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끈 떨어진 PC, 가전'에 미래 있다
  • 고영채(고려대 전기전자전파공학부 교수) ()
  • 승인 2007.03.05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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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선통신 칩 개발하면 반도체 잇는 국가적 '대박 상품'...세계 시장 규모 어마어마

 
현재 우리나라의 휴대전화 가입자는 4천만명에 이르고 전세계적으로도 급증하고 있다.
휴대전화는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누군가와 무선으로 통신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음성뿐만 아니라 문자 메시지(SMS 기능), 화상 대화 등도 가능하다. 요즘에는 소액 결제를 한다든가 음악 영화 같은 데이터를 내려받기도 한다. 
휴대전화에서 범위를 더 넓혀 ‘무선’이라는 포괄적인 용어를 사용하면 노트북에서의 무선 인터넷 사용, 무선 마우스 및 키보드, 내비게이터 등 생활의 편리함을 주는 기능들이 무궁무진하다.
우선 휴대전화를 보자. 최근 LG전자에서 명품 의류 브랜드인 프라다(Prada)와 합작한 휴대전화를 선보였다. 패션 회사인 베네통(Benetton)도 휴대전화 시장에 참여한다고 발표했다.
삼성전자·LG전자·노키아·모토로라와 같이 휴대전화를 만들어 이윤을 창출했던 회사와는 전혀 다른 성격의 의류 패션 업체들이 통신 시장에 진출하는 것을 보면 휴대전화가 이제는 기술적이 아닌 디자인의 차원으로 변화하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이는 기존 휴대전화 제조업체들을 긴장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그러나 휴대전화 제조업체들과 신규 디자인 업체들이 혈전을 벌인다고 하더라도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꾸준히 이익을 내고 있는 업체들이 있다. 바로  휴대전화 안에 들어가는 통신 칩 제조업체들이다.
어떤 브랜드의 휴대전화이든 미국의 퀄컴이라는 회사에서 만든 통신 칩을 사용하고 있다.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칩 제조 기술에서는 독보적인 회사이다. 우리가 사는  휴대전화기 값의 절반 정도는 퀄컴에서 만든 칩 값과 로열티로 들어간다.
휴대전화의 트렌드는 패션이 변하는 만큼 빨리 변하지만 기술적인 특성을 좌우하는 통신 칩은 한참 동안 변하지 않는다. 이런 점에는CDMA 종주국이라면서 우리 스스로를 자부해왔던 것이 부끄럽기까지 하다.
그렇다고 해서 휴대전화 제조업체의 기술을 폄하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국내 제조업체들이 휴대전화기를 얇게 만들고 다양한 소프트웨어 기술을 개발한 것은 세계 일류로서 손색이 없다. 다만 이에 못지않게, 더 중요하게 여겨져야 하는 것이 통신 칩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이라는 것이다.
통신 칩을 만들 수 있는 회사는 전 세계적으로 많지 않다. 따라서 성공한 통신 칩 회사들은 세계적으로 큰 이윤을 창출해낼 수 있다.
그렇다면 통신 칩은 만들기 어려운 것인가?
공학도로서, 미국의 통신 칩 제조업체에서 근무한 경험으로 말하면 결코 쉽지 않다. 통신 칩 안에 들어가는 통신 알고리듬, 안테나, 초고주파 회로, 아날로그 회로, 디지털 회로, 소프트웨어 등을 잘 조화시켜야만 가능하다. 각 기술의 전문가들이 다른 영역을 이해하고 조화롭게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60GHz 주파수 대역 이용하면 가능


 
한 가지 희망적인 것은 우리의 기술도 많이 향상되어 이제는 통신 칩 시장에 도전장을 낼 만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무선 통신 서비스부터 시작해야 할까. 휴대전화와 같이 기존 통신 칩 제조업체가 선점한 무선통신 사업은 쉽지 않을 것이다.
비교적 사업성이 있는 신규 무선사업으로는 이동 중에도 휴대전화처럼 무선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통신 서비스인 와이브로(WiBro)와 휴대전화기 안에 장착해 TV를 보는 DMB를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와이브로와 DMB 모두 처음 예상과는 달리 사업화가 늦어지고 있어서 칩 제조업체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아직은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중요한 무선사업이 될 만한 서비스가 있다. 바로 가전제품의 무선화이다.
LCD TV가 처음 나왔을 때 침대에 누워서 천장에 부착된 LCD TV를 시청하는 광고를 미국에서 본 적이 있다. 그런데 그것이 가능하려면 천장에 있는 LCD TV와 안테나가 ‘유선’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케이블 채널 역시 케이블 셋톱 박스와 ‘유선’으로 볼 수 있다. 그 선들이 지저분하게 늘어져 있으면 눈에 거슬리기 마련이다.
TV뿐만이 아니다. 집집마다 PC를 보면 모니터·스피커에 연결된 선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이러한 것들을 모두 무선으로 한다면 생활은 더욱 편리할 것이다.
우선 HD급의 영상이나 PC-모니터 간 무선통신을 가능하게 하려면 최소한 1초에 3기가비트(Gbps), 즉  30억 비트의 데이터를 전송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선 전송이 사용할 주파수 영역이 상당히 넓어야 하는데 이미 우리가 사용하는 주파수 대역은 휴대전화기, 무선 인터넷 등으로 꽉 차 있다. 다만 60GHz 대역이 세계적으로 개인 사용자들을 위해 비워져 있다. 그러면 문제는 간단해진다. 60GHz 대역을 이용해 통신을 하면 된다.
앞에서 언급한 칩에 필요한 여러 기술 가운데 일반 사용자를 위한 안테나 및 초고주파 회로 기술들이 최근 들어 성공하고 있어 희망적이다.
이러한 기술 발달을 기반으로 60GHz 대역을 사용해 개인용 초고속 데이터 통신을 가능하게 하자는 국제통신표준이 현재 활발히 진행 중이다.
아직 60GHz 대역에서의 안테나 및 초고주파 회로 등 국내 기술이, 우위에 있는 미국의 기업 및 대학에 비해 처지는 것은 사실이다.
지금부터라도 이에 대한 연구와 개발을 서둘러야 한다. 우수한 인재들을 찾아 피눈물 나는 노력을 한다면 선진국을 앞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만들어낸 통신 칩이 모든 컴퓨터와 모니터, TV 등에 부착되어 팔린다면 지금의 반도체가 그러하듯이 우리 국민 모두가 먹고 살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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