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도 ‘소통 부재’로 우왕좌왕 헛발질
  • 한준희 (KBS 축구해설위원) ()
  • 승인 2008.06.17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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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예선 요르단과의 두 경기 통해 본 한국 대표팀의 문제점

▲ 박주영 선수가 요르단의 알라 마탈카와 공을 다투고 있다. ⓒ연합뉴스

유럽의 유로2008, 남미의 월드컵 예선이 불을 뿜고 있지만 6월의 축구 열기는 아시아 대륙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2010 남아공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에 들기 위한 투쟁이 점입가경으로 치닫는 형국이다.

특히 이번 3차 예선에서는 전통의 강호 이란, 아시안컵 챔피언 이라크를 비롯해 사우디아라비아, 일본, 호주 등 알려진 강자들이 적어도 한 차례 이상 흔들리는 모습을 노출했다. 반면 바레인, 북한, 우즈베키스탄, 카타르, 시리아 등 중상위권 팀들의 선전이 상대적으로 돋보이고 있다. 각국의 전력 차가 점차 좁혀지는 축구판의 추세는 아시아에서도 예외일 수 없는 듯하다.

우리와 두 차례 경기를 치렀던 요르단 또한 결코 호락호락한 1승 상대가 아님을 입증했다. 선수들의 기본기가 탄탄했고 전술 소화 능력 또한 양호했다. 아마도 자신들의 홈에서 벌어졌던 경기에서 요르단은 그들의 부족했던 골운을 한탄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요르단이 펼쳐보인 위협적인 능력과는 완전히 별개로, 두 경기를 통해 나타난 우리 대표팀의 경기력은 ‘의문 부호’를 넘어 ‘실망’ 쪽에 가까웠다고 말해야만 한다.

물론 항상 어려움을 겪어왔던 중동 지역 원정에서 승점 3점을 획득한 것은 칭찬할 만한 결과다. 아름다운 축구가 합당한 결과물을 얻어내지 못한다면 그 또한 바람직한 축구는 아니며,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예선을 치르는 모든 팀의 궁극의 목표가 일단 다음 단계로의 진출임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상암벌에서 펼쳐진 첫 대결에서 두 골 차의 리드를 지켜내지 못한 상황이었기에, 원정 리턴 매치에서 수비적인 마인드가 강화될 공산은 현실적으로 컸다. 하지만 문제는 요르단과의 두 경기에서 우리 대표팀이 보여준 경기력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과 거리가 멀었다는 데에 있다. 대표팀은 수비 조직, 공격 조직, 뛰는 양과 정신력, 집중력 모두에서 문제점을 노출했다.

우선 수비 조직의 문제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수비에서 매우 중요한 ‘선수들 간 의사 소통’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모습이야말로 대표팀의 불안한 현주소를 드러내주는 대목이다. 예를 들어,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요르단에게 당한 두 번째 실점 장면은 사실 왼쪽 측면 수비수(이 경우에는 이영표)의 ‘콜 플레이’가 요망되는 상황이었다. 중앙 수비수들의 좋지 않은 위치를 조망할 수 있는 동료가 그것을 바로 잡아줄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장면은 원정 경기에서도 나타났다. 골라인 밖으로 걷어낼 필요가 없는 상황에서 코너킥을 내주게 된 오범석이 동료들을 향해 억울한 표정을 지었던 것 역시 의사 소통의 부재에 기인한다. 골키퍼나 동료 수비수들은 오범석을 향해 “그냥 놔두라”는 콜을 해줬어야 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상대가 애용하는 공격 전술을 파악하고 대처하는 요령 또한 합격점과는 거리가 멀었다. 요르단이 최전방 공격수(바와브)가 좌우 측면으로 빠져나간 공간을 중앙 미드필더(압델 파타)가 메우고 들어오며 득점 기회를 노리는 방식을 ‘줄기차게’ 시도했음에도, 우리의 수비는 그 한 가지 루트의 공격에 지속적으로 허둥댔다. 또한, 많은 수비 숫자에도 불구하고 결정적 헤딩슛을 계속 허용한 것도 조직력 및 집중력 결여의 문제라 할 만하다. 전반적으로 수비진을 이끌어줄 ‘리더’의 모습도 현재로서는 보이지 않는다.

