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종의 젊은 총무원장, 불교계 분위기 확 바꾼다
  • 신혁진 | 불교포커스 기자 ()
  • 승인 2009.11.17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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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승 스님, 취임 초기부터 용산 참사 현장 자발적 방문 등 파격적인 행보 보여 주목

▲ 11월5일 서울 조계사에서 열린 제33대 총무원장 취임 법회에서 자승 스님이 취임사를 하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조계종 제33대 총무원장으로 50대의 자승 스님이 취임함에 따라 조계종과 한국 불교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 11월5일 취임식을 가진 자승 스님은 1954년생으로 올해 55세이다. 직전 총무원장 지관 스님이 70대 후반의 나이였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조계종의 수장이 20년 이상 젊어졌다.

자승 스님은 취임 초기부터 파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임기 개시 후 첫 공식 외부 행보가 용산 참사 현장을 방문하고 천주교 복지 시설인 요셉 의원을 찾은 것이었다. 갈등의 현장에서 사회의 소통과 화합의 실마리를 불교계가 앞장서서 마련하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자승 스님은 용산 참사 희생자들의 분향소에 분향하고 동행한 스님들과 함께 <반야심경>을 봉독한 뒤 낭독한 발원문에서 “지금 사바 세계는 우리의 탐욕이 만들어낸 갈등으로 공동체의 일각이 위기에 처해 있다. 용산은 이 시대에 우리가 안고 있는 대립과 갈등의 상징으로 하루속히 이 대립과 갈등이 원만히 해결될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발원했다.

자승 총무원장이 용산 참사 현장을 찾은 것은 용산대책위 등의 요청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발적인 방문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눈길을 끌었다. 용산 참사 현장에서 단식 농성 중인 정종권 진보신당 부대표는 “전 총무원장 스님께도 현장을 찾아 위로해주실 것을 부탁했으나 곤란하다는 답변을 들었었는데, 이번에는 총무원측에서 방문 계획을 먼저 알려와 놀랐다. 가톨릭 등 종교계에서 많은 도움을 주고 있으나 총무원장 스님의 방문은 종단 대표의 방문이어서 사태 해결에 대한 희망을 갖게 한다”라고 말했다.

자승 스님을 수장으로 하는 조계종 33대 집행부가 내건 슬로건은 ‘소통, 화합, 불교 중흥’이다. 우리 사회 소외된 이웃과의 소통, 종교와 세대, 의견 차이를 뛰어넘는 화합을 불교계가 선도함으로써 불교의 재도약이라는 성과를 거두겠다는 것이다. 

이같은 의지는 11월5일 치러진 취임식에서도 엿보였다. 자승 스님은 취임사를 통해 “소외된 이웃과 어려움을 나누며 함께 희망을 꿈꾸는 도반이 될 것이다. 사회의 그늘진 구석구석 부처님의 자비 광명이 비칠 수 있도록 꺼지지 않는 등불을 밝힐 것이다. 우리 사회는 소통의 부재와 개발 만능주의가 더해져서 갈등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 한국 불교는 이제 사회와 소통하며 화합의 단초를 마련하고 무한한 사회적 책임을 통해 우리 민족과 사회가 나아갈 길을 제시하도록 노력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총무원 기획실은 자승 총무원장의 용산 방문에 대해 “취임식에 앞서 소외된 이웃을 찾아 위로한다는 차원에서 준비된 일정이었다”라고 방문 배경을 설명했다. 그렇지만 방문 현장이 우리 사회의 갈등과 대립을 상징하고 있는 ‘용산’이라는 점에서 파격적이라 할 만하다. 향후 조계종의 활동의 방향을 함축적으로 가리키는 것이기에 관심을 끌 수밖에 없다.

청와대를 비롯한 정치권도 조계종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자승 총무원장이 용산을 방문하기 직전 자승 스님에게 전화를 걸어와 “꼭 방문하셔야 하느냐”라며 만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제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종교 편향 문제 등으로 불교계와 각을 세우고 있는 현 정부로서는 조계종의 이런 움직임이 껄끄러울 수밖에 없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11월11일 조계종을 예방해 용산 참사 현장을 찾아준 데 대해 감사의 뜻을 밝히면서 “4대강 개발에도 관심을 가져달라”라고 부탁했다. 정부·여당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4대강 문제에 대해 불교계가 좀 더 적극적으로 입장을 표명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4대강 정비 사업에 대해 전국 교구본사 사회국장 회의와 조계종 환경위원회는 “정부의 4대강 정비 사업은 자칫 이 국토의 생명력을 비롯해 역사와 문화유산을 송두리째 파헤쳐 훼손하고 파괴하는 대재앙을 부를 수도 있다”라며 즉각적으로 중단할 것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한 바 있다.

사회 향해 적극적으로 목소리 낼 듯

▲ 11월4일 용산 참사 현장을 방문한 자승 스님이 유족들을 위로하고 있다. ⓒ불교포커스

조계종은 11월11일 부장급 인사를 끝으로 집행부 구성을 완료했다. ‘젊은 총무원장’을 뒷받침할 부장들로 종단 중진 이상의 인사를 기용했다. 총무부장에 영담 스님, 기획실장에 원담 스님, 재무부장에 상운 스님, 호법부장에 덕문 스님, 사회부장에 혜경 스님, 문화부장에 비구니 효탄 스님이 기용되었다. 

총무부장 영담 스님은 직설적이고 다소 과격한 언행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으나 실무 추진력은 누구나 인정하는 바이다. 조계종 종책 모임 가운데 하나인 보림회의 수장인 영담 스님은 특히 총무원 종무 행정 체계 정비와 불교신문 등 미디어 통합,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와의 불교 교류에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어 이 분야에서의 향후 움직임이 주목된다.

기획실장 원담 스님은 무차회의 핵심 인사로 ‘자승 스님을 총무원장에 당선시킨 1등 공신’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그만큼 각  계파를 조율하는 데 큰 역할을 했고, 현안 갈등을 최소화해 원만하게 풀어가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중앙종회 의원과 조계사 주지 등을 지내면서 맺은 정·관계 인맥 역시 기획실 업무를 지휘하는 데 큰 힘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금강회 출신인 재무부장 상운 스님과 무량회 소속인 사회부장 혜경 스님, 화엄회 소속인 호법부장 덕문 스님 등 이번에 임명된 부실장은 사실상 각 종책 모임을 대표한다. 따라서 총무원의 의사 결정이 중앙종회의 뒷받침을 받아 더욱 힘 있게 추진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총무부장 영담 스님은 “총무원 부실장은 사실상 각 계파를 대표해 파견된 사람들이다. 중앙종회의 도움을 받아 총무원을 더욱 잘 운영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자승 총무원장은 조계종 중앙종회 각 계파와 교구본사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 선출되었다. 조계종은 이를 바탕으로 불교 밖을 향해서 제 목소리를 내되 종단 내부적으로는 최대한 안정과 화합을 이루어가는 모습을 추구할 것으로 보인다.

자승 스님이 제시한 ‘소통, 화합, 불교 중흥’이라는 화두가 구두선에 그칠지, 실천으로 이어질지는 앞으로의 행보에 달렸다. 그러나 그 화두는 조계종과 불교 내부의 강화와 함께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들의 해법을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 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자 적극적으로 대사회 활동을 펼치겠다는 예고여서 더욱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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