進退存亡의 진리를 알아라
  • 김동선(편집부국장) ()
  • 승인 2006.04.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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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금의 나라 꼴을 보면 목숨걸고 왕의 잘못을 꾸짖은 옛 간의대부의 직언·상소가 절실히 생각난다.

 ■心이 또 문제다. 민자당 대통령후보 경선 때는 좀체 속내를 드러내지 않아 당사자들을 괴롭히며 끝내는 꼴사나운 전당대회를 연출하더니, 이번엔 그 속을 너무 드러내 말썽이다. 임기가 반년도 안 남았는데 사돈기업이 ‘단군 이래 최대 이권사업’이라는 이동통신 사업권을 따내 나라가 온통 뒤숭숭하다. 또 대만과의 관계 악화로 파생될 문제는 고려하지 않고 당 총재직 이양을 코앞에 두고 서둘러 중국과 외교관계를 맺었다.

 ‘반납’ 운명에 처한 이동통신 사업은 기술부족 때문에 무역적자를 가중시킬 것이라는 전망이었고, 대만과의 매끄럽지 못한 외교단절 행위로 야기되고 있는 경제손실 막대할 것으로 얘기되고 있다. 두 문제 모두 뭔가에 쫓기듯이 졸속으로 처리되었다는 점과,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나라경제에 해를 끼칠 것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연초 기자회견 때 “경제에만 전념하겠다”고 약속하더니 과연 경제에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대통령 ‘경제전념’작품치고는 치졸하기 짝이 없다.

 

이 나라의 통치구조에는 제동강치가 없다

 임기가 반년도 안 남았는데 그토록 중대한 문제를 왜 그렇게 졸속으로 처리했을까. 이동통신이 항간의 해석대로 ‘실리’를 챙기기 위해서였다면, 중국과의 조기 외교수립은 공명심 때문일까. 그러나 두 문제 모두 정황을 살펴보면 결국은 ‘■心’ 때문이다. 이제 盧心은 ■心이고, 그렇기 때문에 과욕이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김영삼 대표도 이 사심을 공격하고 나섰다. 이동통신 사업자가 노대통령 사돈기업으로 결정되자 김대표는 “나도 아내와 자식을 사랑하지만 그보다는 나라를 더 사랑한다”고 말하고 “나는 개인보다 국가, 사익보다는 공익을 중시하겠다”고 덧붙여 간접표현이긴 하지만 노대통령의 사욕을 비난했다. 그러자 발끈한 노대통령은 “나는 하늘을 우러러 한점의 부끄러움이 없다”고 맞받았다. 서로 측근의 입을 통해 주례회도에서 논의를 했느니 안했느니 하더니 급기야 권력의 정상에 있는 분들이 ‘말싸움’ 양상을 보였다.

 이 무슨 망칙한 일인가. 하늘을 우러러 한점의 부끄러움도 없다고 주장해도 믿을 사람 아무도 없고, 김영삼 대표 발언도 결코 장부답지 못하다. 노대통령과 3년간 국정을 같이 논의했던 여당대표가 ‘파해국정’을 사전에 막지 못하고 사후약방문식으로 자신의 결백성만 강조한다는 것은 결코 신사답게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소위 ‘차별성 전략’인지 모르지만, 사전에 ‘그것은 안된다’는 명쾌한 태도를 보였어야 했다.

 하기야 이 나라 통치구조에는 제동장치가 없다. 명색이 민주국가여서 갖출 것은 다 갖추었지만, 대통령의 무소불위의 권력 앞에서는 제동장치가 맥을 못춘다. 국민의 여론을 대변하는 언론이나 야당의 반대 목소리는 권위주의시대의 악습 때문인지 알직도 ‘개짖는 소리’쯤으로 대접받고 있다. 장관을 포함한 관료들은 국가이익에 위배되는 일도 위해서 ‘원라고’ 시키면 그대로 집행한다. 중국과의 조기 외교관계수립 문제에 있어서 외무부 경제담당부서와 경제부처에서는 대만과의 경협에 악영향을 우려해 반대했다지만 ‘결사항전’의 자세는 보이지 않았다. 꿈같은 얘기일지 모르지만 이동통신이나 중국문제에 있어서 해당 장관들의 연대해 국익을 내새우며 사표를 내던질 각오로 임했다면 결과는 다르게 나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 꿈같은 일이고, 이미 물은 엎질러 졌다. 그리고 그 폐해는 국민들이 고스란히 안게 되었다.

 

“만족을 알면 창피를 안 당한다”

 좌우지간 작금의 나라 꼴을 보면 군주제 시대의 ■■大夫나 상소가 절실하다는 생각이다. ‘목숨을 걸고’왕의 잘못을 꾸짖는 간의대부의 직언이나 관리들의 상소는 국정의 파탄을 막았었다. 왕조시대의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 나왔던 그 숱한 명 상소문 중에서도 ■太宗때 ■相■■■이 태종의 고구려 침공을 막기 위해 냈던 상소문은 오늘의 시점에서 우리에게 대단히 교훈적이며, 짜릿한 감동까지 준다. 이 시기는 고구려 楊萬春이 安市成에서 태종이 친히 이끄는 당의 대군을 물리친 직후였다. 당 태종은 자존심 때문에 고구려 침공 계획을 다시 세웠는데, 이때 노환으로 병석에 누워 있던 방현령은 명분없는 전쟁으로 죄없는 백성만 죽어나가고 그들의 부모 처자식만 불쌍해진다는 논리로 고구려 침공을 반대했다. 태종도 읽고 감탄했다는 방현령 상소문의 백미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다.

 “■■에 말하고 있습니다. 나아가는(進)것만 알고 물러설(退)줄 모르고 있다(存)는 것을 알고 亡한다는 것을 모르며, 얻는 것만 알고 잃는 것을 모른다면 그것이 ■人인가. 進退存亡을 알고 그 올바름을 잃지 않는 사람이 성인인가. 여기서 미루어본다면 나아가는 데 필요한 것은 물러설 때의 義가 있어야 하며, 存在는 곧 亡■의 계기이며, 얻는다는 결과는 바로 잃는다는 이치에 이어지는 것입니다. ■■, 폐하를 위해서 이를 아끼는 까닭은 곧 이를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老子도 말했습니다. 만족을 알면 창피를 안당하며 멈출 줄 알면 위험하지 않다고 말입니다.”

 進退存亡의 진리…. 책임이 무거운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일수록 이 진리의 깊은 뜻을 새겨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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