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은 지구상 최악의 인권 문제”
  • 조철 (2001jch@sisapress.com)
  • 승인 2009.12.01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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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원조 힘입은 경제 성장으로 빈곤 문제 해결할 수 있다는 경제론적 접근법 비판하며 해결책도 제시

‘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최근 우리나라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개발원조위원회에 가입한 사실을 보도하면서 빠지지 않는 제목이다. 원조 수혜국에서 공여국으로 지위가 바뀐 것이 우리나라가 처음이라니, 세계적인 이슈이기도 할 것이다. 내년 G20 정상회담의 유치와 함께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을 높인 계기가 되었다는 평가도 나왔다.

그런데 우리 국민이 빈곤에 대해 가진 시각은 그다지 변하지 않은 것 같다. 가난한 나라를 걱정하며 도와줬으면 하는 마음이야 아주 많이 커졌지만,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을 모른다는 말이 있듯이 가난한 사람이 받는 고통에 대해서는 단지 ‘가진 것이 없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간단히 지나쳐 버린다.

세계 최대 인권 단체 국제앰네스티(Amnesty International)의 일곱 번째 사무총장인 아이린 칸은, 최악의 빈곤 현장을 직접 겪었던 인권 활동가로서 빈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여러 해 동안 국제앰네스티는 실종, 강제 퇴거, 자의적 구금, 무장 단체의 폭력처럼 새로운 형태의 인권 침해에 대응하면서 활동 범위를 넓혀왔다. 국제앰네스티는 이제 ‘빈곤’을 인권 침해로 규정하고 있다. 양심수들을 위해 일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빈곤의 악순환이라는 감옥에 갇혀 있는 수인들을 위해 일해야 한다. 빈곤을 해결하지 않고 다른 인권 침해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은 더 이상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님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방글라데시 출신의 인권 활동가로서 지난 30여 년 동안 전세계 곳곳의 인권 유린 현장을 뛰어다닌 그녀는 빈곤 문제와 인권 문제가 너무나 밀접하게 얽혀 있다는 것을 체험으로 깨닫게 되었다.

아이린 칸은 <들리지 않는 진실 - 빈곤과 인권>을 펴내면서 빈곤 문제 해결에 구조적인 문제를 빼서는 곤란하지만, 이것을 인권 문제와 결부시키지 못하는 현실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남편에게 상습적으로 구타를 당하던 남아프리가공화국의 한 여인이 경찰에 신고하려 하다가 차비가 없어 결국 맞아 죽었다는 이야기는 빈곤과 인권 문제의 관련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칸은 빈곤을 물질적 결핍이라는 현상으로만 파악하고, 외국 원조와 결부된 경제 성장을 통해 빈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기존의 경제론적인 접근법에 대해 비판했다. 경제적 분석이 빈곤의 본질과 전체적인 그림을 포착할 수 없고, 경제적 해법만으로는 빈곤을 종식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천연자원이 풍부한 개발도상국들의 빈곤율과 부패 지수가 오히려 높다는 ‘천연자원의 저주’ 사례들이 이를 잘 설명해준다. 칸은 사람들을 가난에 빠뜨리고 그 굴레 속에 묶어두는 것은 박탈과 폭력, 차별과 배척 같은 인권 차원의 문제들이라면서, 빈곤을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인권적 프레임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무조건 퍼주지 말아라”라는 말이 있다. 칸이 이 말을 안다면, “퍼주기는 하되 인권 문제 해결 등이 바로바로 뒤따라야 한다”라고 주장할 것 같다. 칸은 빈곤 종식을 위한 최우선 과제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말은 쉽지만 어려운 일이다. 가난한 자들에게 힘을 실어주라니….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나니’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처럼 들리기까지 한다. 우리나라가, 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가 된 데는 ‘힘을 실어주는’ 이런 축복의 말씀이 있어서였지 않나 싶다. 왜 힘을 실어주어야 할까.

그 이유에 대해 칸은 사람들의 인식 전환과 행동을 호소하는 세계인권선언문 제1조에 있는 말로 대신했다.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하며 평등하다.”

 

ⓒ김영사
책 속에서 만난 사람 | 농부 기무라 아키노리 씨

유기농 사과 재배와 관련해서 방송에까지 요즘 많이 등장하는 일본의 농부가 있다. ‘기무라 아키노리’라는 이 농부는 한국의 사과 재배지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그는 대자연의 생명력을 굳게 믿고 상식과 불가능을 과감하게 뒤집으며 무농약·무비료 사과 재배에 최초로 성공한 고집쟁이 농부로서, 2006년 NHK의 프로그램 <프로페셔널-프로의 방식>에 출연하고, 이어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기적의 사과>라는 베스트셀러를 탄생시켰다. 평생 오로지 사과에 미쳐서 세계 최초로 썩지 않는 기적의 사과를 생산해낸 농부의 인생 성공 비결이 궁금했던 것이다.

그는 도전에 대한 대가로 10년간 앞이 보이지 않는 좌절과 가난에 허덕였다. 그러다 ‘나무만 보지 말고 흙을 보아라’라는 섬광 같은 힌트를 발견해 성공을 이루어냈다. 열쇠는 흙의 위력에 바탕을 둔 자연 재배, 고정관념을 깨뜨려 자연 속에 이미 준비된 해답을 찾아낸 것이었다.

그는 죽으려고 올라간 산에서 사과나무라고 착각할 정도로 탐스러운 열매를 맺은 도토리나무를 발견해 깨달음을 얻었다. 숲 속에는 농약 한 방울 뿌리지 않지만, 나뭇잎들은 우거져 있다. 그 비밀이 나무가 뿌리를 내린 흙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정신없이 산에서 내려와 사과밭의 흙을 관찰했다. 그는 산속 환경처럼, 사과밭에 잡초와 벌레를 내버려두고, 흙이 본래의 생명력을 회복할 수 있도록 애썼다. 그의 노력은 9년 만에 결실을 맺었다.

불가능이라 여긴 무농약·무비료 사과 재배. 이를 실현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그의 드라마 같은 인생담에는 욕심 많은 현대인들의 가슴을 울리는 메시지도 꿈틀거린다.

“사과는 인간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과나무가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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