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과 야심 뒤엉킨 삼각관계
  • 감명국 (kham@sisapress.com)
  • 승인 2008.12.01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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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건평 - 박연차 - 정대근은 어떤 사이였나 / 노씨 매개로 노 전 대통령과 친분

▲ 노건평씨,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 정대근 전 농협 회장(위 왼쪽부터 시계 방향).

봉하마을의 기류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 노건평씨는 억울함을 호소하며 속칭 ‘봉하대’(노무현 전 대통령 사저)를 향해 섭섭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고, 노 전 대통령측은 “별일 없기를 바란다”라며 담장 너머 일과 애써 선을 긋고 있다. 돈독한 형제간으로 알려진 두 사람 사이에 뭔가 ‘불편함’이 잔뜩 도사리고 있는 느낌이다.

노씨는 11월24일 자택을 떠난 이후 28일 현재까지 잠행을 계속하고 있다. 한때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의사를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으나 끝내 나서지 않고 있다. “먼 데 있다”라고 한 것과는 달리 노씨는 현재 봉하마을 근처 지인의 집에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27일 저녁 지인들과 가진 술자리에서 만취해 자해 소동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노건평씨가 동생측에 섭섭해한 까닭

이 자리에서 노씨는 “정말 억울하다. 자살하고 싶다”라는 속내를 내비쳤다고 한다. 노씨의 한 최측근은 11월28일 오전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언론과 검찰에 대해 격한 감정을 쏟아냈다. 그는 “(언론 보도가) 전부 ‘카더라’ 아니냐. 언론은 검찰에서 흘린 얘기만 받아쓰면 될 것이다. 하지만 나중에 진실이 제대로 밝혀질 경우 그 책임을 다 어떻게 하려고 그러는가”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노씨가 진짜 억울해하는 속내는 무엇일까. 또, 그가 노 전 대통령측에 섭섭함을 토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번 사건의 세 핵심 인물은 노씨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 그리고 정대근 전 농협중앙회 회장이다. 세 사람의 인연은 아주 깊고 오래되었다. 노 전 대통령의 정치 인생보다 훨씬 더 전의 인간 관계였다. 이번 세종증권 사태를 바라보는 김해 봉하마을 주변에서는 “세 사람의 인간적 관계로 볼 때 노씨가 ‘얘기나 한 번 들어봐라’라며 소개한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고 자연스런 일이다”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물론 그 와중에 노씨에게 실제 금품이 오갔는지는 별개로 하고 나온 말이다.

노씨가 1942년생이고, 정 전 회장이 1944년생, 박회장은 1945년생이다. 노씨의 고향은 경남 김해이고, 정 전 회장과 박회장은 바로 이웃한 밀양이 고향이다. 세 사람 관계의 연결 고리는 노씨이다. 노씨는 1969년서부터 1978년까지 세무공무원을 했다. 박회장은 1971년 지금 태광실업의 전신인 정일산업을 설립했다. 이 회사는 당시부터 지금까지 계속 김해에 있다. 같은 지역에서 기업인과 세무공무원으로 두 사람은 그렇게 만났다. 박회장은 지난해 한 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 “김해는 조그만 농촌의 시골 도시이다. 서로들 다 알고 지낸다. 그래서 건평씨와도 가끔 만나서 술 한 잔 하고 얘기하는 그런 사이였다”라고 밝혔다. 노씨 또한 “성공한 기업인으로 존경할 만한 사람이다”라고 평소 박회장에 대한 호감을 감추지 않았다.

정 전 회장은 1975년 불과 30대 초반의 나이에 밀양 삼랑진의 농협조합장이 되었다. 그는 이 지역의 조합장만 무려 24년을 하면서 착실한 지역 기반을 다진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김해나 밀양이 같은 생활권인 지역에서 노씨와 정 전 회장도 이때부터 친분을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박회장과 정 전 회장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박회장은 “몇 년 전에 딱 한 번 다른 사람들과 함께 만나는 자리에서 얼굴을 본 적은 있지만, 특별히 개인적인 친분은 없다”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주변에서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거의 같은 연배에 동향인 데다가 지역에서 두드러지게 성공한 인물로 꼽히는 두 사람은 꾸준히 교류를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두 사람과 노 전 대통령과의 관계 또한 역시 노씨를 매개체로 하고 있다. 노씨는 1988년 노 전 대통령이 13대 총선에 부산에서 출마하자 “동생 선거 자금으로 쓰려고 한다”라며 자기 소유의 김해 임야를 박회장에게 사줄 것을 부탁했다. 당선 직후 노씨의 소개로 두 사람은 처음 인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전 회장 또한 노씨를 매개체로 해서 노 전 대통령과 이전부터 친분을 쌓았다.

