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되건 한반도가 들썩인다
  • 진병기 (내일신문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2008.09.09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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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한국에 아프간 재파병 요구할 듯… 매케인, 일본 역할 강조하며 북한 ‘목 조르기’
▲ 북한이 지난 6월27일 영변 원자로의 냉각탑을 폭파하고 있다. ⓒ뉴시스

지난 8월 말과 9월 초 미국은 민주당과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를 선출했다. 선출된 두 대통령 후보는 한국에 직접 관련된 쟁점에서 상징적인 입장 차이를 드러냈다. 민주당 후보인 오바마는 한·미 FTA를 반대하고, 공화당 후보인 매케인은 북한 핵에 대해 부시보다 더 강경하게 폐기를 요구했다. 오바마는 경제 쟁점을, 매케인은 안보 쟁점을 부각시켰다.

후보 선출이 끝나면서 미국 대선이 한국과 한반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커지고 있다. 한국 정부는 민주·공화 두 진영의 정강 정책을 파악하고 정책 집단에게 한반도의 이익을 반영할 수 있는 채널을 늘리기 위해 물밑 접촉을 강화하고 있다. 정부는 두 진영에서 외교안보 정책을 다룰 책임자들, 특히 NSC의 국가안보보좌관과 동아시아국장과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 후보군을 정밀 검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양측 외교안보 정책 책임자 파악에 부심

재미있는 사실은 미국 민주당이 한국의 한나라당과 민주당 대표단을 모두 초청했으나, 공화당은 한나라당 대표단만을 불렀다는 사실이다. 공화당측은 한국 민주당의 참석 요구에 대해 “전통적으로 보수 정당(Conservative Party) 대표만을 초청하는 것이 관례다”라며 끝내 초청장을 발급하지 않았다. 국제 정치의 기준으로 볼 때 한국의 민주당은 좌익 정당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따라서 미국의 공화당이 한국에서 파트너십을 한나라당하고만 구축하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는 미국에서 오바마가 집권하지 않으면 한국 민주당이 수권 능력 중 하나인 외교력 구축에서 그만큼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미국의 대선은 한국의 국익과 정치·경제 다방면에 벌써 보이지 않는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의 대선이 한국에 미칠 영향을 전망하는 데는 여러 가지 접근법이 필요하다. 우선 원리적인 측면에서 미국 대선과 한국 관계의 경향성을 살펴보자. 최근 들어 미국의 집권자가 민주당원(Democrat)이냐 공화당원(Republican)이냐에 따라 한반도에 대한 이해관계에서 무게 중심이 달라지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비록 1차 북핵 위기 때 클린턴 대통령은 북한 영변 지역에 대한 정밀 폭격까지 고려했지만, 방북한 카터 전 대통령의 건의를 받아들여 협상으로 돌아섰고, 퇴임 직전 방북 일정까지 잡은 바 있다. 그의 임기 때 한국은 국제통화기금(IMF) 관리를 받아야 했고, 미국 금융 자본에게 막대한 국부를 팔아서 위기를 넘겨야 했다. 결과적으로 민주당원인 클린턴 대통령은 한반도 안보 문제에서는 상대적으로 협상과 양보를 통해 접근했으나, 경제적으로는 한국인들에게 고통을 가중시킨 셈이 되었다.

반면 공화당원(Republican)인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 파병과 한·미 동맹의 재조정, 북한 핵에 대한 강경 대응 등으로 안보 문제에서 미국의 일방적 우위를 행사했지만, 재임 8년 동안 경제 관계에서는 이렇다 할 압력을 행사하지 않았다. 쇠고기 수입 재개 문제조차도 한·미 관계를 의식해서 우리 정부가 서둘러 타결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 민주당의 오바마와 공화당의 매케인 대통령 후보. ⓒAP연합

