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으로 채운 ‘화폭의 절반’
  • 김현숙 차장대우 ()
  • 승인 1994.04.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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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미술전 〈여성, 그 다름과 힘〉…매체·양식 다양한 시도

경기도 용인군 마곡리 갤러리한국에서 열리고 있는 여성주의 미술전 〈여성, 그 다름과 힘〉의 관람객은 대개 여성이다. 그들은 꽤 먼 거리를 자동차에 실려 오면서 ‘남자들이 하는 미술과 다르다’는 전시회의 표제를 생각한다. 무엇이 다르다는 것일까 하는 의문은 이 여성주의 미술전의 관람객들로 하여금 남자들이 이룩해 온 미술사의 전통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는 곧 신화처럼 명멸해가 위대한 화가들 중에 여성 화가의 이름이 매우 적다는 것을 발견한다.

 미술관으로 진입하기 직전 관람객들은 붉은 천 아치 2개를 본다. 쇠로 만든 철제 기둥을 붕대로 싸매듯 차곡차곡 감아 올라간 이 붉은 헝겊 기둥은 화가 김수자씨의 작품이다. 천으로 감싸는 작업은 이 전시회의 다른 작품에서도 자주 보인다. 곡괭이·삽·칼과 같은 남성적 공격용 무기는 천으로 감싸여 순화되고 있으며, 상처를 보듬어 싸안 듯 크고 작은 보자기는 보퉁이 모양을 하고서 군데군데 놓여 있다.

 화가 하민수씨는 〈나는 왕이로소이다〉 연작에서 맨몸에 넥타이를 맨 남자 모습을 천위에 박음질해 전시하고 있으며, 화가 양주혜씨는 커튼·식탁보·이불보 등 여성적 공간 속의 천들을 여성 특유의 수공예적인 방법으로 다듬어냈다. 대체로 이들의 선과 면에는 남성적 대담성과 자발성 대신 의도적인 망설임과 떨림이 담겨 있다.

 이번 전시회를 기획한 미술 평론가 김홍희씨는 천 작업이 이 전시회의 여성주의 메시지를 드러내는 주요한 방법 중의 하나라고 평가하면서 “남성적인 표현 양식을 대치 또는 거부한다는 면에서 매우 정치적”이라고 말하고 있다.

 매체와 양식의 파괴는 여성주의 미술이 지향하는 가장 적극적인 표현 양식이다. 이번 전시회에는 전통적 매체를 떠나 헝겊 콜라주·설치·퍼포먼스·비디오·사진 등 그간 관심을 끌지 못하고 버려졌던 매체들이 대거 등장하고 있다.

“더 이상 언더그라운드가 아니다”
 윤석남(화가) 박영숙(사진 작가) 김 영(목사) 한영애(가수) 등 네 여성이 공동으로 작업한 〈이제 크신 어머니께서 자고깨니〉를 감상하는 일은 우리나라 여성주의 미술이 누구를 향해 어떤 발언을 하고 싶어하는가를 파악하는 가장 적절한 방법일 수 있다.

 이 작품 앞에서 관람객이 제일 처음 만나는 것은 흰 광목에 커다랗게 아플리케(여러 빛깔, 여러 모양 천을 다른 천에 붙이는 수예)한 여성의 자궁이다. 약 3m 길이 꽃잎 형상으로 조형된 자궁은 작품의 입구를 겸한다. 양쪽으로 갈라진 헝겊 자궁 문을 손으로 열고 들어서면 파랑과 주황의 커튼 숲을 지나게 되고, 곧 불 꺼진 네모꼴 방에 도착한다. 새·물고기·꽃·나비·뱀 등 창조 이미지를 형상화한 그림으로 도배되어 있는 방은 동굴을 연상케 한다. 이윽고 천장에서부터 ‘아흐음마, 음마, 음아…’라는 격절음이 환희·두려움·설레임·보챔의 환상으로 관람객을 이끌기 시작하면 벽면에서는 탄생과 소멸을 암시하는 비디오 쇼가 펼쳐진다.

 〈이제 크신 어머니께서 자고깨니〉의 작가 4인이 준비한 여성적 공간, 자궁에의 초대에 걸린 시간은 약 5분. 관람객들은 이 작품에서 남성에 대한 분노와 공격 대신 모체에의 귀의를 체험한다.

 여성주의 미술이 급진적 여성 해방의 목소리는 낮추는 대신 촉각적 체험을 통해 주제를 나누어 느끼려는 시도는 전시장 곳곳에서 발견된다. 퍼포먼스 아티스트이자 설치 미술가인 이불씨의 〈무제〉는 버려진 공간 지하 보일러실에 설치되어 있다. 차가운 철제 침대, 작가 자신의 누드를 등신대로 실크 스크린한 하얀 시트(이 여자는 즉시 수혈이 필요하지만 그가 꽂고 있는 주사기와 연결된 링거액 병은 모두 비어 있다), 지하실 특유의 냄새와 습기, 바닥에 괸 주사액…, 〈무제〉는 여성 미술이 왜 프로파간다(선전)라고 불리는지 이해하게 한다.

