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자 5형제’가 한국 경제 지킨다
  • 박재권 기자 ()
  • 승인 1999.09.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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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 · 자동차 · 정보통신 상품 수출 ‘활활’

공장 가동률 100%. 사원들이 휴가를 단축하며 밤낮없이 공장을 돌려보지만, 밀려드는 주문을 소화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카니발을 생산하는 기아자동차 소하리 공장의 요즘 풍경이다. 기아자동차 화성공장의 카렌스 생산 라인이나, 대우자동차 창원 공장 마티즈 생산라인도 사정은 비슷하다.

 전자 · 정보통신 업체들도 ‘바쁘다 바빠’를 연신 외쳐댄다. 반도체 · 휴대폰 · TFT-LCD(박막이 트랜지스터 액정 표시 장치) · PC가 대표적인 품목. 한 증권사 간부가 ‘나와 모든 펀드 매니저들이 틀렸다’라고 고백할 정도로 이 분야 기업들의 실적은 상상을 초월했다.

 그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산업이 반도체이다. 올해 상반기 반도체 수출 규모는 90억2천9백달러. 전체 수출 품목 가운데 가장 크다. 지난해에 비해 12.9%가 늘었고, 수출 액수가 워낙 커서 한국 경제에 미치는 파장 또한 지대하다.

삼성전자 · 현대전자 · LG반도체 ‘즐거운 비명’
 최근 반도체 경기가 호황을 맞고 있는 것은 D램 가격이 상승한 덕분이다. 64MD램 가격을 예로 들면, 연초에 미국 현물 시장에서 10.2달러이던 것이 7월 초에는 4달러로 폭락했다가, 최근에 6달러 선으로 회복되었다. 인터넷의 급속한 확산과 저가 PC의 판매량 증가, 일본 업체들의 D램 사업 축소가 주된 원인이었다. 데이터퀘스트 · WSTS 같은 예측 기관들은 세계 반도체 시장 규모가 99년에는 12%, 2000년에는 15%이상 늘고, 메모리 제품이 반도체 경기를 주도할 것으로 내다보았다.

 그 덕에 삼성전자 · 현대전자 · LG반도체가 살판났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삼성전자의 올해 경상 이익이 5천억-1조5천억 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았지만, 이미 상반기에 1조3천억원의 세후순익을 거두었다. 올해 전체 순익은 3조원 정도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 때문에 국내외 증권사는 계속해서 삼성전자 주식을 사라고 추천한다. 지금은 20만원을 밑돌지만, 30-35만 원까지 오를 것이라고 내다보는 것이다. 현대전자 · LG반도체도 투자가들의 집중 공략 대상이다. 오는 10월 두 법인의 통합 작업이 마무리되면, 상승효과까지 발생할 것으로 내다보는 것이다.

 수출 액수에서 2위를 차지하는 부문은 자동차이다. 삼성 · 대우 자동차 사태가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가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지난해 3백32억원 적자를 냈던 현대자동차와, 사실상 부도상태에 빠졌던 기아자동차가 올해 들어서며넛 확실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현대자동차의 상반기 수출량은 지난해보다 17.9%가 늘어난 34만1천8백75대나 된다. 금액으로 따지면 39억 달러, 장래를 밝게 해주는 것은 수출을 주도하는 것이 부가 가치가 높은 중 · 대형 차이고, EF소나타 · 그랜저XG등이 미국 · 독일 등지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현대자동차의 대미 수출만 보면, 지난 1-7월 수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4%가 늘었고, 5월 이후 월별 판매 대수가 3개월 연속 1만5천대를 넘었다. 기아자동차도 카니발 · 카렌스의 성공에 힘입어 불황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있다. 경차 돌풍을 일으켰던 대우자동차 마티즈 생산 라인도 쉴 새 없이 돌아간다.

 올해 들어 갑자기 ‘효자’로 돌변한 것이 박막 트랜지스터 액정 표시 장치(TFT-LCD)이다. TFT-LCD는 얇은 두 장의 유리판 사이에 액정이라는 발광 소자를 넣은 다음, 이를 특수 반도체로 움직여 색 · 글자 · 그림 등을 표현하는 것이다. 노트북 컴퓨터 화면으로 주로 쓰이는데, 최근에는 일반 테스크탑 컴퓨터에도 채택된다.