민주당이 집권하면 경제, 공화당이 집권하면 안보 문제로 고달파질 듯

‘민주당 대통령은 경제 압력, 공화당은 안보 공세’라는 등식에 대해 외교 전문가들이나 학자들은 지나친 도식화라고 비판한다. 과거에 이와 상반된 양상도 많았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을 치른 미국 대통령이 민주당원인 트루먼이었고, 주한미군 철수를 내세워 인권 개선 압력을 행사한 사람도 민주당원인 카터였다. 반면 한국 경제를 개방 경제로 탈바꿈시킨 1980년대 중반의 대대적인 수입 개방 압력은 공화당원인 레이건 대통령 시절에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미국 공화·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나타난 두 대선후보의 한국 관련 정책 기조를 보면, 적어도 1990년대 이후 일정한 경향으로 자리 잡은 패턴이 다음 한·미 관계에서도 다시 등장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은 미국에서 민주당이 집권하면 경제 문제로 시달리고, 공화당이 집권하면 안보 문제로 고달파질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미국의 대통령이 ‘민주공화국(democratic republic)’의 운영 원리에 따라 ‘민주주의자’와 ‘공화주의자’가 번갈아가며 집권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다.

‘민주주의자’는 국민(people)의 가치를 국가(state)보다 더 우위에 둔다. 민주주의자는 국민의 합의 과정을 정치의 근본으로 삼는다. 반면 ‘공화주의자’는 일단 국민의 합의로 만들어진 이상 국가(state)의 권능이 국민 일부의 의사보다 우위에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법과 질서에 대한 의지가 강력하고 국가의 힘을 행사하는 쪽에 무게를 둔다. 그 결과 미국의 ‘민주주의자’ 대통령은 국제 관계에서 ‘민간과 민간의 관계’인 경제 문제를 다루는 데 더 힘을 쏟는 반면, ‘공화주의자’ 대통령은 ‘국가 대 국가관계’인 안보 문제에 더 정력을 쏟는 양상을 보이는 것이다.

이와 같은 원리적 분석법을 바탕으로 해 구체적인 정강 정책을 통한 분석을 시도해보자. 오바마와 매케인은 동북아시아에서 한국의 비중을확연히 다르게 보고 있다. 매케인은 일본을 동북아시아의 ‘맹주’로 내세울 생각을, 이번 정강 정책에서 표현했다. 반면 오바마는 한국을 일본과 동렬에 놓되 순서상 뒤에 두었다. 매케인이 질적으로 일본의 비중을 높였다면 오바마는 양적인 차이 정도를 둔 셈이다. 오바마의 정강 정책 일부분은 다음과 같다.

“아시아에서 미국의 의무에 헌신하겠다. 이것은 일본·호주·한국·태국 등 동맹국과 필리핀, 그리고 갈수록 관계가 깊어지는 중요한 민주주의 파트너인 인도와 강력한 관계를 유지해 안정과 번영을 이루는 데서 시작된다. 또 아시아에서 쌍무 협정이나 임시 정상회담보다 효과적인 틀을 만들어내야 한다.”

반면 매케인은 “미국은 태평양 국가이고(The U.S. is a Pacific nation) 아시아와 오랫동안 역사적인 유대를 맺으며 좀더 강력해졌다”라고 전제하면서 다음과 같이 동맹국을 서열화했다. “호주는 모든 중요한 쟁점에서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해왔다. 양국의 유대는 매우 특별하다. 일본과의 오랜 동맹은 아시아에서 평화와 번영의 기초였다. 우리는 일본이 이 지역과 세계적인 측면에서 지도적 역할(leadership role in regional and global affairs)을 하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한국은 우리와 함께 독재 미치광이 정권을 상대로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는 ‘가치 있는 동맹(valued ally)’이다. 미국은 북한의 핵확산 활동에 대한 충분한 해명과 아울러 핵 프로그램에 대한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폐기(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 요구를 철회하지 않을 것이다.”

