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저널》취재팀 한국 언론사상 최초 ‘골들 트라이앵글’잠입
  • 정희상 기자 ()
  • 승인 1994.0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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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꽃밭’ 1천km 횡단



 《시사저널》취재팀의 동남아 마약 생산·공급 현장 잠입 취재는 태국·미얀마·라오스가 만나는 메콩 강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태국 북부 산악 도시 치앙마이에서 동북쪽을 향해 자동차로 네 시간 가량 달리면 치앙센이라는 조그마한 국경 도시가 나온다. 메콩 강 연안에 있는 이 도시 강나루에서 보트에 몸을 실은 취재팀은 태국인 뱃사공에게 골든 트라이앵글(황금의 삼각지대)로 방향을 잡아 달라고 요구했다. 티베트 고원에서부터 2천여km를 내달려온 메콩 강 물줄기는 보트를 삼킬 듯이 장엄한 황톳빛 혀를 넘실대며 라오스의 정글과 태국·미얀마 고산지대를 갈라놓고 있었다. 30분쯤 달리던 보트는 원지명 골든 트라이앵글에 취재팀을 떨어뜨렸다. 문자 그대로 동남아 마약 산지의 대명사이자 태국·라오스·미얀마가 만나는 한 접점이다.

 전세계에 공급되는 헤로인의 70%를 생산한다는 골든 트라이앵글. 그러나 현장에 찾아가 보니 마약의 자취를 찾을 실이 없었다. 황금알을 낳는 마약 유통을 노리고 세계 각국에서 찾아온다는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어디에도 아편밭은 없었다. 대신 이곳에는 세계 각국의 검은 돈이 세탁되는 거액 도박장 건물 2동이 70% 정도의 공정으로 세워지고 있었고, 메콩 강을 따라 중국 본토까지 운항할 대형 유람선 두 척을 건조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골든 트라이앵글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산다는 미얀마인 토박이 분싯씨(44)는 그 내력을 이렇게 설명했다. “70년대까지는 바로 이 곳에 큰 배가 정박해 그 안에서 세계적인 마약 시장이 섰다. 앞에 보이는 라오스 밀림과 뒤쪽 미얀마·태국 산자락에는 끝도 없이 양귀비밭이 펼쳐져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거래 장소와 밭이 모두 태국·미얀마 국경지대와 라오스 내륙 비밀 장소로 옮겨갔다.”

 취재팀은 옮겨간 골든 트라이앵글로 잠입하기 위해 발길을 태국 최북단 국경 도시 메사이로 돌렸다. 미얀마 국경이 가까워질수록 태국군 검문이 삼엄했다. 한달 전부터 미얀마 정부와 동남아 마약왕 쿤사의 군대가 태국·미얀마 국경 부근에서 전쟁을 벌이기 때문에 태국측은 여행객의 국경 출입을 부쩍 통제하고 있었다.

 1월13일 메사이를 출발한 취재팀은 미얀마측 국경 검문소에 이르러 관계자에게 태국 돈 5백바트(한화 약 1만8천원)를 쥐어주고 비자 없이 미얀마 입국 허가를 얻어냈다.

고원에서는 전투기가 저공 비행
 미얀마 국경 도시 타킬렉을 지나 켕퉁 방면으로 십수km를 달리던 취재팀은 여기서 쿤사의 지배를 받는 한 소수 민족 마을로 들어갔다. 태국 치앙마이에서부터 비밀 선으로 연결한 쿤사군(MTA) 소속 정보 책임자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이 마을은 쿤사군의 한 거점인 샨 고원의 배후에 자리잡고 있는데, 지난해 12월10일부터 미얀마 정부군 정예 88사단이 쿤사가 샨 주의 독립을 선포한 데 맞서 샨 고원을 포위한 상태라 전운이 감도는 최전선이었다.

