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연행 불법구금 사라질까
  • 박재권 기자 ()
  • 승인 1994.09.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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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포영장제 도입 … 위법적 수사 관행 안 바꾸면 효과 없어



 가을 정기국회에서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사법 경찰관은 긴급 구속할 경우를 제외하면 피의자를 체포할 때 반드시 체포영장을 제시해야 한다. 정부와 민자당은 체포영장제 도입을 골자로 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지난 8월18일 확정지은 바 있다.

 헌법 12조 3항은 ‘체포ㆍ구속ㆍ압수ㆍ수색을 할 때에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의 인신을 연행하거나 구금하는 경찰의 관행은 헌법과는 별 관련이 없이 진행되어 왔다. 연행과 구금에는 거의 대부분 경찰관직무집행법상의 불심검문 조항에 따른 ‘임의동행’ 규정이 적용되어 왔다.

 임의동행은 대부분 동행인의 동의 없이 이루어졌고, 동행한 경우에도 6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는 규정은 거의 지켜지지 않았다. 일선 수사 경찰은 대부분 임의동행인 경우에도 48시간 이내에 영장을 발부받으면 그만이라고 잘못 생각하고 있다.

체포영장으론 연행해 조사만 할 수 있어
 수사기관의 이같은 잘못된 인식과 불법 행위는 지난 6월30일 서울지방검찰청 스스로가 인정한 바 있다. 서울지검 최효진 검사는 89년 8월 차일환씨(35ㆍ화가)를 불법 연행한 혐의로 고소된 안기부 수사관 6명에게 불기소(무혐의) 처분을 내리면서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구속영장을 제시하지 않고 불법 연행한 사실은 인정되지만, 이것은 당시의 수사 관행이었다.” 차씨는 지난 8월4일 서울고등법원에 재정신청을 냈다. 그릇된 관행이 법보다 우월하다는 검찰의 처분에 대한 도전이었다.

 이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 체포영장제 도입이다. 지금까지 법조문상으로 체포와 구속이 구속영장제로 일원화되어 있던 것을 나눈 것이다. 체포영장 발급 기준을 그동안의 구속영장보다 쉽게 함으로써 지금까지의 불법적 수사관행을 극복하도록 한 것이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수사기관은 체포영장으로 피의자를 연행하여 조사한 뒤에, 다시 구속할 필요가 생기면 판사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하여야 한다.

 체포영장제가 몰고올 영향에 대해서 수사기관ㆍ법원ㆍ재야 법조계는 조금씩 견해를 달리한다. 우선 경찰과 검찰은 이 제도가 시행되면 연행 조사가 어려워져 수사 능률이 상당히 낮아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그리고 피의자 인권이 신장되는 것은 좋지만 피해자 권익 보호가 상대적으로 소홀해질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반면 법원은 인권 보호라는 측면에서 체포영장제 도입을 적극 환영한다. 이같은 분위기는, 최근 법원이 판결을 통해 일선 수사관들의 불법 연행에 대해 단호한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과 맥락을 같이한다. 서울형사지방법원은 지난 6월18일 불법적인 임의동행을 거부하다 경찰관에게 전치 10일의 상처를 입힌 ㄱ씨(35)의 공무집행 방해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불법적인 임의동행에는 국민이 저항할 수 있음을 공식으로 인정한 획기적인 판결이었다.

 그러나 체포영장제를 도입하는 것은 기존제도를 보완하는 것이지만 당장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우리라는 것이 법조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경찰관직무집행법상의 임의동행이나 긴급구속 제도가 여전히 존재하고 있고, 일선 수사 경찰관이나 검찰의 법의식이 쉽게 바뀌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 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박찬운 변호사는 “실질적 강제 연행과 위법적 수사 관행은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수사기관이 이를 고치지 않으면 체포영장제는 별 효과가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릇된 관행을 개선하려는 의지가 없다면 체포영장제는 임의동행과 긴급구속에 추가되는 또 다른 인신구금 제도에 불과하다는 우려는 타당하다.
朴在權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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