매케인, 일본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강력 지지

오바마는 특정 동맹국을 맹주로 삼는 방식이 아니라 아시아 지역 국가들과 집단적·다자적 안보 체계를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 매케인의 정책은 한국의 정치에 민감한 반응을 부를 수 있는 요소로 가득하다. 일본을 동북아시아의 리더 국가로 내세우면 한국은 일본의 지도를 받는 관계라는 논리가 성립되기 때문이다. 매케인은 일본이 유엔 안보리의 상임이사국이 되는 것을 강력히 지지하고 있다. 이는 일본이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국가가 되는 것이다.

매케인은 중국에 대해서는 정치적·종교적 자유를 보장할 것을 압박해나갈 것임을 천명하고 있다. 그는 정강 정책에 “중국의 지배자들은 경제적 자유가 국가적인 부를 이끌었으며, 다음 과제는 정치적·종교적 자유가 국가의 위대함을 이끌 것이라는 점을 발견했다”라며 중국에 대해 정치적·종교적으로 자유를 확대하라고 요구할 것임을 명시했다. 매케인이 중국과 대결하며 일본을 끌어올리면, 한국은 한·미·일 3각 체제에서 하부구조로 편입되는 압력을 받는 상황이 도래하게 된다.

매케인의 정강 정책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이명박 정부가 새로운 한·미 관계로 추구하고 있는 ‘한·미 전략동맹’에 대한 관심이 배제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부시 대통령에게 미래의 한·미 관계를 대북 억지 차원에 국한되는 ‘전술 관계’가 아닌, 동북아 지역과 세계적 차원에서 가치·신뢰·평화를 추구하는 ‘전략적 관계’로 격상해가자고 제의해놓은 상태다. 그러나 매케인의 정강 정책은 한국에 대해서 지역적·세계적 차원의 어떠한 역할과 기대도 포함시키지 않았고, 단지 북한을 상대하는 ‘전술 동맹’으로만 못 박아놓았음이 앞의 정강 정책에 드러나 있다. 지역적·세계적 역할은 일본의 몫이라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한·미 전략동맹 격상’ 구상은 오바마에게서도 배제될 공산이 크다. 오바마는 한·미 동맹을 양자 관계보다는 아시아에서 다자 구도의 새로운 동반자 관계로 추진하겠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그는 양자 합의, 간헐적인 정상회담, 6자회담 같은 임시적인 대화 장치를 뛰어넘어 새롭고 항구적인 아시아 집단 안보체제(new and lasting framework for collective security in Asia)를 창출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는 아시아의 동맹국 못지않게 인도와 민주주의 동반자 관계를 심화시키고, 중국도 중시함으로써 ‘반중국 해양 세력 연대’와 같은 것을 만들 생각이 없음을 명확히 했다. 이는 가치보다는 현실적 협력을 우선시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이명박 정부가 한·미 전략동맹의 3대 내용으로 ‘가치동맹·신뢰동맹·평화구축동맹’을 제시했지만 최소한 ‘가치동맹’은 성립될 수 없게 된다.

‘가치동맹’이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가치를 공유하는 미국의 동맹국들이 하나로 뭉치는 것인데, 오바마는 이런 편 가르기 방식으로 중국을 상대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중국 등을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들이 항구적인 아시아 집단 안보체제를 만들자는 것이기 때문에 한국의 비중을 따로 높여줄 수 없는 논리다.

오바마의 민주당 전당대회에 참석한 민주당 안희정 최고위원은 오바마 진영의 외교안보 정책 책임자들을 만났다. 안최고위원은 그들로부터 “우리는 이라크로부터 아프가니스탄으로 병력을 옮길 것이다. 한국이 아프가니스탄에 재파병해줄 것을 요청할 생각이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그가 만난 오바마의 외교안보 정책 브레인은 수전 라이스 전 국무부 차관보, 앤소니 레이크 전 국가안보보좌관, 그레그 크레이그(Craig) 전 대통령 특별고문 등이다. 오바마 팀은 수전 라이스에 대해 “우리의 라이스”라고 부른다. 부시의 라이스 국무장관에 비견하는 인물로 오바마가 집권하면 국가안보보좌관이 될 것이 유력시 되는 인물이고, 레이크는 국무부장관감이며, 크레이그 역시 중용될 인물로 알려져 있다. 안최고위원은 “그들이 오바마 진영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볼 때 아프가니스탄 재파병 요구는 시간 문제로 받아들여졌다”라고 말했다.

