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애니메이션 도쿄에 다 모였네
  • 도쿄 · 안해룡 (아시아프레스 서울사무소) ()
  • 승인 2006.05.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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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단편 작품’ 85편, 첫 동시 상영

 
독도 영유권 문제로 정치권은 냉랭하지만, 한·일 두 나라 문화계에는 모처럼 훈풍이 감돌고 있다. 한국과 일본의 아트 애니메이션 작가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작품 성과를 서로 나누는 상영회가 일본 도쿄에서 열리고 있다.

주차장을 재활용해 만든 다큐멘터리 전문 상영 공간인 ‘스페이스 네오’에서 열린 이번 상영회의 제목은 <한국 VS 일본 - 단편 애니메이션 최초의 경연(競演)>. 말 그대로 단편 애니메이션 분야의 교류로는 뜻밖에도 ‘처음’이다. 5월13일부터 5월21일까지 8일간 상영된다. 상영회와 함께 라이브 공연과 영상 퍼포먼스 등이 함께 어우러져 한국과 일본 작가들이 교류하는 장도 펼쳐진다. 이번 상영회는 두 나라 애니메이션 분야의 성과를 비교해 보는 첫 마당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특별하다.

한국 쪽 작품은 1991년부터 2005년까지 만들어진 작품 가운데 38편을 골라 한국 아트 애니메이션의 역사가 보이도록 프로그래밍했다. 일본 쪽도 이에 걸맞게 아트 애니메이션의 명작 가운데 47편을 골라 한국과는 다른 맥락에서 발전해온 일본 아트 애니메이션의 역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한 프로그램 안에서 한국과 일본의 작품을 동시에 상영하여 다양한 작품 세계를 역동적으로 감상할 수 있게 했다.
세계적으로 개인용 컴퓨터의 보급은 아트 애니메이션 제작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하지만 사회적·정치적 상황이 서로 달랐던 한국과 일본은 서로 다른 애니메이션 작품 세계를 구축해왔다.

한국의 애니메이션은 민주화 과정에서 현실적 모순에 눈을 돌린 작품이 많았다. 한국의 아트 애니메이션은 민중미술 운동을 했던 작가 그룹들이 영화 운동이라는 차원에서 고민하고 작품을 생산해왔기 때문이다. 민주화가 이루어진 뒤에는 작품 경향이 개인적인 관심사를 반영하는 쪽으로 선회했다.

한·일 애니메이션, 작품 세계 큰 차이

이용배·나기용·이성강 등 한국의 독립 애니메이션 1세대의 작품을 비롯해, 이후 새로운 ‘애니메이션 키드’로 성장한 젊은 작가들의 작품도 선보이고 있다. 이영욱의 <원천봉쇄>와 같은 작품은 1980년대 정치적으로 암울했던 시대상을 기발한 상상력으로 고발하고 있다. 한혜진의 <히치콕의 어떤 하루> 같은 작품을 통해서는 신세대 작가들의 자유 분방한 상상력을 엿볼 수 있다.

이와는 달리 일본 작가의 작품은 특정 주제에 대해 극단적으로 개인적 관심과 흥미를 표명하는 것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번 상영회를 통해 일본 작가들은 아트 애니메이션을 대형 미디어가 아닌, 개인적인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사고하면서 작품을 만들어왔다는 차이를 발견할 수 있다.

일본 작품을 프로그래밍한 구라시게 데쓰지는 “다양한 처지의 인간이 다양한 충동과 동기를 가지고 작품을 만들고 있다. 실험 영화의 맥락에서도 애니메이션 기법을 활용한 작품들이 생산되고 있고, 파인아트(fine arts·미술) 분야에서도 애니메이션 기법이 작업에 반영되고 있다. 현재를 기점으로 젊은 작가들의 작업까지도 아우르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상영회를 통해 두 나라 아트 애니메이션이 교류하는 원점이 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일본 쪽 작품 가운데 아사노 유코, 니야 나오유키, 다바타 시즈코, 고시마 가즈히로 등의 작품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아사노 유코는 <개미의 생활>이라는 동명의 작품을 인형 애니메이션으로 선보였다. 전체가 하나로서만 의미를 가지는 개미 사회를 압축적으로 표현했다. 니야 나오유키의 <납량 애니메이션 전구 축제>는 전구를 테마로 8mm 필름을 이용해 만든 작품. 다바타 시즈코의 <정지된 원>은 실사와 이미지 구성을 통해 하나의 원에 반영되는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고시마 가즈히로의 <Z Reactor>는 도시를 편애하고 있는 작가가 두 장의 정지 화면을 ‘디졸브(두 화면을 하나로 합성·융합함)’해서 입체감을 나타낸 개념적인 작품이다.

작가 교류의 한마당으로 ‘승화’

컴퓨터 기술이 비약적으로 진전되어 저렴한 비용으로 새로운 개인 표현 수단을 가지게 되면서 작가들은 과거 영상·미술 따위 도식적인 장르 개념에서 탈피하고 있다. 영화에서도 전통적인 장르 개념이 무너지고 있는 상황이다. 아트 애니메이션은 애니메이션 작가만이 아니라 미술 작업을 하는 작가들에게도 유용한 표현 수단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번 상영회는 서로 다른 역사 경험 속에서 창작 활동을 해온 한·일 두 나라 아트 애니메이션 작품들을 감상하면서, 각 작품에 담겨 있는 역사적·사회적인 의미들을 곱씹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당초 이 상영회는 일방통행식의 ‘한류’를 넘어서서, 두 나라의 풀뿌리 문화가 상호 침투하는 교류의 한 마당으로 승화시키고자 기획되었다. 주최측은 이번 상영회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경우, 교류의 지평을 더욱 넓혀 중국, 나아가 아시아 지역 작가들이 함께 만나는 장을 만들겠다며, 의욕을 불태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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