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잡지 일본시장에선 맥 못춰
  • 도쿄·채명석 편집위원 ()
  • 승인 1992.05.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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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프전 때만 반짝 호황 … 불경기 · 광고불황에 시장도 작아

 현대판 황금의 나라 '지팡구'의 잡지 시장을 공략하려는 외국 잡지사의 일본 상륙작전은 과연 성공을 거둘 것인가. 일본 신문·잡지 관계자의 대답은 한결같이 "아니다"이다.

 지금 일본 기업들은 '거품경제'의 파탄으로 경기가 침체됨에 따라 '체중 줄이기'에 여념이 없다. 즉 광고비 접대비 교통비 등을 우선적으로 삭감해 불황을 극복하기 위한 군살빼기 작전을 전개 중이다.

 이러한 여파로 일본의 신문 ·잡지업계도 지금 이른바 '광고불황'에 직면해 있다. 신문업계의 통계에 따르면 작년의 전체 광고비수입이 그 전 해의 98.8%로 줄어들었는데 이 같은 현상은 일본의 신문업계가 26년 만에 겪는 일이다.

 일본의 3대 일간지로 꼽히는 〈마이니치 신문〉의 사장이 지난 4월 돌연 사임한 것은 광고수입 감소가 원인이었다. 〈마이니치 신문〉은 작년 11월 경영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지면을 대폭 쇄신하는 등 일대 개혁을 단행했다. 그러나 이러한 경영쇄신 노력에도 불구하고 불어닥친 불황의 여파로 판매부수가  4백만부 수준을 밑돌게 되어 〈요미우리 신문〉 (9백70만부) 〈아사히 신문〉(8백20만부)과의 격차가 더욱 크게 벌어졌다.

 또한 광고료 수입도 재작년에 비해 34억엔이나 줄어들어 〈마이니치 신문〉은 결국 작년에 12억엔의 적자를 기록하게 되었다. 이 같은 적자는 15년 만의 일로서 일본의 유력 일간지가 광고 불황을 만나 휘청거릴 지경에까지 이르고 있는 것이다.

 

어린이 만화 잡지만 호황

 〈아사히 신문〉이 발행하는 종합주간지《아사히 저널》이 이달 말로 휴간하게 된 것도 광고불황과 무관치 않다. 창간 33년의 역사를 가진 이 주간지는 한때 발행부수가 26만부에 이를 정도로 큰 영향력을 갖기도 했으나 발행부수 광고수입의 격감으로 적자가 누적되자 별 수 없이 휴간을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일본의 출판 전문가들이 외국 잡지의 일본어판 발행러시에 앞에서와 같이 회의적인 태도를 표명하는 이유도 바로 이 경기후퇴와 광고불황 때문이다. 경제전문가들의 예측으로는 일본의 경기가 회복세로 돌아서는 것은 빨라야 올해 연말이다. 그러나 광고시장에 그 영향이 파급되는 것은 그로부터 1~2년 뒤의 일이라는 얘기이다.

 일본의 출판 전문가들은 일본의 종합 주 ·월간지 · 경제전문지 시장규모가 생각보다는 매우 작다는 점도 이런 외국 잡지의 성공확률을 낮추는 요인이라고 지적한다. 일본의 잡지시장은 연간 34억부가 팔릴 정도로 방대하다. 그러나 최대 발행부수를 기록하고 있는 것은  뜻밖에 《소년 점프》라는 만화잡지이다. 무려 6백만부나 팔리고 있다.

  반면 일본 최대의 종합월간지 《문예춘추》의 발행부수는 60여만부에 불과하다. 그밖에《중앙공론》《세계》《월간 아사히》와 같은 정통파 월간지 등도 모두 10만부 정도에서 턱걸이를 거듭하고 있다.

 《뉴스위크》 일본어판 발행을 계기로 한 때 일본에서도 정통파 종합지의 창간 붐이 일어났다. 그 선두주자는 〈아사히 신문〉이 발행하는 시사주간지 《아에라》였다.

 〈아사히 신문〉 편집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제작하는 이 주간지의 현재 추정 발행부수는 30만부. 일본 인구를 감안한다면 아직도 발전 도상에 있는 잡지이다.

 작년에 우후죽순처럼 창간된 남성용 종합지들도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면 《마르코폴로》《바트》《뷰스》《비 코먼》과 같은 잡지들인데, 일본 판매부수 공증협회(ABC;The Audit Bureau of Circulations)의 조사에 따르면 이들의 판매부수는 모두 5만부를 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본의 출판 전문가들은 외국잡지의 일본어판 시장이 이른바'비경합(니취) 시장'이라는 점을 들어 결국 성장의 한계가 그어져있다고 지적한다. 다시 말해서 이들 잡지는 일본 언론이 취급하지 않는 기사를 제공함으로써 일본국내의 독자를 확보할 수 있는데, 그 틈새가 그리 크지 않다는 얘기이다.

