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신창이’ 외환은행에 또 ‘우환’
  • 이석 (ls@sisapress.com)
  • 승인 2009.02.03 13:5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주주인 론스타펀드의 인수 자격에도 의혹…지분에 산업자본 있는지 여부 주목

▲ 지난해 9월 외환은행 노동조합원들이 서울 KB국민은행 명동 본점에서 KB금융지주로의 매각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도대체 얼마나 더 망가져야 하는 것인가. 은행은 고객의 신뢰가 생명이다. 그런데 론스타 인수 이후 지속된 각종 법적 분쟁으로 신뢰도가 바닥에 떨어졌다.”

외환은행 주변에서 직원들로부터 흔히 듣는 불만이다. 이들의 말처럼 매각 논란이 3년여 동안 이어지면서 은행은 만신창이가 되어가고 있다. 기존의 헐값 매각설에 이어, 최근에는 대주주인 론스타펀드의 인수 자격마저 시빗거리에 올라 있어 더욱 그렇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1월14일 “론스타가 외환은행 한도 초과 보유 주주로서 적격한지 여부를 가린 심사보고서 등 29가지 관련 자료를 공개하라”라고 결정했다. 한마디로 론스타가 산업자본이 아닌 금융자본으로 외환은행 지분 51%를 인수할 자격이 있는지 여부를 심사한 금융 감독 당국 보고서를 내놓으라는 것이다.

정보공개 소송을 제기한 경제개혁연대측은 이번 판결이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고 평가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문제를 원점으로 되돌릴 수도 있다고 본다. 김주연 연구원은 “금융 감독 당국은 그동안 업무집행 차질과 관련자의 영업상 비밀을 이유로 정보 공개를 거부해왔다. 그러나 법원이 공개 결정을 내리면서 론스타의 외환은행 지분에 산업자본이 들어 있는지 여부를 가려낼 수 있게 되었다”라고 밝혔다. 

법원, 정보 공개 결정…인수 자체가 무효 될 수도

특히 금융위원회나 금감원은 론스타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조차 제대로 하지 않은 것으로 이번 재판에서 드러났다. 김연구원은 “현행법상 은행을 인수하기 위해서는 대주주 자금이 산업자본인지 여부를 먼저 심사한다. 법원이 판결을 앞두고 비공개로 금감원이 보유한 정보 목록을 열람했는데, 관련 자료가 전혀 없었다”라고 전했다.

김준환 금융마케팅연구소 소장도 “외환은행 매각의 골자는 헐값 매각과 함께 론스타펀드가 산업자본인지 여부를 가리는 것이다. 그동안 언론에는 헐값 매각 논란이 주목을 받았지만, 산업자본 문제 또한 매우 중요하다. 정보 공개를 통해 론스타가 산업자본으로 판명 날 경우 인수 자체가 무산될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금융 감독 당국은 이번 법원의 판결에 당황하는 눈치가 역력하다. 금감원 관계자는 “론스타 문제는 금융위에서 총괄해서 다루고 있다”라며 공을 금융위에 넘겼다. 금융위측도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라며 구체적인 답변을 거부했다. 금융위 은행과의 한 관계자는 “법원의 요구 사항에 딱 맞는 자료가 없었을 뿐이지, 심사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현재 법원의 판결문을 기다리고 있는데, 판결문이 도착하면 항소할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시민단체를 포함한 관련 전문가들은 금융위측의 해명을 그대로 믿지 않고 있다. 헐값 매각 논란과 마찬가지로 정부가 론스타에 외환은행을 서둘러 매각하기 위해 심사를 허술하게 한 것이 아니냐며 의혹의 시선을 던지고 있다.

론스타 4호 펀드가 외환은행을 인수하기 위해서는 산업자본이 아니었어야 한다. 대주주가 산업자본일 경우 전체 지분의 10% 이상을 보유할 수 없도록 은행법에 규정되어 있다. 동일인(특수 관계인) 중 비금융회사의 자본 총액이 전체의 25% 이상이거나, 자산 총액이 2조원 이상이어도 인수가 불가능하다. 론스타는 당시 23개의 동일인 회사 중 극동건설과 극동요업 등 외형상 명백하게 비금융 회사인 4개사만 산업자본에 넣어 관련 서류를 제출했다. 이에 따라 산업자본 총액 7천6백62억원, 자본 총액 21.26%로 아슬아슬하게 규제를 피해 외환은행 지분 51%를 인수할 수 있었다. 

