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 殘影에서 苦戰하는 두 얼굴
  • 여운연 기자 ()
  • 승인 1989.1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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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지에 몰린 아시아의 두 女性지도자 아키노와 부토

 “새로운 질서를 세우는 일만큼 어려운 일은 없다”는 역사적 경험은 바로 민주화 道程에 있는 나라엔 소중한 교훈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구시대가 뿌려놓은 惡의 잔영이 깊이 드리워 있을 때 그 길은 더욱 험난하게 마련이다.

 怒濤와 같은 ‘피플 파워’에 의해 전세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출범했던 필리핀과 파키스탄 현정부가 요즘 그러한 곤경에 놓여 있다. 가장 보수적인 아시아 국가에서 국민의 손으로 선출됐던 두 女性지도자 아키노 필리핀대통령과 베나지르 부토 파키스탄 총리. 최근 들어 이들은 야당과 국민들로부터 지도자의 德目이 부족하다는 강한 압력을 받는 ‘同病相憐’의 처지에 놓여 있다.

 평범한 주부에서 일국의 대통령으로 변신했던 아키노, 명문 옥스퍼드 출신의 인텔리이나 정치적 경력은 거의 없었던 부토가 지금 치르고 있는 苦戰은 과연 예상됐던 필연적 과정일까.

 각각 남편과 아버지의 후광을 업고 浮上했던 이들의 유사한 정치적 행로는 현재 궁지에 몰려 있는 처지까지 너무 비슷해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 86년 마르코스가 축출되면서 선출된 아키노는 대통령 임기의 절반 이상을 넘긴 현재에 이르기까지 難題의 연속이었다. 우익 정치인들의 거센 반발, 군부의 분열, 마르코스 추종자들의 구시대를 향한 노스탤지아 등은 쉽게 꺾어낼 수 없는 요소들이다.

 살얼음 같았던 집권 첫 18개월 동안 무려 6차례나 쿠데타기도가 발생했으며 87년 8월에는 거의 성공 직전까지 갔었다. 마닐라의 한 신문 칼럼니스트는 쿠데타가 일어나자 아키노 대통령이 침대밑으로 숨었다고 수모를 주기도 했다. 이에 격분한 아키노는 그날로 기자들을 자신의 침실로 안내해 그의 침대 밑은 숨어들어갈 자리가 없음을 확인시키기까지 했다.

 이처럼 어려운 상황 속에서 국민들의 아키노 지지도는 어떤가. 최근 마닐라의 한 사회기관이 3백명의 마닐라시민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2년전 지지도가 77%였던 데 비해 35%만이 만족한다고 답변했다. 또 아테네오대학이 실시한 조사결과 전인구의 3분의 1인 2천만명 정도가 국가의 장래를 그 어느 때보다 회의적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상 아키노가 취임 이후 이룩한 정치적 민주화엔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사회문제와 경제적 개혁은 별다른 진전이 없다는 게 국민 모두의 불만이다. 지난 86년이후 필리핀은 연 6%의 경제성장률을 보였으나 인플레는 연 10%를 상회, 정부당국은 外債 이자도 갚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마르코스집권 초기만 해도 동남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였던 필리핀은 이제 가장 가난한 나라의 하나로 전락하고 말았다.

 또한 필리핀의 오랜 고질병이며 특히 마르코스시대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부패’문제와 관련, 아키노 一家가 구설수에 오름으로써 ‘청렴’을 긍지로 삼던 아키노를 더욱 궁지로 몰고 있다.

 수일전 캐나다·미국 순방길에 올랐던 아키노는 미국으로부터 정중한 예우를 받으며 소기의 원조도 받아내 그녀의 필리핀내 입지를 강화시켰다. 그러나 치솟는 물가, 격증하는 범죄와 부패, 빈부격차, 통치력에 대한 불신 등 산적한 문제 앞에서 그 정도 성과는 빛도 안나는 일이다.

 집권 1년째를 맞고 있는 베나지르 부토 파키스탄 총리 역시 열화같던 초기의 국민적 여망과는 달리 내부통치체제를 다지는 일조차 역부족이란 따가운 비판을 면치 못하고 있다.

 1년전 스스로 “가난한 사람의 동지”임을 자처하며 선거유세를 벌였을 때 그녀는 수백만명의 지지자들에게 가난과 부패, 폭력을 몰아내고 ‘새 시대’를 열겠다고 굳게 약속했다.

 그러나 회교국가의 첫 여성 지도자 부토는 군부독재에 시달렸던 1억6백만명의 국민들에게 여전히 절망과 불안을 안겨주고 있을 뿐이다. 새 지평을 열어주기는커녕 이 나라 역사에 하나의 아이러니를 기록했던 88년8월17일(지아 울하크 전대통령이 사망한 날)이전과 비교했을 때 빈부격차는 거의 달라진 게 없다.

 부토 정권은 최근 이슬람민주연맹(IDA)을 주축으로 한 파키스탄연합(COP)세력으로부터 부토 불신임안 공세를 받아 시련을 겪기도 했는데 집권 파키스탄인민당(PPP)의 치밀한 막후공작으로 간신히 위기를 모면했다.

 당초 혁신적인 사회정치적 개혁을 다짐했던 부토가 지금까지 이루어놓은 것이란 고작 연방예산안 통과뿐이다. 물론 총의석 중 과반수에 못미치는 집권당 PPP가 의석을 더 확보했더라면 國政을 밀고나가는 데 훨씬 수월했을 것이다. 與小野大 의회구조 속에서 부토는 개혁에 필요한 3분의2 정족수를 확보할 수 없는 불리한 입장이다.

 한편 아키노의 경우처럼 부토 一家도 구설수에 오르내리고 있다. 파키스탄의 경제는 침체일로에 있고 빈곤문제는 나날이 악화되는데 개발계획과 투자는 최고위 집권층인 총리실과 부토 一家의 수중에서 좌우되고 있다는 것이다. 부토의 어머니 베굼 누스라트 부토는 총리대리전권을 행사, 특히 외교정책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으며 카라치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남편 아시프 자다리도 그의 사업이 금년들어 이례적인 흑자를 기록하는 등 족벌정치란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 11월13일엔 제3세계에서 가장 허약한 각료들로 구성됐다는 파키스탄 내각이 정부개편의 길을 열어주기 위해 총사퇴, 또 한차례 파란이 일었다.

 아키노와 부토, 두 지도자의 앞날은 이처럼 계속 험난할 것인가. 무엇보다 독재가 저지른 상처를 치유해야 한다는 부담이 이들 두 여성지도자가 처한 입지를 더욱 어렵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도자의 덕목과 통치력이 하루아침에 쌓아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상기해보면 두 사람의 앞날을 반드시 비관적으로 볼 일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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