 TFT-LCD는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공급과잉과 가격 하락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던 것이 LCD의 용도가 늘어나면서 주문이 넘치자 가격이 오르고 있다. 14.1인치의 경우를 예로 들면, 지난해 말 4백30달러였던 것이 지금은 5백20달러로 뛰었다.

 이 때문에 최대 호황을 누리는 업체가 삼성전자 · LG-LCD · 현대전자이다. 이들은 공장을 매일 24시간 가동하고도 주문을 소화하지 못할 정도로 특수를 누리고 있다. 각사의 매출 실적을 보면, 삼성전자는 이미 상반기에 지난해 실적과 맞먹는 8억달러 매출을 기록했다. 연간으로 따지면 18억-2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LG-LCD 역시 상반기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00%정도 늘어난 7억8천만 달러를 기록했다. 연간으로 따지면 17억달러 정도. 세계 1위 자리를 놓고 삼성전자와 한판 대결을 벌이겠다는 기세이다. 여기에 현대전자까지 나서서 시설 확장 전략을 펼치고 있다.

 한 가지 우려되는 것은 2000년부터 대만 제품이 본격 가세하리라는 점이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TFT-LCD 호황이 단기간에 그치리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는 실정이다.

 휴대폰도 빼놓을 수 없는 효자 상품이다. 상반기 수출 규모가 32억 5천만 달러에 이르리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휴대폰, 미국식 · 유럽식 모두 ‘대박’
 국내 업체들이 세계 휴대폰 시장의 양대 축인 미국식(CDMA)과 유럽식(GSM)에서 모두 ‘대박’을 터뜨리고 있다는 점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우선 CDMA(코드 분할 다중 접속 방식) 시장은 한국의 독무대나 다름없다. 삼성전자는 지난해의 두 배인 5백만대(10억달러) 정도를 수출해 세계 CDMA시장의 35%를 차지할 것으로 보이고, LG정보통신은 2백50만대(5억달러), 현대전자는 백50만대(3억달러) 정도를 수출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말 현재 이들 3개사 세계DCMA휴대폰 시장 점유율은 56.9%. 2위를 차지한 퀄컴을 제외하면 국내 업체가 차례로 1,3,4위를 차지했다.

 이밖에 삼성전자 · 노키아TMC · 맥슨전자가 생산하는 GSM방식의 휴대폰 단말기도 유럽 지역에서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가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 제품은 경쟁사 제품보다 10%정도 높은 가격에 팔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제품의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눈길을 끄는 것은 노키아TMC라는 업체다. 올해 상반기 휴대폰 수출 실적 2위를 차지한 이 업체는 84년 마산수출자유지역에 설립된 100%핀란드 자본 투자회사이다. 지난해에는 국내에 진출한 외국 업체 가운데 매출액 1위를 차지했을 정도로 규모가 크다. 휴대폰 단말기와 카폰제조업체임에도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은 것은, 이들이 생산하는 제품이 국내에서 사용하는 CDMA방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노키아 제품의 20%가 여기서 생산되며, 전량 해외로 수출된다.

 TFT-LCD와 함께 최근 급격히 떠오른 효자 상품이 퍼스널 컴퓨터이다. 올해 상반기 수출액은 7억5천5백만달러.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다섯 배 이상 늘었다. 1등공신은 삼보컴퓨터. 지난 2년간 국내 PC시장 침체로 고전했던 삼보컴퓨터는 지난해 9월 미국에 컴퓨터 판매회사 e-머신즈를 설립한 뒤 11월 저가 PC인 e-Tower를 출시했다. 이것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어 e-머신즈가 출범한 지 1년도 안되어 급부상하게 되었다.

 그 덕에 삼보컴퓨터의 수출액이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전체 수출액이 2억7천5백만 달러 였는데, 올해는 이미 상반기에 그 두배에 가까운 4억6천7백만달러를 기록했다. 그리고 하반기에는 6억6천만 달러어치를 수출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삼보컴퓨터의 목표는 세계 4대 PC시장에 전진기지를 완성하고, 세계 10대 메이커로 진입하는 것. 미국에서 기반을 다진 데 이어, 유럽 · 일본 · 중국 시장에서 공세적인 전략을 펼치고 있다. 제품도 데스크탑 이외에 다양하게 출시할 계획이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은 삼보컴퓨터의 수익 구조가 안정적이고, e-머신즈를 나스닥에 상장할 경우 얻게 될 엄청한 혜택을 근거로 삼보컴퓨터 주식을 사라고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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