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미래 권력’ 게임
  • 감명국 (kham@sisapress.com)
  • 승인 2010.02.09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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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미스터리’ 7문 7답 / 차기 대권 관련 복잡한 함수관계 숨어 있어…결과 따라 권력 지형에 큰 변화


설 민심은 세종시 논란에서 바로미터가 될 전망이다. 정부·여당도 설 정국까지 홍보전에 ‘올인’하고, 이후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심산인 것으로 풀이된다. 그렇다면 열쇠는 국민이 쥐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정작 국민들은 어리둥절하다. 도대체 세종시 문제가 왜 이렇게 온 나라를 뒤흔들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는 투이다. 세종시 논란의 핵심 사안 7가지를 문답식으로 풀어보았다.

01. 세종시  문제는 정책 논쟁인가, 정치권력 게임인가?

결론적으로 정치권력 게임이 맞다. 차기 대권을 바라보는 복잡한 함수 관계가 숨어 있다. 대선에서의 승리를 위해서는 충청 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실제 충청 표는 역대 대선에서 항상 당락을 좌우하는 캐스팅보트 역할을 했다. 실제 충청 지역으로 행정 부처 및 행정수도를 옮겨야 한다는 주장은 역대 대선마다 후보들이 공약으로 자주 등장시켰다. 1971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가, 1992년에는 김영삼 후보가, 그리고 2002년 대선에서는 노무현 후보가 각각 들고 나왔다. ‘수도권 과밀화 해소’를 주장했지만, 선거에서 충청 표를 끌어당기기 위한 노림수가 컸다. 2005년 행정중심복합도시가 탄생한 데에는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도 동의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이 있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충청권을 장악하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도 실천을 약속했다. 역시 충청 표를 의식한 것이었다.

박근혜 전 대표를 ‘미래 권력’이라고 부른다. 차기 유력한 대권 후보이기 때문이다. 박 전 대표는 세종시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2005년 당시 야당 대표로서, 탄생에 일조했다. 당시 서울시장이었던 이대통령은 여기에 반대를 했지만, 당 밖에 있었기 때문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박 전 대표를 미래 권력으로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이대통령과 친이명박계(친이계)의 입장에서는 세종시 원안에 흠집을 내는 것으로 그녀를 궁지에 몰아넣을 수도 있다. 반면, 박 전 대표의 입장에서는 2012년 대선을 위해 충청권의 지지 기반을 다지는 것이 절실한 시점이다. 한나라당 윤리위원장을 지낸 인명진 목사가 지난 1월 말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세종시 논란의 근원은 일부 정치인의 대권 싸움”이라고 정의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02. 박근혜 전 대표는 왜 세종시 원안 고수에 집착하는가?

친박근혜계(친박계)측은 청와대와 친이계의 세종시 수정안 카드가 결국 ‘박근혜 죽이기’라고 보고 있다. 세종시 문제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박 전 대표를 궁지에 몰아넣기 위한 전략이라는 것이다. 박 전 대표가 정부·여당의 수정안 강행을 묵인할 경우,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원칙과 소신의 정치인’ 이미지가 퇴색된다. 반대로 세종시 원안을 끝까지 고집할 경우, ‘대권욕에 눈이 멀어 충청 지역을 볼모로 삼는 정치인’으로 수도권을 포함한 다른 지역에서 반발 여론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즉, ‘비충청권’에 의해 고립될 수도 있는 것이다. 박 전 대표의 반대로 결국 수정안이 좌초될 경우, 자칫 “융통성 없는 고집으로 인해 충청권 발전이 가로막혔다”라는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친이계로서는 그 어느 쪽도 손해 볼 것이 없는 ‘꽃놀이패’라는 것이다.

