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라서 법 어겼다면 벌 받겠다”
  • 소종섭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9.04.28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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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억원대 불법 대출 혐의로 구속된 영화배우 나한일씨 인터뷰 / “횡령한 적은 없다”

▲ 지난 2007년 SBS 의 ‘옛날 TV’ 코너에 출연한 나한일씨가 해동검도 시범을 보이고 있다.

 한국해동검도협회 총재이자 영화배우인 나한일씨가 지난 4월20일 100억원대의 불법 대출을 받은 혐의로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 3부에 구속되었다. 1985년 MBC 특채 탤런트로 데뷔한 나씨는 그동안 <영웅시대> <야인시대> 등과 최근 <자명고>에 이르기까지 각종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하며 선 굵은 연기를 펼쳐왔다. 특히 한국의 전통 무예인 ‘해동검도’를 널리 알린 주인공으로 그를 기억하는 이들에게 느닷없이 불거진 이번 사건은 충격적이다. ‘해동검도’ 동호인은 1백5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씨는 지난해 9월에는 전통문화를 계승·발전시킨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명인문화예술교류회로부터 ‘명인’으로 추대되기도 했다.

검찰 구속영장에 따르면 나씨는 ㅎ저축은행으로부터 1백27억원을 불법으로 대출받았고, 20억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해외에서 불법 대출을 받기 위해 전 금융감독원 간부와 저축은행 대표에게 성 접대를 했다는 의혹도 불거졌다. 그는 대중에게 알려진 지 20여 년 만에 배우로서의 명예와 ‘해동검도’라는 상징성을 위협받는 최대 위기에 처했다.

나씨는 사건이 표면화된 이후 말을 아껴왔다. 하지만 주변에서는 사건이 불거진 배경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사건이 일어난 것은 3년 전인 2006년으로 당시 일부 인사가 구속되고 나씨는 민사 책임을 지는 것으로 정리되어 집이 경매로 날아가고 출연료가 차압되는 등 빈털터리가 되었는데, 다시 형사 문제화한 이유가 무엇이냐는 항변이다.

그가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와 절친한 관계인 것이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는 의혹도 나온다. 나씨는 박 전 대표가 ‘신촌 테러’를 당했을 때 무예 후배들을 병원에 보내 박 전 대표를 경호하게 했을 만큼 친밀한 관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인연 때문인지 박 전 대표는 ‘해동검도’ 모임에 여러 차례 참석한 적이 있다고 한다. 

구속되기 3일 전인 지난 4월17일 그를 만났다. 나씨는 “잘 몰랐기 때문에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달게 벌을 받겠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돈을 착복한 것은 한 푼도 없다”라고 강조했다. 돈을 ‘횡령’하지는 않았다는 주장이었다.

검찰과 나씨의 말이 달라 진실이 무엇이냐를 둘러싸고 재판 과정에서 공방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된다. 나씨와 1시간 동안 나눈 대화를 문답으로 정리했다.

‘해동검도’ 하면 나한일이 떠오른다.

우리 역사에 관심이 많다. 공부를 하다 보니 가슴이 끓더라. 우리의 정신을 세워보자는 생각에서 전통 무예를 찾아다녔다. 미친 놈이라는 소리도 많이 들었다. 기득권을 갖고 있는 쪽으로부터 견제도 많이 받았다. 지금은 전국에 1백50만명이 넘는 동호인이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 전통무예진흥법이 지난해에 국회를 통과했고, 올해 대통령령으로 시행령이 떨어졌다. 해동검도가 우리나라 무예의 상징으로 자리 잡아 가는 시점에 이런 일이 일어나 황당하다.

ㅎ저축은행으로부터 거액의 대출을 받게 된 경위는 무엇인가?