 사이 챤(48)이라고 자기를 소개한 이 정보 책임자는 지난 25년간 쿤사 조직 병사로, 마약 거래요원으로, 쿤사군 정보요원으로 활동해온 인물이다. 그는 두시간 가량의 인터뷰를 통해 공든 트라이앵글 내의 마약 생산·공급 실태는 물론 쿤사 조직에 한국계가 몇 사람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털어놓았다(32~34쪽 인터뷰 참조).

 쿤사 정보요원과 만난 뒤 내친 김에 미얀마 깊숙이 들어가 쿤사 진영을 공식 취재하려던 계획은 수정해야만 했다. 미야마군 3개사단이 쿤사 진영의 요충지를 상대로 대대적인 공격을 가하고 있으며, 쿤사측도 4만 병력을 총동원해 결사 항전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취재팀은 아편 생산·공급 현장에 접근하는 방법으로 태국·미얀마 국경을 따라 서쪽으로 1천여km 떨어진 살윈 강 유역까지 몰래 나가기로 했다.

 다시 국경을 넘어 태국 메사이로 되돌아 왔을 때 인구 1만5천여 명의 소읍인 이 도시에 은행이 유난히 많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큰 길을 따라 늘어선 은행을 세어 보니 무려 12개나 됐다. 국경 지대에서 보석·웅담 따위를 밀무역한 경험이 있는 취재 안내인은 바로 이 은행들이 마약 거래 자금의 유통 통로라고 설명한다. “태국·미얀마의 웬만한 상권은 화교가 장악하고 있다. 쿤사 지역으로 들어가는 마약거래 자금은 은행들이 뱅뜨롱이라는 비밀 화폐를 통해 지원해 준다. 태국 정부도 이 화폐 때문에 골치를 앓는데, 쿤사 진영의 엄청난 재산 때문에 근절하기가 불가능하다. 마약 자금은 뱅뜨롱말고도 세계 어디에나 퍼져 있는 중국계한약방·보석상 체인이 결제를 해준다.” 그에 따르면, 중국인이 운영하는 한약방과 보석상은 마약 조직에게 은행보다 훨씬 신용이 높다고 한다. 싱가포르나 홍콩 또는 서울·뉴욕 등에 헤로인이 안전하게 도달하면 이들 상점을 이용해 대금을 결제하게 되는데, 대금이 보석상에게 맡겨지면 즉시 수취인 지역 보석상에 암호로 된 영수증과 주민등록(여권) 번호를 팩시밀리로 넣어 손쉽게 돈을 이동시키는 방식이다. 이럴 경우 아무리 거액의 마약 자금이라도 단 몇분 안에 세계 각지에서 쿤사 지역으로 이동한다는 것이다.

 지프를 전세내 메사이를 출발한 취재팀은 쿤사 지역에서 정제한 헤로인이 세계 시장으로 나가는 태국내 첫 ‘관문’ 가운데 한 곳으로 알려진 국경 도시 메사롱으로 향했다. 산등성이를 따라 난 비포장 길이 태국과 미얀마를 가르는 국경선이었다. 눈앞에 끝없이 펼쳐진 샨 고원에서는 전투기가 저공 비행을 하고 있어 긴장을 더했다.

 첩첩산중에 자리한 메사롱은 49년 중국 공산당에 패한 국민당 관리와 군 일부(93·96사단)가 망명해와 눌러앉은 지역이다. 이들은 토착 산족인 아카·리수족 마을 사이사이에 땅을 일궈 중국인 촌을 형성하고 있었다.

 망명 국민당군 93사단장의 영정과 유품을 전시한 마을 중앙의 가옥 앞에서 뱀술을 파는 한 중국계 남자는 자기들이 부유하는 사실을 이렇게 자랑했다. “우리는 장사를 잘하고 어디서나 잘 뭉치는 민족이라 다른 민족보다 항상 앞선다. 여기서 태어나 열다섯살만 넘으면 대만 정부에서 사람을 보내 데려가 취직을 시켜준다. 우리 애 둘도 지금 대만에서 일한다.” 대만 정부가 쿤사 지역에사는 93·96 사단 후손들을 데려다 산업 인력으로 쓴다는 말이었다. 그에 따르면, 마약 중개 장소는 마을 뒤에 있는 1천5백m 높이의 도이메사롱(메사롱산)인데 그곳에는 쿤사군이 마약 거래를 보호하기 위해 진주하고 있으며, 요즘은 전쟁중이라 외부 거래자들이 이곳까지 들어오지 않으려 해 마약 경기가 부진하다고 한다.