친박계의 한 핵심 관계자는 “우리는 이미 저쪽의 수를 다 읽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원칙을 지키는 정도로 갈 수밖에 없다”라고 말한다. 그나마 대의명분을 지키는 선택이 상처를 덜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박 전 대표는 이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한쪽만 밀고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뜻이다. 친박계 쪽에서 지금의 세종시 전략을 잘 짜여진 시나리오로 보는 이유는 또 있다. 정운찬 총리 내정 이전부터 이미 정부가 사실상 수정안의 내용을 갖고 있었다는 의혹이 최근 정부의 한 문건에서 드러난 것이다. 친박계의 핵심인 이정현 의원은 “세종시 수정안에 대한 모든 일정이 청와대와 정부의 시나리오대로 착착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해 보이고 있다. 정총리가 임명된 이후의 논의 과정이나 지금의 토론 제의 등이 결국은 모두 요식 행위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해준다”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03. 한나라당 당론 변경은 가능한가?

한나라당 당헌 72조는 ‘당론 변경, 헌법 개정, 대통령 탄핵, 국회의원의 제명은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한다’고 되어 있다. 현재 한나라당의 의석 수는 1백69석이다. 이 가운데 1백13명 이상이 찬성해야 당론 변경이 가능하다. 현재 한나라당은 친이계 약 90~100석, 친박계 약 50~60석으로 추정된다. 최소 1백13석을 확보해야 하는 친이계로서는 만만찮은 대결이다. 정부·여당은 3월 당론 변경, 4월 국회 처리라는 시나리오를 갖고 있다. 일단 당론 변경에 성공하면 친이계가 주도권을 쥘 수 있다. 당원으로서 당론을 따르는 것은 당연하다는 명분을 확보할 수 있고, 상황에 따라서는 친박계에서 내분이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반면, 당론 변경에 실패하면 친이계의 타격은 치명적이다. 당론으로 채택되지도 못한 사안을 국회에 상정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친이계측은 당론 변경에 사활을 걸 것이고, 친박계는 이를 결사적으로 저지하기 위해 집안 단속에 나설 것이다. 

친이계의 대응 전략이 긴박해지고 있다. 안상수 원내대표가 “당론 결정은 재적 의원 과반 출석에 과반 찬성인데, 당론 변경은 3분의 2 이상으로 규정한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라며 당헌 개정 가능성을 내비친 것이 주목된다. 또 다른 대안으로 무기명 비밀 투표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홍준표 의원은 “무기명 투표로 당론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친박계가 ‘보스’의 눈치를 보지 않고 소신껏 투표할 수 있다면 이탈 표가 생길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04. 정부·여당은 진짜 세종시 수정안을 밀어붙일 의지를 가지고 있나?

한 중견 언론인이 얼마 전 세종시와 관련해서 이런 전망을 내놓았다. “세종시는 이미 죽은 자식이다. 이명박 정부는 정국 반전 카드로 두 개를 쥐고 있다. 하나는 남북 정상회담이고, 또 하나는 개헌론이다. 이미 그 두 개의 카드 중 남북 정상회담은 세종시 문제를 덮기 시작했다. 그 다음에는 개헌론이 기다리고 있다.”

실제 정총리를 비롯한 정부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수정안이 안 되면, 결국 원안대로 갈 수밖에 없다”라는 말을 조금씩 흘리기 시작했다. 일각에는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까 사실상 포기하는 것 아니냐”라는 의심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는 섣부른 판단이다. 일단 정부·여당은 세종시 수정안에 대한 ‘여론’에 사활을 걸고 있는 모습이다. 수정안 찬성 여론을 전국적으로는 확실한 우세로, 충청권에서는 오차 범위 내의 백중세로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이다. 이는 국회 처리와는 별개이다. 바로 명분 때문이다. 설사 야당과 친박계의 반대로 국회 처리가 불가능하더라도 “민의는 우리 편이었다. 하지만 불가항력이었다”라는 명분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지는 것이 곧 이기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 때문에라도 지난번 미디어법 통과 처리와 같은 그런 강수를 쓰지는 않을 것이 분명하다.

▲ 2월1일 국회에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기자들에 둘러싸여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05. 국회 가결이 되는 경우의 수는 무엇인가?

