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시되는 일간지 'ABC'
  • 김상현 기자 ()
  • 승인 2006.05.15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문사들, 발행 부수 公査 '절대반대'



  91년 9월 한국ABC협회는 총회를 열고 우리언론사에 큰 획을 긋는 결정을 내렸다. 92년 7월부터 신문과 잡지의 발행부수에 대한 公査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 결정이 큰 의미를 갖는 까닭은, 만약 신문이나 잡지의 발행 부수가 공개된다면 우리 언론계나 광고계는 석기 시대에서 철기 시대로 진입하는 것과 같은 큰 변화를 경험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선 민족지니 정론지니 하는 애매모호한 기치 아래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부수 확장에 진력해온 일간지들은 자사 매체를 선호하는 독자의 수와 성향을 확실히 파악해 과학적인 경영전략을 짤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광고주들은 부수에 따라 매체에 공정한 광고료를 지급할 수 있으며, 어떤 상품이 어떤 매체에 맞는지 알 수 있기 때문에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거둘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한국ABC협회의 결정은 실행에 옮겨지지 못했다. 지난해 공사가 실시되기 한달 전 갑자기 국내 유력 일간지 발행인의 모임인 한국신문협회 산하 판매협의회가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다. 판매협의회는 지난해 6월13일 임시 총회를 열고 공사 실시 연기 요청건을 표결에 부쳤는데 결과는 찬성 20표, 반대1표, 기권 2표였다. 결국 신문사 스스로가 석기시대에 머물러 있기를 고집한 것이다.

  판매협의회가 이 같은 결정을 내리자 한국ABC협회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게 됐다. 신문협회 소속 일간지들이 협회의 주요 회원인 동시에 그들 신문사의 협조가 없이는 공사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협회의 다른 회원인 광고주연합회, 광고업협회 등은"신문협회 대표도 참석한 가운데 발행 부수를 공개하기로 합의하고 함께 2년여 준비해 왔으면서 갑자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반발했으나 판매협의회의 요청 아닌 요청을 받아들이는 수밖에는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   

  결국 한국ABC협회는 올해 2월 열린 총회에서 오는7월부터 가능한 신문사부터 단계적으로 공사를 실시하되 판매협의회 소속 신문사들에 대한 공사는 95년 7월 이후로 미루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판매협의회에서는 95년 7월 이후에도 얼마 동안은 예비 공사만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어 본격적인 공사는 언제 실시될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우리나라에서 신문 발행 부수를 공개해야 한다는 얘기가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한 것은 무려 3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56년〈대한신문연감〉에서 처음으로 공식적인 제안이 나왔고 63년 4월 한국ABC연구소가 발족했다. 이 연구소에 의해 68년과 70년 두차례에 걸쳐 '신문·잡지 구독 실태조사'가 이루어졌으나 조사결과가 자사에게 유리하게 나온 신문사에서 미리 빼내 보도하고 불리한 회사가 이에 대해 거칠게 항의하는 바람에 조사가 중단되고 말았다.

  87년 6·29이후 발행 부수 공개 논의가 재개돼 한국광고단체협의회가 88년ABC소위원회를 구성했으며, 이 소위원회를 주축으로 창립준비가 이루어져 89년 5월31일 한국ABC협회가 탄생하게 됐다.

  그러나 발행 부수 공개 논의가 시작된 지30여년, 한국ABC협회가 창립된지 만3년이 돼오는데도 발행 부수 공개에 대한논의는 여전히 원점에서 맴돌고 있다. 그동안 한국ABC협회가 공사를 준비하느라고 공보처로부터 받아쓴 공익 자금만도 15억원에 달한다.

 

신문사가 '진설'을 두려워하는 까닭 

  판매협의회가 발행 부수 공사를 시기상조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두가지 이다. 신문사의경쟁을 더욱 부채질해 판매 무질서를 초래한다는 것과, 한국ABC협회가 공사를 공정하게 수행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판매협의회가 내세우는 두가지 이유는 모두 설득력이 없다. 판매가 무질서한 까닭은 오히려 발행부수가 공개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며, 신문사가 발행 부수를 공개할 의지만 있다면 협회가공사를 하기가 어렵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신문판매 사정에 밝은 일간지의 한 간부는 신문사가 발행 부수 공개를 꺼리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판매구조의 난맥상은 일간지의 가장 큰 치부이다. 발행 부수가 공개되면 대부분의 신문사가 사회적 지탄을 면치 못할 것이다. 신문사들은 진실이 두려운 것이다."

  진실이 두렵다고 해서 언제까지 덮어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미국은 70년전에, 일본도 이미 40년 전부터 발행 부수 공사를 실시하고 있다 시시비비를 가리는 언론이 자신의 치부를 한사코 가리려는 것은 떳떳한 태도가 아니다. 또 약점이 있는 언론은 항상 권력에 의해 길들여질 수 밖에 없다는 사실도 새삼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