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1등 매장’ 에 파리가 난다
  • 조주현 (한국경제 베이징 특파원) ()
  • 승인 2008.09.09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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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경제, 중소기업 줄도산에 대규모 실업 우려 … 낙관론 펴지만 물가 불안 등 악재 수두룩
▲ 이우 시 푸톈 시장의 장난감 도매상가에서 인도인 바이어가 물건을 고르고 있다.

올림픽 이후 중국 경제가 초미의 관심거리다. 수출과 내수가 동시에 줄어들고, 주식과 부동산은 거품 붕괴의 고통을 겪으며 경착륙이 예상된다는 우려가 크다. 중국은 한국의 최대 교역국. 따라서 중국 경제의 동향은 곧바로 한국에 영향을 미친다.

중국 정부는 낙관론을 설파 중이다. “중국 경제는 과열 국면에서 벗어나 정상 궤도에 들어섰다”(8월28일 판강 인민은행 통화정책위원), “중국 경제는 상반기 안정된 성장 국면을 유지했다”(8월27일 주즈신 국가발전개혁위원회 부주임), “바다와 같은 중국 경제에 개구리 한 마리가 뛰어들어도 변하는 것은 없다”(8월26일 장샤오더 국가행정학원 교수) 등 올림픽이 끝나자마자 중국 고위 인사들이 중국 경제에 대해 연달아 낙관론을 펴고 있다. 관영 신화통신은 아예 포스트올림픽 경제라는 코너를 만들어 ‘문제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올림픽 후 중국 경제 위기론을 적극 차단하고 나선 셈이다. 이처럼 지나치리 만큼 낙관론을 펴는 데 대해서는 불안해하는 국민을 안심시키기 위한 조치라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현장에서 본 경제 상황은 그렇게 녹록지 않았다. 중국 상하이에서 남쪽으로 4시간가량 차를 타고 가면 나오는 이우 시. 지난 8월30일 시내에 들어서자 끝도 없이 펼쳐진 5층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이우 최대의 도매상가인 푸톈 시장이다. 건물 외벽에는 ‘心動商族(마음을 움직이는 상인족)’이라는 글귀가 쓰인 플래카드가 붙어 있었다. 건물 사이사이의 층마다 구름다리를 연결해 건물 전체의 거리는 2.5㎞에 달했다. 인류가 사용하는 50만여 종의 생활용품 중 40만여 종이 거래된다는 이우 시의 상징다웠다.

이우 시 최대 도매상가, 손님 끊기자 낱개 팔이도

그러나 푸톈 시장 내부는 너무 뜻밖이었다. 중국의 대표적 수출품인 장난감 매장은 썰렁하다 못해 스산하기까지 했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두세 평짜리 가게 앞은 시원한 에어콘 바람을 쐬려는 동네 주민들과 아이들 차지였다. 불경기 앞에 푸톈 시장의 전통도 무너졌다. 도매로 사는 사람 아니면 물건을 쳐다보지도 못하게 하던 상인들은 언제부터인가 낱개로도 판매하기 시작했다. “불경기에서 살아남으려면 한두 개씩이라도 팔아야 한다”(푸톈 시장 톈롱안경 저우상파 사장)는 것. 인도에서 왔다는 한 상인은 “2년 전만 해도 외국인이 들끓었는데 지금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환율이 워낙 떨어져 가격 메리트가 많이 없어졌다”라고 말했다.

▲ 상하이 최대 번화가인 난징시루에는 명품점과 유명 상점이 몰려 있다.

이곳에서 5분 정도 거리에 있는 중싱샤오치. 빌라촌처럼 생겼지만 동네 전체가 의류와 피혁 등을 파는 상가다. 주말이어서 대부분 문을 닫았고 눈에 띠는 것은 두세 집 건너 하나씩 붙어있는 빨간 딱지였다. A4용지만한 크기에 적혀 있는 것은 ‘추주(出租·세놓음)’라는 글자와 전화번호였다. 이우 시내에서 차로 10분 정도 떨어진 허예탕 공업지구에도 ‘창팡자오주(場房招租·공장임대)’라는 플래카드가 곳곳에 걸려 있었다.이우 시에서 다시 남쪽으로 1시간30분 거리에 위치한 원저우 시도 마찬가지다. 소액으로 창업해 어떤 난관도 뚫고 성공한다는 ‘츠쿠(吃苦·고통을 이겨냄) 정신’의 상징이다. ‘중국의 유대인’으로 불리는 원저우 사람들은 태어나 농기구 대신 주판 다루는 법을 먼저 배운다. 단 1펑(0.01위안·1원40전)의 이익에도 목숨을 거는 것이 이들이다. 이처럼 태생적으로 상인의 피를 지닌 원저우 사람에게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은 날개를 달아주었고, 원저우는 ‘라오반(老板·사장)의 도시’로 불렸다. 그러나 이 라오반의 도시는 마치 한국의 폐광처럼 변했다.