2005년 12월 현대자동차로부터 3억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어 수감 중인 정 전 회장은 정치적 야심이 대단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지방의 한 단위농협 조합장에서 1999년 일약 농협중앙회 회장으로 선출될 만큼 수완과 뚝심도 대단하다는 평이다. 원철희 전 회장이 구속된 이후 치러진 1999년 3월 농협 회장 선거에서 정 전 회장은 당시 김대중 정부의 실세들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호남 출신의 한 후보를 따돌리는 이변을 연출했다. 그는 지역 단위농협 조합장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중앙회장에 선출되었다. 그는 2000년 축협을 흡수 통합하고 그해 통합 농협의 초대 회장에 다시 선출되는 등 탄탄한 입지를 굳혀왔다. 그런 정 전 회장에게 2002년 12월 대선에서 평소 친분이 있었던 노 전 대통령의 당선은 희소식이었다. 이때부터 농협은 노무현 정부와 관련해서 의혹과 비리가 불거질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했다. 노무현 정부 출범 첫해에 이미 문병욱 썬앤문 회장(노 전 대통령의 부산상고 후배)에게 수백억 원의 불법 대출을 해준 의혹은 특검의 수사 대상이 되기도 했다. 또, 노 전 대통령의 사돈인 배병렬씨를 자회사의 감사로 영입하면서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그는 2004년 농협 회장 재선에 성공했다. 농협의 한 관계자는 “정 전 회장은 앞선 두 전임 회장들이 그랬던 것처럼 국회의원이 되려는 야망을 갖고 있었다. 내부에서는 2008년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출마할 것이라는 얘기가 파다했다”라고 전했다. 농협 주변에서 정 전 회장을 둘러싼 숱한 비자금 의혹이 불거지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검찰에서는 정 전 회장이 조성한 막대한 비자금과 세종증권 로비 50억원 등 자금의 흐름을 관심 있게 쫓고 있다. ‘금배지’를 노렸던 그의 방향성과 돈의 흐름이 무관치 않을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농협중앙회 노조의 2007년 1월2일자 성명서에는 정 전 회장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 정치 권력 인사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어온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이 성명서는 당시 노조가 정 전 회장측을 압박하기 위해 그날 홈페이지 게시판에 올렸다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곧바로 삭제한 것으로, 당시 이 성명서를 보관하고 있던 농협의 한 관계자로부터 입수한 것이다. 노조측은 이 성명서의 존재와 게시판에 일시 올렸다가 바로 삭제한 사실을 인정했다.

이 성명서의 제목은 ‘조직을 말아먹는 오적(五賊)’이었다. 노조측은 농협의 오적으로 정 전 회장과 임원들 및 그 주변의 친위 세력들을 꼽으면서 ‘회장의 약점을 이용하여 인사 청탁을 하고 농협 내 이권을 챙기려는 정치인’도 하나의 적으로 꼽았다. 회장의 약점을 이용해 이권을 챙기려 했다는 대목이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이 성명서에는 ‘회장도 어찌할 수 없는 인사가 있다는 소문이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인사 며칠 전부터 정치권 중진인 K, L 그리고 실세인 L 국회의원이 밀고 있다고 떠돌던 인사들이 실제 지역본부장과 위인설관(爲人設官)의 전형인 상무대우로 임명되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 전 회장, 금배지 야망 있었다”

농협 비리를 제보한 한 관계자는 “지금 검찰 수사에서 나오고 있는 이른바 노 전 대통령의 측근이라고 하는 정화삼씨나 박연차씨 등도 모두 회장의 약점을 이용해 자신의 잇속을 챙기고자 한 ‘브로커’들과 다름없는 사람들이다”라고 비난했다.

정 전 회장은 노 전 대통령과 직접적인 친분 관계가 약했다는 증언이 많다. 끊임없이 권력에 구애의 손길을 내밀었지만 확실한 연줄은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유난히 그의 주변에 노 전 대통령 측근 인사로 자처하는 이들이 많이 들끓었다고 한다. 이들은 농협의 눈먼 돈에 탐을 내고 정 전 회장의 상황을 이용하려 들었다. 악어와 악어새 구도가 형성된 셈이다.

