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에 멈춘 샘물 외상값 누가 갚았나
  • 감명국 (kham@sisapress.com)
  • 승인 2008.09.09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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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천’ 대표 홍경태씨의 5억원 채무 탕감 불거지자 봉하마을 긴장
▲ ‘장수천’의 채무 변제가 도마에 오르면서 노 전 대통령의 측근들이 거론되고 있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홍경태ᆞ안희정ᆞ최도술ᆞ선봉술ᆞ정상문ᆞ문병욱ᆞ이기명ᆞ강금원 씨.

생수회사 ‘장수천’은 노무현 정권의 최대 아킬레스건이었다. 2003년 정권이 출범하자마자 불거지기 시작한 장수천 파문의 늪에서 내내 허우적거렸다. 특검 수사와 탄핵 정국으로까지 이어졌다. 대통령의 측근들이 줄줄이 구속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지긋지긋한’ 악연의 끈은 정권이 퇴진한 지금도 봉하마을을 괴롭히고 있다.

장수천은 1995년 10월 충북 옥천에 설립된 생수회사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실질적인 주인이었다. 대권의 야망을 키우던 그가 정치자금을 스스로 해결해보고자 시작한 사업이었다. 1997년 3월 한국리스여신으로부터 18억5천만원을 대출받아 공장자동화 설비 시스템 등을 설치했다. 노 전 대통령이 1997년 대선과 1998년 종로 보궐선거 출마 등으로 정치에 신경을 쓰면서 최도술·홍경태 씨 등 측근들이 관리하기도 했다. 하지만 외환위기 사태 이후 사업은 계속 어려움을 겪었다. 경영난이 가중되자 최측근인 안희정씨가 직접 나섰다. 안씨는 생수 공장만으로는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고 판단해 1999년 7월 생수판매회사 ‘오아시스워터’를 설립하는 등 자구책에 나섰다.

그러나 장수천 공장은 2000년 7월 수해를 입어 사실상 폐업 상태가 되었고, 한국리스여신은 39억9천7백만원의 채무 상환을 요구해왔다. 빚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안씨는 회사 정리 수순에 들어갔고, 담보물이 경매에 나왔다. 결국 장수천 공장과 부지는 대전의 사업가 신 아무개씨에게 넘어갔다. 하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수십억 원의 빚은 2002년 대선전을 뛰는 노 전 대통령에게는 상당한 부담이었다. 무리하게 장수천의 빚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의 측근들은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안씨와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 등이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되었다. 장수천 사업은 노 전 대통령의 측근들이 총동원된 성격이 있는 데다 실패한 사업의 채무 해결 과정을 두고 숱한 의혹이 제기되어왔다. 급기야 노 전 대통령이 2003년 5월 장수천 의혹이 확산되는 데 따른 정국 불안정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하기에 이르렀다.

우여곡절 끝에 일단락된 것으로 여겨졌던 장수천의 의혹이 5년 만에 다시 부활한 것은 홍경태씨 때문이었다. 노 전 대통령의 부산상고 후배인 홍씨는 최근 서울 강남경찰서의 수사망에 걸려들었다. 노무현 정부 시절 노 전 대통령 및 측근들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건설사 등으로부터 거액을 챙긴 브로커 서 아무개씨(55)의 조사 과정에서 그의 이름이 등장한 것이다. 서로 호형호제하는 사이로 알려진 두 사람의 연결 고리는 장수천이었다. 경남 마산에 주소지를 둔 기계부품 설비회사인 ㄷ사의 대표이사인 서씨가 1996년 장수천 공장이 설립될 당시 이 공장에 생수 자동화 설비를 담당했다. 당시 장수천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던 홍씨는 설비 대금 중 5억여 원의 빚을 남겨두고 있었다. 자금 사정이 어려웠던 홍씨는 서씨에게 현금 보관증을 써주었다. 이것이 이후 채무 변제 과정에서 해결되지 않은 채 계속 남아 있었던 것이다.

▲ 한나라당 이재오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2003년 11월27일 오전 노무현 대통령 측근 비리와 관련한 향후 활동 계획 등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건설사 로비 돕는 조건으로 외압 행사했을까

