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다던 백선장 사실은 지서장이었다
  • 위도.남문희 기자 ()
  • 승인 1993.1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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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훼리호 ‘선장 생존설’진상 최초 확인…섣부른 수사·보도 ‘문제’



 서해훼리호 침몰 사건 직후에 언론과 검찰을 커다란 혼란에 빠뜨렸던 ‘백운두 선장 생존설’은, 백선장을 청므 목격한 유진호 최문수 선장(30·위도면 식도리)이 백선장과 외모가 비슷한 부안경찰서 위도 지서장 장복영 경위(47)를 백선장으로 오인한 데서 비롯된 것임이 《시사저널》확인 취재로 밝혀졌다. 《시사저널》취재진은 지난 10월19~21일 장복영 지서장과 최문수 선장, 최선장을 처음 인터뷰한 <ㅎ신문> 전주지역 기자, 전주지검 정주지청 임상길 검사 및 위도와 식도 주민 들을 찾아 증언을 듣고, 평소 위도 주민들로부터 키와 옆모습이 매우 닮았다는 얘기를 들어온 장복영 지서장의 당시 행적과 옷차림이 백선장을 보았다는 최선장의 증언과 일치하고 있다는 점을 밝혀내게 됐다.

 최선장이 장지서장을 백운두 선장으로 오인한 것은 평소 백운두 선장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으면서도 장지서장이 백선장과 비슷하다는 사실은 전혀 모르고 있었던 데도 원인이 있었다. 이 점은 최선장과 마찬가지로 백선장을 보았다고 증언한 유진호 선원 박금문씨(29)와 정성문씨(25)에게도 공통된다.

최선장, 지서장 바뀐 사실 몰랐다
 경남 거제도 출신으로 식도에서 9년째 살고 있는 최문수 선장은 화물 하역관계로 백선장을 거의하루에 한번꼴로 보아왔기 때문에 백선장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지만, 식도에서 약 2km 떨어진 이웃 섬인 위도 사정에는 어두운 편이었다. 특히 그는 지난해 3월 위도 지서장이 김득원 경위에서 장복영 경위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고, 위도 주민과 식도 주민 일부에까지 과다하게 아려진 백선장과 장경위의 비슷한 외모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 점은 식도에서 생활한 지 1년이 채 못되는 유진호 선원 박금문씨와 정성문씨도 마찬가지였다.

 최선장이 장지서장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은 백선장 생존설을 조기에 진화할 수 없는 한 요인이 되기도 했다. 사고가 난 지 이틀째인 10월12일자 조간 신문 및 텔레비전 방송이 백선장 생존설을 일제히 보도하자 전주지검 정주지청의 임상길 검사와 수사관들이 위도 현지에 급파됐었다. 수사팀은 소문의 진원지인 최문수 선장과 유진호 선원 2명으로부터 목격담을 청취하고, 백선장과 다른 선원들의 소재를 파악하기 위해 위도와 식도 일대를 샅샅이 수색했다. 그러나 며칠을 수색해도 선원들의 소재를 파악하지 못하자, 위도지서의 경찰관들 사이에 조금씩 나돌기 시작했던 한 ‘설’에 주목한 것으로 보인다. 즉 최선장이 목격한 사람이 장지서장일 가능성이 있다는 설이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백선장이 살아 있다는 것을 언론이 이미 기정사실화한 상태였기 때문에 이러한 주장은 파급력을 갖지 못했다.

 최선장 진술의 타당성에 대해 조사하고 있던 검찰 수사팀은 지난 10월14일 재차 최선장을 방문했다. 검찰 수사관은 최선장에게 “위도 지서장을 잘 아는가?”고 물었다. 지서장이 바뀐 줄은 꿈에도 모르고 있던 최선장은 “물론 잘 알고 있다”고 대답했다. “당신이 본 사람이 그 지서장이 아닌가”라는 검찰 수사관의 질문에 최선장은 당연히 펄쩍 뛰며 부인했다. 최선장은 이때까지 위도 지서장을 장복영 경위가 아닌 김득원 경위라고 알고 있었던 것이다. 최선장의 강력한 부인으로 수사관의 확인 노력은 무위로 돌아갔다.

