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미 · 일 수교 적극 권유
  • 서동만(외교안보연구원 교수) ()
  • 승인 1999.03.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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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정부 대북 이론가 3인의 ‘한바도 정책’ 특별 기고

남북한 관계를 포함해 북하늬 대외 관계를 볼때, 우리는 역지사지(易地思之)하여 북한의 처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북한은 91년 남북기본합의서를 채택했지만 이를 이행하지 않고 한국 정부를 배제한 채, 오직 미국만을 상대로 관계 개선에 주력해 왔다. 수많은 주민이 굶어 죽는 식량난을 겪으면서도 남북 대화를 일관해서 거부해 온 북한의 행태에 한국 국민이 민족적 차원에서 분노를 느껴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우리가 간과하기 쉬운 점은, 전세계적인 냉전 붕괴에도 불구하고 불한이 미국 · 일본과 국교를 맺지 못하고 적대 국가로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흔히 북한은 개혁 · 개방을 철저히 거부하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이러한 완고한 자세를 북한이 처한 대외 관계에서 오는 구조적 제약이라는 측면에서 해석하는 데 너무 인색했다.

북한과 미국 · 일본과의 대립도 한반도 냉전 원인
 미국은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이며, 일본은 세계 제2위 경제 대국이다. 이 두 나라와 적대 관계이면서, 경제적으로도 제재 조처를 받고 있는 북한은 극도의 피해 의식에 사로잡혀 있다. 중국이 70년대 말 이래 개혁 · 개방 노선을 추구하며 시장 경제화를 진전시킬 수 있었던 대외적 조건은 70년대 초 미국과의 역사적 화해에 이은 일본과의 관계 정상화이다.

 중국은 이미 20년에 가까운 개혁 · 개방 실적을 토대로 21세기 초강대국 건설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대만과의 관계에서도 경제적 · 인적 교류가 착실하게 확대되고 있다. 중국의 개혁 · 개방 성과가 가시화하기 전인 80년대 중반까지도 북한은 중국에 비해 경제적으로 앞선 나라였다.

 이처럼 북한이 대외적으로 고립된 것과 달리 한국은 91, 92년 한 · 소, 한 · 중 수교를 맺어 사실상 냉전적인 대외 관게를 해소하는 중요한 계기를 맞았다. 한국은 이제 더 이상 냉전의 포로라 할수 없으며, 대북 화해 협력 정책을 펼 수 있는 구조적인 조건을 이때 마련했다. 그러나 전세계적으로 냉전이 붕괴했는데도 한반도에는 여전히 냉전 상황이 유지되고 있다. 따라서 여기에는 남북한 대립뿐 아니라 북한과 미국 · 일본과의 대립에도 그 원인이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그동안 남북한 관계와 미 · 북한, 북 · 일 관계는 상승 작용이 아니라, 서로 엇갈리는 양상을 빚어 왔다. 93년의 한반도 핵 위기는 94년 미 · 북한간 제네바 핵 합의에 따라 일단 해소되고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사업이 시작되었다. 악화한 미 · 북한 관게가 다시 나아질 움직음을 보이고, 중단되었던 북 · 일 수교 교섭도 재개될 움직임을 보였다.

 그런데 이때 김영삼 정부는 ‘조화와 병행의 원칙’을 내걸며 남북한 대화가 진전되지 않는 한, 이보다 먼저 미 · 북한, 북 · 일 관계가 개선되어서는 안된다고 요구했다. 미국과 일본은 자체 사정으로 인해 대북 관계 개선에 주저하면서도 이를 한국 정부의 요구라는 구실로 정당화 할 수 있었다.

 지난해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 정 · 경 분리 원칙에 따른 경제 협력 및 민간 교류 활성화 조처가 취해지면서 금강산 관광이 실현되기에 이르렀다. 새해 들어서는 당국자간 대화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과거와 상황이 역전되어 미 · 북한, 북 · 일 관계가 악화하면서 이나마 진전된 남북한 관계를 위협하는 양상이 전개되고 있다.

 우선 미 · 북한 관계는, 94년 제네바 핵 합의에서 약속된 경제 제재 조처 해제나 관게 정상화가 전혀 진전되지 않았다. 오히려 98년부터 북한의 미사일 개발 및 수출 문제, 새로운 핵 의혹 시설 문제가 새롭게 제기되고 있다. 북 · 일 관게도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남치 의혹이 제기됨에따라 98년 6월 이래 수교 협상이 완전 중단상태에 빠졌다.