문제는 금융 감독 당국이 론스타 4호 펀드에 속한 비금융회사의 자산 총액 및 자본 총액 자료만을 검토해 산업자본 여부를 판단했다는 점이다. 은행법상 동일인 범주에 포함되는 론스타펀드 2호·3호·5호와 론스타 오퍼튜너티 펀드, 브라조스펀드 등에 대해서는 심사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이들 펀드들이 론스타 내에 자본 연결고리로 이어져 있음은 물론이다. 결국, 삼성생명의 은행 인수 자격 심사를 하면서 지분 관계가 얽혀 있는 삼성전자나 삼성에버랜드는 들여다보지 않았다는 얘기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금융 감독 당국의 직무유기를 지적하기도 한다. 김준환 금융마케팅연구소 소장은 “법원 판결로 볼 때 금융 감독 당국이 그동안 관련 문서를 공개하지 못한 것이 아니다. 문서 자체가 없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론스타가 제출한 자료만을 토대로 금융자본 여부를 판단한 만큼 심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다”라고 말했다.

고동원 성균관대 법대 교수는 “2월 정기국회에서 금산 분리 완화 문제가 처리될 예정이다. 현재 민주당에서 강하게 반대하고 있지만, 한나라당이나 정부는 사후 관리를 강화하면 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외환은행 문제를 보면 이같은 주장에 설득력이 떨어진다”라고 지적했다.

실제 론스타는 지난 2003년 9월 외환은행 인수를 앞두고 미주 지역 영업망을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금융 당국 역시 이 조건을 근거로 예외 승인을 했다. 그러나 론스타는 외환은행을 인수하자마자 30여 개에 달하는 미국 현지법인과 지점을 모두 철수시켰다. 대주주인 론스타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규제와 함께 특수 관계인을 포함한 모든 정보를 공개해야 하는 부담을 피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꾸준히 의혹 제기되었던 ‘검은 머리 외국인’ 실체 드러날 수 있어

금감원은 지난 2007년 6월 뒤늦게 나머지 펀드에 대해서도 조사에 나섰다. 시중 은행 대주주의 적격성 심사를 하는 과정에서 동일인의 지분 현황, 자산 및 자본 총액 등 구체적인 자료를 모두 요구한 것이다. 그러나 2년이 지난 지금까지 조사가 진행 중이다. 론스타가 이런저런 이유로 자료 제출을 미루어왔기 때문이다. 금감원은 오히려 지난해 인수 협상을 진행한 HSBC의 산업자본 여부를 먼저 심사하면서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김준환 금융마케팅연구소 소장은 “2년여 동안 끌어온 대주주 적격성 심사는 미룬 채 HSBC의 산업자본 심사를 먼저 한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론스타는 인수 협상이 진행되던 지난해 9월 뒤늦게 자료를 제출했다. 때문에 금융 감독 당국이 현재 진행 중인 심사 내용부터 명백하게 공개할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번에 정보가 공개될 경우 그동안 꾸준히 의혹이 제기되었던 이른바 ‘검은 머리 외국인’의 실체가 드러날 가능성도 있다. ‘검은 머리 외국인’이란 외국인으로 위장한 한국인 투자자를 의미한다. 외환은행을 인수한 론스타 4호 펀드 투자자는 투자 금액을 상당 부분 국내에서 조달했으며 그 배경에는 검은 머리 외국인들이 숨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론스타 4호 펀드 투자 금액 명세서인 ‘프로젝트 나이트’에 따르면 원화로 환산한 투자액이 100억원 단위로 똑 떨어지는 금액을 송금한 투자자가 상당수 존재한다. 이들이 검은 머리 외국인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일각의 주장이다. 만일 이들이 외환은행 매각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거나, 직·간접으로 관련되었다면 국익을 빙자해 사익을 취한 것이어서 사법 처리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한나라당 최경환 의원도 “론스타가 외환은행의 대주주가 아닐 가능성이 농후하다. 외환은행 인수를 위해 처음 조성했던 펀드에 검은 머리 외국인이 숨어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혹이 제기된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