현재 검찰이 겨누고자 하는 칼끝이 노건평씨가 최종 지점은 아니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검찰 주변에서는 그 칼끝이 노 전 대통령측으로 향하고 있다는 말이 많다. 정 전 회장이 노 전 대통령에게 직접 선을 대기 위해 애썼을 때 그 중간에서 가장 적극적인 역할을 자처하고 나선 이가 누구인지가 관건이라는 것이다. 적어도 그 주인공이 노건평씨일 가능성은 다소 적어 보인다는 얘기는 검찰 주변에서도 나온다. 노씨가 지금 굉장히 억울해하며 자해 소동까지 벌이고 있다는 정황과 어느 정도 맥이 통한다. 하지만 노씨가 소극적이나마 역할을 했고, 그 대가를 취득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는 것이 검찰의 확신이다.

▲ 노무현 전 대통령이 거주하고 있는 경남 김해 봉하마을. ⓒ시사저널 임준선

“노 전 대통령은 박연차 회장 믿지 않는다”

검찰이 잔뜩 노리고 있는 인물은 박회장이다. 실제 박회장은 농협 덕에 너무나 많은 이득을 취했다. 검찰에서도 이해하기 힘들 정도의 엄청난 특혜라는 얘기이다. 노 전 대통령측이 이번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는 이유도 친형인 노씨에 비해 박회장을 썩 믿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회장에 대해 파고들면 들수록 어떤 식으로든 현재의 봉하마을과 연관이 되기 때문에 노 전 대통령 측은 그 점을 못내 부담스러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 전 대통령의 측근으로 통하는 부산상고 출신의 한 관계자는 기자에게 박회장의 ‘봉하대 입지’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지금 언론에서 박회장을 강금원 회장과 더불어 ‘영감’ (노 전 대통령)의 양대 후원자로 소개하고 있는데, 이것은 내부 실상을 모르고 하는 소리이다. 내부에서 강회장과 박회장은 그 입지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 강회장은 그야말로 영감이 신뢰하고 속내까지 다 주고받을 정도의 측근 중의 최측근이다. 하지만 박회장은 아니다. 영감은 박회장을 신뢰하지 않는다. 전형적인 장사꾼이라고 생각한다. 형님과 워낙 오래전부터 잘 알고 지내는 사이이고, 또 영감이 1988년 정치에 처음 입문할 때부터 도움을 주었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매정하게 대할 수는 없는 관계에 있지만, 영감이 한 번이라도 먼저 박회장에게 손을 내민 적이 있었나. 박회장 역시 영감 대신 김해에 있는 형님 곁에만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그는 영감의 후원자가 아니라 형님의 후원자이다. 아무리 대통령이래도 그가 자기 형님의 30년 인간 관계까지 끊어라 마라 할 수는 없는 것 아니냐. 그런 박회장이 영감을 대신해서 비자금을 관리했을 가능성이 있다? 강회장이 있는데, 박회장이 왜? 전혀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이다.” 실제 박회장의 측근으로서의 행보를 보면, 노 전 대통령측의 일을 알아서 먼저 해결해주는 사례가 많았다. 대표적인 것이 현재 ‘봉하대’의 터전 마련이었다. 노 전 대통령 사저 주변 땅을 매입하는가 하면 그 땅을 노 전 대통령측에 되팔아 현재의 터전을 마련케 해준 장본인으로 알려지면서 그는 ‘대통령의 후원자’로 입지를 굳혔다. 그는 노씨가 실질적으로 관여하고 있던 한 토건 회사에 하청을 몰아주며 노씨에게 상당한 경제적 이득을 제공하기도 했다.

현재 노건평씨가 노 전 대통령측을 향해 매우 섭섭한 감정을 갖고 있는 것도 “마치 ‘형님의 일은 형님이 알아서 하고, 여기까지 오게 하지 마라’라는 식으로 나오는 듯한 노 전 대통령의 반응 때문이다”라고 한 지인은 전하고 있다. 그만큼 지금 ‘봉하대’는 노씨 선에서 칼끝이 멈추기를 바라고 있다. 워낙 엄청난 경제적 이득을 많이 취했던 박회장과 상당한 위험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노무현 정권에 구애의 손길을 내밀었던 정 전 회장. 두 사람이 안고 있는 ‘뇌관’이 향후 어디로 튈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여기저기서 모두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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