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 김호석
  • 고명희 기자 ()
  • 승인 1990.0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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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정신 고전에 담는다

  민중미술과 모더니즘 · 포스트모더니즘 미술간의 논쟁이 팽배한 80년대 상황에서 수묵화운동을 일으키면서 독자적인 한국미술을 정립시킨 화가 김호석(33)씨, 미술평론가 吳光洙씨는  “수묵화운동이 개별적 성숙의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그의 그림에 대해 말하고, 兪弘濬씨는 “대담한 자기변혁의 화가”라고 그를 평가한다. 모더니즘과 민중의 시각 차이를 뛰어넘어 양측으로부터 호평을 받는다.

 80년대를 휩쓸다시피한 민중미술은 사회인식적인 측면에서 예술을 파악케 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일단 큰 성과로 받아들여진다. 그 반면, 모더니즘미술은 80년대 후반에는 개념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채 포스트모더니즘, 혹은 탈모더니즘으로 연결되면서 다원적인 경향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이념과 형식에 얽매어 미술계를 이분법적 시각으로 나누어보려는 경직된 한국화단에 지난달 26일까지 관훈미술관에서 열렸던 김씨의 한국화 <항거> 전시회는 의미있는 작업으로 평가받은 것이다. 수묵의 근본정신을 살리면서도 오늘날의 눈으로 재해석, 현대감각의 차원으로 승화시킨 작품으로 말로만 무성한 미술계의 이념과 형식논쟁을 일소시킬 만하다는 것이다. 갑오농민전쟁이래 현대에 이르는 근 1백년간의 역사를 인물중심으로 그린 것이 <항거>연작전. 하지만 ‘체험이 곧 그림이다’라는 생각에서 그가 고부 · 황토현 등 동학농민봉기의 중심지를 샅샅이 답습, ‘발로 그린 그림’ 이다.

 김씨는 대학 3학년에 재학중이던 79년 제2회 ‘중앙미술대전’에서 장려상을 받으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80년대 일기 시작한 수묵화문동에 활발히 참여한 그는 초기에 아파트를 소재로 한 도시공간을 먹으로 그려 관념산수에 젖어 있던 한국화단에 소재의 혁신을 가져온 신진작가로 평가받았다. 점차 역사의식으로 눈을 돌리면서 김씨의 조형의식은 그 폭이 넓어지기 시작했다. “제 그림이 역사를 다룬다고 해서 혹자는 민중화가가 아니냐고 묻곤 하지요. 단지 독립정신을 그린 것일 뿐입니다. 고전을 재해석해서 오늘의 정신을 담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일제 이후 맥이 끊기다시피한 우리 전통 초상화기법을 연구한 그의 실력은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 예를 들면 백범 金九나 광복군의 기념촬영사진, 혹은 청산리전투의 독립군 기념 촬영사진 등을 토대로 하되 이를 집단 초상화로 형상화, 그 기량을 유감없이 발휘된다.

 “나는 한국인의 정신적인 요체가 무엇인가를 역사 속에서 찾아 이를 새롭게 이 시대의 삶으로 표현하고 싶습니다. 우리 것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선행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한국적인 美感을 재창조하기 위해 화선지 뒷면을 칠해 앞면으로 은은히 배어들게 하는 後彩法을 사용한다는 김씨는 때로는 직접 치자나무나 곤충의 분비물을 이용해 안료를 만들기도 한단다. ‘자신의 예술로서만 삶의 승부를 거는 진정한 예술가’를 지향하는 김씨는 삶의 현장을 표현하는 <한국의 들녘전>을 90년 계획으로 삼고 있다. 바로 이같은 의식이 90년대의 한국 화가들에게 공통적으로 심어지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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