현재 국회 의석 수를 보면, 한나라당 1백69석, 민주당 86석, 자유선진당 17석, 친박연대 8석, 민주노동당 5석, 창조한국당 2석, 진보신당 1석, 무소속 9석 등이다. 한나라당 1백69석 가운데 친박계를 제외한 약 1백10~1백20석 정도가 그나마 정부·여당이 기대할 수 있는 표이다. 과반수인 1백49석에는 턱없이 못 미친다. 결국, 공략 대상으로 당내 친박계밖에 없다. 하지만 결속력이 강한 친박계에서 반 이상의 ‘이탈 표’를 기대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설령 무기명 비밀 투표로 한다고 하더라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현재로서 국회 가결은 거의 90% 이상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또 다른 가능성은 있을까. 크게 세 경우로 예상해볼 수 있다. 첫째는 4월에 처리하지 않고 일정을 지방선거 이후로 미루는 것이다. 상황에 따른 여론의 반전을 계속 기다려본다는 심산이다. 두 번째는 친이계에서 당근책을 제시하는 것이다. 즉, 2~3개 부처 정도의 이전을 양보하는 타협안을 제시해서 반대론자들의 이탈을 꾀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친이계와 친박계가 막판 대타협에 나서는 것이다. 이 경우도 역시 박 전 대표의 명분을 살려줘야 한다는 측면에서 몇 개 부처의 이전을 정부·여당이 양보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이다.

06. 국회 가결이 안 되면 ‘세종시’는 어떻게 되는가?

국회 가결이 안 되는 상황은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볼 수 있다. 국회 본회의에 상정했다가 부결되었을 경우와 아예 상정조차 하지 않았을 경우이다. 부결되면 사실상 세종시 수정안은 휴지조각이 된다. 원안대로 갈 수밖에 없다. 반면에 상정조차 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후속 시나리오가 조금 복잡해진다.

우선 국민 투표에 부칠 수 있다. 국회 책임을 탓하며 이대통령이 꺼낼 수 있는 카드이다. 세종시 수정안을 찬성하는 여론이 전국적으로 높게 나타난다면 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또 하나로는 이대통령이 전격적으로 세종시 수정안을 포기한다고 선언하는 경우이다. 국회 처리도 안 되고 국민 투표도 어렵다면, 이대통령이 적절한 시점에 포기 선언을 할 수도 있다는 주장이 여권 내부에서 이미 나오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냥 내버려두는 경우이다. 흔히 ‘장기 표류’라고 하는데, 가장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즉, 여야 간 또는 계파 간 대립만 계속되고, 청와대와 정부는 더 이상 이 문제를 언급하지 않고 그냥 방치하는 것이다. “세종시는 이미 죽은 자식이다”라는 말도 그래서 나온다. 이렇게 되면 세종시 문제는 결국 차기 대선 후보의 과제로 떠넘겨지게 된다.

07. 가결이 될 경우와 안 될 경우, 정국 지형은 어떻게 될까?

▲ 2월1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열린 ‘세종시 발전안의 의미와 입법 방향’ 토론회에서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 ⓒ시사저널 유장훈

세종시 수정안이 가결될 경우, 이명박 대통령은 임기 말까지 강력한 국정 장악력을 발휘할 수 있다. 4대강 살리기 사업도 탄력을 받게 될 것이다. 반면, 박근혜 전 대표는 대권 가도에 치명타를 입게 된다. 수정안의 가결은 곧 친박계의 분열 및 붕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차기 대권 구도에서도 이대통령이 헤게모니를 쥐며, 이른바 ‘이심(李心)’ 논란이 뜨겁게 일 것이다. 극단적인 상황으로 치달으면, 친박계의 탈당과 신당 창당 및 야당과의 연대 등 일대 지각 변동이 올 수도 있다. 반대로 세종시 수정안이 가결되지 않을 경우, 정국은 그야말로 안갯속이 된다. 혼란이 가중될 것이고, 서로 책임 공방만 치열하게 전개될 것이다. 박 전 대표를 비롯한 친박계는 더욱 강한 목소리로 친이계를 공격할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의 ‘주인론’이 크게 대두될 가능성이 크다. 박 전 대표의 힘을 의식한 일부 의원들이 ‘범박(凡朴)계’의 울타리 속으로 모여들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고, 대권 경쟁이 급속도로 앞당겨질 가능성이 크다. 이대통령은 다른 어젠더를 내놓으며 재빨리 정국의 반전을 꾀할 것이다. 하지만 집권 후반기의 내리막길에는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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