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떠오른 ‘박연차 리스트’
  • 감명국·김지영 기자 (kham@sisapress.com)
  • 승인 2008.12.09 0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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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끝 겨눈 중수부, 2003년에도 정치 자금 내사…인맥 광범위해 뭐가 튈지 ‘예측불허’

▲ 박연차 회장(가운데)이 12월4일 부산지법에서 열린 비행기 기내 난동 사건 항소심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검찰의 칼끝이 숨 가쁘게 이동하고 있다. 정대근 전 농협중앙회 회장에서 노건평씨로, 노씨에서 이제 정조준된 칼끝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을 겨누고 있다. ‘박회장이 수백억 원대(1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는 시각도 있다)의 비자금을 조성한 의혹이 있다’라는 국세청의 고발은 검찰을 한껏 흥분시켰다. 박회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후원자’로 잘 알려진 탓에 일각에서는 “사실상 노무현 정권의 비자금이 아닐까”라는 섣부른 전망도 나왔다. 노 전 대통령측은 박회장과의 관계에 대해서 명확히 선을 긋고 나섰지만, 이런저런 얘기들이 불거지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모습이다. 박회장이 구 여권인 열린우리당 의원들에게 자주 지갑을 열었다는 얘기 때문이다.

구 여권 의원들에게 후원금 줘 물의 빚기도

박회장 수사로 인해 긴장하고 있는 곳이 비단 봉하마을과 구 여권인 민주당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한나라당도 뭔가 찜찜한 표정이다. ‘박연차 후폭풍’이 정치권 전체를 강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이유이다. 박회장의 인맥은 이명박 정부의 중심부에도 닿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회장 주변에서는  “박회장은 돈을 잘 썼다. 화통하고 기분파여서 쓸 때는 확실히 쓴다. 뚜렷한 정치 성향이 없었던 것만큼 여권이든 야권이든 가리지 않고 두루두루 잘 어울렸다. 특별한 대가를 바라는 것도 없이 인간적으로 다가서는 박회장에게 호감을 가진 정치인들도 많았다”라고 전하고 있다.

정가에서는 박회장이 정치자금을 제공했으리라고 추정되는 정치인들의 명단이 나돌고 있다. 이른바 ‘박연차 리스트’로 불리는 인사들이다. 이는 박회장의 인맥을 간접적으로나마 들여다볼 수 있는 자료가 된다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이 리스트에는 구 여권 인사와 현 여권의 인사들이 섞여서 거론된다. 박회장의 보폭 넓은 광범위한 인맥 관계를 잘 보여주는 셈이다. 일부 언론에서 박회장과 친분 있는 정치인으로 실명이 소개된 인물들도 더러 있지만, 아직은 의혹이 제기되는 정도로 거론되는 인사들인 데다가, 검찰 수사가 아직 구체적으로 진행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실명은 밝히지 않기로 한다.

구 여권 인사들로는 ㅁ 의원과 ㅇ 전 수석, 그리고 ㅅ 전 의원 등이 대표적으로 오르내리고 있다. 모두 중진급 이상의 무게감 있는 인사들이다. 여기에 ㅇ 의원과 ㅇ 전 의원, ㅈ 의원과 ㅈ 전 의원, ㅅ 의원, ㄱ 전 의원과 또 다른 ㄱ 전 의원 등이 포함되어 있다. 현 여권 인사로는  ㄱ 의원과 ㄱ 전 의원, ㄷ 전 의원, 그리고 한 공기업의 대표로 취임한 ㅈ 사장 등이 대표적으로 거명되고 있다.

박회장은 지난 2006년 당시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 현역 의원 20여 명에게 수백만 원씩 총 1억원에 가까운 돈을 후원금으로 낸 사실이 밝혀져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다. 당시 박회장은 자신이 직접 나서기보다는 가족 혹은 회사 직원들의 명의로 정치 후원금을 간접 제공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20명에 포함된 인사들 중에서 몇몇은 리스트에도 중복되어 거론되고 있다.

특징도 있다. 구 여권 인사들은 대개가 노무현 정권의 실세들이었거나 ‘친노’ 성향이 강한 정치인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는 반면, 현 여권 인사들은 모두 부산·경남에 지역구를 둔 정치인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리스트에 거론된 인사들 중 구 여권의 실세로 알려진 한 의원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박회장과는 단 한 번도 따로 만난 적이 없다. 다만, 몇 년 전 북한을 단체로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때 일행 가운데 한 명이 박회장이었고, 거기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인사한 것이 전부였다”라고 말했다. 정치 후원금을 받았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박회장 명의로 후원금을 받은 적은 없다. 하지만 박회장의 친인척이나 회사 직원들 명의로 후원금이 들어왔는지는 한 번 확인해볼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 박용석 중수부장(위)이 이끄는 검찰 수사진은 ‘박연차 돈’의 흐름을 추적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회장은 특별한 정치적 성향이 없는 것으로 알려진다. 다만, 자신의 사업 기반이 한나라당 텃밭인 부산 경남 지역인 탓에 2000년대 초 한나라당 재정위원을 지내는 등 한나라당 인사들과 비교적 가까웠다는 전언이다. 하지만 2002년 12월 노 전 대통령의 당선 이후부터 급격히 ‘친노’ 성향의 인사들과 가까웠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가지 눈에 띄는 점은 김대중 정권의 실세들이나 호남 정치인은 거의 거론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박회장은 정치인뿐만 아니라 기업인·법조인 혹은 의외의 인물들과도 친분을 쌓는 등 다양한 인맥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향후 대통령의 친형이 되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을 1970~80년대에 지방의 촌부였던 노건평씨와도 친분을 유지했을 정도로 그의 친화력은 상당히 폭이 넓다는 평이다.