장수천 사업의 사실상 첫 삽을 뜬 장본인이자 마지막 정리 작업까지 노 전 대통령 및 그 측근들과 함께했던 사업가 ㄱ씨는 당시의 상황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당시 마산에서 제법 큰 설비회사를 운영하고 있던 서씨가 장수천 공장의 생수 자동화 설비를 담당하게 되었다. 총 16억원 규모의 설비 공사였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을 대신해서 홍씨가 대표를, 내가 사업본부장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설비 문제는 홍씨와 서씨, 나 셋이서 다 상의했다. 따라서 노 전 대통령이나, 이후 사업에 참여한 안희정씨는 서씨에 대해 잘 모를 것이다. 설비 기계는 배관 라인 등과 같이 리스가 되는 것이 있고, 정수 라인 및 실험실 기자재같이 리스가 안 되는 것이 있다. 당시 리스에 해당되지 않는 금액이 한 5억원 정도 되었다. 당시 그것이 빚으로 남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후 채무 변제 과정에서 다 정리가 된 줄 알았다. 이번 사건을 보고서야 홍씨와 서씨 간에 정리가 안 되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홍씨가 당시 채무 변제 대신 써준 현금 보관증의 위력은 2002년 대선 결과로 큰 힘을 발했다. 거기에 연대보증인으로 이름을 올린 노 전 대통령이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이다. 서씨의 건설사 로비를 홍씨가 돕는 조건으로 5억원의 채무를 탕감하는 제안을 처음 한 것이 누군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아무튼 홍씨는 자신의 청와대 행정관 신분을 십분 활용해 건설회사 브로커로 나선 서씨를 위해 토지공사 등에 외압을 행사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이 대목에서 홍씨는 노 전 대통령의 최측근 ‘실세’로 소개되기도 한다. 하지만 홍씨와 노 전 대통령의 관계를 잘 아는 주변 인물들은 고개를 젓는다.

노 전 대통령의 부산상고 선배이면서 노무현 정부 시절 공기업의 임원을 지낸 ㅇ씨는 “노 전 대통령의 비서격 측근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안희정·이광재 씨와 같은 참모형 비서가 있고, 최도술·홍경태 씨와 같은 심부름꾼형 비서가 있다. 노 전 대통령은 측근들의 능력에 걸맞은 역할을 엄격히 부여했다. 누구보다 고생을 많이 한 홍씨였기에 나를 비롯한 부산상고 선배들이 상당히 밀어주었지만, 노 전 대통령은 수송 업무를 담당하는 행정관직 그 이상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실제 지난 2006년 기자는 노 전 대통령의 한 측근에게 홍씨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전해들은 바 있다. 당시 청와대 수송 담당 행정관이라는 한직에 다소 불만을 가진 홍씨가 한 골프장의 감사 자리를 제안받으면서 청와대에 사표를 냈다. 홍씨가 청와대를 떠나면서 퇴임 인사를 하자 노 전 대통령은 “대통령의 측근이라는 이유만으로 누가 네게 감사 자리를 제안했나 본데, 대단히 부적절하다”라며 바로 그 자리에서 감사 취임을 취소시켰다고 한다. 졸지에 홍씨는 백수 신세가 된 것이다. 당시 홍씨는 주변 선배 및 지인들의 도움으로 동남아 등 해외에 골프를 치러 다니는 것으로 섭섭함을 달랬다고 한다.

ㄱ씨 역시 “홍씨는 충직하고 성실해서 주어진 일을 묵묵히 잘 수행했지만, 안씨같이 기획 능력이나 리더십은 없었다. 그런 홍씨가 대통령의 최측근이라는 자리를 이용해서 그 자신이 직접 로비를 기획했다고 믿기 어렵다”라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홍씨는 자신의 청와대 직속 상관이자 ‘친형’같이 지냈던 정상문 청와대 총무비서관에게 로비 부탁을 했다고 한다. 자신의 능력으로는 한계를 느낀 셈이다. 정 전 비서관과도 꽤 두터운 친분을 갖고 있다는 ㅇ씨는 “노 전 대통령의 절친한 친구인 정 전 비서관도 대단히 소심하고 여린 사람이다. 친동생과 같은 홍씨가 부탁하니까 도와주려 한 차원인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전했다.

하지만 여기에도 한 가지 의문은 남는다. 궁극적으로는 장수천의 실질적 사주가 노 전 대통령임에도 왜 대리인이었던 홍씨가 채무 5억원의 해결에 직접 나섰을까 하는 점이다. 경찰 주변에서도 “이 대목에서 과연 노 전 대통령이 서씨의 존재를 전혀 몰랐겠느냐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라는 얘기가 나온다. 홍씨가 말레이시아로 도피성 출국을 하자 ㅇ씨를 비롯한 노 전 대통령측의 인사들도 “혹시라도 홍씨가 부적절한 처신을 한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ㄱ씨는 “추석 즈음해서 봉하마을에 인사하러 갈 예정이었는데, 당분간 유보해야겠다”라고 밝혔다. 홍씨의 불안한 행보가 청와대 기록물 유출 파문에 이어 또다시 봉하마을을 긴장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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