 받지 않는다. 이처럼 적은 비용으로 많은 사람에게 정보를 전달할 수 있어 주민들이 반응은 매우 좋다. 다세대주택에 살다 최근 아파트로 옮긴 안선영씨(30ㆍ성남시 하대동)는 1년 전 30만원에 산 가스온수기를 어떻게 처분할지 고심하다가 동네 신문에 광고를 냈다. 그날로 가스온수기는 10만원에 팔렸는데 그 후 걸려온 전화도 30여통이나 됐다는 것이다.

 주부 한선경씨(29ㆍ과천시 주공아파트)의 경우 두달 전 동네 신문을 통해 ‘성공적으로’ 구입한 중고차는 만나는 사람마다 털어놓는 자랑거리다. 89년 10월에 출고된 프라이드 구입가는 3백10만원. 차주를 직접 만나 샀는데 중고차시장보다 훨씬 쌀 뿐만 아니라 성능에도 전혀 문제가 없다면서 앞으로 팔 물건이 있으면 동네 신문을 적극 이용할 작정이라고 말한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최근 외신을 보면 미국에서도 과소비를 흥청거렸던 80년대를 벗어난 요즘 절약생활 전문지들이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는 소식이다. 신문 이름은 ‘구두쇠 신문’ ‘돈이 덜 들게 사는 방법’ 등. 주말마다 호화파티를 즐기는 상류층 가정들도 이제는 중고품 가게에서 싼 값에 좋은 옷을 고르는 게 큰 재미라는데, 이렇게 해서 아낀 돈은 환경단체 등에 기부한다는 것이다.

 지역 생활정보 신문이 큰 호응을 얻고 지역마다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면서 일부 역기능을 우려하는 소리도 나온다. ‘교차로’가 호응을 얻자 한때는 대전 시내에 25개가 넘는 동네 신문이 난립해 출혈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한달 전 동대문 지역에서 ‘자린고비’를 만들어 지역 신문 창간에 뛰어든 김기완씨(27)는 “붐을 잘못 타면 공해겠지만 신빙성 있는 광고만을 싣는다면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면 자신감을 보인다.

 ‘벼룩시장’의 주원석씨도 ‘수지맞는 장사’로 보고 너도나도 뛰어드는 경향에 대해“너무 영세하고 돈벌이에만 급급한다면 역효과가 크다”고 지적하면서 동네 신문은 어디까지나 ‘봉사와 정보교환의 마당’노릇을 해할 것이라고 충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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