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 다시 비벼 넣을까 조마조마
  • 하재근 | 문화평론가 ()
  • 승인 2009.09.22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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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홈드라마 표방한 <보석비빔밥>

▲ 9월1일 서울 광장동 워커힐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작 발표회에서 출연자들이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MBC


막장 드라마는 2009년 드라마계의 최대 키워드이다. <내조의 여왕>이나 <선덕여왕> 등이 개별적으로 인기를 얻기도 했지만, 전체적인 추세를 말하자면 올해 가장 뜨거운 트렌드는 역시 막장 드라마였다. 그런 경향은 특히 전반기에 두드러졌다. <아내의 유혹>과 <꽃보다 남자>가 막장 쌍끌이에 나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반기에 들어서는 ‘막장적’ 경향을 보이는 일일 드라마들과 웰메이드(잘 만들어진) 미니시리즈들이 동시에 약진하며, 막장 드라마의 독주가 한풀 꺾였다. 그에 따라 드라마 트렌드에 대해 이야기할 거리도 줄어들었다. 막장 드라마만 질주할 때는 모든 매체가 드라마 트렌드에 대해 이야기를 쏟아냈지만, 독성이 줄어들자 할 말도 줄어든 것이다.

칭찬할 일이든, 개탄할 일이든 호사가들은 뭔가 ‘화끈’한 일이 벌어지기를 소망하는 법이다. 일이 벌어져야 할 말이 많아지는 매체들 사이에서는 특히 이런 경향이 강하다. 이런 연유에서 막장 드라마가 폭주할 때는 모든 매체가 막장 드라마를 개탄했었지만, 막상 그 기세가 한풀 꺾이자 그 뜨겁던 시절을 아쉬워하는 것 같다. 매체에게 제일 무서운 것은, 나쁜 일이 터지는 것이 아니라 아무 일도 안 터지는 것이니까.

그리하여 임성한 작가의 새 드라마 <보석비빔밥>이 방영도 되기 전부터 매체들의 극진한 관심을 받았다. 임성한 작가가 막장 드라마로 물의를 일으킬 것이 기대되었기 때문이다. 임성한 작가가 사고만 쳐준다면 매체들은 다시 할 말이 많아지게 된다. 언론 매체들은 방영 전에는 막장 드라마의 가능성이 보인다는 식으로 예측 기사들을 내보내더니, 방영이 시작된 후에는 한 회 한 회 분석하며 막장적 요소를 집어내 기사화하기 바쁘다. 한동안 심심했던 드라마 기자들에게 임성한이라는 이름은 최고의 ‘떡밥’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임성한 작가는 <인어아가씨>에서 장서희를 복수의 여왕으로 만들어준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인어아가씨>는 훈훈한 홈드라마 위주였던 일일 드라마에 독한 복수라는 막장적 코드를 도입한 전설적인 작품이다. <왕꽃 선녀님>과 <하늘이시여>도 막장 드라마계의 문제작으로 남았다. 특히 <하늘이시여>는 ‘욕하면서 본다’라는 신조어를 만들며 방송사 경영진과 기자들에게 신화가 되었다. 임성한 작가가 이런 드라마를 또 터뜨려준다면 방송사는 시청률이 올라가서 좋고, 매체들은 할 말이 많아져서 좋을 것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보석비빔밥>은 시작되었다.

시작은 평이했으나…작가의 전력에 기대 반 걱정 반

막상 뚜껑을 연 <보석비빔밥>은 평이한 모습이었다. 주말 드라마에 흔히 등장하는 자식 복 많은 대가족이 온갖 평지풍파에 시달린다는 설정이다. 아직 누가 죽거나, 사기를 치거나, 복수를 다짐한다는 식의 독한 설정은 나오지 않고 있다. 정신적으로 심각하게 문제가 있어 보이는 극단적인 캐릭터도 아직은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가능성은 보인다. 일단 네 아이들의 아버지와 어머니부터가 심상치 않다. 보통 액션영화는 시작하자마자 박진감 넘치는 액션을 선보이는 것으로 관객의 시선을 잡는다. 액션영화뿐만이 아니라 모든 영상물은 도입부에 어떤 종류든 시선을 끌 만한 장치를 배치하게 마련이며, 그 장치가 어떤 것이고 얼마나 잘 만들어졌느냐로 그 작품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다. <보석비빔밥>의 경우는 장성한 네 자식을 둔 어머니가 ‘야매’ 가슴 성형 수술을 하다 문제가 생겨, 종합병원에서 다시 가슴 확대 성형수술을 받는다는 에피소드를 도입부에 배치했다. 막장의 향기가 피어나는 자극적이고 황당한 설정이었다.

