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 문화교류, 정치 들러리 아니다
  • 이성남 문화부 차장대우 ()
  • 승인 1990.12.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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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예총’ 대변인 林賑澤씨

남북 예술의 만남 “민간 주도로”

  90송년 통일전통음악회 개최로 남북간 문화교류가 무르익어가는 듯하다. 그러나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민예총) 대변인 林賑澤씨는 이와 같은 문화교류는 “진정한 상호이해의 창구가 차단돼 있는 사실을 감추기 위한 정치적 들러리 행사로 자칫 올바른 통일의 길에 장애가 될 수도 있다”고 이의를 제기한다. 뉴욕에서 열린 남북영화제에서 남과 북의 배우가 만나고 영화를 서로 바꿔 봤다고 해서, 통일 축구를 했다고 해서 무조건 남북통일에 도움이 된다고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뉴욕영화제 개최 이후에도 각 대학에서 북한영화를 상영하려 하자 전투경찰 2천여명을 투입, 관람하려는 학생들을 강제해산시킨 정부의 과잉진압을 환기시키면서 “85년 남북예술단 상호방문공연의 성사가 결과적으로 통일운동에 도움이 되었는가”라고 반문한다.

  그는 또 문화부와 통일원이 공동제안한 남북문화교류 5대원칙의 허구성을 지적하면서 “당국은 민족동질성을 회복하기 위해 분단 이전의 민족전통음악의 우선 교류나 정치색없는 순수전통예술교류를 내세운다. 그러나 대중적 영향력이 큰 텔레비전의 ‘남북의 창’ ‘통일 전망대’에서 방영되는 북한 영화는 북쪽의 체제를 폭로, 반감을 유도하는 이질성을 강조하는 내용으로 치우쳐 있다”고 말한다.

  그는 남북 정부간의 뿌리 깊은 상호 불신상태에서 열리는 남북문화예술교류는 “아무리 정치색을 배제한다고 해도 결코 정치적 연관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일련의 남북문화교류에 대해 “맞는 열쇠가 아닌데 기름칠을 한다고 해서 자물통이 열리겠느냐”라고 빗대어 설명하면서 사상 이념 체제가 다른 분단국가에서 하나의 민족임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고통받고 있는 민중의 삶이나 해방에 관한 문제, 우리사회의 진보와 변혁에 기여한 작품도 차단이나 규제없이 자유롭게 교류대상에 들어가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정부의 역할 축소돼야 한다”

  이같은 주장은 “분단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는 군사ㆍ정치적 긴장완화”라는 민예총의 기본입장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다. 민예총은 80년대말부터 여러 차례 ‘남북 예술간의 만남’을 시도했으나 번번이 당국의 제재로 무산됐다. 윤이상씨가 88년 제안한 비무장지대에서의 남북공동음악제 개최, 민미협이 같은 해 제안한 남북미술교류, 민족문학작가회의가 89년 제안한 남북작가회의 등이 모두 무산됐다. 또 민미련 의장 홍성담씨는 89년 8월 연작 걸개그림 ‘민족해방운동사’ 슬라이드를 북한에 보냈다는 이유로 ‘간첩죄’가 작용돼 방북인사인 문익환 목사, 임수경씨와 같은 형량인 7년형을 선고받고 복역중이다. 그는 이같은 상황 속에서 성사된 통일음악제는 그 의미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면서 “정부는 창구단일화 논리로 모든 교류를 독점하거나, 민간교류 제의를 정부의 입맛에 맛는 것만 선별해 허용하는 처사를 중단해야 한다. 아울러 정부의 역할은 다양한 민간교류에 대한 형식적 절차수행의 차원으로 축소돼야 한다”는 민예총의 주장을 강조한다.

  최근 그는 작가 윤정모씨, 화가 홍선웅씨등 민예총 대표들과 함께 지난 11월25일부터 12월3일까지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재일민주문학예술인협의회 준비위원회(공동대표ㆍ이회성, 김시종) 모임에 참석했다. 그 자리에서 민예총과 재일ㆍ재미 예술가들은 “91년 상반기에 남북 및 해외의 문화단체가 서울이나 평양 또는 제3의 장소에서 ‘범민족통일예술제’를 함께 열자”고 제안했다. 그 제안이 실질적 남북예술가의 만남으로 이어지려면 통일원의 북한접촉승인을 비롯한 까다로운 ‘합법적’ 절차를 밟아야 한다.

  “힘들어도 마음의 여유를 갖는 게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넉살을 피우는 그에게서는 풍자ㆍ해학 정신이 체질화된 소리꾼답게 ‘웃음 뒤에 숨겨 있는 매서운 칼날’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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