 

《타임》, '이토추'상사와 제휴설

 미국의 〈인터내셔널 해럴드 트리뷴〉지는 최근 ,《뉴스위크》의 영원한 숙적 《타임》이 일본시장에서 경쟁지를 추격하기위해 일본어판 발행을 준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타임》은 이러한 방침을 3~4개월 후에 정식 발표할 것으로 보이며, 실제로 일본어판이 발행되는 것은 1년반~2년 후가 될 것 이라고 이 신문은 예측했다.

 《타임》 영어판은 현재 일본 국내에서 약 9만부 판매되고 있어 외국어 잡지로는 가장 많이 팔리는 인기 시사주간지이다.

 《뉴스위크》 일본어판이 일본의 잡지시장에 처음 선을 보인 것은 지난 86년. 일본의 출판사 'TBS 브리태니커'가 《뉴스위크》와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편집권을 15% 위임받아 번역판 발행을 개시했다.

 본지의 전화취재에 응한 TBS 브리태니커의 관계자는 "국제화라는 시대적 흐름에 맞춰 일본어판 발행을 단행했으나 처음에는 수지를 맞추지 못했다"고 밝혔다. 예상과는 달리 실제 판매 부수가 10만부 근처를 맴도는 바람에 발행 후 5년간 내리 적자상태를 면치 못했다는 것이다.

 트리뷴지가 밝힌 바에 따르면 일본어판 구상을 구체화하고 있는 《타임》이 일본의 파트너로 물색하고 있는 회사는 종합무역상사 '이토추'로 밝혀겼다.

 《타임》의 모회사 타임 ·워너사는 미국 최대 영화·출판회사이다. 이 타임·워너사는 작년에 출판 ·음악 부문을 별도로 독립시키고 영화·CATV부문에 일본의 이토추·도시바로부터 총 10억달러에 달하는 투자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트리뷴지는 이러한 제휴관계로 미루어 보아 이토추가 파트너로서 가장 유망하다고 지적하고, 현재 양사가 최종 협상단계에 들어갔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본지의 전화취재에 대해 이토추 홍보실 관계자는 "그러한 사실이 없다"고 트리뷴지의 보도를 전면 부인하면서"타임 워너사에 대한 자본참가 결정 때문에 그러한 소문이 나도는 것에 불과하다"고 잡아떼었다.

 

소련 몰락 등 대사건 없으면 판매에 한계

 일본신문협회의 한 관계자는 타임·워너사가 《타임》지의 일본어판을 발행하려는 데에는 일본의 영상소프트시장뿐만 아니라 출판시장까지 넘보겠다는 원대한 야망이 숨겨져 있다고 분석했다.

 일본 상륙을 시도하고 있는 잡지는 비단 《타임》지만은 아니다. 미국의 격주간 경제지.《포브스》는 이미 지난 3월 일본어판을 월간으로 꾸며 발행하기 시작했다. 이 일본어판의 발행주체는 '교세이'라는 출판사. 《포브스》와 라이선스 계약을 맺어 50대 50의 비율로 미국판 기사와 자체 취재기사를 섞어 선보였다.

 《주간 다이아몬드》사도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의 일본어판발행을 적극 추진중이다. 이 잡지관계자의 얘기로는 3분의 1 정도의 페이지를 《이코노미스트》지 기사로 채울 계획이며 내년 3월에 《글로벌 비즈니스》라는 이름으로 창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미국의 경제지 《비즈니스 위크》도 일본어판 발행을 위해 제휴사를 탐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뉴스위크》일본어판이 겨우 손익분기점을 넘을 수 있었던 것은 걸프전쟁 덕택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대규모 전쟁이 수시로 일어나는 것이 아닐 뿐더러 동유럽제국의 붕괴와 소련 정변 같은 역사적 대 사건이 해마다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일본 판매부수 공증협회의 한 관계자는 일본의 전체 잡지시장 규모를 감안한다면 그 잡지가 현재 큰 성공을 거두었다고는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1492년 콜럼버스는 '지팡구'를 찾아 나섰다가 우연히 신대륙을 발견했다. 그러나 그곳은 신대륙이 아니었다. 그로부터 5백년 후 그의 후예들이 똑같은 착각을 범하게 될는지는 좀더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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