 국제 마약 조직은 메사롱 외에도 팡을 거점으로 하여 쿤사 지역 헤로인을 손에 넣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팡은 쿤사의 아편밭과 헤로인 정제소에서 가장 가까이에 있는 태국 중북부 국경 도시로, 샨 주에 잠입하기가 제일 쉬운 곳이다.

 1월14일 취재팀은 팡 북부 국경선에 인접한 한 샨족 마을에 도착했다. 샨족 마을 분위기는 취재팀에게 지극히 위협적이었다. 한달 전쯤 미얀마군의 대규모 공세로 이 마을 인근에서 쿤사가 운영하는 헤로인 정제 공장이 폭격을 당했고, 전면전에 들어가면서 부락마다 열두살 이상의 남자들은 모두 쿤사군에 입대하여 살윈 강 전선으로 떠났던 것이다. 이들에게 이방인은 모두 의심 대상이었고 여차하면 사살할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취재팀이 이 마을 추장 사이라쿤씨(46)집에 도착했을 때 마을 사람들이 의심스런 눈으로 추장집 마당에 몰려들었다. 여기저기 총을 든 사람들도 보였다. 추장은 안면이 있는 취재 안내인의 설명을 듣고서야 일단 의심을 누그러뜨린 뒤 샨족어로 부락 사람들을 안심시켰다.

 이 날 밤 사진 작가들이라고 소개된 취재팀은 추장에게 밤늦도록 그들이 처해 있는 상황과 전쟁에 임하는 자세를 들었다.

 그는 자기네가 아편을 재배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오로지 생존 때문이라고 말했다. 1백40여 가구에 5백여 명으로 구성된 이 마을 사람들은 가구당 30라이(1라이는 약 4백85평)씩 산을 경작하지만 거기서 나오는 소득은 태국 돈으로 연간 1천바트밖에 안돼 도저히 살 수가 없다는 것이다. 아편을 경작할 경우 1라이를 잘 심으면 양귀비 원액 3kg이 나오는데 쿤사측이 1kg에 약 5천바트로 셈해 주므로 아편은 그들의 생명이고 쿤사는 은인이라는 얘기였다.

한국산 자동차, 헤로인 운반용으로 인기
 이 마을 아편밭을 작품 사진으로 촬영하겠다는 취재팀의 요청을 거듭 거절하던 그는 3백달러(약 7천5백바트)를 주겠다고 하자 무장한 부락 장정들과 함께 가는 조건으로 수락했다. 취재팀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그의 딸을 포함한 젊은 샨족 여성 5명을 더 대동하겠다고 요구했다. 그가 이를 받아들여 추장집에서 하룻밤을 묵은 뒤 다음날 새벽 아편 밭으로 향했다.

 샨 주민 4명이 권총과 소총으로 무장해 취재팀과 여성들을 호위하는 가운데 2천m 높이인 국경 산악을 넘은 일행은 출발한 지 여섯 시간이 지나서야 아편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정글을 세번, 잡목림 수풀을 두번, 습지를 한번 통과한 취재팀의 눈앞에 펼쳐진 아편밭은 평평한 구릉지대에 자리한 7천5백여평이었다. 마침 수확기라서 사흘 전에 부락민 3명이 미리 도착해 밭 옆에 움막을 쳐놓고 활짝 핀 양귀비꽃 사이에서 원액을 채취하고 있었다. 그들은 3년간 아편을 심은 곳은 토질이 나빠져 다시 못심는다며 해마다 다른 곳을 개간한다고 말했다.