 98년 8월 마 북한이 일본 상공에 인공위성을 발사한 것은 벽에 부딪힌 미 · 북한, 북 · 일 관계를 타개할 수단이 남아 있지 않은 상태에서 시도된 모험적 행동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 결과는 미국 의회내 대북 강경 흐름과 일본내 격렬한 군비 증강 움직임을 나타났고, 새로운 한반도 위기설이 증폭되어 나타났다.

 김대중 대통령은 이러한 상황을 원천적으로 해결한다는 목적에서 미 · 북한, 북 · 일 수교를 통해 북한 체제의 생존을 보장하는 대신 북한으로 하여금 핵과 미사일 개발을 포기하도록 하는 포괄적 ‘한반도 냉전 구조 해체’방안을 제시했다. 이 방안은 김대통령의 철학에 의거한 신정부 외교 안보팀의 전향적인 대북 정책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그것이 실현될 수 있는 국제적 공간이 열려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남북한 관게와 맞물려 있는 미 · 북한, 북 · 일 관계에서 한국이 독자적 역할을 할 수 있는 공간은 한 · 소, 한 · 중 수교 이후 한국이 냉전적 위치에서 벗어남으로써 진작부터 열려 있었다.

 그런데 김영삼 정부 당시 이 독자적 공간은 오히려 한 · 미 간에 마찰을 일으키면서 미국의 대북 관계 개선을 가로막는 토대가 되었다. IMF 경제 위기 이전 비교적 양호했던 한국의 경제도 무모한 흡수 통일 논리를 뒷받침하는 물적 기반이 되었다. 그 결과 한반도 문제는 남북한이 아니라 미 · 북한이 주도해 전개되었다.

김대중 독트린, 미국의 전략과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아
 현재 미 · 중 · 일 간에는 과거와 다른 새로운 대결과 협력 관계가 형성되고 있다. 95-96년 미국과 일본은 방위 협력 지침을 개정해 미 · 일 안보 관계가 적용되는 범위를 확대하며 일본의 군사적 역할을 높였다. 미국이 일본과 손잡고 정치 · 군사적으로 중국을 견제하는 구도가 성립한 것이다. 여기서 북한 붕괴론이 중요한 구실로 작용하였음은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이러한 구도는, 아시아 경제 우기 이후 경제적으로 미국이 일본을 견제하고 중국과의 전략적 관계를 모색함으로써 복잡한 국면을 맞았다. 미국은 이 지역에서 경제적 헤게모니를 잡기 위해 일본을 제치고 중국에 접근한 것이다. 이러한 정치적 · 군사적 관계와 경제 관계 불일치가 최근 한ㅂ나도 주변 국제 정세의 새로운 양상이다.

 김대중 정부가 선언한 ‘한ㅂ나도 냉전 구조 해체’정책은 사실 일본의 군사적 열할 확대를 바라는 미국의 동아시아 군사전략과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북한과 미국 · 일본이 수교하고 적대 관계를 청산한다면, 일본이 군비를 증강할 구실은 상당 부분 wpj된다. 나아가 주한미군이 계속 주둔한다 해도 그 역할이나 성격은 변화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한국의 금융 위기 이후 한 · 미 관계에는 상당한 변화가 일어났다. 김대중 대통령이 표방하는 ‘민주주의와 시장 경제 병행 발전’이라는 캐치프레이즈는 한국이 미국 금융 자본의 이해 관계를 수용한다는 것을 뜻한다.

DJ정부의 다음 과제는 일본 설득
 역설적 상황이지만, 경제적 기반이 김영삼 정부 때보다 열악해졌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경제 위기로 인해 미국과의 사이에 형성된 새로운 경제 관계를 토대로 거꾸로 정치적 · 군사적으로 자기 목소리를 낼 독자적 공간을 확보했다. 또한 현정부의 대북 화해 협력 정책은 중국의 지지를 받고 있다. 러시아로부터도 현정부의 대북 정책은 일정한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성격을 갖고 있다. 이것도 현정부의 대북 정책이 작용할 수 있는 공간을 확대시키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의 대북 정책은 미 · 중 · 일 관계 속에서 하나의 균형점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이 정치적 · 경제적으로 불일치하는 상황에서 균형을 잡아가면서 일본을 설득하는 것이 이 정책이 직면한 다음 과제가 될 것이다. 특히 북 · 일 수교에 따른 일본의 배상 자금은 북한 경제 재건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따라서 여기서는 대북 경제 진출을 둘러싸고 미 · 일 간에, 한 · 일 간에 첨에한 경쟁이 빚어지지 않도록 유라시아 외교를 표방하며 극동 시베리아 개발에 나설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이러한 일본의 움직임과 북 · 일 수교가 결합될 수 있도록 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일본과 러시아가 일정한 교감을 갖고 주장하는 6자회담을 한국의 처지에 맞게 조율 하는 지점에서 하나의 접점이 생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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