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 옛 왕족들 왕관 다시 쓰려나
  • 부다페스트·김성진 통신원 ()
  • 승인 2006.04.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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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 업고 복고 노려…루마니아 가능성 1순위



스페인의 후안 카를로스 국왕과 소피아 왕비는 바르셀로나 올림픽 기간중 가장 주목을 많이 받은 인물이었다. 승마장에서 유도장에서, 그들은 스페인 선수가 뛰는 곳이면 달려가서 그것도 일반석에 앉아 국민들과 호흡을 같이했다. 전 유럽을 시청권으로 하는 스포츠방송 ‘유로스포츠’는 폐막식을 생중계하면서 스페인 왕과 왕비가 올림픽 기간을 통틀어 가장 바쁜 일정을 보낸 사람이었다고 소개했다.

스페인 왕실의 인기는 이같은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프랑코 사후 이루어진 민주화 작업은 극우 파시스트들의 계속된 쿠데타 시도를 온몸으로 막아낸 카를로스 국왕의 업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꼬리를 무는 스캔들로 이제 존폐론까지 거론되는 영국이나 모나코의 왕실, 그리고 조국으로부터 버림받은 채 금의환향의 꿈 속에 세월을 묻은 동유럽권의 옛 왕족들에게 바르셀로나올림픽은 더욱 애틋하게 다가왔을 것이다.

이제 민주체제로의 걸음마를 갓 시작한 동유럽권에서 스페인의 민주화 과정은 하나의 교과서가 되었다. 헝가리에서는 한국을 두 번 방문한 바 있는 부다페스트 경제대학의 아틸라 아그 교수가 연구의 선두에 서있다. 그는 지난 3년 간의 동유럽 민주화과정 유형에 따라 크게 중유럽권과 그밖의 동유럽권으로 나누었다. 중유럽에서는 공산 권위주의 체제가 다시 돌아갈 수 없는 다리를 건넜지만 동유럽에서는 권위주의 체제가 불식되고 있지 안을 뿐만 아니라 과거의 비민주주의 체제로 회귀할 수도 있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그가 분류한 중유럽권에는 헝가리 폴란드 체코와 신생독립국인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등이 포함되어 있으며 루마니아 세르비아 불가리아 그리고 독립국가연합(CIS)의 일부 국가가 후자에 속한다.

야당이 대통령후보로 추대

과거 체제로 복귀할 수 있는 가장 극적인 형태는 아마도 왕정일 것이다. 이른바 동유럽권 나라들에서 왕정복귀설이 현재의 정국에 실제적인 영향을 주고 있는 나라는 바로 루마니아. 왕정이 가장 최근까지(1947년까지) 존재했다는 점, 그리고 그당시 왕이었던 미하일 1세가 아직 살아있으며 고국행을 원하고 있다는 점, 게다가 현 일리에스쿠 대통령이 이끄는 권위주이 체제에 대한 국민의 불만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는 점 대문에 왕정복고 가능성의 1순위에 있는 셈이다.

지난 4월 우여곡절 끝에 이루어진 미하일 1세의 고국 방문은 그 가능성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그의 등장은 일리에스쿠 정권 앞에서 사분오열을 계속하고 있는 루마니아 반정부 세력을 일시적으로 하나로 묶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리에스쿠 정권은 미하일 1세의 영구 귀국을 계속 막고 있는 형편이다. 그런데 왕정복고 가능성을 증폭시킨 사태가 지난 7월18일 발생했다. 주요 야당인 자유당이 전당대회에서 오는 9월27일께로 예정된 대통령선거에 전왕 미하일을 자유당 대통령후보로 추대한다고 폭탄선언을 해버렸다.

지난 90년 대통령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낙선한 라두 캄페아누 당수는 미하일의 수락을 받지 않은 상태지만 그가 살고 있는 스위스의 제네바로 당대표단을 파견할 것이라고 밝혔다. 1회성으로 끝날 수도 있는 사태이지만 미하일왕을 국내 정국의 최대변수로 공식화했다는 점에서 주목되고 있다. 차우세스쿠의 ‘공산王’ 시대에서 이제는 미하일의 ‘공화국王’ 시대가 열리지 말라는 법도 없다는 얘기이다.

유고 내전의 당사자인 세르비아에서도 최근 카라조지 왕가의 적자인 알렉산더 카라조지예비치 황태자가 열렬한 환영 속에 베오그라드로 귀환했다. 그는 할아버지인 알렉산더 1세나 아버지인 페테르 2세가 철저한 세르비아 민족주의자였다는 점 때문에 극우세력에 이용당할 소지가 더 많아 보인다.

1차대전 이전까지 본국인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헝가리 체코 유고의 일부를 연합해 대제국을 이루었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적자 오토 폰 합스부르크는 다만 헝가리에서 누리는 개인적 인기를 통해 옛날의 전설을 회상하는 정도다(상자 기사 참조).

역사의 일반적 흐름을 거스르는 왕정 복고가 동유럽권에서 이루어질 가능성은 엄존한다. 동유럽 공산체제 몰락이 적어도 유럽에는 화합과 평화의 상호의존 세계를 가져다 주리라던 낙관론을 민족주의 전쟁이 이미 깨뜨렸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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