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인은 영어로 改名한다?
  • 이문재 기자 ()
  • 승인 1996.09.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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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세상

요즘 명함은 복잡하다. 팩시밀리·휴대폰·무선호출기 번호와 PC통신 ID에 인터넷주소···. 어떤 명함 뒷면에는 영어로 된 이름까지 박혀있다. 가령 ‘이진환’을 ‘제임스 리’라고 박아놓는 식이다.

 영어식으로 개명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름을 지을 때 돌림자와 의미에 비중을 두기 때문에 외국인, 특히 영어권사람들이 한국인 이름을 부르기는커녕 읽기조차 어려워하기 때문이다. 외룩 출장이 잦거나, 국내에서 외국인을 상대해야 하는 비즈니스맨들은 그래서 아예 영어식 이름을 만들어 갖고 다닌다.

 비즈니스맨들만 개명을 하는 것이 아니다. 세계화·개방 바람에 민감한 대학생들도 영어식 이름을 가지고 있다. 영어회화 학원에 다니는 대학생들은 외국인 강사가 첫 시간에 이름을 물어보면 아예 영어식 이름을 밝히면서 그 이름으로 불러 달라고 요구한다.

 영어식 개명까지는 아니더라도, 정보화 열풍 때문에 새 이름을 하나씩 더 갖는 경우도 많다. PC통신 ID,통신 동아리들이 모임을 가질 때는, 이름 대신 서로 ID를 부른다. “롱테이크씨 잘있었어요?” “그럼요 들풀씨는 하와이 다녀오셨다면서요?” 이런식이다. ID 부르기는 사이버 문화가 실제 현실을 지배하고 있다는 한 증거이기도 하다.

 한 세대 전까지만 해도 이름 대신 호를 부르던 문화가 이젠 영어식 이름과 PC통신 ID로 바뀌고 있는 것인데, 초등학교 어린이들도 영어식 이름을 선호한다는 보고가 있는 것을 보면, 전자주민카드와 인터넷과 위성통신이 상용될 ‘대망의 21세기’에는 황인종(어쩌면 피부 색깔도 바뀔지 모르겠다) 이름이 모두 줄리아·부르스·토머스로 바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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