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 半生을 꼿꼿함으로
  • 성우제 기자 ()
  • 승인 2006.05.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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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록 尹錫憲《먼길을 후회 없이》펴낸 尹錫憲 전 주불대사






 모든 게 험악하기 그지없던 85년 5공 시절, 안기부 감사반이 주불 한국대사관에 들이닥쳤다. 당시 프랑스 미테랑 정부가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한국 정부는 주불대사를 소환해 문책했다. 정부는 그를 보다 확실하게 치기 위해 감사반을 보내 꼬투리를 잡으려한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털어도 먼지는 나오지 않았다. 감사반이 털다가 발견한 것을 오히려 주불대사의 ‘청렴’이었다. 주불대사는 개인적으로 쓴 전화 요금을 지불하라고 귀국직전 서기관에게 2백달러짜리 수표를 남겨놓았던 것이다.

 한국전쟁 이후 30여년간 외교 전선에서 싸워온 尹錫憲씨(71·대우경제연구소 고문)의 이력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렇듯 ‘청렴’과 ‘꼿꼿함’으로 읽혀진다. 그가 최근에 낸 《먼길을 후회 없이》(동아일보사 펴냄)는 ‘한국 외교의 산증인’으로서 윤대사가 살아온 발자취를 담은 회고록이다. “내가 보고 경험한 20세기 우리나라 역사의 진실한 기록이 되도록 노력하였다”는 그의 말처럼 이 책은 일제시대와 6·25, 그리고 4·19, 5·16, 10·26으로 이어지는 한국 근현대사를 윤석헌이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외교현장을 그 무대로 하여 펼쳐놓고 있다.

 30여년의 공직자 생활 중 20년을 밖에서 떠돌며 살아온 그는 “권력에 붙어 출세 위주로 나갔다면 공직생활의 태도가 달라졌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출세의 첩경 자리라 일컬어지던 외무부장관 비서직을 단지 ‘성격상 맞지 않아’ 타이프를 치지 못한다는 핑계로 거부하고, 박대통령에게 받은 정보비 5만달러도 재불 유학생들에게 장학금으로 지급했다.

 북미 유럽 아프리카 등지에서 펼친 외교도 그의 이런 성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나는 바르게 살고 나라를 사랑하며 나의 최선을 다하는 것을 신조로 삼고 세상과 타협하지 않았다. 그 결과 손해를 보았다 하더라도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저자의 말에서 윤대사는 ‘먼길을 후회없이’ 살아온 자신의 외교 인생을 위와 같이 요약했다.

 공직자의 부조리는 교육의 실패에서 비롯한다고 보는 윤대사는 이 책에서 산 경험을 통한 외교 교섭의 교훈들을 후배 외교관에게 남기고 있지만, 그는 특히 일반 젊은이들이 이 책을 읽어주기를 바라고 있다.

 그는 인생의 고비를 맞을 때마다 썼던 30여편의 한시와 불어·영어로 쓴 시, 그리고 독어로 된 편지 들을 원문 그대로 회고록에 실어놓았다. 보성전문에 입학하기 전 전차에서 불어책을 든 어느 신부를 보고 ‘이 사람이 내가 모르는 책을 보고 있어?’ 하는 괘씸한 생각이 들어 원문을 독해하지 못하는 것을 수치로 받아들이기를 바라는 것이다.

 윤대사는 외국에서의 시련과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프랑스 시에 곡을 붙여 지금도 그 노래를 부르고 있다. 제목은 <나의 작은 누님(Ma Petite Soeur)>. 회고록은 이 노래 악보로 끝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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