전세계 시장의 90%를 석권한 라이터 공장 중 현재 가동되고 있는 곳은 몇 십 개에 불과하다. 3백50여 개가 올 들어 폐업했고, 5백여 개는 간판만 달려 있을 뿐 정상 조업을 하지 못하고 있다. 미싱이 씽씽 돌아가던 섬유·신발 공장에는 먼지만 날리고, 공장을 임대하거나 매각한다는 광고판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다.

한 10대 청년사업가, 도산 후 야반도주

이우 시와 원저우 시의 몰락은 기업 도산으로 증명된다. 이우 시의 대표적 민영 기업인 진우 그룹이나 항저우의 난왕 그룹등은 도산의 운명을 맞았다. 중국 10대 청년 사업가로 뽑혔던 진우 그룹의 장정젠 회장은 야반도주의 길을 택했다. 난왕 그룹은 자산 5억4천만 위안에 부채 14억5천만 위안이라는 장부 기록에 짓눌려 망했다. 장젠 회장 역시 실종 상태다. 저장 성이 최근 펴낸 중소기업 실태보고서에 따르면, 2백여 만개의 성 내 중소기업 중 30%가 도산 위기에 처했다. “30만개를 웃도는 원저우의 중소기업 중 20% 정도가 올 들어 도산했다”(저우더원 원저우 중소기업촉진회장)는 말은 과장된 것이 아니다.

원재료 가격과 인건비가 급등하고, 미국의 수출 주문 오더는 감소하는데 정부의 긴축 정책으로 은행 대출길은 막혔다. 난왕 그룹 장젠 회장은 도피 중 중국 주간지인 <중국기업가>와 인터뷰하면서 “은행에서 돈을 빌려주지 않아 할 수 없이 고리대금을 빌렸는데, 10개월 만에 이자가 원금의 두 배로 불어났다”라고 털어놓았다. 결국 “라인을 돌리는 것이 도산으로 가는 지름길”(저우 회장)이라는 외통수에 몰리고 만 셈이다.

중국 정부는 이우와 원저우의 몰락을 ‘성장통’으로 여기고 있다. 싸구려 라이터나 신발 장난감 등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개혁 개방 초기의 유아적 비즈니스에서 벗어나 산업 구조 고도화로 진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어쩔 수 없는 희생양이라는 것. 첨단 기업은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사양 산업은 규제의 틀을 강화하고 있는 것도 버릴 것은 버리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래서인지 중국 정부는 경제 현상을 전혀 비관적으로 보고 있지 않다.

▲ 피혁과 의류 점포가 모여 있는 이우 시 중싱샤오치의 한 상가. 불경기로 빈 점포와 세놓음 광고만 잔뜩 붙어 있다.

신화통신은 2분기 경제성장률이 10.1%로 개혁 개방 30년의 평균 성장률보다 여전히 0.3% 포인트 높다고 강조했다. 7월 수출 증가율은 9.3% 포인트나 높아진 반면 정부의 과열 억제로 고정자산 투자 증가율은 0.5% 포인트 상승에 그쳤다고 지적했다. 소매 증가율도 0.3% 포인트 높아지는 등 모든 면에서 지표가 안정적인 성장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강조했다. 물가는 높은 인플레이션 압력에도 3개월 연속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원자재 가격 상승 등의 압력이 높지만, 정부가 지금처럼 물가 잡기에 노력한다면 안정적 하향세를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의 도산과 관련해 중소기업들이 자금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으나 정부가 중소기업 지원 대책을 마련하고 있어 조만간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낙관했다.

그러나 수십만 개의 중소기업이 일시에 경영난으로 몰리면 대규모 실업이 발생해 사회적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은 문제다. 4분기 연속해서 경제성장률이 하락했다는 것이나, 소비자물가와 달리 지난 7월 생산자물가가 10.1%로 12년 만에 최고 수준에 달해 인플레이션 압력이 가중될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여러 악재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 아직 펀더멘털이 취약한 중국 경제를 곳곳에서 위협하고 있다는 점도 큰 문제다. 중국 증시는 지난해 10월 고점 이후 60% 이상 하락했고, 부동산 시장은 얼어붙어 자산시장이 탈진 상태다. 소비가 늘어날 수 없는 구조에 빠졌음은 물론 금융회사들은 부실화의 위험에 노출되었다.

미국·유럽 등의 경기 침체로 수출 수요는 증가세를 보이기 어려운 상황인 반면 긴축 정책의 여파로 은행들이 기업 대출을 죄고 있어 기업들은 자금난에 허덕이고 있다. 정부가 대규모 부양책을 기획하고 있다고 하지만, 물가 불안이 여전해 쉽사리 칼을 빼기도 쉽지 않는 상황이다. 리만브라더스가 내년도 중국의 경제 성장률을 8.0%, 도이체방크가 9.3%로 전망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중국과 다른 나라는 현상에 대한 해석뿐 아니라 앞날을 전망하는 시각 차이도 매우 크게 나타나고 있다. 중국이 낙관론이 근거 있었음을 증명해낼 수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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