박지성ᆞ박주영 선수 활용 방식도 더 고민해야

▲ 박지성 선수가 요르단의 바하 압델라만의 견제를 받으며 돌파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제는 수비 부문에 그치지 않는다. 공격에서도 해결되어야 하는 부분이 많다. 우선 요르단과의 두 경기를 통해 우리가 만들어낸 이른바 ‘작품’이 많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밀집 수비 해체 능력은 여전히 부족하며, 동료들 간 유기적인 플레이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밀집 수비를 파괴하는 기본은 역시 두 가지다. 우선 스피디한 부분 전술이 구사되어야 한다. 다른 나라 이야기를 해 유감스럽지만, 예를 들어 유로2008 포르투갈과 터키의 경기에서 터져 나온 포르투갈 수비수 페페의 골이 대표적이다. 순간적으로 공격에 가담한 페페와 공격수 누노 고메스가 연출해낸 빠른 ‘원투 패스’ 플레이는 극도로 단순하면서도 상대 수비를 한 순간에 궤멸시키는 방식을 잘 보여주었다. 그런데 요르단과의 경기들에서 우리 대표팀에게서는 이러한 모습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부분 전술이 잘 구사되지 못함은 선수들의 움직임이 그만큼 좋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선수들의 움직임은 자신이 볼을 지니고 있을 경우에 국한되는 경우가 많았다. 동료에게 볼을 내주는 동시에 효율적인 공간을 파고 들어가는 움직임이 신속히 이루어져야만 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가 않다.

밀집 수비에 대응하는, 또 하나의 기본은 과감해지라는 것이다. 요르단과의 첫 경기에서 조원희, 두 번째 경기에서 오범석은 이러한 덕목을 실천에 옮긴 선수들이다. 조원희의 과감한 드리블 돌파, 오범석의 적절한 최전방 침투는 요르단의 입장에서는 심히 뼈아팠을 두 차례의 페널티킥을 이끌어냈다(물론 요르단에게 항변의 여지가 존재하기는 하더라도). 과감한 플레이의 장점은 상대 수비가 아무리 견고하다 해도 최소한 ‘좋은 위치에서의 세트플레이’를 얻어낼 확률을 증가시킨다는 것이다.

또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대목은 박지성과 박주영의 활용 방식이다. 박지성은 요르단과의 첫 경기에서 왼쪽 측면으로, 두 번째 경기에서는 위치를 바꿔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로 출전했다. 첫 경기의 결과가 좋지 않았던 데다 이근호의 득점포, 안정환의 조커로서의 활용 가치까지가 총체적으로 고려된 위치 변경이지만, 적어도 지금으로서는 박지성의 위치는 중앙보다는 측면이 더 적합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이유는 박지성의 측면 플레이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활약하며 더욱 특화된 면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박지성은 측면에서 중앙으로 파고 들어가는 움직임이 매우 뛰어나며, 볼을 지니고 있지 않은 경우 활발한 움직임으로써 상대 수비를 교란, 동료들을 위한 공간을 창출하는 데 전문가적 기질을 발휘한다. 반면, 소속 클럽에서 그는 자신이 볼을 많이 소유하며 경기 전체를 관장하는 역할을 맡고 있지는 않다. 물론 팀 내 사정이 각기 다르기는 하더라도, 현재로서는 박지성의 기본 위치를 측면 쪽으로 잡아주는 것이 그의 활용도를 1백20% 높일 수 있는 방도인 것처럼 보인다.

원톱 스트라이커로 기용되고 있는 박주영의 경우에도 심각한 숙고가 필요하다. 우선 요르단과의 경기들에서 박주영의 원톱으로서의 기여도는 저조함 그 자체였다. 이는 풍부한 재능을 지닌 박주영이 적어도 현재로서는 원톱의 통상적 성향 및 덕목들과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로부터 유래한다. 그 통상적 덕목들이란 스피디한 질주로 오프사이드 라인을 무너뜨리는 것, 수비수를 등지는 플레이, 수비수와의 몸싸움 등등이다. 더구나 요즈음과 같이 대표팀의 기회 창조력이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 박주영이 이러한 덕목들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측면은 더욱 두드러지게 마련이다.

박주영의 경우에도 그의 능력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게 하는 위치는 현재의 위치가 아니라는 생각이다. 적어도 필자가 보기에, 박주영에게 가장 적합한 위치는 역시 ‘처진 스트라이커’ 자리다. 상황이 이러하다면 이 대목에서 자연스럽게도 또 다른 질문이 떠오를 것이다. “그러면 최전방은 도대체 누가 맡을 것인가?”

그런데 이 질문은 사실상 황선홍(현 부산 감독)이 축구화를 벗은 이래 하루도 빠짐없이 던져졌던 바로 그 질문이다. 이동국이 돌아오기를 기다릴까? 조재진이 조금 더 다재다능해지기를 기다릴까? 적어도 지금까지는 ‘아주 좋은 재목감’으로 보이는 조동건의 경험치가 상승하기를 기다릴까? 그것도 아니면 서로의 단점을 상쇄하게끔 ‘투 톱’ 체제를 가동하며 기본 포메이션에 다소간 변화를 주어야 할까? 이는 매우 어려운 문제임에 틀림이 없지만, 동시에 한국 축구가 조만간 풀어야만 하는 문제인 것도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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