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못 믿겠다”갈라지는 보수
  • 김회권 (judge003@sisapress.com)
  • 승인 2009.05.26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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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지역 따라 불만의 목소리 점점 커져

 

▲ 5월13일 이명박 대통령의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순방을 수행하고 있는 소설가 황석영씨. ⓒ연합뉴스

 

‘배은망덕’이라는 표현이 나왔다. 대표적인 보수 논객인 소설가 복거일씨는 이명박 대통령이 황석영씨를 대동하고 중앙아시아를 순방한 사건을 두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고생해서 대통령을 만들어놨는데 다른 우파들을 놔두고 황씨를 데리고 간 것은 배은망덕한 것으로 비칠 것 아니냐”라는 이유에서였다.

‘황씨의 변절 여부’를 두고 진보 진영은 시끌시끌했다. 보수 진영 일각도 마찬가지였다. 진보 인사로 알려진 황씨와 함께 동행한 실용주의자 이대통령의 ‘변절’을 두고 불만의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보수 단체의 한 간사는 “복씨의 발언이 경솔했다. 하지만 대통령의 판단에도 불신이 든다. 매사에 너무 즉흥적이고 지지 기반을 무시하는 행동을 한다. 아무 생각이 없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황석영 파동’을 계기로 보수 세력의 분화가 주목된다. 이념적인 측면에서 현 정부의 주력군인 이들은 정권 교체 이후 때때로 불만을 표출해왔으나 점점 그 강도가 강해지고 있다. ‘원조 보수’라고 할 수 있는 그룹들은 그들대로, ‘합리적 보수’라고 할 수 있는 그룹은 그들대로 불만이다. 지역적으로도 대구·경북이 확고한 지지세를 형성할 뿐 분화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현 정부의 지지 세력이 이념적으로나 지역적으로 여전히 불안정한 바탕 위에 서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대통령은 당선된 직후 여러 차례 현 정부의 노선은 ‘중도실용주의’라고 못박았다. 보수 진영에서는 이대통령이 실용주의를 표방할 때마다 대통령의 정체성에 대해 물었다. 남북 사이에 이념 대결이 벌어질 경우 ‘실용’을 덮어 쓰며 애매한 입장을 취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때마다 이대통령은 자신은 보수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3월21일 이대통령이 “때로는 오해를 받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나의 국가 정체성은 확실하다”라고 해명한 것이 대표적이다. 취임 후 불과 한 달이 지났을 뿐이었지만 보수 세력은 확인을 받고자 했고, 이대통령은 이에 화답했다. 하지만 그의 실용주의는 곧 원칙 없이 오락가락하는 편의주의적 발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냉·온탕을 왔다갔다하며 실용주의를 펼치던 이대통령의 지난해 11월 발언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지난해 11월12일 북한이 금강산 육로 통행 제한·차단 조치를 발표한 직후에 이대통령은 “기다리는 것도 때로는 전략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불과 3일 뒤인 11월15일에 가진 오바마 당선인측 인사와의 면담에서 “핵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면 오바마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직접 만나는 것도 반대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며 유화적인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불과 이틀 뒤 미국 방문길에서 이루어진 워싱턴 특파원과의 오찬 간담회에서는 “자유민주주의에서는 통일하는 것이 최후의 궁극 목표이다”라고 말했다.

김일영 교수(성균관대)는 지난해 11월27일 한반도선진화재단이 주최한 ‘한국의 보수를 묻는다’라는 학술심포지엄에서 “실용주의는 잘하면 양쪽을 모두 취할 수 있지만 잘못하면 죽도 밥도 아니게 된다. 또한, 실용주의는 철학과 원칙이 없을 경우 절충주의라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라며 얻은 것 하나 없이 입장을 바꿔가며 손해만 보는 현 정권의 실용주의를 에둘러 비판했다.

정통 보수 세력은 ‘올드라이트’

실용주의에 가장 불만을 가진 이들은 기존의 보수 세력이면서 정통 보수를 자처하는 ‘올드라이트’였다. 지난 수년간 한국 사회의 보수 세력은 내부적으로 분화를 겪었다. 새로운 보수를 자처하는 뉴라이트가 등장하자 수구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 기존 보수 세력은 ‘올드라이트’라는 이름을 얻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재향군인회와 한국기독교총연합회 그리고 ‘친북 좌익 척결 국민행동본부’(국민행동본부) 등이 여기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이 전면에 등장한 것은 서울시청 앞 광장에 30만명의 인파를 동원했던 지난 2004년 10월의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 운동’이었다. 과거 진보 단체들이 자주 집회를 열던 자리를 보수 단체들은 노무현 정부 시절부터 발 빠르게 채워나가면서 세력화했다.

올드라이트는 이념에 충실하다. 따라서 이대통령의 실용주의를 이념과 원칙이 없다고 보며 못마땅해한다. 이들은 현 정부가 실용주의라는 이유로 ‘보수’라는 레일을 조금만 벗어나려고 하면 강하게 비판하며 제자리를 잡도록 압박한다.