 《시사저널》취재진은 당시의 취재기자, 검찰 관계자, 위도 및 식도 주민, 그리고 문제의 장복영 지서장을 대상으로 한 면담조사로 최선장이 보았다는 사람이 장지서장일 가능성이 높다는 판단을 내리고 지난 10월20일 오전 9시께 위도면 식도리로 최선장을 찾아가 만났으나 그때로 그는 자기가 본 사람이 백운두 선장이었다고 믿고 있었다. 검게 탄 구릿빛 얼굴이 한눈에 뱃사람 특유의 우직하고 순박한 인상을 풍기는 최선장은 지난 15일 백선장과 선원들의 시신이 서해훼리호 조타실에서 발견된 뒤인데도, 자기가 본 사람은 백선장이 틀림없다는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 그 날 유진호에 같이 타고 있던 정성문씨와 박금문씨 또한 최선장과 같이 백선장을 목격했다는 사실이 최씨의 믿음을 더욱 굳게 해주고 있었다.

 취재진이 문제의 핵심인 위도 지서장에 대해 잘 아느냐고 묻자 그는 물론 잘 안다고 대답했다. 지서장의 얼굴이 백선장와 매우 닮았고, 당신이 본 사람이 지서장일 가능성이 크다는 주당이 위도 주민 사이에 있다고 지적하자, 그는 역시 펄쩍 뛰었다. 지서장과 백선장이 서로 닮지도 않았을 뿐더러 자기가 헷갈릴 리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때까지는 취재진 역시 지서장이 중간에 바뀌었다는 사실과, 최씨가 바뀐 지서장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는 점에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었다. 이런 사실이 밝혀진 것은 당시 취재 현장에 있었던 식도 주민들에 의해서였다. 주민 중 한 사람이 최선장에게 “얼마전 지서장이 바뀌었는데 그 사실을 알고 있는가”라고 물었다. 순간 최선장은 당황한 표정으로 “저서장이 바뀌었어요?”라고 되물었다. 그 주민이 “지서장이 바뀌었을 뿐 아니라 외모가 아주 비슷하다”라고 재차 지적했다. 그동안 완강하게 자기 주장을 고집하던 최선장은 갑자기 혼란에 빠진 듯했다. “그렇다면 내가 본 사람이 지서장일지도 모르겠다.” 최선장은 한발 물러섰다. 수수께끼의 실마리가 잡히는 순간이었다.

장지서장 행적·옷차림과 정확히 일치
 최선장이 목격한 사람이 백운두 선장이 아니라 위도 지서장인 장복영 경위라는 사실은, 최선장이 백선장을 목격했던 당시의 정황과 장복영 경위의 당시 행적이나 옷차림이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다는 점으로 뒷받침되었다.

 유진호 최문수 선장이 백운두 선장을 목격한 것은 사고 당일인 10월10일 오전 11시40분께, 사고 해역으로부터 생존자 한사람을 구해 위도면 파장금항으로 막 들어오고 있을 때였다. 이 때 최문수 선장과 유진호 선원 두 사람은 유진호로부터 약 5m 떨어져 나란히 항구로 들어가고 있던 10t급 흰색 FRP(특수 플라스틱으로 건조한 배)의 고물에 감색 점퍼를 입은 백운두 선장을 보았다고 했다. 그는 당시 그 배에 백선장뿐 아니라 약 7~8명이 타고 있었다고 했다.

 유진호와 이 흰색 FRP선은 파장금항에 입항할 때까지 약 55m 정도 나란히 항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최선장과 선원들은 백선장을 뚜렷하게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때 최선장과 선원들은 사고 해역에서 수많은 시체를 보고 충격을 받은 상태였기 때문에 상당히 흥분돼 있었다. 당시 최선장이 목격한 백선장의 모습에서 선명을 인상을 남겼던 것은, 그가 한 손에 챙이 넓은 빨간 캡(모자)을 들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부안경찰서 위도면 지서 장복영 경위가 사고 소식을 들은 것은 사고 당일인 10일 오전 10시17분께, 사고 해역 주변에 있었던 어선과 낚싯배 들의 무전연락을 받고서였다. 그는 위도지서에서 약 4km 떨어진 파장금항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이리저리 배편을 수소문해 가까스로 장영수씨(40·위도면 대리)의 10t급 흰색 FRP선(영승호)을 구했다. 사교 여객선에 부인이 타고 있던 위도면 우체국장 신현덕씨(47·위도면 진리)와 백운두 선장의 매제인 박종헌씨(55·위도면 치도리) 등 모두 7~8명이 장지서장과 동승했다. 이들 일행은 사고해역 약 3분의 2 지점까지 다가갔다가 파장금항으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구조 작업이 이미 끝난 상태였고, 풍랑도 거세 더이상 접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파장금항으로 되돌아온 시간은 오전 11시30분께로 최문수 선장이 백선장을 보았다는 시간과 대략 일치하고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최문수 선장이 백선장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배의 고물에 장지서장이 있었으며 백선장의 복장과 비슷한 감색 점퍼를 입고 있었다는 점이다. 평상시에도 이 감색 경찰 점퍼는 선장들이 입는 감색 점퍼와 매우 비슷하게 여겨졌다. 또 이 배에 함께 타고 있던 박헌종씨의 증언에 따르면, 최선장의 노리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문제의 빨간 캡을 바로 장지서장이 한 손에 들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 빨간 캡은 해양경찰들이 작업할 때 쓰는 작업모이다.