부시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이라크 파병의 시련을 안겼다면, 오바마가 집권하면 미국은 이명박 대통령에게 아프가니스탄 재파병이라는 고약한 시험 문제를 낼 가능성이 크다. 우리 정부는 2007년 인질 석방의 대가로 한국군을 철수시켰기 때문이다.

오바마는 집권하면 16개월 내에 완전 철군이라는 시한을 못 박아버렸다. 그 대신 알카에다를 향한 대테러 전쟁을 온통 아프가니스탄으로 집중하겠다는 계획이다. 산악지대의 테러 세력 기지를 일일이 찾아들어가 공격하는 소탕 작전을 펼치게 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오바마가 집권하면 주한미군의 아프가니스탄 차출과 함께 한국군의 재파병 요구가 한·미 동맹의 딜레마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 아프가니스탄에서 작전 중인 미군들이 가즈니의 한 마을을 사주 경계하며 수색하고 있다. ⓒU.S.Army

오바마 “직접 외교로 한반도 비핵화 이행”

반면 매케인은 “100년도 주둔할 수 있다”라며 이라크가 주전장이 될 것임을 다짐했다. 대테러 전쟁의 전장이 어느 쪽으로 옮겨지느냐에 따라 우리나라는 석유 등 에너지 확보와 재파병의 딜레마를 겪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 핵문제야말로 미국 대선 결과에 따라 가장 크게 진폭을 거듭할 사안이다. 북이 핵불능화 조치를 중단하고 다시 핵을 복구하는 것도 미국 대선 풍향을 직접적으로 타고 있는 탓이다. 오바마는 “북한 핵 문제에 대해 입증 가능한 결론을 내리기 위한 뒤늦은 외교적 노력을 지지한다. 6자회담과 함께 직접 외교(direct diplomacy)를 통해 한반도 비핵화를 완전히 이행하겠다”라는 정책을 세웠다. ‘직접 외교(direct diplomacy)’로 북한을 설득하겠다는 정책을 확정한 것이다. 부시 정부는 북·미 직접 협상을 벌이면서도 6자회담 틀 안에서임을 일부러 강조해왔다. 대통령 정책으로 ‘직접 외교(direct diplomacy)’가 확정됨으로써 북한 핵문제가 미국 외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질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오바마는 김정일 위원장과도 만나겠다고 밝힌 바 있어 그가 집권하면 클린턴 말기에 중단되었던 수교와 정상회담의 흐름이 급물살을 탈 수 있다. 반면 매케인은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폐기(CVID)’를 요구해 부시 행정부보다 더 강한 입장을 취했다.

차기 미국 대통령의 1기 임기가 끝나는 2012년은 김일성 탄생 100주년으로 북한이 정책 대전환의 목표 시한으로 잡고 있다. 현재 정책 기조라면 오바마는 한반도 평화 협상에 성공하거나 북한에 외교적으로 패배해 굴욕을 당하는 상황을 맞을 수 있다. 매케인은 북한을 굴복시키거나 한반도의 긴장을 크게 높이는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어느 쪽이 되든 두 후보는 클린턴이나 부시 때와는 전혀 다른 강도로 한반도에서 격변과 안정을 부를 정책 기조를 세우고 있는 셈이다.

국가전략연구소 조성렬 신안보연구실장은 “미국의 외교 정책은 단순히 행정부만의 문제가 아니라 의회와 일반 국민의 정서 등 포괄적인 요인이 작용하는 것인 만큼 미국 대선이 끝날 때까지 우리 정부와 국회 지도자들은 양측 대선 캠프의 인사 등을 두루 접촉하면서 서로 이해의 폭을 넓혀야 한다. 특히 이 기간에 미국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에 동맹국인 한국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리고 그에 맞게 한국의 입장을 잘 반영하는 정책을 다듬도록 공감대를 만들어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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