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허가 필드’에도 공은 굴렀다
  • 이석 (ls@sisapress.com)
  • 승인 2009.08.18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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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TPC 골프장, 검찰 기소되고도 불법 운영 계속해…“세금 내는데 무슨 불법이냐” 반발


경기도 양평에 있는 양평TPC 골프장은 문병욱 라미드그룹(옛 썬앤문그룹) 회장이 운영하는 27홀 규모의 골프장이다. 지난해 9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포함한 부산상고 동문 2백여 명이 골프대회를 개최해 구설에 오른 곳이기도 하다.

<시사저널> 취재진은 지난 8월10일 오후 4시쯤 양평TPC 골프장을 찾았다. 유명세 때문인지 평일인데도 주차장에는 차량들로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회원들은 코스마다 자리를 잡고 골프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골프장 클럽하우스 주변은 오가는 카트들로 분주했다. 언뜻 보았을 때는 여느 골프장과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이 골프장은 지난 2006년 11월 경기도로부터 사업 허가 취소 처분을 받은 상태이다. 현재 정상 영업이 아닌 불법 영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이 골프장은 양평군청으로부터 여러 차례 고발을 당했다. 이 과정에서 문병욱 회장과 동생인 문병근 대지개발 대표가 지난해 3월 검찰에 기소되었다. 허가를 받지 않고 양평TPC 골프장을 운영해 2백억원의 부당 매출을 올린 혐의이다.

경매 과정에서 법적 분쟁 발생해 사업권 취소당해

▲ 지난 2003년 12월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조세 포탈과 횡령 혐의로 구속이 확정된 문병욱 라미드그룹 회장이 결백함을 주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7월에는 막내동생인 문병동 대지개발 본부장마저 같은 혐의로 검찰에 기소되었다. 이 역시 양평군청의 고발이 발단이 되었다. 양평군청은 지난해 11월 문본부장과 함께 팀장 여덟 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양평군청 체육지원담당 관계자는 “공문으로 골프장 영업일보와 본부장 인적사항 등을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 이전에도 여러 차례 불법 영업을 중지할 것을 통보했지만 시정되지 않아 팀장까지 고발하게 되었다”라고 설명했다. 검찰 조사에서 팀장들은 각하 처리되었다. 하지만 문본부장에 대해서는 앞서 기소된 문회장 등과 별도로 기소(체육시설의 설치·이용에 관한 법률 위반) 결정이 났다. 검찰 관계자는 “피의자는 그동안 회원뿐 아니라 비회원을 상대로도 영업을 해서 1백80억원의 매출을 올린 혐의를 받고 있다. 형제들이 승계하는 식으로 공모해 미등록 골프장 영업을 한 것으로 판단된다”라고 말했다.

때문에 문회장 일가는 법적 책임뿐 아니라 도덕적 비난을 면키 어려울 전망이다. 특히 이들은 지난해 검찰에 기소되었음에도 시범 라운딩 형식으로 불법 영업을 지속해왔다는 점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이와 관련해 당사자들은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군청 허가를 받아 회원권을 발행했고, 세금까지 꼬박꼬박 납부하는데 무슨 불법 영업이냐는 주장이다. 문병동 본부장은 “골프장을 경매로 낙찰받는 과정에서 법적 분쟁이 있었다. 이것이 문제가 되어서 경기도가 골프장 사업권을 취소시켰다. 시범 라운딩 형태로 운영하고 있고, 불법 영업은 아니다”라고 강변했다.

도대체 양평TPC 골프장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특히 불법 영업과 함께 검찰 기소를 감수하면서까지 문회장과 동생들이 골프장 영업을 강행한 배경은 무엇일까. 시계바늘은 10년 전인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골프장 개발을 추진하던 영아트개발의 부도가 이번 사건의 발단이다. 이 회사는 당시 골프장 부지를 담보로 동원파이낸스로부터 개발 자금 2백59억원을 대출받았다. 하지만 회사가 부도나자 동원파이낸스가 골프장을 경매로 내놓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영아트개발 임직원들이 설립한 시내산개발이 부지와 함께 사업권을 낙찰받았다. 하지만 이 회사 역시 자금 여력이 넉넉하지 못했다. 시내산개발은 골프장 사업권을 담보로 동원파이낸스로부터 1백75억원을 대출받았다. 하지만 자금이 부족해 잔금을 지급하지 못하자 다시 경매가 진행되었다. 이를 라미드그룹의 계열사인 대지개발이 최종 낙찰받은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불거졌다. 대지개발에 골프장을 빼앗긴 시내산개발이 대지권과 별도로 사업권을 주장하면서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경기도청 체육진흥과의 한 관계자는 “당시만 해도 사업권이 없으면 부지를 확보해도 골프장 건설 허가가 나지 않았다. 대지개발의 경우 부지를 인수했지만, 사업권과 관련된 법적 분쟁이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에 사업계획 변경 허가(사업권)를 내줄 수 없었다”라고 설명했다.