어머니가 그런 수술을 하고 있을 무렵, 큰딸은 직장에서 성추행을 당하고 일을 그만둔다. 어머니는 그런 딸에게 빚을 내서라도 자기 성형 수술 비용을 책임지라고 다그친다. 자기 딸이 결혼을 앞두고 있는데도, 결혼 비용을 준비하기는커녕 자기 몸치장하기에 바쁘다. 이쯤 되면 어머니에게서 타인의 정서를 읽지 못하는 사이코패스 성격마저 감지될 지경이다. 둘째딸은 신분 차이가 확연한 의사 집안과의 혼사를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상대방 어머니의 성격이 심상치 않아 보인다. 의사 집안에서는 아직 둘째딸을 유복한 집의 규수로만 알고 있다. 향후 진실이 드러났을 때, 의사 어머니가 얼마나 독하게 나오느냐에 따라 작품의 성격이 더 분명해질 수 있겠다. 첫째딸도 재벌가와의 혼사가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여기에도 충분히 막장 드라마의 폭발력이 잠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비록 이런 자극적인 설정들이 있었지만, <보석비빔밥> 1, 2회는 전체적으로 평이한 전개를 보였다. 그리하여 성형수술이나 성추행 같은 설정을 집어내 막장 논란을 재점화하려고 했던 언론의 노력과는 달리, 이렇다 할 논란도 생기지 않았고 시청률도 한자릿수에 불과했다. 하지만 3, 4회에서 아버지가 사고를 치며 시청률을 끌어올렸다. 아버지가 불륜으로 낳은 아이를 데리고 나타난 것이다. 4회에서 어머니와 아버지는 ‘화끈’하게 싸움을 벌였다. 그러자 시청률이 10%를 돌파했다! 불륜, 출생의 비밀, 부부 싸움이 등장하자 마침내 시청률이 반응한 셈이다.

임성한 작가는 <보석비빔밥>에 임하며 ‘극한 스토리 설정을 자제하고, 따뜻한 홈드라마를 만들겠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시청률이 이렇게 자극의 강도에 비례하는데 극단적인 설정을 자제할 수 있을까? 한편, 중견 배우들의 코믹하고 뻔뻔한 연기는 이 드라마가 맛깔스러운 홈드라마로 발전할 가능성도 보여주고 있다. 현재 시점에서 <보석비빔밥>의 행로는 홈드라마와 막장 드라마 사이에서 아슬아슬해 보인다.   


ⓒMBC
몰락한 MBC 주말 드라마를 과연 살릴 수 있을 것인가가 <보석비빔밥>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이다. MBC 주말 드라마는 최근 <잘했군, 잘했어>가 조기 종영되었다. <2009 외인구단>도 조기 종영 되었으며, 현재 방영되고 있는 <탐나는도다>도 조기 종영이 확정되어 시청자들이 <탐나는도다> 지키기 운동을 펼치고 있는 형편이다. 뿐만 아니라 <친구, 우리들의 전설>도 비참한 시청률로 끝났다.

드라마뿐만이 아니라 예능을 통틀어서도 MBC는 일요일에 시청률 재앙을 맞고 있다. 9월6일에 방영된 프로그램들 중 시청률 10%를 돌파한 것은 <선덕여왕> 재방송이 유일했다. 일요일마다 MBC는 초상집이 되는 것이다. 예능 쪽에서는 가까운 시일 내에 상황이 반전될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 결국, 돌파구는 <보석비빔밥>뿐이다.

문제는 앞서 참패한 <탐나는도다>와 <친구, 우리들의 전설>이 대단히 잘 만든 웰메이드 드라마였다는 점이다. 아무리 잘 만들어도 시청률 경쟁에서 참패한다면, 남은 카드는 최대한의 자극이지 않을까? 이 때문에 <보석비빔밥>이 막장 경로를 탈 수 있다는 우려를 하게 된다. 과연 <보석비빔밥>은 어떤 전략으로 시청률 전장에 임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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