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천하 통일 멀지 않았다”
  • 노진섭 (자유 기고가) ()
  • 승인 2007.05.07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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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술, 메모리 부문 ‘최고’…비메모리에서도 추격 ‘고삐’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 잠자리에 들 때까지 눈으로 보는 모든 정보를 저장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수많은 반도체가 필요하지만 나노 기술을 이용한 반도체 개발이 매우 빠르게 진행되므로 작은 칩 한 개에 이 모든 것을 저장할 수 있는 시대가 곧 올 것이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윤준보 교수는 우리 미래의 생활을 이렇게 그렸다. 반도체 기술은 하루가 멀다 하고 진화하고 있다. 반도체 업계에는 ‘황의 법칙(Hwang’s Law)’이라는 것이 있다. 메모리 반도체의 용량이 1년에 두 배씩 증가할 것이라는 황창규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사장의 이론이다.
메모리 반도체 용량이 18~24개월에 두 배씩 증가할 것이라는 무어의 법칙은 이미 구문이 되어버렸다. 실제 삼성전자는 1999년 2백56메가바이트 메모리 반도체를 시작으로 2000년 5백12메가, 2001년 1기가, 2002년 2기가, 2003년 4기가, 2004년 8기가 제품을 잇달아 개발하며 ‘황의 법칙’을 증명해 보였다.
심지어 반도체 저장 용량이 인간 두뇌를 능가할 것이라는 말도 있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주인공 키애누 리브스는 두뇌를 업그레이드해서 기억 용량을 확장한다. 공상과학 영화의 한 장면이지만 이같은 일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물론 인간 두뇌와 인공 두뇌를 단순 비교하는 것이 현재 기술로서는 무의미할 수 있겠지만 이를 가능하게 하는 반도체 기술은 빠른 속도로 진화하고 있다.
굳이 미래 이야기를 꺼내지 않더라도 반도체 기술의 진화를 피부로 느낄 수 있다. 과거 컴퓨터의 하드 디스크(HDD) 용량보다 크면서도 손가락보다 작은 크기의 8기가바이트 USB 메모리를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지 않은가. 메모리 반도체의 용량이 커지면서 HDD를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소음·열·크기 등 HDD의 단점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반도체 기술은 우리나라가 최고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메모리 반도체 기술은 2위인 미국보다 5년 정도 앞섰다고 한다. 메모리 반도체는 전원이 없어도 입력된 데이터를 저장하고 있는 것으로, 전원이 없으면 저장 기능을 상실하는 비메모리 반도체와 구분된다. 손바닥보다 작은 디지털 카메라와 명함만큼 얇은 USB 메모리 등을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메모리 반도체가 과거보다 소형이면서도 큰 용량을 저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KAIST 김봉수 교수는 “10년 후면 우리나라가 미국보다 훨씬 더 앞서가게 될 것”이라며 메모리 반도체 부문에서의 기술 개발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8nm급 메모리 소자·3세대 퓨전 메모리 반도체 최초 개발


 
그러나 다른 나라의 추격도 만만치 않다. 일본 반도체 기업 엘피다는 최근 20층 멀티 칩 패키지(MCP)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가 세계 최고 기술로 개발한 1.4mm 두께의 16층 MCP를 5개월 만에 4층이나 더 쌓은 것이다.
인텔은 최근 컴퓨터의 두뇌 격인 중앙처리장치(CPU)의 크기가 1센트짜리 동전보다 작은 칩을 공개했다. 이 칩을 장착하면 메인 보드 크기가 명함 정도로 작아진다. 반도체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지난 3월 KAIST 최양규 교수팀이 세계 최초로 8nm(나노미터, 10억분의 1m)급 메모리 소자를 개발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세계 반도체 업계는 10nm급이 한계일 것으로 추정해왔다. 
8nm는 머리카락 두께를 1만2천분의 1로 쪼갠 아주 작은 크기이다. 8nm 기술을 이용한 손톱 크기만한 메모리 반도체에 1만2천5백년분의 신문 기사와 50만 곡의 MP3 파일을 저장할 수 있다. 과학기술부는 이번 연구 성과가 상용화될 경우 10년간 2백50조원의 시장 창출 효과가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캡슐처럼 먹는 내시경이 다음달부터 국내에 출시된다고 한다. 이 내시경은 몸속에 들어가면 내장의 사진을 찍어 의사와 환자가 볼 수 있도록 해준다. 앞으로 3~4년 후에는 장내 특정 부위의 세포를 채취할 수 있고, 이상 부위를 진단하고 치료약까지 투여하는 기술이 10년 내에 개발된다. 또 우리 몸의 혈관 속을 돌아다니며 이상 부위를 찾아 치료하는 혈관 로봇 기술도 개발 중이다. KAIST 윤준보 교수는 “이는 모두 나노미터급 반도체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은 또 기존 반도체 기술과 전혀 다른 기술을 선보이며 다른 나라의 추격을 따돌리고 있다. 최근 삼성전자는 3세대의 퓨전 메모리 반도체 ‘플렉스-원 낸드’를 세계 최초로 개발해 선보였다. 두 종류의 반도체를 하나의 칩으로 만들어 메모리 용량과 정보 처리 속도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게 한 것으로 외국의 경쟁 업체들이 개발을 포기했을 정도로 어려운 기술이다. 이는 기존 반도체와 근본적으로 다른 새로운 기술이다. 현재까지 한 번 만든 반도체는 특성을 바꿀 수 없었다. 2기가바이트 메모리 칩을 4기가바이트로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MP3를 즐겨 듣는 소비자라면 대용량 제품을, 영상 통화나 모바일 게임처럼 처리 속도가 중요한 작업을 많이 하는 소비자라면 빠른 제품을 선택한다. 지금까지는 각각 다른 반도체를 사용해왔지만 플렉스-원 낸드 메모리로 이 두 가지 입맛을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다. 한마디로 ‘맞춤 메모리’가 탄생한 것이다.
고화질 TV(HDTV)나 휴대전화에 사용되는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는 미국이 우리나라보다 10년 정도 앞서 있다. 4월23일 정보기술(IT) 시장조사 업체인 가트너에 따르면 2006년 매출액을 기준해 인텔의 세계 반도체 시장 점유율은 11.6%로 1위를 유지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세계 반도체 시장의 7.7%를 차지하면서 2005년과 마찬가지로 2위를 유지했다. 하이닉스반도체는 2005년 9위에서 2006년 7위로 올라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가 나노미터급 반도체와 퓨전 반도체 개발 등으로 메모리와 비메모리 반도체 업계를 모두 선도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무선 인터넷 시대인 3.5G에 이어 무선 인터넷으로 영상과 음성 데이터를 동시에, 그것도 초고속으로 보내는 시대인 4G를 맞아 신기술을 개발 중이다. 컴퓨터의 인텔과 휴대전화의 퀄컴을 능가하는 일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삼성전자 황창규 사장도 “지금까지 개인용 컴퓨터 시대를 인텔이 주도해왔다면 앞으로의 모바일 시대는 삼성이 이끌어가게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컴퓨터마다 붙어 있는 ‘인텔 인사이드(Intel Inside)’를 ‘삼성 인사이드’로 바꿀 날이 온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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