우여곡절 끝에 문회장은 2001년 11월 경기도로부터 사업계획 변경 승인을 받았다. 소송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전제로 한 조건부 승인이었다. 이때부터 문회장은 본격적으로 영업을 시작했다. 양평군청의 허가를 받아 8백60명에게 회원권을 발행했다. 회원권 가격을 1억원으로 계산해도 8백60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문회장의 골프장 사업은 또다시 발목이 잡혔다. 지난 2006년 6월 대법원이 시내산개발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당시 재판부는 “대지개발이 경매를 통해 골프장 부지를 인수했지만, 사업권은 여전히 시내산개발에 있다. 대지개발은 운영 업체가 아니기 때문에 회원권 분양을 할 수 없다”라고 판결했다. 같은 해 11월에는 경기도가 사업권 취소를 통보했다. 이때부터 대지개발은 영업 허가도 없이 시범 라운딩 형식으로 골프장을 운영해 온 것이다.

시범 라운드 형식으로 운영…양평군청 “정당한 방법 아니다”

문회장측이 억울함을 토로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합법적인 절차를 거쳐 회원권을 분양한 상태에서 영업정지는 가혹한 처사가 아니냐는 것이다. 문병동 본부장은 “골프장 잔디는 지속적으로 관리해 주어야 한다. 지난 2003년 관련법이 문제가 있어 개정되었다. 사업권이 취소되었다고 해서 영업을 전면 중단시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라고 토로했다.

오히려 그는 행정 기관의 ‘보신주의식 일처리’를 질타하고 있다. 책임 떠넘기기가 아니냐는 것이다. 골프장 안팎에서는 검찰을 비롯한 경기도청과 양평군청의 공격에 정치적 의도가 깔린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문회장은 지난 2006년 대법원에서 패소한 이후 시내산개발 박 아무개 대표에게 3백70억원을 주고 사업권을 넘겨받는 데 합의했다. 하지만 박대표가 잠적했고, 시내산개발측은 박대표 개인과의 합의는 무효라고 주장하면서 또다시 소송이 벌어졌다. 이번에는 법원이 문회장측의 손을 들어주었다. 시내산개발도 항소를 포기했다. 문회장은 경기도에 다시 사업계획 변경 승인 신청을 냈지만 반려되었다. 문본부장은 “경기도청이나 양평군청의 주장대로 골프장이 불법 운영되고 있다면 세금도 받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니냐. 현재 국세나 지방세뿐 아니라 취득세까지 꼬박꼬박 납부하고 있다. 시범 라운딩은 법적 분쟁이 마무리될 때까지 선택한 어쩔 수 없는 방법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경기도청이나 양평군청의 주장은 달랐다. 경기도청 체육진흥과 관계자도 “우리는 서류를 보고 판단한다. 사업권이 시내산개발에서 대지개발 쪽으로 자연스럽게 승계되어야 하는데 그렇지가 못했다”라고 사업권 반려 이유를 밝혔다. 양평군청 체육진흥담당 관계자도 “골프장측에서는 시범 라운드 형식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시범 라운드 역시 과거에 관행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정당한 방법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세금 문제는 이번 사건과는 별개이다”라고 강조했다.

검찰에서도 일정 부분 이같은 사항을 고려 대상으로 삼았다고 한다. 검찰 관계자는 “이미 대표이사가 기소되었고, 소송에서 승소한 점 등은 정상 참작 사유가 되었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여전히 불법 영업이 지속되었고, 최근 사업계획 변경 승인 신청이 경기도에 의해 반려되었다는 점에서 기소가 불가피하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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