 아편밭 현장 취재를 마친 후 오던 길을 되돌아 떠난 지 열두 시간이 지난 밤 8시께 부락에 도착한 취재팀은, 하룻밤을 더 묵으라는 추장의 호의를 거절하고 서둘러 그 마을에서 빠져 나왔다. 쿤사측 생아편 수거 요원이 마을에 와서 마을 사람들을 모아놓고 의심스런 ‘이방인’의 출현을 추궁하는 장면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 밤으로 태국 국경 도시 팡까지 나온 취재팀은 이곳에서 다른 중국인 마약 중개인을 만나 정제된 헤로인이 요즘 어떻게 유통되는지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이름을 절대 밝히지 않겠다면서 태국에서도 주로 사용되는 헤로인 운송 수법을 이렇게 소개했다. “쿤사가 정제한 헤로인은 태국을 거쳐 해외로 운반하기 위한 미얀마·태국 국경을 주로 자동차로 빠져 나간다. 요즘 태국에서 인기가 높아지는 한국산 자동차들은 일제 차에 비해 의심을 별로 받지 않는 장점이 있다. 차바퀴 속에 헤로인 봉지를 담으면 국경은 무사통과다. 문제는 방콕에 이르기까지 뒤쫓는 마약 단속반의 눈길이다. 일단 국경을 넘으면 가까운 소도시 자동차 정비소 앞에서 일부러 반대편 바퀴에 펑크를 낸다. 이 때 이미 약속한 정비소 관계자가 다가와 ‘오늘은 수리가 곤란하니 차를 맡기십시오’ 하고 말을 건넨다. 이것이 중계 암호인데 운전자는 여기서 할 일이 끝난다. 이튿날 다른 차바퀴에 옮겨진 헤로인 방콕으로 가는 동안 그 전 날 국경을 넘은 차는 단속반의 차적 조회를 유도하며 유유히 다른 길로 사라진다.”

 그는 이같은 중계 조직이 쿤사 지역에서부터 방콕에까지 그물망처럼 연결돼 있어서 차량을 이용하지 않는 다른 방법도 모두 그와 비슷하게 이뤄진다고 말했다.

안내인 사색이 돼 돌아와 팡에서는 쿤사군과 미얀마군의 교전과 관련한 소식이 심상찮게 나돌고 있었다. 1월 초순부터 치열해진 양측의 살윈 강 전투로 수백명이 사망하고, 미얀마군이 곧 살윈 강을 건널 것이라는 소문이었다. 취재팀은 전황을 파악해 취재 루트를 조정하려고 메홍손주 암포파이(파이 읍)의 국경 부락인 중국계 진허족 산마을에 들렀다. 이곳에 쿤사군의 지역 사령관이 머무르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기 때문이다. 안전을 위해 우선 파이읍내에 살면서 지역 사령관과 깊은 관계가 있는 리수족 출신 젊은이를 안내인으로 고용했다.

 중국인촌은 대낮인데도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부락 맨 윗집이 지역 사령관 집이었는데, 두메 산골에서 위성안테나 시설까지 갖추고 있는 것으로 보아 보통 샨족 마을과는 다르다는 느낌을 주었다. 쿤사군 지역 사령관을 데리러 간 리수족 안내인은 한참 뒤 사색이 되어 돌아왔다. “빨리 이곳을 피하자. 외지인이 들어오면 전부 사살하라는 명령이 마을에 내려졌다고 한다. 사령관은 어제 부락 젊은이 7명을 차출해 전선으로 보낸 뒤 오늘 아침 회의 때문에 산너머로 떠나고 없다.”

