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범 노리에가’의 미국 심판
  • 이석열(워싱턴 특파원) ()
  • 승인 1990.08.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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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명령 ‘올바른 방향’을 발동하여 이웃약소국가인 파나마를 침공, 그 나라의 국가원수를 붙들어온 미국이 막상 마뉴엘 노리에가 장군의 공판을 앞두고 골치를 앓고 있다.

 내년 1월28일로 예정된 노리에가에 대한 첫 공판이 과연 계획대로 열릴 수 있을는지 의문을 품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그것은 돈을 주고 노리에가를 ‘고용’했던 미국 정부기관들이 재판에 필요한 증거문서들을 내놓지 않거나 사전에 없애버릴 가능성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교황청 대사관에 숨어 있다가 파나마에 진주한 미군에게 며칠만에 자수하여 미국으로 이송된 노리에가에 대한 미국의 당시 여론은 “노리에가야말로 마약밀수단의 공모자이자 마약상습범으로 두말 할 여지 없이 벌을 받아 마땅하다”는 거이었다. 여론재판이 이미 그에 대해 유죄판결을 내렸던 것이다.

 하지만 반년이 지난 지금 형편은 달라지고 있다. 그의 숙소를 기습한 미군이 노획했다고 대서특필됐던 코카인 덩어리는 ‘또띠아’라는 빵을 만들려고 반죽해 놓은 밀가루로 밝혀져 한낱 웃음거리가 되었다. 마약이 발견된 일이 없다는 사실을 들어 그의 변호인단은 일단 미국 정부측의 공소유지가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신빙성 의심받는 증인들

 더군다나 검찰이 내세운 15명의 증인들은 노리에가와 함께 기소된 ‘공범자’들로 이미 유죄판결이 나서 복역중이거나 아니면 현재 재판에 계류중인데 이들은 검찰로부터 증언에 나서면 감형을 해주겠다는 약속을 받아 증인이 되었기 때문에 증인으로서의 신빙성에 문제가 있다는 견해가 나오고 있다.

 증인 가운데 노리에가에게 가장 불리한 증언을 하게 될 것으로 알려진 파나마인 조종사 프로이드 칼튼 케세레스는 1980년 코카인을 비행기로 운송하던 중 코스타리카에서 체포돼 미국서 재판을 받고 복역중인데 자기 배후에 노리에가가 있다고 말한 것이 단서가 되어 미국 검찰이 노리에가를 기소하게 된 것이다.

 또 다른 증인인 에두알도 팔도라는 사람은 역시 항공기 조종사로 마약자금으로 받은 80만달러를 비행기에 싣고 마이애미를 떠나 파나마로 가다가 체포된 인물이다. 팔도는 노리에가 재판의 증인이 되어 달라는 검찰의 요구를 받아들인 대가로 재판 결과 30개월 징역이라는 가벼운 형을 선고받았다.

 증인의 신빙성이 의심된다는 변호인단의 주장에 대해 검찰측은 15명의 증인외에도 새로 6명의 증인이 파나마에 대기중이므로 확증을 제시하는 데 별 문제가 없다고 장담하고 있다.

 검찰이 장담하는 이유는 마이애미 지방에서 마약관계 공판을 하면 배심원들이 이것저것 까다롭게 따지지 않고 일사천리로 유죄판정을 내리는 지금까지의 선례를 그들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이 송치한 마약사범의 95%가 증인들의 신빙성 유무와 관계없이 기소됐으며 이에 대한 재판 결과는 97%가 검찰이 이긴 기록을 갖고 있어 비록 증인들에게 하자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만 가지고는 절대로 안심할 수 없다”는 것이 노리에가 변호인단의 한 사람인 존 메이의 말이다.

 

국무부 등에선 사건관련 문서 공개하지 않을 태세

 가장 중요한 일은 검찰이 배심원들에게 노리에가에 대한 4가지 주요 공소사실을 확실하게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다. 즉 노리에가는 콜롬비아의 마약조직인 메데인과 손을 잡고 그들로부터 뇌물을 받았고 그 대가로 메데인이 코카인을 파나마를 경유, 미국으로 반출하도록 도와주었으며 메데인의 마약판매대금을 합법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해 파나마은행 구좌를 이요하도록 편의를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메데인이 콜롬비아의 단속을 피해 파나마로 거점을 옮겨 마약거래를 하도록 묵인해주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에 대한 입증은 증인들의 말만으로는 불충분하고 객관성이 희박하다. 범죄혐의에 대한 문서상의 증거가 있어야만 된다. 다라서 객관성이 있는 문서를 찾아내는 일이 양측에 가장 큰 문제가 되어 있다. 변호인단은 미국 정부에 대해 이 사건과 관련된 모든 문서를 열람시켜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중앙정보국(CIA), 국무부 등 관련 부처는 연방비밀정보관리법을 내세워 변호인들이 요구하는 문서를 내놓으려 하지 않고 있다.

  변호인단은 또 닉슨, 포드, 카터, 레이건 전대통령들의 개인 일기도 열람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데 노리에가가 지난 20여년 동안 미국 정부에 ‘고용’돼 일했기 때문에 공정한 재판을 하려면 그같은 자료 열람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정상적인 경우 재판과 관련있는 모든 자료는 변호인이 이를 볼수 있게끔 되어 있으며 그렇지 못할 경우 재판은 무효가 된다. 긴요한 자료의 공개가 거부되면 訴를 취하하는 문제도 생길 수 있다.

 그러나 이같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함부로 외국의 국가원수를 잡아놓고도 끄떡하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뭔가 단단히 믿는데가 있기는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저러나 노리에가에 대한 재판은 미국의 법 운용과 형평을 저울질하는 미국 자신에 대한 재판이라는 사실 때문에 또다른 주목을 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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