 이 불씨는 지난 89년 퍼포먼스 〈낙태〉를 통해 알몸으로 거꾸로 매달린 채 관객들이 울부짖으며 풀어줄 때까지 고통을 견뎌내는 신체 예술의 극한지점까지 보여준 적이 있다. 그는 늘 에로티시즘과 죽음의 순환을 암시하면서 자신을 그 중심에 설정하고 있는 것이다. 피 흘리고 고통 받는 자화상을 통해 관객에게 삶과 예술이 별개가 아님을 경고하는 것은 여성 미술의 한 전형이다.

 김홍희씨는 “이 불씨는 이번 작품을 통해 그 자신은 물론 여성 미술이 더 이상 언더그라운드 아트가 아님을 확인시켰다”라고 평가하면서 “퍼포먼스는 여성 미술을 구현해내는 가장 적극적인 형식”이라고 말한다.

 지난 86년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미술전이 라고 불리는 〈반에서 하나로〉전 이래 여성 미술은 가장 많은 실험과 도전이 이루어지는 새로운 미술 영역이다. 〈반에서 하나로〉 이외에도 여성미술연구회가 87년부터 〈여성과 현실〉전을 개최하고 있으며 〈한국 여성 미술과 그 변속의 양상, 여성의 표현, 표현 속의 여성성〉(91·한원갤러리)과 〈여성, 비어 있는 풍경〉(92·갤러리아미술관) 등의 전시회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주로 드러내온 소외와 고통의 여성상은 ‘개인적인 분노의 관념적 표현에 불과하다’거나 심한 경우 ‘지분 냄새만 물씬 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특히 소재주의와 조형의 문제는 여성 미술이 극복해야 할 장벽으로 자주 지적되어 왔다.
 “여성에 대한 남성적인 언어를 모두 거부하거나, 여성적인 경험을 더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새로운 언어를 창조해야 했다”는 윤석남씨의 진술은, 초기 여성주의 미술가들의 부담을 대변하는 것으로 보인다.

민중운동의 기반 위에서 시작
 학사모를 쓴 부인이 남편의 발을 씻겨주는〈현모양처〉, 보석에 넋이 빠진〈L부인〉, 남성들을 향해 활시위를 당기는〈내일을 향하여〉 등이 발표된 87년의 〈반에서 하나로〉전이 나의 문제를 여성의 문제로, 여성의 문제를 사회 구조의 문제로 그려내기 시작한 여성 미술의 기원전이었다면, 이번 전시회는 여성 미술의 언어를 다양화하고 기호화하기 시작했다는 측면에서 평가되고 있다.

 김홍희씨는 “한국의 여성주의 미술은 민중미술을 모체로 태동하여 포스트모더니즘의 맥락 속에서 탄생했다”고 정의하고 있다.
 지난 80년대초 게릴라 걸이라는 이름의, 가면을 쓴 일단의 여성 화가가 뉴욕의 전시장에 출몰해 남성 중심의 장식 미술과 미인의 죽음을 가장 시적인 주제로 파악하는 초현실주의 화풍 등을 공격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페미니즘 미술운동은 불붙기 시작했다. 이 운동은 ‘왜 위대한 여성화가는 없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과 함께 출발했다. 구미의 페미니즘 미술운동이 반핵반전운동·녹색운동·청년운동과 함께 문예사조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다면 한국의 여성 미술운동은 민중 운동의 기반 위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함께 사는 땅의 여성들〉(87) 〈제국의 발톱이 할퀴고 간 이 산하에〉(89) 같은 대형걸개 그림은 여성 미술이 거둔 작은 수확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포스트모더니즘의 발견은 한국의 여성 미술이 우리 화단에서 국부적이지만 나름대로 지형을 마련하게 된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다.

미대 재학생 중 70%가 여학생
 추상 미술을 섬기는 모더니즘의 전통을 부정하는 포스트모더니즘과, 백인 남성의 눈으로 기술되어온 서양 미술사의 전통을 부정하는 페미니즘의 시대 정신이 한국 화단에 도착한 지 십수 년, 〈여성, 그 다름과 힘〉전은 민중 미술과 모더니즘의 만남을 통해 본격 여성주의 미술 시대를 연 셈이다.

 미술 평론가 최태만씨는 우리 사회에 불어온 포스트모더니즘의 태풍과 성숙한 여성의 자의식, 여성 미술 인구의 폭발적 증가를 여성주의 미술의 등장 배경으로 파악하면서 여성주의 미술을‘80년대의 산물’이라고 정의한다. 그는 현재 미술 대학 재학생 가운데 70%가 여학생이라는 사실을 배경으로 “남성 화가들과 다른 감각, 다른 재료를 통해 성장한다면 우리나라 여성 미술의 발전 속도는 매우 빠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천재의 신화를 부정하고, 협동 작업을 통해 익명의 명예를 선택하려는 여성 미술가들의 운동은 한국에서도 시작되었다. 〈여성,그 다름과 힘〉 전시회에 참여한 여성 미술가 19명은 한국 화단의 게릴라로 화려하게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3월26일~4월25일 서초동 한국미술관과 용인 갤러리한국에서 동시 전시된다(0331-284-0471).
金賢淑 차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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