2006년에 한류 열풍이 대단했다.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이 여기저기 생길 때였다. 우연한 자리에서 만난 저축은행 관계자라는 양 아무개씨가 투자를 하겠다는 제의를 해왔다. 그가 주도해 한 유명 작가와 탤런트와 함께 해동미디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양씨가 차명으로 60%, 내가 30%, 유명 작가와 탤런트가 각각 5%씩 지분을 가졌다. 저축은행 사장은 양씨에게 공손히 인사하며 ‘회장님, 회장님’ 그랬다. 돈도 착착 들어왔다. 양씨를 실제 회장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무예를 수련하고 연기 활동은 했지만 사업적인 측면에서는 아는 것이 없다. 대표 명의는 내 의사와 관계없이 내 이름으로 해놓았는데 모든 것은 양씨가 주도했다. 그래놓고 잠적했다.

그래도 거액이 오갔는데 몰랐나?

나는 돈을 안 만지고 양씨가 데려다놓은 직원과 저축은행 직원이 알아서 했다. 경비를 신청하면 저축은행측에서 따져가지고 돈을 주었다. 돈을 타 썼다. 당연히 저축은행이 투자한 것이지 내가 대출받은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못했다. 해동미디어에는 50억원이 들어왔다. 모두 영화 찍는 데 들어갔다. 근거가 100% 있다. 나도 나중에 유명 작가나 탤런트처럼 전속으로 들어간다고 생각했지 내 회사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대출 문서 같은 데에 도장을 찍지 않았나?

형식적이라고 하기에 사인을 했다. 담보도 없었다. 내용상 투자인데 무슨 담보가 있겠나. 법을 제대로 몰랐던 것이 죄이다. 저축은행이 확신이 있기에 투자했던 것 아니냐. 나중에 보니 그 은행측에서 여기저기 땅도 사면서 투자하다가 잘 안 되는 막판에 나와 만났다. 한류, 엔터테인먼트 붐을 타고 한 건 잡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나도 이용당했다.

그러면 나머지 70여 억원은 어디로 들어왔나?

친형이 운영하는 회사로 들어갔다. 소개는 내가 했다. 형은 토목회사도 운영해보고 건축 시행도 한 경험이 있다. 카자흐스탄 쪽에 투자를 추진했다. 저축은행장 등이 카자흐스탄에 와서 땅을 보고 좋다고 판단해서 그 자리에서 대출을 결정하고 실무자에게 전화를 했다. 검찰은 이런 것들을 모두 뭉뚱그려서 내가 형 회사의 실질적인 사주라고 보고 있다.

카자흐스탄 땅에는 실제로 투자가 이루어졌나?

자산관리공사에 있던 사람이 형 회사에 본부장으로 있었다. 그가 사업계획서를 만들어 저축은행장에게 프리젠테이션을 했다. 그쪽에서 투자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고 현장을 보고 최종 결정을 내리겠다고 해서 카자흐스탄에 왔다. 내가 그곳에 가 있을 때였다. 당시 현장에서 저축은행장이 투자 결정을 한 뒤 나중에 계약금으로 1천5백만 달러인가가 지급되었다고 알고 있다. 문제가 터지면서 잔금을 치르지 못해 결국, 계약금만 날렸다.

주식 투자도 했다던데.

해외에 투자하려면 시간이 걸린다. 돈이 죽을 것 같으니 형수 계좌에 넣어놓고 형이 주식을 운용했다. 손해를 많이 보았다. 회사 돈이기 때문에 30억원을 내가 여기저기서 빌려서 채워넣었다. 잘못하면 형까지 구속되게 생겼다. 형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아무래도 내가 벌을 받아야 할 것 같다.

그동안 돈도 많이 벌었을 것 같다.

많이 벌었다. 하지만 해동검도를 일으켜 세우는 데 다 썼다. 월세로 살고 있다. 횡령을 했다면 집이라도 있고 재산도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아무것도 없다. 개인적으로 내가 유용한 것은 한 푼도 없다.

지금 보아서는 구속될 가능성이 커 보이는데.

하나님이 벌을 주시면 받는 것이다. 인생 잘못 살았으니 잘못이라고 하면 받아야지. 하지만 양심에 맹세코 명분 없는 돈은 써본 적이 없다. 2006년에 민사 배상 결정을 받아 봉급도 압류당하고 집도 경매로 날아갔다. 법적으로 민사로 할 수 있는 것은 다했다. 나는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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