 취재팀은 아슬아슬하게 고비를 넘긴 채 서둘러 산마을을 빠져나와 10km 가량 떨어진 파이 읍내로 피신했다. 파이 읍내에서는 마침 쿤사의 보급창에다 쌀을 날라주고 돌아온 리수족 안내인의 매부(태국인)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파이에서 트럭으로 한시간 달리면 나타나는 쿤사군 보급창에 매일 쌀과 약품을 날라다 주면서 쿤사측으로부터 일당 1천5백바트를 받는다고 했다. 가끔 무기도 나른 적이 있는데, 그럴 경우는 쿤사군 관계자들이 절대 보지 못하도록 해 어느 나라 제품인지 확인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취재팀을 안내한 25세의 리수족 젊은이는 그동안 거쳐온 취재 루트를 묻더니 서둘러 메홍손 주를 빠져 나가라고 말했다. 쿤사 진영의 정보망에 취재팀이 다니는 길이 다 포착되고 있어 언제 어떤 사고를 당할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는 친절하게도, 팡에서부터 메홍손 시에 이르는 국경 길은 쿤사가 사실상 장악하고 있고, 밤에는 차량을 상대로 총격을 가하는 일이 빈발하므로 낮에만 이동하도록 조언했다.

 1월17일 메홍손 시에 도착한 취재팀은 수소문 끝에 미얀마 샨 고원에서 쿤사 정보 책임자로부터 제공받은 쿤사 진영내 한국계 인물의 소재를 파악할 수 있었다. 메홍손에서 샨 주로 넘어가는 쿤사 지역에 있는 나이소이라는 마을에 거주하는 한국계 쿤사 요원은 문충일씨(56)로 밝혀졌다. 그러나 그와 만나기는 불가능했다. 취재팀이 그를 찾아 마을로 들어갈 때 그는 미리 알고 부인을 마을 입구로 내려보냈다.

한국인 부인 “제발 돌아가요” 절규
 퍼머 머리를 한 전형적인 한국 농촌 여인 모습을 한 문씨 부인은 파랗게 질린 표정으로 ‘위험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쿤사 지역내 중국인 학교 교사인 문충일씨는 부인과 1남1녀를 두고 있는데 자녀도 모두 마을안에 사는 것으로 확인됐다.

 문씨를 만나고 싶다는 취재팀의 요청은 어젯밤 부락에서 7명이 외부인 접촉(정보누설)혐의로 공개 사살 당했다는 문씨 부인의 절규에 묻혀버렸다. 취재팀이 들어올 경우 문씨의 가족과 취재팀 모두 위험해진다는 것이었다. 그가 전해준 마지막 말은, 전쟁이 잠시 중단됐고, 1월10일을 전후로 치열하게 전개된 살윈 강 전투에서 미얀마군 1백여 명과 쿤사군 20명이 전사했다는 내용이었다.

 샨 고원에서 시작해 메홍손 국경에 이르기까지 1천여km에 이르는 쿤사 진영을 넘나든 취재팀은 살윈강 전선을 취재하기 위해 국경을 다시 넘기로 했다. 쿤사 지역(샨 주)을 통과해 전선으로 가기는 불가능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카렌 자치주를 이용할 계획을 세웠다. 쿤사가 독립을 선포한 샨 주의 서남쪽 끝과 잇닿은 카렌 주도, 카렌족이 독립을 요구하며 지난 30년 동안 미얀마군과 기약 없는 전투를 벌이는 곳이다.

 메홍손 북부 국경 마을 나이소이에서 카렌족 임시 정부를 이끄는 태부페 부통령(55)을 만난 취재팀은, 그에게 카렌 주를 통해 살윈강에 접근하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기꺼이 도와주겠다고 했지만 문제는 국경의 태국 수비대였다. 이곳 태국 수비대는 전쟁 지역에 외국 기자를 들여보낼 수 없다고 완강히 버티었다. 1월 초순에도 서방 기자 10여 명이 살윈강 전투 지역에 들어가려고 이곳에 모였으나 자기들이 돌려보냈다는 것이다. 결국 취재팀은 최초로 시도한 쿤사 지역 마약 생산·공급 현장 및 마약 전쟁 취재를 이곳에서 끝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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