검찰은 “정치권 로비 공식 수사 없다”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과의 친분설이다. 박회장 주변에서는 “박회장은 젊은 시절 이회장과도 술자리에 어울릴 만큼 친분이 있었다”라고 전하고 있다. 올림픽 레슬링 종목의 메달리스트 출신이었던 한 체육인은 몇 해 전 기자에게 이건희 회장과의 인연을 소개하던 도중에 “이회장이 레슬링협회장을 하던 시절 박회장을 봤다. 그분들은 함께 술자리도 많이 했다. 나도 낀 적이 있었다. 모두 40대의 젊은 시절 얘기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정가 주변에서는 박회장의 광범위한 인맥이 이명박 정부와도 선이 닿아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박회장과 이대통령측과의 연결 고리로 주목되는 인사는 검찰에서 고위직을 지낸 ㅇ 변호사이다. 법조계에서는 그의 변호사 사무실을 박회장이 마련해주었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두 사람의 관계는 아주 막역한 것으로 알려졌다. ㅇ 변호사 역시 이명박 정부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정도로 대통령의 측근 인물로 알려져 있다.

대검 중수부측은 현재 “박회장에 대한 수사의 핵심은 해외 법인을 통한 수백억 원대의 탈세 혐의와 내부 정보를 이용한 세종증권의 주식 매매와 차명 거래 그리고 휴켐스 헐값 매입과 로비 의혹 등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박회장에 대한 정치권 전반의 로비 가능성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수사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밝히고 있는 셈이다.

중수부, 비자금 향방 집중 추적 중인 듯

하지만 확인 결과, 대검 중수부는 이미 지난 노무현 정부 시절부터 박회장의 정치권 로비 의혹에 대해 내사에 들어간 전력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2003년 당시 안대희 현 대법관이 대검 중수부장으로 있으면서 박회장의 정치자금 의혹을 은밀히 내사했다는 것이다. 당시 박회장의 돈 심부름을 한 인물로 의심되는 회사 내부 직원을 직접 조사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수사는 내사 수준에서 종결된 것으로 알려졌다. “첩보가 들어와 내사를 진행했으나 별 다른 단서가 없어 조기 종결했다”라는 것이 한 검찰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럼에도 지방의 한 회사를 지역 검찰청이 아닌 대검 중수부에서 직접 은밀히 내사했다는 점에서 당시 상당한 수준의 첩보가 입수된 것으로 보인다. 중수부는 당시의 첩보 자료를 다시 꺼내들고 박회장이 조성한 수백억 원대의 비자금이 어디로 흘러갔는지를 집중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현재 박회장의 해외 사업에 대해서도 관심 있게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회장이 중국과 베트남 등지에 현지 회사를 설립하고 친분 있는 인사들을 해외로 데리고 나가 로비했다는 첩보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 박회장은 베트남 현지에서 베트남 기업과 합작으로 금융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베트남에서는 한국인 사업가로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다음으로 박회장을 꼽을 정도라고 한다. 그만큼 베트남 정부와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지난 2003년에는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 친선훈장을 받기도 했다. 박회장의 베트남에서의 위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베트남 정부와도 긴밀…로비 의혹 불거져

박회장은 베트남 출장 때 가끔 ‘통 큰 파티’를 열곤 했다고 한다. 하노이 시내에 있는 박회장의 단골 술집으로 알려진 G 주점이 특히 유명하다. 여기서 박회장은 가게를 아예 통째로 빌려서 현지 공관원과 기업인들을 초대해 거나한 술자리를 베풀곤 했다는 전언이다. 사정 기관의 한 관계자는 “박회장이 베트남에서 운영하는 합작 금융회사가 비자금을 관리하는 곳으로 추정되지만, 우리나라에서 이를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 더구나 베트남 정부가 박회장과 긴밀한 관계여서 베트남 정부의 협조를 받을 수도 없는 입장이다”라고 말했다.

그런 가운데 현재 대검 중수부에서 2003년 9월 김해-호치민 직항로 개설에 박회장이 개입해 정부의 승인을 얻기 위해 로비를 벌인 정황을 잡고 수사에 나선 것으로 알려져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11월28일 태광실업에 대한 전격 압수수색 과정에서 발견한 내부 문서 자료에 의해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회장의 광범위한 인맥만큼이나 의혹도 다방면에 걸쳐 있어 수사 과정에서 갑자기 어떤 성과물이 돌출할지 검찰조차도 예측을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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