올드라이트에게 대북 문제와 안보 문제는 건드려서는 안 될 문제이다. 그런데 이대통령은 이랬다저랬다 한다. 황석영 사건은 올드라이트의 불만을 재점화한 사건에 불과하다. 그동안 올드라이트를 자극한 일은 계속 있었다. 대북 정책에서 북한에 화해 제스처를 보내는 것도 이들에게는 용인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제2 롯데월드 건설을 허가해준 것도 올드라이트, 특히 군 출신 인사들을 자극했다. 안보 정책을 고려하지 않은 조치라는 주장이었다. 국민행동본부의 양영태 본부장은 “무소신 무개념의 결과이다. 국가 안보보다 일자리 창출이 더 시급하다고 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이 정부에 대해서 올드라이트의 만족도를 묻는다면 어떨까. 한 올드라이트 단체의 인사는 “(실용주의의) 이대통령을 ‘보수’로 알고 지지했던 것은 사람들의 착시 현상이다”라고 말했다. 기대한 것이 없으니 만족할 것도 없다는 대답이었다. 작가 이문열씨는 “흥이 안 난다”라고 표현했다.

‘올드라이트’와 비교되는 뉴라이트는 2004년 11월 ‘자유주의연대’의 출범에서부터 시작된다. 신지호·홍진표·최홍재 등 좌에서 우로 전향한 세 명이 먼저 깃발을 들었다. 뉴라이트는 이념적 지형으로 자유주의를 들고 나와 그동안 빈약한 논리로 비판받던 보수 진영에 새로운 콘텐츠를 제공하며 활력을 불어넣었다. 뉴라이트는 천하사분론(수구 좌파-혁신 좌파-수구 우파-혁신 우파)을 말하며 수구 좌파 퇴출과 수구 우파 혁신을 과제로 삼았다. 수구 우파 자리에 있는 올드라이트와의 갈등은 뉴라이트의 탄생 때부터 예견된 셈이었다.

하지만 뉴라이트는 애초부터 단일대오를 이루지 못했다. 자유주의연대는 내부에서 ‘행동파’와 ‘이론파’로 나뉜다. 행동파는 2005년 11월 김진홍 목사를 중심으로 ‘뉴라이트전국연합’(전국연합)을 조직하며 정치 지향적인 입장을 취한다. 전국연합은 이대통령 지지를 선언하면서 현실 정치에 개입했고, 급속히 외형을 키우면서 거대 단체로 거듭났다.

 

▲ 지난 1월7일 명동 은행회관에서 뉴라이트전국연합과 바른사회를위한시민회의 등의 보수진영 시민단체 신년인사회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황석영 파동’에 뉴라이트는 침묵

뉴라이트가 올드라이트와 다른 점은 정책 지향적인 단체에서 찾을 수 있다. 자유주의연대의 ‘이론파’들이 주축이 된 보수 지식인들은 이후 싱크탱크를 만드는 작업에 들어간다. 대표적인 곳이 박세일 전 의원을 중심으로 하는 한반도선진화재단(선진화재단)이다. 최근까지도 학술회의 등을 통해 보수의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며 정부에 쓴소리를 내는 곳이다. 2006년 5월에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 등이 중심이 되어 만든 ‘뉴라이트 재단’도 학술적인 집단이다. ‘뉴라이트 재단’의 경우는 현실 정치에 개입한 뉴라이트 전국연합과의 혼선을 피하기 위해 자신들이 발행하는 계간지 <시대정신>의 이름을 따 ‘사단법인 시대정신’으로 이름을 변경했다.

전국연합은 정치 권력과 밀착하면서 현 정부의 산파 노릇을 했다. 그 때문에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운신의 폭이 좁아진 상황이다. 황석영씨 사건을 두고 뉴라이트 진영에서는 그 흔한 성명서 하나 내지 않고 있다. “황석영을 두고 뉴라이트 진영으로 넘어왔다고 비판하는데 막상 당사자인 우리가 나서기는 곤란한 부분이 있다”(뉴라이트 단체의 한 관계자)라며 무관심한 척한다. 올드라이트들이 사견을 전제로 혹은 익명을 내세워 불만을 내비치는 것과 상반된다.

이명박 정권에게 보수 세력 간의 분화는 반갑지 않은 소식이다. 지지 기반이 취약해지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올드라이트의 이탈은 이대통령의 지지층을 허약하게 만든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의 지난 4월18일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대통령의 국정 운영 지지도는 32.7%였다. 한나라당 지지자들 중 ‘잘하고 있다’라고 답한 사람은 58.7%였다. 이미 한나라당 지지자 중 반 수 정도만이 지지하는 형국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뉴라이트 진영에서도 불만이 나온다. 처우에 대한 불만이다. 전국연합 등 정치적으로 거들었던 진영에서는 정권 출범 뒤 논공행상을 제대로 해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서운해한다. 지난해 4월 총선에서도 지역구 공천과 비례대표 순번에서 소외되었다는 평가가 많았다. 게다가 현 정부의 인사 등용에서도 정책 집단인 시대정신 재단과 바른사회시민회의 인사들이 중용되고 자신들이 밀려나자 불만의 목소리가 높았다는 후문이다. 뉴라이트 계열의 한 시민단체 간사는 “우리는 대선 공헌도가 높다고 생각했는데 대통령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경선이 한창이던 시절, 북측에 러브콜을 보내며 구애의 손길을 구했던 이대통령은 당선 이후 보수 세력을 다독거리기 위해 정반대의 태도를 보이며 갈짓자 행보를 보였다. 행정 부처를 개편하면서 통일부 폐지론이 강하게 나왔고, 대북 강경론자인 남주홍 전 통일부장관을 기용했다. 그래서 북측의 신뢰를 잃었다. 대북 채널은 하나 둘 단절되어 비선 채널까지 막힌 적도 있다. 갑갑한 대북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선 수정을 시도하니 이번에는 올드라이트의 비판과 이탈이 우려되고 있다. 이대통령은 지금 북도 잃고, 정통 보수층도 잃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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