최선장 증언의 의문점 간과했다
 10월20일 위도면 지서 입구에서 장지서장과 간단히 인터뷰한 취재진은, 위도면 파장금에 있는 백운두 선장 집에서 백선장의 생시 사진을 보고, 두사람이 놀랄 정도로 닮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몸집도 백선장이 180m인데, 장지서장은 176m로 엇비슷하다.

 파장금 선착장에서 장지서장을 백선장으로 오인한 최문수 선장은 식도로 다시 돌아가 식도 주민들에게 백선장이 살아 있다고 전했다. 여기서부터 파생된 백선장 생존설은 식도 주민들에 의해 다시 위도 주민들에게, 그리고 위도 주민과 친분 관계가 있느 전주지검 직원을 통해 검찰 관계자들에게, 다시 부안과 전주에 흩어져 취재하고 있던 언론사 기자들에게 퍼져 나갔다.

 사고 당일인 10월10일 오후부터 퍼지기 시작한 백선장 생존설은 다음날인 11일, 지방석간인 <ㅈ일보>가 사회면 1단으로, 그리고 ㄱ방송이 오후 3시 뉴스에서 이를 보도함으로써 거의 전언론으로 증폭되었다. 특히 <ㅎ신문> 전주지역 기자 ㅇ씨가 11일 오후 식도에서 최문수씨를 인터뷰한 기사가 12일 오전 <ㅎ신문>에 보도된 이후, 최선장 단독 인터뷰를 낙종한 기자들 사이에서는 “이제 남은 것은 백운두 선장 인터뷰뿐이다”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백선장 생존설은 기정사실화되었다. 여기서 갖가지 정황증거들, 예를 들어 UDT 대원들이 침몰한 서해훼리호의 조타실을 맨먼저 수색했으나 백선장이나 다른 선원을 발견하지 못했던 점(당시 조타실 내부가 한치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시야가 안좋아 초기 발견에 실패했다고 한다), 구명보트 한 척이 전남 영광군에서 발견된 점, 구조작업에 참여한 어선 중 한 척이 수상한 행동을 했다는 정보 등 갖가지 정황이 생존설을 그럴 듯하게 뒷받침하는 근거들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시민들의 무책임한 장난 전화, 허위 제보가 더해져 ‘살아있을 것’이라는 소문은 ‘살았다더라’로 바뀌고, 심지어는 ‘내가 백운두다’라는 장난 전화까지 신빙성 있는 얘기로 받아들여졌다.

 검찰 관계자들은 “생존 가능성이 1%라도 당시의 상황에서는 수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하기도 했지만, 한때 책임 있는 검찰 간부가 “백선장의 생존 가능성은 98%이다”라고 경솔하게 공언한 것도 생존설을 기정사실화하는 데 일조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게 됐다.

 전북 도경 기자실에서 만난 한 기자는 “생존설의 진원지인 최선장의 증언에는 처음부터 의심스러운 구석이 있었다. 예를 들어 물에 빠졌다가 나온 백선장의 옷이 전혀 물에 젖지 않았다고 한 점, 그리고 파장금항에 위도 주민들이 그렇게 많이 나와 있었는데도 최선장과 선원 두 사람 외에는 백선장을 직접 목격했다는 사람이 한사람도 없었다는 점이다. 언론과 검찰이 이런 의심스러운 점을 지나친 채 서로 상승작용을 한 게 문제를 크게 만든 원인이었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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