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경제 통합하면 북한‘살판’난다
  • 워싱턴 · 변창섭 편집위원 (sisa@sisapress.com)
  • 승인 1999.09.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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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주민 소득 3배‘껑충’, 식량난 해결… 남한, 10년간 6천억 달러 투자 필요

남북한이 경제를 통합하면 어떤 효과가 있을까. 현재로서는 요원한 희망 사항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이같은 가능성은 앞으로 남북 교역이 점ㅊ 활기를 띠고, 남북 간에 정치 · 군사 분야에서 신뢰가 쌓일 경우 언제든 현실로 다가올 수 있는 문제다.

  최근 워싱턴에 있는 유명한 경제 연구 기관인 국제경제연구소의 한반도 전문가 마커스 놀란드 박사가 앞으로 남북한 경제가 통합되면 그 효과가 얼마나 큰지에 관해 흥미있는 논문을 발표했다.

  같은 연구소의 타오 왕 박사와 역시 워싱턴에 있는 국제식량정책연구소 셔먼 로빈슨 박사가 함께 작성한 이 논문에서 대표 집필자인 놀란드 박사는, 남북한이 경제 통합을 이룰 경우 남한보다 북한에 더 효과가 클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북한 산업이 남한 경제와 통합되면 경공업 위주로 재편되면서 엄청난 혜택을 보고 군사비 절감 효과까지 얻을 수 있어 한반도의 평화 증진에 크게 기여한다고 강조했다.

관세 동맹 맺고 단일 화폐 실현해야
  이번 논문에서 눈에 띄는 것은, 경제를 통합하려면 우선 두 나라가 관세 동맹을 체결하고 단일 화폐를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한 대목이다. 상품과 용역이 관세 없이 자유로이 이동하면 비교 우위에 따라 북한에서는 경공업 분야 산업이 발달하고 남한에서는 자본집약적 산업이 발전한다는 것이다. 또 남한도 관세 동맹 효과로 연간 40억 달러 무역 창출 효과가 있으며, 제3 세계와는 10억 달러 무역 다변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의 경우 관세 동맹 효과는 남한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나다. 우선 북한 국민 소득이 경공업 분야가 비약적으로 발달함으로 인해 무려 3배나 껑충 뛴다는 거이다. 또 경공업 분야 생산성은 지금보다 2배 높아진다고 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남북 경제 통합이 가속화하면서 북한 농업 분야는 경공업 부문과 건설 부문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를 면치 못할 것이라는 점이다. 논문에 따르면, 경공업 분야가 발달함에 따라 농촌에서 2백만명이 도시로 일자리를 찾아 떠나게 된다. 그러나 경공업 분야 수출품이 비약적으로 늘어나 외화가 늘어나면 식량난을 해결할 길이 열린다. 즉 관세 동맹이 맺어진 뒤에는 외화를 이용해 북한 전주민이 먹고 남을 만큼 식량을 수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남북이 단일 화폐를 사용하면 무엇보다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하다. 경제를 통합해 북한 주민의 소득이 늘어나려면 생산성이 향상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려면 남한 자본이 필요하다. 그런데 자본 이동이 자유로우려면 우선 화폐가 통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이 남한 자본과 더불어 기술까지 흡수할 경우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 논문에 따르면, 북한 주민의 소득이 남한 국민의 60% 선에 도달하려면 앞으로 10년 동안 최소한 6천억 달러를 남한이 투자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이는 북한 노동력이 남한으로 이동하지 않는 상황을 가정한 것이다. 만약 북한 주민이 약 2백만명 남으로 이동할 경우 투자 비용이 조금 줄어들어 5천4백10억 달러가 든다고 한다.

  여기서 한 가지 흥미로운 요소는, 북한이 화폐 통합을 이루고도 남한 자본을 끌어들이지 않고 순전히 외국 자본을 끌어들일 경우이다. 그럴 때 문제는 북한에 외국 자본이 유입되어 남북 단일 화폐의 환율이 인하되는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다. 즉 해외 자본 유입에 따라 단일 화폐에 대한 수요가 증가해 화폐 가치가 오르는 경우다. 일반적으로 자국 화폐 가치가 떨어지는 환율 인상 효과와 달리 환율 인하는 수출 가격이 상대적으로 높아져 교역 조건을 악화시킨다. 때문에 해외 자본이 유입되어 환율 인하 효과가 나타날 경우 남북한 모두 수출품 가격이 오르는 등 교역 조건이 나빠져 남북한 경제에 부담이 된다. 다만 북한의 경우 경공업과 광산 부문의 수출만은 여전히 호조를 띤다는 것이 이 논문의 분석이다.

  가장 관심을 끄는 대목은 경제 통합이 실현되면 과연 북한이 남한 경제를 따라올 수 있느냐 여부인데, 놀란드 박사는 그럴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는다. 즉 북한이 남한의 기술을 빠른 속도로 흡수하고 다른 선진국 기술까지 받아들인다면, 경제 통합 뒤 어느 시점에 가서는 충분히 남한의 경제 수준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 · 군사적 긴장 완화 효과도 만만찮아
  경제학자들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가난한 나라가 경제 발전을 통해 부유한 나라의 소득 수준에 도달하는 속도는 매년 평균 2% 비율이다. 물론 통일 후 동독 국민은 매년 12% 비율로 서독 국민의 소득 수준에 근접해 갔다는 통계가 나와 있기는 하다. 남북한의 경우는 어떨까. 놀란드 박사는 우선 북한이 매년 2%씩 남한 기술을 흡수하되, 북한 노동력이 남한으로 이동하지 않는다는 가정을 설정한다. 이런 상황에서 남한이 6천억 달러를 북한에 투자할 경우 경제 통합 10년 뒤에는 북한이 남한 소득 수준의 60%에 도달한다는 결론이다. 즉 동 · 서독에 비해 절반 수준인 해마다 6% 수준으로 근접해 간다는 얘기다.

  끝으로 경제 통합이 가져올 정치적 효과도 빼놓을 수 없다. 놀란드 박사는 경제 통합이 착착 진행될 경우 한반도에서 정치 · 군사적인 긴장 완화 효과가 군사비 감축으로 구체화할 것으로 내다보았다. 이를테면 경제 통합에 따라 남북한이 현행 군사비를 2.5% 줄인다고 가정할 때 국방비 지출액이 남한보다 훨씬 큰 북한이 더 큰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남한은 약 3억 달러 절감 효과가 있지만, 북한은 군사비를 2.5% 줄일 경우 국내총생산을 10%까지 늘릴 수 있다는 계산이다.

  또 남북한 전체로는 국내총생산 규모가 0.3% 증가하는‘평화 분담금’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한다. 놀란드 박사는“남북한 경제 통합은 빨리 시작하면 할수록 좋지만, 설령 정치 환경이 개선되더라도 경제 통합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워싱턴 · 卞昌燮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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